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연대햏자 [7996] · 쪽지

2004-08-02 14: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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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능을 통해 세상에 대해 배운다. <1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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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를 써 나감에 있어서, 예전 생각들을 떠올리다 보면 아쉽게도 빠뜨리는 부분이 나오기 마련이다.

첫 번째로 입시 사이트의 아이디(닉네임)이야기이다. 현실을 찾아서 비(非)고려대를 지망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활동하던 각 입시사이트의 닉네임을 신촌 또는 연대를 포함하게 바꿨다. 연대는 고대가 아닌 학교 중 가장 최선책 이였으며, 닉네임은 반드시 연대를 지망한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더이상 고려대만 지망하지는 않겠다는 쪽에 가까웠다. 지금 닉네임 역시 그 때 당시 \'고려햏자\'에서 바꾼 것 이였다.
연대를 지망한다면, 나에게 유리한 점이 다수 존재했다. 연대는 다른 대학과 다르게 수능 전 영역을 반영했다. 어려웠다고 칭해지는 03수능 사회탐구영역에서도 1등급을 찍었고, 항상 고득점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자연계 학생들의 사탐 기피현상은 점점 심해져서 점수를 적게 받아도 변환표준점수상의 큰 이익을 받는 현상이 속출하였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또한 국내 대학로 1번지인 신촌에 대한 로망도 연대를 지망하는데 한층 기여했다.

두 번째, 수능을 얼마 안 남겨두고 등장한 오르비 회원의 가지각색의 수능 대비 방법론은 놀랍게도 내가 그동안 찾아낸 것과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으며, 그 글들은 주로 글쓴이 들의 \'겸손\'보다는 오히려 \'자신감\'을 담고 있었다. 당시 개설된 \'2004수능 나의 다짐 게시판\' 에서도 마찬가지로 \'나는 충분한 실력이 있는데, 수능 따위 못 볼 리가 있겠냐\'는 식의 자심감이 가득찬 표현들이 주를 이뤘다.

세 번째, 특히 수능원서접수를 할 때 즈음에 고민했던 문제이다. 바로 인문계, 자연계 중 어디 쪽 시험을 볼 것이냐는 것이다. 자연계 학생이 인문계로 전환하였을 때 수능점수와 대학진학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는 것은 거의 인정된 사실일 것이다. 그 뿐만 아니였다.  수시모집 최저학력기준에서 발견한 모순점도 큰 몫을 했다.

지금도 최저학력기준에서 문과, 이과 같은 기준을 두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고, 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문과는 총점 2등급, 언수사외 2개 영역 2등급, 이과는 총점 2등급, 언수과외 2개 2등급으로 제한을 두는데, 이를 만족하는 문과학생이 이과학생보다 훨씬 많다. 실례로 02 수능때 최저학력 기준에 미달되어 2학기 수시모집에 떨어진 학생은 이과가 문과보다 몇 배 이상 많았다. 원 점수, 변환표준 점수 상으로 분명히 낙방한 이과학생이 문과학생보다 점수가 더 높은데도, 문과학생 중 고작 4만등(대략 10%) 정도에 들어서 유명대학에 입성하는 것을 보면 당시 나로선 한숨이 나올 지경 이였다.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수시모집을 통과했는데 지식을 수치화 한 수능 점수 따위 무엇이 중요하냐고 늘어놓는 문과학생들에게는 그럼 이과학생 역시 마찬가지인데, 문과의 절반인 2만등(대략10%) 안에 못 들었다고 해서 합격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공평하냐고 묻고 싶다. 문과 최저학력기준 제한을 올리던지, 이과 최저학력기준을 낮추던지 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보고 있다.  
02년도 입시에서는 인문계로 수능을 응시한 후 등급 또는 변환표준 점수 상으로 이익을 본 후 자연계로 진학하는 교차지원이 판을 쳤다. 당시 고3이였던 나는 당연히 이과학생은 자연계, 문과학생은 인문계로 시험을 쳐서 전혀 경쟁이 일어날 수는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런 해괴한 현상이 벌어짐에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이로써, 대학 자연계 신입생의 수학, 과학 실력이 저하하자, 다음부터 각 대학에서는 자연계 교차지원 불허와 자연계 응시자 가산점을 주었다. 물론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다.


