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brain [6702] · MS 2002 · 쪽지

2004-09-11 14: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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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 brain ... 첫번째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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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평가 시작...

갑자기 떨린다. 한개가 틀리면 과가 하나 바뀌고 두개가 틀리면 대학이 바뀌고

세개가 틀리면 통학 지역이 달라진다...

(요즘 수능의 난이도는 01수능 보다 약간 높아졌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없을 것이지만 좀 오바해서 미리 말하자면 01수능은 이정도로 쉬웠다.)

한 문제 한 문제가 아쉽기 때문에 더욱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 듣기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독해를 시작하게 될 때 즘..

더워지게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이 난 더위를 많이 탄다. 히터가 너무 싫었다.

미리 준비한 냉수를 마시면서 얼음팩을 목 뒤에 갖다 대었다.

생각보다 언어가 쉽다. 모의고사보다 더 쉽다.

의외로 문제가 잘 풀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90분 시간 중 50분을 풀고

10분 검토를 한 뒤 끝낼 수 있었다. 평소 모의고사 때도 이런 적은 없었다.

마지막 60번 문제에서 약간의 어지럼증 때문에 헷갈리긴 했지만 그럭저럭

잘 넘어간 듯 했다. 잘만하면 120점이 나올 수도 있을것 같았다.

아직 다 풀지 못 하고 끙끙거리는 주변 학생들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휴식시간... 첫 수능이라 이 시기에 무얼해야할 지 몰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학 공식 몇 개를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2교시 수리영역1... 제일 자신있는 영역이다. 이변이 없는 한 수학은 다 맞을거다.

혼자 자신감을 넘어선 자만을 하며 시험지를 받아들였다.

받자마자 미친듯이 풀어제꼈다. 중간정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너무 쉬웠다.

기분은 좋았고 내가 쥔 샤프는 종이를 뚫을 듯 열심히 움직였다.

아뿔사! 갑자기 한 문제가 막혔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등비수열에 대한 응용문제로 석유 어쩌구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에서 5분 이상 끙끙거리고 있었다. 우선 얼른 다음 문제로 넘어가고

나머지 문제를 다 풀었다. 약 45분만에 풀이를 종료했다. (이 때 수학은

역대 수능 중 가장 쉬웠다. 하지만 나에겐 01 02 03 04 수리중 가장 애를 먹은 시험

이었다.)

결국 그 석유문제 하나가 남았다.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말리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수학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못 풀고 있다는

불안감이 너무 커지기 시작했고 100분의 시간이 끝나고 말았다.

너무나 간단한 문제였지만 이미 페이스를 흔들린 난 포기를 했다.

결국 난 그 한 문제를 조용히 OMR카드에 생각나는 번호로 찍었다.

점심시간... 괴로웠다. 수학에서 찍게 될 줄은 몰랐다. 비록 한 문제이지만

수학의 난이도가 쉬웠기 때문에 하나 틀리면 백분위가 안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같이 밥을 먹자고 2층에서 내가 있던 5층까지 올라와 주었다.

기분이 안 좋았던 난 정말 미안하게도 그 친구보러 혼자 먹겠다고 하고 내려가라고

했다. 혼자 김밥을 꾸역꾸역 넘기며 수학문제 하나에 아쉬워했다.

3교시... 사탐, 과탐... 이제 사탐만 잘 넘기면 된다..

비록 문과로 바꿨지만 여전히 이과 체질이었기 때문에 사탐이 두려웠다.

얼음팩도 다 녹아서 내 몸의 열을 식혀줄 만한 물건이 없었다. 점점 더워졌고

긴 팔 옷을 벗고 반팔티 하나만 입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너무 떨리고 긴장

되어서 박하스2병을 들이켜 마셨다. (절대 수능 시험장에서 박하스 마시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박하스를 마시고 사탐을 그럭저럭 풀어나갔다. 온 몸이 불덩이 같았다. 얼굴은

화끈거리고 문제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도 해내야한다는 일념하에

몸을 버렸다. 과탐은 생각을 깊이 할 만한 문제가 없었다. 모의고사와 상당히

유사한 문제여서 기계적으로 풀어냈다.

다행히 3교시를 쓰러지지 않고 넘겼다. 박하스를 괜히 마셨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긴장은 계속 되었고 그 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박하스 한 병을

더 마셨다. 외국어영역시간...

