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신촌연대햏자 [7996] · 쪽지

2004-07-07 12:02:15
조회수 2,204

나는 수능을 통해 세상에 대해 배운다. <1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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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정신적인 침체가 와야 힘겨웠던 지난 이야기를 솔직하게 늘어놓을 수가 있다. 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11편을 쓰기 전에 노량진을 다녀왔다면, 12편을 쓰기 전에 이광복씨 수기를 읽었다. ....그러나 대학 학기 방학 중 그 정신 상태가 오는 것은 마냥 어려운 일이다. 키보드를 잡으면 평범해질 수도 있는 그저 그러한 이야기를 늘어 놓을까봐 두려워서 못 잡고 있다가....마음을 추스려야 할 필요성을 느껴서 다시 한 번 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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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뭐하고 지내니? 학교는 잘 다니니?......
나 군대간다... 조만간 한 번 보자...

한국 남성이 20대 초반에 친구들로부터 들을 수 밖에 없는 전형적인 말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의 입대시즌이 되었다. 2002년 12월을 필두로.......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떠나갔다...

고3 내내 혼자여서 내 자신의 정신과 대화해야 했으며....... 이는 재수, 삼수를 선택함으로써  계속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사를 하여 주변에 아는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외부와 단절된 채로, 나는 원하지 않은 홀로서기를 시도해야만 했다...


일 하는 곳에서 나온 후, 가게 측은 불성실하고 변화 없는 경영을 했으며, 온화한 날씨와 맞물려 사람들이 소주가 아닌 맥주를 찾게 되고.. 불경기까지 겹쳐서 손님 수가 급감하게 된다. 식품비와 각종 세금, 주류세가 밀렸으며...종업원 월급 역시 차일 피일 미뤄졌다.
사장은 월급 날짜를 계속 연기했으며...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고... 심지어 젊어서 거의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뻘 되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종업원 부모님의 입김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같이 일하던 사람의 권유로 노동청에 신고를 해도 전혀 달라지는 것은 없었으며, 하루 매상을 도박과 술에 소비했다. 내 월급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피해서 일부러 잠수하고, 밤에는 또 도박에 술을 마시고....

그런데 정작 맘에 안 드는 건, 그런 그를 내가 일하던 당시에 꽤 친하게 지냈던 사람으로서 그에 대한 인정을 버릴 수가 없었다는 것 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어렵게 전화연결이 되자,

\'XX놈아, 누가 돈 띠어 먹는 데냐? 기분 나빠서 못 주겠다. 니가 알아서 신고를 해서 뺏아가든지 마음대로 해라\'

..................

여태껏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한 사람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순간 이였으며, 내 자신이 지극히 현실주의자로 바뀌게 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주는 순간 이였다.



\'무너져라.........철저히 무너져서 더 이상 가기 힘든 암흑의 끝을 보고 와라.... 그리고 다시 우뚝서라.....항상 옳은 길을 가려고만 하지는 마라.... 때에 따라선 너 스스로 허위와 가식의 탈을 쓰고 악역을 맡아라. 그 것이 바로 사회를 살아가는 법이다. 누군가 너를 도와 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모두 버려라. 아무도 너를 이끌어 주지 않으며, 오로지 너 스스로가 강해져야만한다.\'..........


고소를 한다는 것은 당시의 나로선 힘든 결정이였으나, 냉정해져야 한다는 판단아래 도장을 찍었다.



다시 한번 이력서를 썼으며, 더 이상 연락이 없어도 실망하지 않았다. 이력서를 제출할 장소로 도달하기 위해 평소에 탈 일이 없는 노선을 다니는 버스도 여러 번 타고, 낯선 지역을 부지런히 걸어다녔다. 이런 경험은 도움이 되어 그 곳의 토박이 사람들보다 오히려 그 곳 지리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이사온 지 몇 달만에, 어느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을 말한다면.. 그 사람의 출신 초, 중, 고등학교를 예측해서 맞출 정도였다.

이력서를 여기 저기 내보고,  끝내 한 입시 학원에서 시범강의를 거쳐서 수학, 과학 강사로 들어가게 된다. 열렬 사대 지망자였고,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지식을 전수해주는 것을 굉장히 매력적으로 여긴 만큼, 앞으로 맡게 될 일에 자부심과 기대가 컸다.
그런데, 주위 대학생들이 하는 말은 시급이 과외보다 약하지 않냐는 것 이였다.