인문계로 수능을 응시한다면 가장 나에게 맞는 과를 찾아야 했다. 그 것은 바로 경제학과, 통계학과였다. 인문계열의 다른 과에 비해 수학을 배우고 응용한다는 것에 있었다. 재수한 친구 중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03학번이 있다. 그 친구 역시 자연계였다가 재수하면서 인문계로 돌려서 시험을 친 경우에 속했으며, 원래 자연계답게 인문계 수학, 과학에서 상당히 우수한 점수를 받고 진학했다. 한 편, 이과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문과학생들은 과학탐구영역을 점점 기피하여 아예 손에서 놓다 시피 했다. 그래서 턱없이 부족한 점수로도 상위의 %가 나왔으며, 이를 이용하여 내가 과학탐구를 문과에서 응시하면 굉장한 이익을 볼 수 있었다. 수리영역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과에서 어렵다는 응용된 수학 1문제 정도는 수학2를 섭렵한 내게 우습기 짝이 없었다. 따라서 내가 이번 수능을 문과로 치면 연세대 상경계열, 사회계열  또는 고려대 경영대학, 정경대학 은 따 논 당상 이였다. 물론 내가 우수해서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내가 유리한 많은 사항들을 볼 때 말이다.

갈등은 계속됐으며,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안되면 연고대 이공계열을 가자 하고선 자연계로 접수했다. 또 연고대 이공계열이라면 이학계열을 갈 것인지 공학계열을 갈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었다. 만일 선생님이 되는 것을 여전히 생각한다면 이학계열에서 교직이수를 하는 것도 괜찮았으나, 취업을 생각할 때 공학계열이 끌리기도 했다. 머리 속이 굉장히 복잡한 채.. 나중에는 이 모든 것들은 수능 끝나고 고민하기로 했다.





2004 수능 시험장.. 내 수험번호는 짝수형이다. 시험 문제는 홀수형 기준으로 나오고 짝수형이 보기의 배치를 바꾼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보기를 배치하는 출제자의 심리를 읽어서 문제풀이에 접근하는 나로선 이 것이 불가능해졌기에 많이 아쉽다.

언어영역을 풀 때, 평소와 다르게 듣기, 쓰기 영역이 평이했다. 원래 신유형이 출몰하여 시간을 까먹게 하는 문제도 많이 나오고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문제풀이 시간의 중요성은 수 차례 언급했듯이 빠른 속도로 풀어 나갔다. 이윽고 모든 문제를 다 풀었는데.... 이런... 시간이 5분 이상 남았다..
독해속도가 느린 내가 시간이 남았다는 소리는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많이 시간이 남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03수능 언어에선 문제를 정신 없이 풀어 제끼다가 종칠 때 시험을 끝냈었다. 따라서 처음 수능을 접해본 대다수의 고3학생들은 당황하여 몇 문제를 풀지도 못하기 일쑤였고, 이는 그대로 재학생들의 언어점수 하락으로 이어져서 이익을 봤다. 그러나 이번 수능 언어영역에선 체감 난이도가 떨어짐에 따라서 긴장한 재학생들이 시간 부족으로 문제를 못 푸는 현상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아쉬운 순간이였다.

수리영역에선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까다롭거나 안 풀리는 문제는 일단 넘기고 최대한 수학적 센스를 발휘했다. 내가 느낀 체감 난이도는 03수능과 비슷했다. 굉장히 난해하게 출제될 것이라는 전망에 신경 쓴 나머지 오히려 다른 학생들, 특히 재학생들이 느낀 난이도보다 훨씬 높게 난이도를 느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평이하기만 한 주관식 문제를 틀리는 범실을 저지르게 이른다.

