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여러분들의 입학을 축하합니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341618
대학에 곧 들어올 분들은 주의깊게 보십시오.
2006학년도 서울대학교 신입생 입학식에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축사입니다.
(06학번들 중에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경제학과 오몇 학번이신데... 저 때는 동경대 총장이라는 사람이 일본어로 하는 바람에 아무런 기억이...ㅡㅡ;;)
평생을 감옥과 학교에서 사색과 공부, 연구로 보내신 분이라, 글 한문장 한문장이 남달리 보이지 않습니다.
서울대 신입생 아니더라도 이나라 모든 대학의 신입생들, 그리고 재학생들에게 하나의 좋은 거울이 될 것이라 생각되어 올립니다. 아마 수시 끝나고 대학에 붙은 분들도 있을테니...
여러번 읽어보세요.
반응이 좋으면 또 하나의 멋진 글을 올리도록 하지요.
-------------------------------------------------------------------
여러분들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4년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 아름다운 시작을 이처럼 가까운 자리에서 축하하게 된 나 자신도 마치 47년 전으로 되돌아 간 듯 대단히 행복합니다.
나에게는 여러분이 지금 시작하는 4년의 대학 외에 또 하나의 대학이 있습니다. 20년의 수형생활이 그것입니다. 나는 그 20년 역시 \"나의 대학시절\"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개의 대학시절 동안 깨달은 것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대학시절에는 그릇을 키우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대학시절에는 그릇을 채우려고 하기보다는 그릇 자체를 키우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대학시절 이후에는 그릇을 키우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릇이 작아지고 굳어집니다. 그릇이란 물론 인간적 품성을 의미합니다. 인간적 품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이성과 감성을 열어야 합니다. 대문을 열면 마당이 넓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역사와 미래를 향하여 열어야 하고, 우리 시대의 아픔을 향하여 열어야 하고, 한 포기 민들레를 향해서도 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먼저 그릇을 비우고 그릇 그 자체를 응시하고 키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당장 소용되는 것들로 그릇을 채우려고 하기보다는 더디지만 느긋한 걸음걸이로 냉철한 이성의 머리와 뜨거운 감성의 가슴을 보다 멀리, 보다 넓게 열어가야 합니다.
둘째, 대학에서는 주춧돌부터 집을 그리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나와 함께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엇을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반대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맨 나중에 지붕을 그렸습니다. 그 분이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실로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붕부터 집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붕부터 집을 그리는 창백한 관념성을 청산하고 주춧돌부터 집을 그리는 튼튼한 사고를 길러야 합니다. 책과 교실, 종이와 문자에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대학시절에는 평생을 함께 살아갈 동반자를 발견해야 합니다.
대학 4년 동안에 여러분은 평생을 함께 할 사랑하는 반려자를 찾아야 합니다. 사랑은 자신을 빛나는 꽃으로 만들어줍니다. 그가 내게로 달려와 꽃이 되고 내가 그에게로 달려가 꽃이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자신을 아름답게 꽃피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 자기를 뛰어 넘는 비약입니다. 나는 어느 시나리오에서 왜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심하였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변한 대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Because I really conceived I could be a better person with him.\"
그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했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뛰어 넘음으로써 자신을 키우는 비약 그 자체입니다. 한 개인에 대한 사랑도 물론 아름다운 것입니다만 여러분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어떠한 사람들을 사랑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 어떠한 사회, 어떠한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더 큰 비약입니다. 자기를 뛰어넘는 사랑, 좋은 사회, 훌륭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랑에 대하여 생각해야 하며 여러분은 지금부터 그러한 사랑을 준비해야 합니다.
넷째, 대학시절은 씨앗을 땅에 뿌리는 계절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도 새봄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추운 겨울을 지내고 농사를 시작하는 정월보름에 오곡밥을 지어먹습니다. 오곡밥을 먹는 풍습은 땅에 씨앗을 심기 전에 먼저 씨앗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겨울 동안 곡간에 갈무리했던 씨앗이 건강하게 살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오곡밥을 지어 먹습니다.
봄은 꽃의 계절이 아니라 씨앗의 계절입니다. 여러분의 오늘이 아름답고 빛나는 날임에 틀림없지만 오늘은 결코 찬란한 꽃의 날이 아닙니다. 씨앗의 시작입니다. 아름다운 꽃도 결국은 씨앗을 위한 것입니다. 미련 없이 떨어져 씨앗을 영글게 하는 멀고 먼 여정의 어느 길목에서 꽃은 피었다 집니다. 그래서 꽃을 찬란한 슬픔이라고 노래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이 저마다 씨앗을 땅 속에 묻는 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잎을 틔우는 긴 여정의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대나무는 사람들이 심어서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뿌리에서 죽순이 나오는 나무입니다.
