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피로를 동반한다? | 오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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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공대햏자 [7996] · 쪽지

2007-06-28 02:26:27
조회수 1,611

개혁은 피로를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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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키보드를 두드려봅니다. 조금 편안하게.


  선배는 고난의 행군을 계속했고, 그것은 외로운 개혁이었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것만 해도 상당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실제로 모두 순탄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우선 선배는 후배들과의 신뢰를 쌓는 부분에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선배를 처음 알게 되는 순간, 후배들은 거의 호감을 느꼈고, 이 선배와 같이 있으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확신을 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선배가 대표가 되고 나서는 후배들에게도 역할 분담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고, 그걸 조심스럽게 그런 역할들을 권유하곤 했다. 선배는 그 전에 후배들 이야기를 경청해 주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들 그 모습을 좋아한 걸지도.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선배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는 없었다. 곧 선배의 큰 포부를 실현시켜줄 수는 없었다.

  선배는 회의에서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곧 \"이러이러하니 우리 같이 저러저러한 일을 해보자\"는 권유의 차원이었다. 하지만 어떤 단체에서라도 대표가 말이 많아진다면, 나머지 구성원들은 처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구성원들이 신이 나서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안을 짜면 대표는 그것을 중재하거나 최종 결정을 내리는 차원이 더 바람직하다. 어쨌든 선배가 후배들에게 거는 기대에 후배들은 못미쳤고, 선배는 여러 번 밤을 새기도 하고, 동아리 방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 하나. 동아리에서 활동을 끝낸 선배와 실제 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들 사이의 관계가 재편될 시기에 놓였다는 것이었다. 선배 이전의 대표는 활동은 끝났지만 학교를 다니고 있는 3, 4학년 선배들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지원을 물심양면으로 받곤 했으나, 선배는 그게 아니었다. 그 선배들이 졸업을 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에 이르자 선배들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에 놓였다. 여기서 선배는 본인이 직접 그 선배들을 찾아간다거나, 멘토링 제도 비슷한 것을 끌어와, 활동하고 있는 후배 한 명당 선배 4명 정도를 맡아서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는 것을 고안해냈다. 지금에 와서야 이것을 평가하자면 선후배 사이 인간관계 문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고, 그렇게 해서도 안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배와 후배들과의 유대감을 강화시키기 위해 억지로라도 후배들한테 밥 한 번 먹어보지도 못했던 선배들을 배정해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는, 이런식으로 인간관계를 누구 마음대로 정의해버린다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겠는가. 어쨌든 이것도 선배의 역할 분담차원에서 이루어 진 것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포인트 하나. 동아리 내의 나의 위치였다. 나는 1학년 때 계획했던 목표 4가지 중에 모두 제대로 이룬 것이 없었다. 그래서 2학년 때 \"동아리라도 확실히 하자\"라고 결정했다. 그것은 곧 내 대학생활에 알리바이를 쓰겠다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려면 동아리 내에서의 내 발언권은 강화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2학년 1학기에 모든 에너지를 그곳에 쏟아부었다. 그 이후로 1년 반 동안에는 거의 동아리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동아리방에서 거의 생활을 하다시피 했고, 그곳의 체제 개혁에 올인했다. 우리 학교에 다니는 이름 모를 학생의 부모님 한 명 한 명의 등록금, 학생회비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내가 학교로 부터 받게 될 장학금 100만원에 대한 책임감, 이런 여타의 이유들은 내가 그곳을 개혁하려고 했던, 그리고 그것을 해야만 했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세부적인 과정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역시 이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없었다면 여름방학이나 2학기에 내 활동도 없었다. 어쨌든 이런 일들로 인해 동아리 내에서의 내 발언권은 점점 강화되었다. 그리고 내 이름, 존재가 학교 내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름방학 들어서는 시사나 역사 지식을 쌓아야만 한다는 일념아래에, 한겨레 21이나 여러가지 사회과학 서적을 읽었으며, 학교 자유게시판 모니터링, 다음 결과물 준비, 인터뷰 준비 등등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내가 몇 년 전의 책을 보면서 느꼈던 선배들의 이상이나 열정 등을 나 이후의 몇 년 뒤의 후배들이 다시금 확인 할 수 있게끔 이번 호는 \'정말 잘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취재 방식을 개편하고, 비슷한 일을 하는 여러 학내 단체나 타 학교 단체와의 교류를 시도했다. 그 이후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고, 2학기에도 역시 \'동아리 올인\'은 계속되었다.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군대에 갈 텐데, 끝까지 책임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내가 걸었던 정당성이라는 기치 아래 스스로 몸을 혹사시키곤 했으며, 체력적인 면만을 보자면 \'잃어버린 2학년\'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정서적인 면에서도 많이 불안해졌으며, 주변 친구 관계나 과 동기 들과의 친분은 점점 약화되었다. 2학기 후반에 굉장한 정서적인 공황상태에  빠졌으며, 이제는 내게 남은 건 내가 학교를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윽고 11월 후반, 다음 대표를 정하는 문제에서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내 대학 생활의 놀라운 반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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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lence · 102505 · 07/06/28 15:30