희안하게도 내가 응시한 시험장에선 수학시험이 끝나자, 학생들이 \'언어는 쉬운데, 수학은 어렵다\'는 평이 많이 나왔다. 나중에 알려진 바와 정 반대로 말이다. 그런데 분위기 탓인지 나중에 뉴스를 보기 전까지 나 역시 저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교감 선생님이 중간에 학생들에게 체하지 말라고 온수를 따라주셨다.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껏 무난히 넘어갔다. 남은 것만 잘 치르고 가자. 작년의 재현만 이루자\'


과학탐구영역에서 가장 먼저 푼 것은 화학 2였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생전에 처음 보는 문제들이 속속 등장하였으며, 문제마다 꼼꼼한 자료해석을 요했으며, 보기의 배열 또한 조밀하였다. 최고의 화학 2 난이도였다. 16문제를 푸고 나니 45분이 지나갔다. 마음이 급해져서, 어서 사회탐구영역을 빨리 풀어 제꼈다. 다시 되돌아 볼 시간도 없었으며, 공통과학도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해서 끝내버렸다. 공통과학 역시 평소에 가장 평이한 화학부분에서 난해한 문제들이 집중 출제되었다. 과학탐구 영역을 풀면서 과학 공부를 굉장히 깊게 한 나한테도 이 정도 난이도인데 다른 사람은 죽어나겠다며.. 오히려 출제진이 내 주력과목인 과학탐구영역에 변별력을 준 것에 감사했다.

외국어 영역의 모의고사보다 쉬웠다. 작년보다 독해속도 및 감이 줄어든 느낌을 받았기에 외국어영역이 평이한 건 나에게 이득이였다. 어법문제는 역시 신경 쓰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핸드폰 카메라로 내 책상에 붙어있던 수험번호와 이름이 적혀진 종이를 찍어왔다. 이제 다시 이 곳에 올 일이 없겠지....시험장을 나오자 각 방송사의 취재진들이 마이크를 들고 다녔다. 만족하게 봤다고 생각한 나도 인터뷰나 해볼까하고 주위를 기웃거렸으나 기회가 오지 않았다.

다시 지인들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냐고? 만족한다고 했다. 작년이랑 점수가 비슷하게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오후8시, 집에서 메가스터디 싸이트에서 채점을 해 볼 때까지 이 답변은 계속되었다.




채점을 하는 순간....
이런....어찌 된 일인지 선방했다고 생각한 과학탐구 영역(특히 화학2)를 완전히 말려버렸다. 60점 이하의 점수가 나왔으며 커다란 충격으로 와 닿았다. 주력 과목 과학탐구영역이 도리어 점수를 깎아먹는 영역이 되어 버렸다. 다른 영역은 전년도 수능점수와 비슷하게 나왔다. 다만 바뀌어버린 배점으로 인해 같은 문항 수를 틀려도 작년보다 점수는 다소 감소하였다.  언어영역 3점짜리 문항은 역시 내 예상과 다르지 않게 다수 틀려버렸으며, 다른 영역에도 예외가 없어서 거의 2점짜리 문항을 틀려버림에 따라서 총점이 하락할 수 밖에 없었다..


오후 8시를 기하여 결과를 물어 본 사람들에게 말하는 사실이 달라졌다. 이럴 리가... 특히나 그리 자신있던 과학탐구에서 내가 도대체 무슨 있는 문제를 틀렸는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오르비내의 수능게시판은 폭주를 이뤘으며, 많은 자연계 학생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문과 사회탐구영역에 비해 이과 과학탐구가 상당히 난해했다고...


그런데, 이번에는 수능을 잘 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였다.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 일뿐.. 따라서 좌절하지는 않았다. 많이 안타까울 뿐 이였다. 연세대, 고려대 지원이 불가능했다. 차선책을 생각해야 했다. 몇 일 이내로 예상 배치표가 나오고, 예측 변환표준 점수가 등장했다. 이를 토대로 해서 입시 전략을 짜야했다. 사범대학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커트라인이 올라갈 것이 뻔하고 다시 몇 년전의 사고를 지녔던 나로 회귀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입시싸이트나 선배들의 말이나 신문 자료를 토대로 해서, 공대, 자연과학대에 관한 이야기를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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