땅 속의 시절을 끝내고 나무를 시작하는 죽순의 가장 큰 특징은 마디가 무척 짧다는 사실입니다. 이 짧은 마디에서 나오는 강고함이 곧 대나무의 곧고 큰 키를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훗날 온 몸을 휘어 강풍을 막는 청천 높은 장대 숲이 될지언정 대나무는 마디마디 옹이진 죽순으로 시작합니다.
모든 시작하는 사람들이 맨 먼저 만들어내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짧고 많은 마디입니다. 그것은 삶의 교훈이면서 동시에 오래된 과학입니다. 여러분은 장대 숲으로 자라기 위해서 짧고 많은 마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직면하게 될 숱한 어려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먼저 마디마디 옹이진 죽순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아름다운 시작을 축하드리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둘러 그릇을 채우기 보다는 그릇 그 자체를 키우는 공부를 해야 하고, 지붕부터 그리던 창백한 관념성을 청산하고 주춧돌부터 집을 그리는 튼튼한 사고를 길러야 하며, 자기를 뛰어넘음으로써 오히려 자기를 달성하는 사랑의 비약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찬란한 꽃의 계절로 맞이할 것이 아니라 땅속에 씨앗을 묻는 긴 여정의 출발로 받아들여야 하고, 앞으로 직면하게 될 숱한 과제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기 위하여 짧고 많은 마디로 강고한 밑둥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지혜로운 사람과 반대로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는 우직한 사람이 그것입니다. 역설적인 것은 세상을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에 의해서 세상이 조금씩 발전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대학은 우리의 역사를 가장 멀리 돌이켜보는 곳이기도 하고, 또 우리 시대를 가장 넓게 바라보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학은 기존의 지배이데올로기의 재생산 현장이기도 하지만 비판담론과 대안담론의 창조적 산실이기도 합니다.
최근 급속한 세계화와 치열한 경쟁논리로 말미암아 이러한 대학 본연의 사명이 방기되고 대학 고유의 인문학적 가치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인간적 성장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대학은 어떠한 경우라도 그 사회의 정신을 지키는 창조적 공간으로 건재해야 합니다. 특히 여러분은 그러한 사명의 최전선에서 힘 있는 전위로 굳건히 서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4년 동안 겪게 될 방황과 고뇌와 사랑의 모든 것이 남김없이 여러분의 빛나는 달성의 자양분이 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여러분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시작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축하합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문법은 해석] chapter 0. 선공개 (파일 다운 받으세요) 0
독해학교의 '문법은 해석' Chapter 0은 아래의 링크에서 다운로드...
-
매년 나오는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난 문법 공부할때 이거 정말 도움 많이 됐음...
-
전형태 문법N제랑 수특수완 언매 둘다 풀어본사람들 투표좀 0
문법 문제 퀄리티
-
특히 내신에서 더욱 하십시오, 해라, 하오, 특수어휘 등에서 멘탈 갈리다 보면...
-
[칼럼] 24수능 언매 39번 문제로 느껴보는, 탄탄한 국어 문법 개념의 힘 37
*좋아요와 댓글은 작성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당신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
-
한번 공들여서 써보고 있는데
-
문법 자세히는 모르는데 신택스 들어서 대충 용어 정도는 알아요. 9평 때 문법...
-
구개음화의 역사적 변천에 관힌 내용을 최종 정리합니다. 참고하시면 좋을거 같아요~~
-
상상n제 살까 전형태 문법매체n제 살까 고민중인데 추천좀요
-
아름다운 꼰대와 함께하는 문법 시리즈1 - 겹벚꽃같은 겹받침 7
[아름다운 꼰대와 함께하는 문법 시리즈1 - 겹벚꽃같은 겹받침] 안녕하세요 완연한...
-
http://www.holsoo.com/m/product.html?branduid=1...
-
토익공부하려는데 영어 문법 개차반이라 책 좀 추천해주세용 ㅜ
-
지금 근본 영어 수강하고 있는데요, 독수리랑 어법끝start 병행 할 수 있나요?...
-
문법이 좀 부족해서 입문편 하고 기본편 하려는데 이것들 외에 추가적으로 문법 공부를...
-
"하늘이 건물 사이로 보였다." 는 피동인데 이걸 능동으로 바꾸면 "(나는) 건물...
-
수능 국어의 기본인 단어[품사]에 대한 나의 이해를 적었습니다. 단어[갈래] 단어는...
-
재수생 언매 0
재수 or n수생님들 언매 공부 어떻게들 하심? 6평보니까 살짝 헷갈리긴 했어도 다...
-
강의를 들을려고하는데 메가패스밖에 없어서요! 강민철은 4월에나온다고해서...메가에...
-
책을 뒤져보니 음운 변동의 유형 중 에 해당되는 예시들이 1.[자음군 단순화]...
