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brain [6702] · MS 2002 · 쪽지

2004-09-11 22: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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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 brain ...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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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수능이 끝나니 할 일이 없었다. 물론 학교는 나가야했다.

수능이 끝나고 이틀 뒤 기말고사를 보아야 했다. 모두들 짜증나 했다.

특히 수능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출석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교는

나왔지만 기말고사는 포기해버렸다. 나는 솔직히 수능을 못 본 것은 아니었지만

내신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 관리해도 잘 안 되었기 때문에 포기했다.

대충 평균 70점 정도가 나온거 같다. 기말시험도 치르고 그 이후엔 학교에서

논술 면접반을 나누어 운영하였다. 나도 어느 대학에 갈지 선택을 하고 준비를

해야만 했다. 아직까지는 담임에게 내 예상점수를 말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딱히

공부를 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강제적으로 들어야만 했기 때문에 그냥

친구들이 많은 논술반에 들어갔다. 물론 출석은 했지만 도중에 게임방으로

간 것이 대부분이었다. 스타, 레드얼렛, 포트리스 등등 그저 게임으로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수능이 끝나고 1주일 후쯤 수능을 잘 본 애 못 본 애 할 것

없이 모두 놀았다. 물론 개중에 재수를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수능이 끝나면 뭘 해야할 지 생각해보지 못 한 나는 마냥 게임을 하고 있었다.

수능성적표가 나오는 12월 초까지 그렇게 놀았다. 그리고 성적표가 나온 그 날...

모두들 긴장했다. 혹시나 1점이 더 떨어지진 않았을까하는 초조함...

다행히 난 내 예상점수와 일치했다. 우리 반 1등은 예상대로 탑중 한 명인

S양이었다. 원점수는 나보다 낮았지만 변환표준점수에서 나보다 높았다.

(다시 말하지만 이 시절은 영역별 성적이 중요한 때가 아니라 총점으로

대학을 가던 시절이다.)

결론적으로 내 성적은 평소보다 약간 잘 나온 정도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담임도 약간 놀란 눈치였다. 예상성적엔 350을 써냈으니 그럴 수 밖에...

그렇게 담임은 혼쭐을 내는 척하면서 기쁘게 웃어주셨다. 하지만 웃을 일은

아니었다. 01수능은 지극히 쉬웠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383점을 맞은 이과생이

4~5%밖에 되지 않았던걸로 기억한다. 또한 우리학교에서 만점짜리 학생도 나왔다.

예상대로 영어과의 K군이었다. 내신은 항상 1등이었고 실제 수능마저 전국1위를

차지한 것이다.(물론 만점자는 전국에 꽤 있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대학입시에 신경을 써야했다. 그동안 난 수능에 대한 대비만

해왔지 대학입시에 대한 전략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난 연대 사회

계열에 특차로 지원한 상태였다. 솔직히 내 내신으로 서울대 법대는 무리였기

때문에 연세대를 썼다. 고대쪽으론 가기 싫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촌에서

놀기위해... 그리고 이 때부터 어쩌면 재수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놀고

내년에 서울대로 가자하는 생각...

특차에선 내신을 거의 보지 않는다. 물론 약간의 내신을 보기때문에 외고가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내 점수가 지원자 평균의 위를 웃돌았기 때문에

걱정은 되지 않았다. 특차로 서울대 법대나 경영대쪽을 써볼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약간의 내신반영이 서울대 전형에선 나에게 치명적일 정도였기 때문에

서울대는 완전 포기였다. 지원해봐야 떨어질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대일외고에서 연고대는 많이 보내기 때문에 아무래도 연세대에 지원하면

유리하리라 판단되기도 했다. 지원결과는 합격이었다. 합격이기에 기뻐해야했지만

솔직히 기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대학인 서울대도 아니었고 원하던 과인

공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와서 생각이지만 정말 막무가내 입시전략이었던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지원했다 --;)

부모님은 약간 아쉬워하셨지만 상당히 기뻐하시고 축하해주셨다.

불어과의 다른 친구들의 입시결과는 대체적으로 좋지 못 했다.

S양은 고법에 합격했고 그외의 아이들 몇몇이 고법에 합격했다. 또다른 탑이었던

L양은 이화여대 법대로 가고 마는 수모를 겪었다. 물론 이 아이는 재수후에

서울대 사회대 차석으로 입학하게 된다.

이 당시 뉴스는 요즘과는 상당히 다른 웃긴 현상을 보인다. 요즘은 지방대 의대라도

서울대를 안가고 지방으로 가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이 당시에는 서울대 법대와

공대를 포기하고 성대 의대를 간 학생들이 화제가 되었다. 대학의 이름을 중요시

여기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과를 중요시해서 선택을 했다나?

우리반에도 이런 학생이 있었다. 나랑 친한 친구인데 서울대 공대를 갈 수 있음에도

단국대 치대를 지원한 것이다. 솔직히 난 좀 놀랐다. 지금 이 친구는 무척 만족하면

서 다닌다. 현실이 현실이니만큼...

그렇게 모두들 합격의 기쁨과 불합격의 슬픔을 느끼면서 졸업식을 했다.

수능 결과가 좋지 못 한 아이들은 졸업식에 오지도 않았다.

무덤덤하게 졸업을 하고 근 한달을 다시 폐인생활을 했다.

그리고 꽃피는 3월

대학이란 곳에 처음으로 입학하였다. 기분은 좋지 않은 채...



//드디어 첫수능끝까지 왔네요. 이제야 제가 기억을 잘 되돌릴 수 있는 부분이
왔네요. 지금까진 쓴 부분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 집에 앉아서 수기나 써야겠습니다. --
물론 둠3도 하면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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