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군의 입학이 축복받을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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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면 너무 세속적이고, 세상의 때를 잔뜩 묻힌 글이 많이 올라오는데( 사람사는데 다 한번 쯤 해보는 고민들이고, 그게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이런 글들도 대학 들어오기 전에 읽어보시고 고민들 해보시길.
아주 멋진, 정말 감동적인 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밑의 신영복 선생님 글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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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입학이 유독 축복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조금 생각해보기로 하자. 군의 입학이란 한갓 우연성의 일종이라 볼 수 없겠는가. 군보다 머리 좋지 않은 자, 이 세상에 혹시라도 있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당초부터 단추 구멍 뚫는 데로 간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우연히도 군은 밥술이나 먹는 집에서 태어났고 그 때문에 고액의 과외 또는 재수도 할 수 있었고, 혹은 튼튼한 육질과 맑은 귀를 유지할 수 있지 않았던가. 밥 잘 먹었느냐, 잘 잤느냐, 내복 입었느냐, 공부 했느냐고 묻는 보살핌 속에 군이 놓여있지 않았을까. 심지어 기르는 강아지조차도 군의 안색을 살피는 그런 곳에서 군은 살았다. 무슨 대학을 가야 된다든가, 무엇을 전공해야 된다는 것도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갈 데 없는 돼지였다.
군이 돼지 또는 노예였음이란 물론 군의 잘못이 아니리라. 군이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닌 까닭이다. 군은 다만 태어나졌을 따름. 던져진 존재(Geworfenehit)였던 것. 어디에 던져졌던가. 아무 것도 없는 허허 벌판이 아니겠는가. 거기 군은 혼자 던져졌고 따라서 불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혼자 있음(Einsamkeit), 불안(Angst), 무서움(Furcht), 이 삼각형의 도식이 군의 본래 모습이었다. 이 조건을 철저히 은폐시킨 자 누구였던가. 다름아닌 지금까지의 군을 에워싼 아비 어미였고 환경이었다. 군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그들은 아마도 사랑이란 위선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어느 순간 군은 마침내 운명의 순간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는 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들의 간교한 전략을 간파하는 순간이 오고 만다. 그 계기란 도처에서 예감처럼 온다. 군이 창공의 별을 응시할 때 온다. 헤겔을 읽을 때 온다. \'무진기행\'을 읽을 때 온다. 릴케를 읽을 때 온다. \'태백산맥\'을 읽을 때 온다. 들판에 외로이 핀 이름없는 꽃을 볼 때 온다. 가차없이 오되 예감처럼 온다.
돼지에서 벗어나 이 저주스런 자유인으로 변신하는 장대한 장면의 입구에 작은 팻말이 하나 서있지 않겠는가. 거기 적힌 글씨를 군은 이제 똑똑히 읽을 수 있으리라. \'대학\'이라는 두 글자가 그것.
어떤 역사적 사회적 조건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나\' 자신의 세상에서의 있음의 의미란 무엇인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어떤 방향성도 해답도 없음을 서서히 군은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지금 여기 \'나\'가 있다는 것. 이것만은 절대로 의심할 수 없다. 여기 \'나\'가 있되 혼자 있다는 것. 불안하다는 것. 무섭다는 것. 이 엄청난 짐을 지고 있다는 것. 이 짐은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의무니까. 이 의무를 수행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있다. 권리가 바로 그것. 혼자있음으로 말미암아 감당해야 될 불안과 공포를 대가로 하여 비로소 얻어진 권리, 이를 두고 자유(Freiheit)라 부를 것이다. 자유이되, 무한한 자유가 아닐 수 없는데 그것은 던져진 존재로서의 그 의무의 철처함에 정비례하는 것. 이를 결단 또는 계획(Entwurf)이라 부를 것이다. \'나\'는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그 아무도 궁극적으로는 관여할 수 없기에 그 계획은 저주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의무 그것만큼 권리의 처절함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지 않겠는가.
군은 아는가. 훔볼트가 세운 저 베를린 대학의 창립 이념을. \'혼자 있음\'과 \'자유\'로 그 이념이 요약되어 있음을. 대학의 주체는 학생(시설 이용자)도 선생(지식 전달자)도 건물도 아님을. 이념 그것이 이곳의 주체임을. \'살아있는 정신\'이라 부르는 이 자유 앞에 군은 지금 서있다. 군의 입학이 축복받아야 될 이유가 혹시 있다면 바로 이 장면에서이리라.
김윤식, \'살아있는 정신 - 자유인의 표상에 부쳐\', <대학신문> 94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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