-
띄어쓰기 정확하게 아시는 분 ㅠㅠ 너무 헷갈려요... 16
Q1. "나는 대학에 합격해서 뛸듯이 기뻤다" vs "나는 대학에 합격해서 뛸 듯이...
-
분량 어떻게되나요?? 마무리로 싹 풀어버릴라하는데 분량좀 갈쳐줘요 ㅠㅠ
-
ㅎ탈락 0
ㅎ탈락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나 접사 앞에서 탈락하는 현상이잖아요.자음군 단순화는...
-
9평은 비문학 2점 하나 틀렸고 문법은 젤 마지막에 풀었는데 다 맞았어요. 문법을...
-
다담 문법클리어 0
문법 클리어로 앞부분 강의 들으면서 복습하고 문클에 문제 풀고 다담으로 뒤에...
-
마더텅 문법 2400제 사서 내신 수능 대비 양치기 하려고 하는데, 그냥 마더텅...
-
학교에서 문법 내신 빡세게 했어서 문법 교재 사서 인강으로 정리하고 내후년 수능까지...
-
내신때 객관식 문법 100%에 서술형 문학인데, 22수능 언매 선택하는게...
-
내신시험문제에 '평소에 많이 먹은'의 의미와 유사한 것을 고르라 했는데요 과용이랑...
-
문법 도와주십셔 3
'철수는 먹던 빵을 버렸다'라는 문장이 겹문장인 이유가 '먹던' 때문인 건...
-
한땀한땀 만든 국어 문법 교재 문장 파트 업데이트 / 현대 국어편 완성 3
안녕하세요~!! 이렇게 또 오르비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 다름이 아니라 가...
-
이명학 일리 에바임?? 노베이긴한데
-
노베 문법인강 투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오르비 수험생 여러분! 전 오르비클래스 국어 강사 신한종입니다. 아주...
-
지방러는 아니지만 학원은 중학교 이후로 처음 가봤는데 괜찮았어요 작년에 인강을...
-
개념은 고2때 학원다니면서 총 두번정도 돌렸었구요 기출 문제도 꽤 풀었었어요. 지엽...
-
문법 개념 질문 0
형태t 문법 올인원 다듣고 씹노베에서 탈출했는데 아직 아리송한 계념이 남아있어서...
-
요놈이 예문도많고 문제도 좋고 제일 나은듯 ㅇㅇ
-
문법관련 질문 4
끓으면 - [끌으면] - [끄르면] 에서 자음군단순화가 일어난 것 아닌가요?...
-
안타까울 따름임 같은과 선후배,동기들 앞에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는지... 취업...
-
문법 개념공부를 박광일t 백문일답으로 하고 정리하면서 문제 푸는 연습을 하고...
-
제가 이번에 학원 그만두게 되서 유대종 문법인강이랑 설승환선생님께서 올려주신...
-
어차피 다 프패니깐요 짦은기간에 잘할수있는거 추천해주세얌
-
'문법은 보기에서 필요한거 다알려주는데 공부왜함??' 이마인드로 문법곤부...
-
이 가 파생접사에요?
-
그냥 볼 개념서 하나 필요해서욥 그 백문일답 그거 좋나요?
-
국어 문법 고수님들 한 번만 들어와 주세요~~!!! 21
문제 풀다가 모르는게 생겨서 질문 드립니다.!! 1. '읽기' 를 읽을 때...
-
어린이가 합성어면 어린,이 두개가 실질형태소란건데 용언의 관형사형이 실질형태소인가요?
-
꽃잎 [꼰닙]으로 발음되는것과 색연필 [생년필]로 발음되는것에서ㄴ 첨가가...
-
독재 커리 한번만 봐주세요 ㅠㅠ 자신이 없네요 .. 0
국어 매3문학 – 1강씩 + 선지분석 매3비문학 – 1강씩 + 선지분석 수능특강...
-
메가 대성프패있는데 문법강의추천해주세요 김상훈쌤 현강듣는데 문법자주 안하셔서 ㅠㅠ
감동.
안구 습기...프린트 해야지..
오... 멋져요, 멋지게 살게요^^
신영복교수님... 정말 감동이네요...
굿 乃
눈물 -_ㅜ
감동 ㅠ_ㅠ~
내일 서울대 법학교육100주년 기념관에서 신영복선생님 강연회 있음..
참석할 예정 ㅎㅎㅎ
아 \'그날이 오면\' 후연강연회요? 저도 갈까 생각중입니다. 사람들 꽤 많이 올 것 같네요.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반기문 장관, 코피 아난 왔을 때 만큼은 안되겠지만...
아아 신영복선생님 ㅠㅠ 저도 백기관 가볼까요;;
멋있어요ㅠㅠ 저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야겠군요ㅠㅠ
이분 ㅋㅋㅋ
입학식 때
집중 못하고 그냥 흘려 들었었는데.. 부끄럽군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