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brain [6702] · MS 2002 · 쪽지

2004-09-18 14:42:03
조회수 7,439

luxury brain ... 대학자퇴생이자 고졸자의 재수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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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정말 행복했었다...

입학 후 여자친구와 같이 연세대 백양로를 활보하며 자유로움과 웃음, 행복...

세상의 모든 좋은 말을 써야할 만큼의 기쁨을 느꼈다.

입학식 후 다음 날... 첫 수업은 시작되었고 다른 여느 누구와 다름없이

새로운 것을 접한다는 느낌에 설레었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명문이라면 명문이라고 불릴만한 연세대에 다니고

예쁜 여자친구도 있고 때마침 과외도 시작했기 때문에 돈 걱정없이 지낼 수

있고... 하지만 계속 무언가가 날 괴롭혔다.

첫 수업을 한 날 오후 난 종로학원에서 열심히 재수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종로학원은 2월달에 개강을 하기 때문에 내 친구들도 이미 어느정도

학원생활에는 적응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 친구들은 무척이나 내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대학도 즐겁게 다니는 것처럼

보이고 또 여자친구랑 같이 그들을 만나러 갔으니 심히 염장겸 자랑하러 간

꼴 밖에 안 된 듯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난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렇게 입학한지 2일, 3일이 지나고 4일째 난 자퇴를 결심했다.

그리고 그 날 자퇴서를 냈다.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극구 반대를 했지만 내 목표를 꼭 이루고 싶었다. 훌륭한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자퇴를 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이제 대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군인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이다.. 그리고 고졸자이다...

이걸 절실히 느낀건 신검 받으러 갈 때였다. 학력에 고졸자로 써야한다는...

하지만 고졸자라도 좋았다. 재수해서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만 있다면 몇 달은

참을 수 있었다. 수능 공부를 독학으로 하기 시작했다. 온갖 문제집, 참고서적들을

사고 공부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공부가 잘 될리는 없었다. 독학일 뿐더러

학교는 자퇴했지만 거의 매일 여자친구를 보러 신촌으로 놀러 다녔으니 공부시간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도 마냥 즐거웠다. 수능 공부를 하지 않아도 내 실력으

로도 충분히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3,4,5월...을

허비했다. 여자친구도 처음에는 무척이나 좋아하고 즐겁게 보냈지만 차차 내가

너무 방탕하게 놀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한테 종합학원 다니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그동안 논 것이 찔리기는 했는지 학원에 가기로 결정했다.

강북종로학원에 편입신청을 하고 대기번호를 받았다. 01수능 점수는 꽤 괜찮았기

때문에 학원에 편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학원비를 내 힘으로

충당해야만 했다. 아직 부모님께 말하기는 두려웠고 싫었다. 그래서 내가 과외로

번 돈과 여자친구의 힘을 빌어 학원비를 댔다. 그렇게 6월... 종로학원이란 곳을

들어갔다. 분위기는 내가 생각했던 학원과는 좀 달랐다. 재수종합학원은 사실

고등학교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담임도 있고 반장도 있고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기도 하고... 물론 다른 것이 있다면 자기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한다는 것...

난 이과반 화학2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반으로 들어갔다. 목표는 당연히 서울대

공대였다. 과는 당연히 원자핵공학과...

학원 반 친구들과 친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대부분이 의대 지망인 친구들이었다.

(01수능 이후 부터 재수생이 급격히 증가했고 의대열풍이 시작되었다.)

처음 들어가서 모의고사 성적은 썩 좋지는 못 했다. 특히 언어와 사탐 성적은

최악이었다. 언어와 사탐은 5등급 정도가 나왔고 반 내에서도 좋지 못한 등수였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여자친구를 만나서 노는게 즐거운 나머지

학원을 빠지기 일쑤였다. 삼한사온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삼일 쉬고

사일 공부하고...계속 매일매일이 이런 식으로 반복되었다. 종로학원은 출석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출결상황이 성적표와 같이 집으로 배송된다. 물론 난 부모님

께 재수 사실을 눈치 못 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소지를 친구 집주소로 해 놓아

서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학원에서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매일 학원을 나가는 건

정말 곤욕이었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접어들 무렵...

이제 부모님도 사실을 아셔야 했다. 2학기 등록금을 낼 시기가 되었는데 안 내고

있으니... 그제서야 부모님께 재수한다고 말씀드렸고 한 번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을 했다.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기 때문에 승낙은

해주셨다. 열심히 한다고 다짐은 했지만 공부는 많이 하지 않았다. 대학생인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 정말 수능 공부에는 좋지 못 한 상황이다.

학원도 아침 일찍 가는 것이 힘들어서 정오가 되어서야 가기도 하였다. 물론

학원에 있던 SCV들 (학원에 있는 학생관리하는 수위겸 지도하시는 분들을

지칭하는 말) 에게 제지를 많이 당했지만 언제나 그들을 무시하고 들어갔다.