\'학생과 눈을 맞춘 채, 한 사람을 진정한 인간으로 길러내고, 성장의 틀을 마련하는 이 숭고한 일 앞에서 어찌 시급이라는 그런 몰상식하고 세속적인 단어가 등장한단 말인가?\'

수 많은 대학생들이 과외라는 것을 하는데, 그 것을 자기 아르바이트, 즉 용돈 벌이 정도로 여긴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그 날 가르쳐 줄 것을 조금 보고 가며, 그저 교재에 있는 거 풀어주고.. 오죽하면 시간을 때우기 위해 과외를 받는 학생에게 농담을 유도하는 선생도 있다. 교육은 경제논리에 입각한 수요자, 공급자간의 매매가 아니다.  비로서야 인간을 만들어주는 교육이라는 존엄한 일 앞에서, 어찌 선생님의 노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만행을 저지른단 말인가.


강단에 서며 내가 들었던 선생님이라는 말은 그토록 내가 열망하던 존칭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학생들에게서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내가 계속 달리는 이유가 어쩌면 훗날에 저 호칭을 갖기 위해서인데. 아직 덜 준비된 상태로 받아들여야 했던 나는 죄책감이 들었다.

같이 일하던 다른 과목 선생님들이 몇 개의 교재에서 짜깁기해서 프린트를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문제를 냈던 것과는 달리, 나는 각 학년 별 난이도가 상 중 하인 문제를 구분해서 프린트로 쳐서 학생들에게 풀게 했으며. 학생 개개인과 상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도록 노력했다.

원리를 설명할 때 이 것이 \'왜 그렇게 되는지\' 에 주안점을 뒀는데, 안타깝게도 학생들은 암기교육에 물들여져 있었다. 그저 이해 안되면 점수라도 높이기 위해 외우는 식이였다.

예전에 수능 준비를 하며 더 쉽게 이해하게 된 중, 고등학교 학습내용을 그 학생들에게 전수해주도록 노력했다. 기말고사 대비기간에는 연장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선생님 수고하시네요\' 하며 주는 한 학생의 샌드위치와 교무실에서 보는 내 필통이 낡았다고 새 필통을 사서 선물해주는 학생의 작은 배려에 감동했으며, 무엇보다 어쩌면 학원 규율 상 강제적으로 시키는 것일지는 몰라도, 밤에 늦게까지 남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가는 모습을 보면... 단지 수학 과학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 내가 효율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써먹었던 방법들을 모두 하나씩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학 수업 중, 내가 독창적인 풀이를 가지고 있는 내용과 접하게 되고 이 문제를 보며 학생들에게 소리 높였다.

\'이 문제 답지를 보면 또 그 교과서적인, 정석틱한 장황한 내용들이 적혀져 있지. 시중 문제집을 봐도 이 풀이법은 다 통일해 놨어. 거기에 X를 긋고 내가 말하는 것을 써. 이 문제를 푸는 획기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어느 교과서에도, 문제집에도 내가 말하는 것은 없어. ..................(내용설명 뒤에).......
알겠지? 그런데 저 답지엔 왜 그렇게 해놨을까! 저 책 낸 사람들은 이 내용 모르니까! 난 알아. 왜? 난 공부했으니까! 내가 말해주는 이 내용이 좀 어려운 건 사실이야. 하지만 알면 더 문제를 빨리 풀 수 있잖아. 너네 들은 이 것까지 아는 건 싫어하지. 왜! 교과서에 없으니까. 왜 교과서대로만 풀어야 하는데? 이렇게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내가 책을 내면 이런 내용도 넣을 꺼야.\'



학생들에게 언성을 높여 했던 이 말은 내 자신에게 하는 것 이였다. 교과서로 대표되는 정형성.   \'빨간 불에는 건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압축되는 삶에서의 정도\' 를 걷고자 했던 자신으로부터의 탈피를 뜻하는,  내 자신에 대한 질책 이였다.


이윽고 기말 고사 기간이다. 기출문제를 보며 해당 학교 선생님의 출제 스타일을 간파해야 했으며, 중요시 다뤄지는 내용을 기말 고사 전에 언급했다. 이는 기말고사에서도 상당수 출제되어 학생들에게 감사의 말을 듣게되고.. 흐뭇해졌다.. 수확의 기쁨을 얻은 농부의 기분이랄까...

기말고사 끝과 함께 연장 근무도 마침에 따라서 다른 일자리도 구해야 한다. 시간을 더 짜투리 있게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처에 삼계탕 집에서도 일하게 된다. 어느새 21번째 생일이 되었다. 아무도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여전히 나는 혼자였다.  외로움....... 이젠 너무 익숙하다....


여름이 되었다.  고3때가 기억난다. 계속 동일한 모의고사 점수를 받아가며 불안감을 느끼고, 배수의 진을 쳤던...이 시기..
그 시기를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으며...당시의 불안감은 이제는 근원을 얼핏 알 것 같은 자신감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여태 잃어버렸던 어느 정도의 여유를 03년 여름에 조금이나마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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