무난했다. 몸은 불덩이였지만 이미 기계적인 문제풀이에 적응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01수능 같이 쉬운 문제에선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무사히 4교시를 넘기고 마지막 제2외국어 시간을 기다렸다.

난 프랑스어과였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선택했다. 푸는데 정확히 3분 57초 걸렸다.

풀고 바로 잠을 잤다.

끝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감독관의 잡다한 말을 흘린 뒤 학교 밖으로 나왔다.

그 때의 그 느낌이란... 참 햏햏하다고 밖에 표현하지 못 하겠다.

힘든 싸움 뒤 머리는 지끈거리고 몸은 가누기 힘들고 끝났다는 기분에

약간 상쾌하기도 한 그 묘한 느낌,.,

학교 앞에는 어머니가 와 계셨다. 조용히 나를 차에 태우시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해보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아버지, 큰아버지, 큰어머니, 이모, 이모부

아버지 친구분들이 쫙 와계셨다 --;

모두들 수능의 끝을 축하해주시고 잘 봤냐는 한마디씩을 하셨다.

그 날 난 채점을 하지 않았다. EBS에서 하는 해설방송을 보지도 않았고

인터넷에서 답을 뒤지지도 않았다. 그냥 게임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레드얼렛2

를 밤새하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였다. 아침 뉴스에서 수능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가 나왔다. 결론은 \'쉽다\' 이거였다.

난 내가 어느정도로 했는지도 모르고 그냥 학교로 왔다.

학교 분위기는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대체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너무 쉬운 수능탓에 평소 잘 하던 아이들의 실수는 타격이 컸던 것이다.

최상위, 상위, 중위의 구분이 모호할 정도의 수능 난이도라 했다.

특히 우리반 탑 2명 중 한 명인 L양은 꽤 망친 모양이었다. 갑자기 나도

두려웠다. 혹시 나도?

담임이 예상 점수를 써내라고 했지만 난 채점을 하지 않은 상태라 총점 350점이라고

써냈다. (우리 반에서 350을 못 넘은 학생이 아마 1명 있었을 것이다 --;)

담임이 쭉 훑어보더니 나를 불러냈다. \"이거 니 점수냐?\"

\"네\"// 그래? 들어가라..

담임선생님이 꽤 의아했나보다. 학교를 마친 뒤 몇몇 아이들은 울기 시작했다.

몇몇은 우는 아이들 달래고 있었다. 난 한 친구가 가지고 온 신문에 있는 수능해설

지를 보고 채점을 하기 시작했다.

언어 다 맞았다.. 기분이 상쾌했다. 하지만 언어를 다 맞은 학생은 엄청 많았다.

하지만 평소 언어에 자신이 없었던 나에겐 이건 행운이었다.

수학.... 이럴 수가!!!!!

다 맞았다. 찍은 한 문제가 맞은 것이다. !!!!!!!!!!!!!

정말 기분이 좋았다. 본래 찍는 걸 싫어하는 나이지만 이건 진짜 수능이기 때문에

찍어서 맞추는 것도 대학가는 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니 더할 나위없이 기분이

좋았다. 사탐은 너무 두려워서 제일 마지막을 채점을 미뤘다.

과탐... 다 맞았다. 그야말로 cool~이었다. 언어 수학 과학을 다 맞았다.

이 때까지 정말 기분이 좋았다.

외국어... 문법에서 한 문제를 틀렸다. 아쉽기는 했지만 문법은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상태라 평소에도 자주 틀렸다.

불어... 너무 쉬워서 채점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냥 해본결과 다 맞았다.

(난 불어시간에 수학 공부를 하거나 잠만 잤는데도 불어를 다 맞을 정도로

쉬웠다.)

마지막으로 사탐... 2개가 틀렸다. 시험이 아무리 쉬웠다지만 예상외의

선방이었다.

나의 총점은 396이었다. 01 수능이 물수능이라지만 90점대라면 해볼만할 점수였다.

채점을 마치고 친구들과 오락실에 가서 메탈슬러그를 열심히 하고

집으로 일찍 들어갔다. 부모님은 나에게 점수를 물어봤지만 난 아직 채점을 안 했다

고 했다. 괜히 예상점수를 미리 말할 필요는 없을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했지만

부모님은 걱정을 하셨다. 아버지는 미리 으름장을 놓으셨다. 재수는 안 된다하고...

수능채점이 끝나고 이제 폐인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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