항상 싸웠지만 언제나 무시하는 건 내쪽이었다. 지금은 그 때 그랬던걸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학원에 일찍 가는 건 정말 못 할 짓이었다.

이런 걸로 싸우기 싫어서 학원을 아예 안 나가는 적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반 담임이 수업하는 날에는 가도록 노력을 했다. 종로학원생들은 알지 모르겠지만

백ㄱㅅ 이라는 선생님 있는데 정말 코미디언 같은 분이라 실컷 웃기 위해

영어시간에는 꼭 수업을 들었다. 또한 강ㅂㅇ 이라는 수학선생님의

명강의를 듣기 위해 수학시간에만 들어온 날도 있었다. 잠시 이 선생님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야말로 수학의 신이다. 소위 요즘 인터넷 강사로 이름을 날리는

그런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뭔가 이상한 매력의 수학선생님이다. 학력고사 시절

서울대 수학과 입학을 하시고 서울대 입학시험에서 치른 수학시험에서 99점이라는

점수를 받아서 서울대 교수들을 경악케한 그런 분이다. 종로학원의 수학 선생님들

모두 이 선생님을 존경하게 진정으로 수학을 잘 하시는 분이라고 극찬을 한다.

(난 아직도 강ㅂㅇ 선생님을 찾아뵙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수학자가

학원에서 썪고 계신다는 건 안타깝지만 선생님은 학원일에 만족하시고 계시고

대학에서 가끔 강사일도 하신다.)

9월이 지나고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

100일도 남지 않았다... 공부를 해야했다.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서울대가 수과외만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완전히 나를 위해서

서울대가 나를 뽑으려고 하는 전형 같았다. 물론 이것은 정말 큰 착각이었다.

1차는 수과외로 뽑았지만 2차는 무시무시한 전형이 있었기 때문에...

이 때만 해도 난 입시전략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단지 수과외만 잘 하면 서울대

를 갈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물론 만약을 대비해 언어와 사탐도 대비를 했다.

포항공대는 전영역을 반영했으니...

서울대가 수과외를 반영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자만을 하게 되는 또다른

계기가 있었다. SK가 주최하고 종로학원이 시험문제를 내는 전국 모의고사에서

꽤 좋은 성적을 받았고 수학 부문에서 만점을 받아 상장도 받았다. 이 당시 만점자

는 극히 적어서 상의 의미는 더욱 컸고 내 자만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수능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하기는 해야했다.

10월부터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수학은 자신있었기 때문에 따로 공부할 시간을

배정하지 않았다. 외국어는 수업시간에 문법 정도만 집중해서 들었고 그외의

독해는 나혼자 해결했다. 이 때 내가 외국어를 공부한 방법은 성문종합영어를

가지고 공부한 방법이었다. 단순히 문법을 익히기 위함이 아니라 진짜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종합영어에 있는 단문 독해와 장문 독해를 모두 읽어댔다.

그리고 문법도 필요시 따로 노트에 정리해두었다. 이 정도 난이도의 독해와 문법을

익힌다면 수능 수준은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학은 함정문제만 주의하면 그다지 어려울 영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 공부는 현역시절 기본 개념 정리를 확실히 해두었기 때문에 교과서를

다시 정리 하지는 않았다.(현재 과탐에 많이 시간을 투자함에도 불구하고 또

문제를 지겹게 많이 풀어서 유형을 뻔히 아는데도 만족할 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

는 학생이라면 교과서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교과서들 중 과학 교과서는 이상하게

부실하게 보여도 거기에 있는 실험과 자잘한 개념들이 수능에서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과학을 공부하는데 기초가 되는 변인 부분.... 정확히 어떤 단원

이라고 기억은 안 나지만 통제변인, 종속변인 뭐 이런것이 나오는 부분이 안이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과학의 전반적인 문제를 풀 때 굉장히 문제를 쉽게 접근하게

해줄 수 있는 해결책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개념정리가 되어 있는 것을 바탕으로 문제집을 줄기차게 풀어나갔다.

사탐은 현역 때도 포기한 과목이라 딱히 대책이 서지 않았다. 마냥 교과서나

보는 수준이었다. 언어는 그 때부터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문제만 풀어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 하지만 딱히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냥 종로학원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데로 따라갔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학원 친구들과 친해질데로 친해져서 같이 게임방에 스타를 하러 다니기

시작했고 당연히 학원 야간자율학습은 하지 않았다. 또한 여자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항상 불안한 고질적인 병에 시달렸다. 이렇게 공부와 방탕한 생활이

교차되면서 어느 덧 수능 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간만에 길게 썼더니 매우 힘이 드네요. 한꺼번에 생각나는데로 막 썼더니
빠진 부분도 있을 듯한데 좀 아쉽긴 하지만 제 경험을 많이 토로해내고 싶다는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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