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enia [10538] · 쪽지

2004-07-26 00: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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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aring toward the future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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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평정심을 잃지 않았기에 수능 시험에서도 떨리지는 않았다. 수능 몇 주 전부터 그저 담담한 마음이었다. 더도 덜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했다. 마찬가지로, 수능 시험에서도 그대로 할 수 있는 만큼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언어영역은 생각보다 꽤 까다로웠다. 황급히 다 풀고 나니 8분이 남았다. 휴 하며 마킹을 하다가 한 지문을 모르고 넘겨버린 것을 알았다. 순간 긴장했지만 최대한 차분히 풀려고 노력했다. 언어영역 시간이 끝나고 나면 정말 허무함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이 실력을 다 발휘한 사람에게는 홀가분함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막막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난 복합적인 감정이 겹쳐서 준비해온 수리영역 정리는 읽지 않고 바깥공기를 마시며 마음을 차분히 하려고 애썼다. 수리영역은 가장 자신 없는 영역이었는데 정말 술술 풀렸다. 나중에 시험이 끝나고 난 뒤 사람들이 ‘만점자 속출하겠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쉬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밥을 든든히 먹었더니 잠이 쏟아졌다. 조절 실패였다. 정신이 멀쩡할 때 최대한 많은 문제를 풀기 위해 시험지가 배부되자마자 맨 뒤에 있는 문제를 눈으로 다 풀었다. 그리고 역순으로 사회탐구 문제를 모두 푼 후에 과학탐구 문제를 풀었다. 1번부터 풀기 시작했는데 4번쯤 되니 정말 졸렸다. 시간이 여유가 있다고 판단하여 그냥 푹 잤다. 20분 정도 지나서 ‘지금 나는 수능 시험을 치고 있다’라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깨서 그 때부터 나머지 과탐 문제를 풀었다. 졸린 데다 상당히 까다로워서 ㄱ,ㄴ,ㄷ,ㄹ 선다형 문제는 소거법을 이용해 남은 두 개의 보기 중에서 찍다시피 했다. 시간은 다행스럽게도 20분 정도 남았다. 외국어영역은 대체로 무난한 난이도라 평온한 상태로 풀 수 있었다. 피곤한 머리를 짜내어 제2외국어까지 푼 다음 시험장을 나서며 느끼는 허무함이란…….

근처 PC방에서 친구 한명과 같이 가채점 용지를 들고 채점을 시작했다. 매기면서 정말 ‘헉’소리가 몇 번은 나왔다. 370. 전체적인 난이도에 대한 감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잘한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불안했다. 집에 와서 다시 매겨보니 372 혹은 373. 각종 입시 사이트에서 2주 정도 정보를 모아보니 해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한 마음으로 성적표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언어영역에서 그 유명한 논란 덕분에 2점이 올라 결국 375, 변환표준점수 380(변환표준점수 기준 오르비 추정 0.06%). 나한테는 정말 남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점수였다. 실제로 입시 결과도 그랬다. 수학 한 문제 실수했다면 모조리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군에는 고려대 법과대학을 쓰고, 나군에는 서울대 법과대학을 썼다. 다군은 아예 쓰지 않았다. 한양대학교를 쓰지 않은 것은 가군에 대한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오르비 예측으로 내 점수는 고려대학교 최초합격권 커트라인 선상에 놓여 있었다. 논술을 망친다 하더라도 추가합격으로는 어찌 될 점수라고 생각했다. 서울대학교도 1차 합격은 무난해 보였고 언수외 성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내신까지 합산한 성적으로는 1배수 안쪽에 들 것 같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작년에도 면접에서 뒤집힌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다. 면접 준비를 서둘러야 할 때였다.

12월 초, 상경해서 고시원에 자리 잡았다. 면접학원도 등록했다. 담임선생님 왈, “우리 학교에서 서울법대 매년 1명씩은 꼭 지원했었지만 서울에서 면접공부 안한 놈은 다 떨어졌어!” 나에겐 전혀 와 닿지 않았는데 같이 있던 어머니에겐 그 말이 와 닿았나보다 -_-+ 나야, 상경하든 집에서 공부하든 별 상관은 없을 터였다. 그렇게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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