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brain [6702] · MS 2002 · 쪽지

2004-08-29 12:26:18
조회수 4,008

luxury brain ... 처음으로 패배를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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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부푼 꿈을 안고 대일외고에 입성했다.

대일외고는 무척이나 복잡한 구조를 가진 건물이어서 학교에 적응하는데도 한달

이 넘게 걸렸다. 교실이외의 다른 곳을 가면 항상 헤매었다.

처음엔 언제나 그렇듯이 서먹서먹한 분위기였다. 우리 반에는 남자 18명

여자 36명 인걸로 기억한다. (이 당시에는 반당 학생수가 꽤 많은 시절이었다.)

남녀 성비로 보면 정말 남부럽지 않는 그런 곳이었지만 항상 남학생들의

불만은 양보단 질이 중요하지 않냐며 뼈있는 농담을 하곤했다.

난 수업은 그럭저럭 귀로만 듣는 수준이었다. 불어수업은 듣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직 신입생이라 선생들이 두려워서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3주정도가 지나고 3월 중순이 갓 넘은 무렵 모의고사라는 걸 봤다.

이 때까지 난 모의고사가 무언지도 몰랐다. 내가 수능이란 것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라곤 수능은 400점 만점이다라는 것 뿐...

난 중학교 때 고등학교 내용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들

다 한다는 정석 한 번 보지 않았다. 난 그저 공부를 안 해도 수능정도의 시험은

380은 기본을 나오고 안해도 서울대나 카이스트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3월에 본 모의고사는 충격이었다. 이런 유형의 문제를 처음 본 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수능이란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험도중 주변 친구들을 살펴봐도 다 열심히 푸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난

언어영역 시간부터 말리기 시작했다. 평소 독서라고는 과학서적만 보아왔던

내가 독해력이 좋을리가 없었다. 언어영역은 60문제중 40문제만 풀고 시간이

끝나버렸다. 그저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나의 거만은 죽지 않았다.

공부를 안 했으니깐 그렇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렸다. 다음 시간은 수리1영역

시간이었다. 난 수능영역의 순서가 어찌되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처음 수능 수학 문제를 접하게 된 나는 평소에 수학 문제 풀듯이 하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3월달 시험이어서 범위는 집합, 명제, 그 밖에 수학적 기본소양을

묻는 문제밖에 나오지 않았다. 평소에 풀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었고

오히려 내가 풀던 문제보다 훨씬 쉬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당황하고 실수를

연발했다. 더군다나 집합은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으로 지금도 마찬가지다.

집합에서 문제를 조금만 틀어버리면 어김없이 머리가 핑핑 돈다.

그나마 수리1은 그럭저럭 넘어갔고 다음은 수리2영역...

사탐은 외운 것도 없고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어서 거의 찍었다. 과탐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수업시간에 귀로 그냥 흘린 내가 문제를 적절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을리가 없었다. 수리2는 정말 어려운 영역이구나... 이정도로 시험을

그냥 제꼈다. 마지막 외국어영역... 외고 입시 때문에 잠시 영어공부를 하긴 했지만

유창하게 영어독해와 청해를 할 능력은 어림도 없었다. 외국어 역시 그저 문제를

보고 답을 찍어 냈다.

내가 본 첫 모의고사는 정말 힘들었다. 대부분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처음 보는 모의고사는 정말 체력적으로 힘이 들다. 시험을 본 뒤 집에 가서

뻗어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모의고사 채점 결과를 써내라는 담임의 말...

그 전날 잠만 잤던 나는 얼른 채점을 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참담...

400점 만점인 시험에 280정도의 점수를 받았다. 이게 점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당시 우리학교 친구들 사이에선 수능 300점은 넘어야 기본적인

인간적 소양은 되지 않겠느냐 하는 소리도 있었다. 나에게 첫 패배이자 충격이었다.

2주후 성적표가 나왔을 때 결과는 내 예상과 다르지 않았고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전국 백분위가 30%였던 걸로 기억한다. 반석차는 뒤에서 세는게 엄청나게 빠를 정

도였다. 충격이었고 괴로웠다. 하지만 공부를 안 했다란 사실을

머리 속에 주지시켰다. 최악의 달은 그렇게 쉽게 넘어가고 내 시대가 도래할 거라는

착각에 빠졌다.



//오옹 제 나이를 물어보시는 분이 계시는데 앞으로 수기를 쓰면 밝혀지겠지만
현재 23살 04학번으로 사수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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