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enia [10538] · 쪽지

2004-07-25 21: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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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aring toward the future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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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내가 다니던 학교는 자연계열 강세였다. 예체능계 학생들이 모두 문과에 왔는데도 문과 정원은 160여 명. 석차백분율로 내신 등급을 매기는 서울대를 생각해보면 불리했지만, 의대 열풍 탓에 공부 잘한다는 학생들이 자연계열로 꽤 많이 몰렸던 것은 내게 유리했다.

나는 나 자신을 구멍난 독이라 여겼다. 독에 물을 가득 채워야 되는데 구멍이 나 있으면 곤란하듯이,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비효율적인 암기와 문제풀이를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다. 노력을 쏟아 붓는 동안에는 일정 수위를 유지할지 몰라도, 다른 과목에 시선을 돌리면 어느새 그 독은 바닥이 드러난 상태 - 급한 마음에 문제 풀기에 바쁜 하위권 학생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내가 2학년 때 해야하는 일은 바로 그 구멍을 메우는 것이었다.

내신도 잡고 수능의 기초도 쌓기 위해서 내신 공부기간을 길게 잡았다. 꼼꼼한 학생이라면 한 문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대개 2주 정도의 기간을 두고 내신공부에 전념한다. 나는 3주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2주 간은 ‘수능형 공부’, 1주 간은 ‘내신형 공부’. 예를 들어 수학 시험범위가 행렬부터 함수의 극한까지라고 하자. 예전 같으면 학교 교재에 있는 문제 한번씩 푸는 것이 시험공부의 끝이었다면, 이제는 정석 기타 등등을 펴놓고 그 파트를 완전히 마스터하는 것이다. 학교 교재를 푸는 것은 그 다음이다. 이런 식으로 이중적인 공부를 했던 과목이 문학, 국사, 독어, 수학, 정치 등이었다. 특히 독어는 수능에 등장하지만 3학년 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과목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짧은 시간동안 효율적으로 볼 수 있게끔 미리 정리를 해두었다.

이와 같이 나의 공부는 철저히 학교 교과과정에 맞추어져 있었다. 물론 학원도 다녔는데, 주로 취약영역을 보강하기 위함이었다. 학원을 마치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또 하나의 학교처럼 여기고 학원에 종속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물론 필요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소중한 자기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는 것 같다. 나같은 경우에는 언어영역을 3개월 정도, 영문법을 2개월 정도 학원에 신세졌다. 둘 다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나와 거의 점수가 비슷한 라이벌 아닌 라이벌이 있었다. 내신도 거의 갈라먹다시피 했다. 네 번의 시험 동안 나의 석차는 2,1,2,1. 그 친구는 1,2,1,2. 서로 목표가 달랐기 때문에 선의의 경쟁이었는데 결국 비긴 셈이다. 성적이 엇비슷한 친구와는 친해지는 것이 수험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그 친구 덕분에 2학년 이후 수험생활 동안 내신시험도, 모의고사도 적절한 긴장감 속에 치를 수 있었다. 나의 모의고사 성적은 보이지 않게 올라갔다. 2학년 말에는 1년 전 슬럼프 때에 비해 약 40점이 오른 상태였다. 내 독에 난 구멍은 거의 다 메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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