    흐음 ,,

  • 젤로쓰 · 85027 · 07/06/28 19:43

    흐음...흥미롭네요. 다음 편 기대합니다. (뭐 소설읽는것도 아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지난 한 학기의 제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 [SE]보헤미안 · 186831 · 07/06/30 09:55

    열혈공대햏자님.. 글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 추억앨범™ · 6955 · 07/06/30 15:01 · MS 2002

    일단 저는 이 글의 제목에서 물음표 대신 마침표를 찍고 싶네요.
    그것이 과연 \'피로\' 라고 표현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지만, 아무튼 이래저래 힘든 일이니까요.

    어떤 단체이든, 그것을 이끌어나가는 대표들의 대부분은, 그 일을 시작할 때 비슷한 원칙들을 세웁니다.
    확정이 아닌 가능성, 독재가 아닌 민주, 강요가 아닌 자발, 딱딱함이 아닌 부드러움 등등.

    하지만, 대다수의 대표들은 일을 해나가는 도중에 높은 벽에 부딪히게 되죠.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었더니, 100인 100색의 사람들이 각자의 꿈만 펼쳐놓은채 마무리가 안 되고,
    단체의 정체성과 작업에 대해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었더니, 의견에 따라 편이 갈립니다.
    또한, 하고 싶은 사람들 위주로 일을 하려하니, 다들 자기 일에 바빠 결국 일하는 사람은 대표와 몇몇으로 한정되고,
    유연해지려 대표 자신의 위치를 조금씩 낮추기 시작하면 대표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단체의 구심점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대표와 마음이 맞는 소수 사람들의 의견대로 서로 간의 의사소통 없이 일이 처리되고, 그렇게 단체는 유지되어가죠.

    저도 그때는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고, 내가 단체의 중심에 섰을 때에는 반드시 바꾸리라고.
    하지만, 저도 결국은 높은 벽 앞에서 무너지더군요. 30년동안 해오던 대로 그렇게 똑같이 하다가 1년이 또 지나갔더랬죠.
    제가 \'열혈공대햏자\' 님께서 말씀하시는 선배를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단체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희생정신, 뛰어난 능력, 용기가 없으면 시작조차 못하는 일들이거든요. 그 \'알면서도 못하는 일\' 이란게.

  • 열혈공대햏자 · 7996 · 07/07/02 22:42

    Silence/관심 감사해요.
    젤로쓰/ 쓰다보니 한 학기 텀으로 쓰는 것 같네요. 다음 글은 학기에 벌어졌던 일이라기 보다는 심리묘사에 치중할 것 같습니다. 역시 관심 감사합니다.
    [SE]보헤미안 / 감사합니다. 닉네임이 마음에 드네요. 보헤미안, 저도 꿈꾸곤 한답니다.

  • 열혈공대햏자 · 7996 · 07/07/02 22:56

    추억앨범™ / 일단 고민이 묻어나는 긴 피드백에 감사드려요. 제가 쓴 피로라는 단어는 사회과학 서적에서 읽은 \'노무현 정부의 개혁 피로증\'(?). 뭐 이런 표현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네요. 저도 적절치 못하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는 말이 글의 \'완성도\'를 중시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냥 편하게 쓰려고요. :)

    언급하셨듯이 누구나 대표가 되면서 생각하는 가치를 끝까지 고수하려고 하지만, 그걸 지키려면 혼자만의 의지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도 추억앨범님과 비슷했네요. 자발, 민주, 가능성, 탈권위 등등의 가치를 목표로 삼았었죠. 어디까지 이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100인 100색 표현도 공감이 가네요. 제 경우는 후배들은 저랑 생각이 비슷했으나, 선배들이 견해를 달리했습니다. 뭐 그러다보니 충돌도 생기고, 인간적인 면에서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지요. 단체의 구심점이라는 거, 그거는 제가 그 당시에 스스로 버티게 할 무언가를 반드시 찾아야만 했기에, \"대표의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행위는 수용할 수 없다\"는 류의 다짐을 했습니다. 덕분에 후배과 저 사이에서는 구심점이 되었던 것 같지만, 역시 선배들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지요.

    그리고 여타의 학내 단체와는 다르게, 저희는 학교 학생의 돈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계속 \'학생들의 등록금, 학생회비\'를 생각하다보니, 그런 단순한 논리로 인해 제 결론을 고수하게 하더군요.

    선배 이야기는 앞으로도 조금씩 언급하고자 합니다. 역할 모델이 되었던 선배를 평가한다는 것이 기분이 참 이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마음먹고 시작한 글이니까요.

    앞으로도 즐거운 소통 부탁드려요. :)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