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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08정경 [69469] · MS 2004 · 쪽지

2008-02-08 12:48:30
조회수 4,646

고려대 정경학부에 합격하기까지(고교 입학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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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정경 정치외교학과 08학번 합격수기

안녕하세요^^
전 이번에 수시 2차로 고려대학교에 합격한 학생입니다^^
저의 입시 생활기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편의상 경어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괜찮으시죠?안된다고 하면 다시 다 수정해야하는-.-;;ㄷㄷㄷ 봐주세요~)

고1~3학년까지, 각 학년별로 이야기를 구분해서 쓰겠습니다.^^
괜히 이런거 써서 눈총받는거 아닌가 모르겠다는...
보고 심기가 불편하시다면 죄송합니다.
제 글을 보고 누군가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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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고로 진학하기까지의 숨겨진 이야기

나는 X도 G시에 소재하고 있는 전교생(1~3학년)350명 정도의 작은 학교(G시중앙중학교)에서 각 학년이 330명 정도가 되는 J시 SH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중학교를 2등으로 졸업하였던 그 당시 나의 동기들 3명이  S고라는 자립형 사립고에 입학했다. 솔직히 나도 가고 싶었다. 내가 그 애들보다 뭐가 못났다고 일반 인문계를 가야하나..
여기엔 다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10년 넘게 알고지낸 친한 지인에게 큰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만 그 돈을 떼이고 말았던 것. 그분은 빚을 갚지 않고 도망치셨고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빌려 준 돈을 메우기 위해 결국 사채에까지 손을 대게 되셨고... 그 후부터 우리집안의 가세는 그 전보다는 조금 기울게 되었던 것이다...(그렇다고 남에게 손벌릴 정도로 기울진 않았지만.)
그래서 나는 특목고의 꿈을 접고 일반 인문계고교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또 이왕 원서를 써야하는데 주위에서 J고를 쓰라는 의견이 많았다. 집안도 어려워서 수업료가 비싼 사립 SH 학교보다 수업료가 싼 공립 J고가 낫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어려웠던 집안 사정에도 불구하고 SH고를 1지망 학교로 쓴 이유는 뭘까?

첫째는 바로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비 기독교인과 J고 분들 기분나쁘셔도 이해해주세요^^)

아무리 J고가 좋다하나 SH고는 기독 명문 사학으로써 한강이남 제일의 107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와 선후배간의 끈끈한 인맥을 자랑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SH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도회가 끊이지 않고, 아침마다 반별로 예배를 드리고 목요일에는 학년별 혹은 전교생이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신앙인에겐 아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뒤돌아서서 생각해보면 고교생활 중 기독교 생활, 특히 기독교 동아리 활동(개인적으로 89년에 창단된 빛소리 중창단이란 기독중창단의 제 18기로 3년 동안 활동하였다)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주님의 은혜인지 모른다.

둘째는 SH고의 적극성 때문이었다.
SH고는 명문고교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많이 데려오고자 하였고, 어떻게 알았는지 별로 잘나지 못한 시골 촌에 사는 나에게 까지도 진학담당 선생님을 보내온 것이었다. 물론 J시내 모 학교 등에서도 중학교로 선생님들을 보내 우수한 아이들을 유치해가고자 했으나 집 앞까지 찾아오진 않았다. SH고의 적극성이 나의 마음을 SH고로 기울게 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셋째는 최근2~3년간의 SH고의 좋은 진학실적 때문이었다.
내가 들어갔던 05년에 졸업한 나의 3년 선배 中 전라북도 1등이 배출 되는 등 진학실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나의 선택은 현명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SH고를 1지망 학교로 쓴 원서를 내고 연합고사를 치르고 합격발표가 나고 3월에 입학하게 되었다. 연합고사 이후 나는 250점 만점에 약 238점정도로(평소 모의고사 볼 때보다 연합고사에서 3개정도 더 틀리는 바람에 170을 못 넘겼었다) 당시 J시 인문계 컷트라인은 무사히 넘겼기에 안도하고 있었는데...

또 하나의 시련이 닥쳤으니...
바로 기숙사 신청을 안 한 것이었다.
나보다 성적이 30점 낮은 아이는 기숙사를 들어갔다는데 나는 못 들어가게 생긴 것이었다. 이 일로 인해 아버지는 평소보다 좋지 못한 나의 연합고사 성적과 나의 부주의함을 꾸중하셨고 이에 반발해 나는 특목고도 못 보내줬으면서 라고 하며 대들다가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말았고 아버지의 매운 손맛 (그렇다고 우리아버지가 폭력아버지는 아니다. 당시 약 3년간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아버지께서 많이 화가 나셨던 것 같다) 때문에 나는 당시 12월 추운 겨울, 눈 내리는 저녁 10시 집안에서 입고 있던 속옷 차림 그대로 신발도 신지 못하고 돈도 챙기지 못한 채 맨발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아버지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도망쳤다. 그런 내가 도착한곳은 집 주변의 폐드럼통이 많은 아버지 친구 분이 운영하는 주차장...눈을 피하려고 주변에 있던 큰 대야를 벽에 비스듬히 세워놓고 그 안에서 추위에 떨며 울었다...
그때 세워놓은 대야 속으로 파고드는 겨울바람은 왜 이렇게 차가운지.. 그때처럼 내 신세가 처량했던 적이 없었다...
양말도 신지 못한, 얼어가고 있는 맨 발에는 더러운 모래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고...제대로 된 옷 하나 걸치지 못하고 하얀 반팔 면T에 속옷 바지만 입고 있던 나..

그때 나는 정말 아파트 옥상같은데로 가서 콱 떨어져 죽어버릴까,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어 죽어버릴까 등등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떨어지거나 차에 치였을 때의 고통을 생각하니...엄두가 안 났다. 아마 한방에 고통 없이 갈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그때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죽지 않기로 한 것은 하나님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손잡고 나간 G시 중앙교회(담임목사 김춘식)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서 자살하면 천국가지 못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살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결국 그런 시련 끝에 SH고 선생님의 도움으로 기숙사도 무사히 들어갈 수 있어서 참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며 SH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처럼 고교 진학 시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저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저의 재미없는 수험생활 얘기를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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