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연대햏자 [7996] · 쪽지

2004-08-03 17: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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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능을 통해 세상에 대해 배운다. <1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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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들이 하나의 기념일로 의식하는 수능 100일 전날... 열심히 공부 해라라는 말은 커녕 내 주변에는 내가 수능을 친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재수와 달리 삼수는 누군가의 위로에는 하나도 의지하지 않은 채, 오로지 혼자 공부하며 결과 역시 성공적이여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3수 시절이 끝나고 친구들과 모였을 때 수능 이야기는 입 밖에 나오지도 않았으며, 군대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주변 친구들 거의 입대를 했으며 나는 더더욱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

과학 탐구영역을 말렸을 뿐이지 전반적으로 수능시험을 망해버린 것은 아니다. 공대에 대해 알아본 결과, 일단 부담되는 공부량에 비례하지 않는 보상에 불만을 품기가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더 살펴본 결과 현재 인기 있는 의치한 계열에 지원 가능한 점수로 공대왔을 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가 되는 것 이였다. 따라서 이 경우는 나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그리고 교직이수가 가능한 수학과 쪽도 알아보았는데, 수학과는 선생님을 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수학\'이라는 학문을 탐구하기 위해 가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력이라는 것도 필요했다. 따라서 서강대학교 자연과학부가 끌렸다. 물론 각 대학교 홈피나 선배들을 만나서 정보를 수집했음은 당연지사였다. 서강대 수학과에서 경제학과를 복수전공하는 경우도 생각하고 있었다. 한 편으로 바로 언어영역 시험 치기 전 순간까지 연세대, 고려대만을 바라봤던 내가 이제 차선책을 찾아야 하니 씁쓸한 마음을 다실 수 없었다.

이윽고 성적표가 나왔다. lacri님이 예측한 변환표준점수와 비슷하게 나왔으며, 행운인지는 몰라도 예상보다 수과외 변환표준 점수가 더 많이 나왔다. 수과외 변표가 생각보다 높게 나오자, 생각지도 못하던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이 보였다. 만약에 공대를 간다면 서강대에 비해 한양대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것은 주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전년도 합격점수를 참고하고, 한양 공대에 재학중인 동창이나 선배들의 말을 경청했으며, 마침내 나군에서 한양대 공대를 쓰기로 마음 먹는다. 이제 과를 선택하는 문제가 남았다. 적성을 중시하며 예전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눈치작전을 하리라 마음 먹었으며, 그래도 어느 정도 마음에 두는 과를 찍어 두고 있었다. 공대를 지원함에 앞서 그나마 스스로 위안 삼은 것은 공학자(과학자)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취업이 어려운 것 잘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대학을 가서 좋아하는 수학, 과학 분야라도 더 깊이 있게 배워보고자 해서였다. 수학교육과라면 과학 쪽을 접해 보지는 않으니 말이다. 고2, 고3시절 과학2과목을 배우며 더 탐구해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는데 그 것을 이제 실현해 볼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지원당시 역시 경쟁률은 만만치 않았으며, 혹시 하나 떨어지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에 불안감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한편 그리고 운영하던 입시 커뮤니티의 손질에도 힘썼다. 몇 년간의 입시 경험으로 회원들을 상담해 주었으며, 전년도 합격점수 및 전년도와 올해와의 변환표준 점수를 비교하여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대부분 모집단위의 배치표를 작성하였고, 이는 연대 의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모집단위에서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수업을 들었던 노량진의 한 수학 선생님 제자들의 정모에 나갔다. 김밥과 라면등을 사먹어 본 적 밖에 없는 노량진에서 처음으로 술과 고기를 접했다. 재수시절 현장 강의를 듣다가, 3수시절은 1년간 인터넷 강의를 들어서 혹 나를 잊어 먹지 않았나 싶은 선생님께서 나를 보시더니 \'많이 변했구나\'하고 말씀해주셨다. 많이 감사했다. 여태껏 노량진을 갔을 때와는 매우 다른 기분이 들었다. 한 선배가 오셔서 좋은 말을 해주셨다.
\'현재 사회의 취업난이 심화된 데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 공부하는 대학생은 20%이다. 공부하지 않고 졸업해서 취업을 하고자 하는 80%는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원서 접수가 끝나고 나서 버스를 타고 가서 신촌의 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쩌면 신촌에 대한 로망을 이번 기회를 통해 해결할 수 있지 않나 싶어서였다. 그 큰 거리를 혼자 돌아다니며 건물을 외웠다. 서울 및 수도권의 지리를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 아래에 혼자서 구로, 경복궁, 노량진, 안암, 대방, 용산, 종로, 신촌, 홍대, 시청, 남대문, 서초동.....등 서울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지하철 요금 700원으로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서울의 큰 장점이 아닌가...  내가 서울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 받은 일이다.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이를테면 광화문에서 고(古) 김선일씨 추모 집회를 한다는 것)는 바로 조금만 지하철을 타고 가면 볼 수 있는 광경이며, 정치인들이 연설하는 것도 조금만 신경 쓰면 그 현장에서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지방에 비해 더 다양한 문화행사에 참여할 수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다양한 가치관 지닌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보장되며, 정작 사회의 부조리가 있다고 해도 가장 먼저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게 서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점점 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며 끝내 조금씩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가 있다면 그 것으로 내 할 일은 다했다고 본다.


신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 앞에는 유난히 빈 공간이 넓어  연대생들이 술을 마시고 난 후 20명 이상이 모여 깃발을 휘날리며 응원가를 부르곤 했다. 이제는 내 얘기가 될 수 없는 그들을 보면 역시 아쉽기만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전에는 근처 도서관에서 여태껏 못 본 영화들의 DVD를 봤다. 사람들과의 가벼운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문화 생활에 어느 정도 다가가고 싶은 욕구에서 였다. 그리고 나서 종각의 영풍문고에 갔다. 영풍문고에서 세시간 씩 서서 경영, 경제, 자연과학, 역사 분야 등의 책을 읽고, 중요부분은 메모지에 적어두곤 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 역시 손님들과의 대화에 치중했다. 예를 들면 \'태백산맥\' 책을 들고 온 손님이 있었는데, 그 분과 책 내용에 대해 몇 분간 이야기했고, 음식을 추천해달라는 손님 앞에서는 내가 시식해본 경험을 토대로 세세히 설명하곤 했었다. 일자리가 식당이라는 것은 타지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식사를 해결 할 수 있어서 많이 유리했다. 제대로 끼니 챙기지도 못 할텐데  일찍 와서 점심도 먹으라고 권유하신 사모님에게 많이 감사했다. 일이 끝나고 막차를 타고 오면 그 날 읽은 책의 독후감을 쓰고 컴퓨터를 두들기며 정보수집을 주로 했다. 그리고 운영하는 입시 커뮤니티의 회원들과 대화를 하며 정을 쌓아갔다. 또한 이 당시 쓴 10편까지의 수기 다음 내용을 구상했다. 무엇보다도 솔직하게 그 간의 삶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003년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2003년 마지막 날... 친한 친구들이랑 같은 자리에 있게 되었다. 2003년 초반에 알게 된 두 사람이 생각났다. 첫 번째로 고려대 경제학과 03학번인 친구였다. 당시 고려대 발표를 기다리며 서로 둘 다 합격하면 열심히 할 자신은 있다고 했었다. 봄에 만나서 더 이상 재수생이 아닌 고려대생으로 느껴진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리고 고맙게도 그 친구는 그 약속을 지켜주었다. 친구가 자랑스러워서 였을까....아니면 지금 나랑 비교가 되는 것이였을까....
두 번째로 고려대 컴퓨터학과 03학번인 친구였다. 03년 고대 수교과 지원부터 지금 현재까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쭉 바라보았던 친구였다. 그리고 나서 그 친구로부터 감정이 약해지게 하는 한 문자를 받았다.
\'올해는 그동안 고생한 거 모두 보상 받으시길....\'



아버지의 권유로 교대에도 지원을 했다. 당시 면접 때, 면접관들에게 내가 살아온 과정은 바로 교대에 오기 위한 것 이였다는 식으로 있지도 않은 사실을 둘러대고 있었다. 많이도 달라졌다. 옛날의 나를 생각하면 말이다.


이윽고, 한양대학교 1차 합격자 발표날이 왔다...주민등록번호를 치고....확인버튼을 눌렀다..



불합격.....



그런데, 예비번호가 나왔다. 예비번호를 이용해서 추가합격 확률 계산에 들어갔다. 전년도 추가합격자 수와 최종점수, 합격자가 가군 다군으로 빠지는 경우의 수, 하향지원으로 한양공대를 지원한 사람의 수등... 이용할 수 있는 모든 통계를 이용하여 확률 계산에 활용했으며, 이틀 간에 걸친 6시간 이상의 계산 끝에....마침내.. 분석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문자를 보냈다. 각종 통계 및 확률을 이용해서 구하니, 추가합격 확률이 80%이상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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