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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ac [28551] · MS 2003 · 쪽지

2006-01-31 00:48:17
조회수 7,542

서울대에서의 한 학기, 그리고 그에 대한 감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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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maniac입니다.

지난번에 서울대에서의 한 학기동안의 생활을 올렸는데, 문이과 논쟁에 휘말려 그만 글이 묻히고 말았네요 ㅡ.ㅡ;

일단 지금 써 놓은 2편까지는 올리고, 그 뒤의 반응을 감안해서 후편을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g의 관심있는 리플이 글쓴이에게는 1t이상의 힘이 됩니다. 부탁드려요~


(존칭생략)

한 평범한(?)서울대생의 생활 - 2.OT, 새터, 그리고 유흥문화



(1)OT

대학교에 합격하여 등록하게 되면 가장 먼저 참여하게 되는 행사가 신입생 OT(오리엔테이션)이다. 이는 서울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2차 추가합격이어서, 합격 통지를 받자마자 다음 날 바로 자연과학대 OT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지구환경과학부 OT에는 참여하지 못한 탓에, 처음에는 정말 말 그대로 X나게 뻘쭘했다. ㅡ.ㅡ; 거의 다 서로 아는 사이처럼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 혼자 조용히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자연대 학생들이 모두 앉아 있는 가운데, 기초학력시험이 시작되었다.

기초학력시험이란, 수학 시험과 TEPS시험을 이야기한다. 이 테스트를 통해 대학에서 수학이나 영어를 수강할 만한 수준이 안 된다고 판단되는 학생은 선수학습으로 \'기초수학\' 과 \'기초영어\'를 수강해야만 \'미적분학\' 과 \'대학영어\' 를 들을 수 있다. 반대로 시험을 잘 보면 \'고급수학\' 과 \'고급영어\' 를 수강할 수 있다.

기초학력시험. 뭐, 결과야 참담했다. 나는 수학을 못한다. 기초수학 수강 확정. 영어는 그래도 조금은 한다. TEPS 696점. 701점부터 고급영어를 수강할 수 있는데 5점 차이로 대학영어 수강생이 되어 버렸다 ㅡ.ㅡ;
(여담이지만, 우리 과에는 TEPS501점도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500점 이하는 기초영어 수강이다.)

시험이 끝나고,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도시락을 다 먹고 각 학과별로 흩어져서 학과별 OT를 다시 했다. 뭐, 건물 소개 좀 하고, 한 방에 모여서 자기소개좀 하고...그러다가 저녁이 되어 학교 밖으로 나갔다.

사실, 지금까진 학교와 학생회가 주최한 OT이고, 이제부터가 진짜 학과별 OT였다. 물론 목적지는 술집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과 사람들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드는...뭐 그런 자리였다.

술은 많이 마셨을까? 천만의 말씀. 과일소주로 약하게 나갔다. 뭐, 나름대로 괜찮긴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오는 또 하나의 편견.

\'서울대생은 술도 제대로 안마시나? 무슨 과일소주야?\'

물론 과일소주만으로는 진짜 술을 마셨다고 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달리다\' 라는 의미가 될 정도로 마시려면 적어도 소주 정도는 몇 병 까줘야 한다. 하지만 그 날은 첫날. 그것도 신입생이 대학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이었다. 약하게 갈 수밖에...
진정한 술판은 새터에서부터 시작된다.




(2)새터

새터. 흔히 새터와 OT를 구분하지 않는 대학도 많다. 하지만 우리 대학교는 \'새내기 배움터\' 라는 이름의 새터를 단과대학별로 모여서 하게 된다.
자연과학대학 안에는 지구환경과학부, 물리학부, 화학부, 생명과학부, 수학통계학부, 의예과, 수의예과가 있다. 이 학과에 속한 신입생들이 모두 한 곳으로 같이 떠나 새터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오후 및 저녁의 구성은 일반적인 수련회와 별반 차이가 없다. 학과별 응원 및 게임을 하고, 고사를 지내고, 동아리 밴드가 공연을 하고, 기타 등등...
진정한 새터의 밤은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부터 시작된다. 밤 12시. 학과별로 따로 홀을 배정받아 술판이 벌어진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때가 많은 동기, 선배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 나타나는 인물들의 유형을 한 번 정리해보자.

1.\'범생이\'형. 고등학교때 술은 입에도 못 대 봤어요.
-난감하다. 술을 거의 안 마신다. 이야기 좀 하다가 새벽 1~2시만 되면 바로 숙소로 올라가서 자 버린다. \'아무리 뭐라고 그래도 서울대는 서울대\' 라는 것을 쉽게 알게 해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아, 기독교 신자들은 대부분 이런 유형이다.


하룻밤 새 마시는 술의 양 : 소주 반 병 이하


2.노는 \'척\' 술 좋아하는 \'척\'
-내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오늘 한 번 죽어버릴때까지 달려보는거야!\' \'나는 토하고 또 마실거야\' 등등으로 허풍을 엄청나게 떨어 놓고, 정작 마시는 술의 양은 1번 유형보다 조금 많거나 큰 차이가 없다. 이런 유형은 일반적으로 자기는 술을 안 마시고 술에 취해서 정신없이 할 얘기 못할 얘기 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 음흉하게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유형의 경우, 실제 주량도 그리 좋지 않다. 허풍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하룻밤 새 마시는 술의 양 : 많아봐야 소주 1병


3.\'마셔 마셔\' 남에게 술을 권해봐요
-일반적으로 새내기보다는 선배들이 이 유형에 많이 속한다. 물론 자신도 어느 정도 술을 마신다. 하지만 술에 약한 후배들이 술에 취해 빌빌대는 꼴을 보는 것을 더 즐긴다. 따라서 \'내가 1잔 마실 때 상대가 2잔 마시는\' 식의 상황을 좋아한다. 술 마시며 이야기하기에 가장 좋은 상대가 될 수 있다.(단, 내가 내 주량을 조절할 줄 아는 경우)


하룻밤 새 마시는 술의 양 : 2병 이상, 4병 미만


4.\'같이 죽자\'
-말 그대로 \'같이 죽자\'형. 자기도 쉴새없이 마시면서 남에게도 쉴새없이 권한다. 술에 취했을 때 이야기를 나누면 정말 따사로운 이야기 풍경이 연출된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술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며, 다른 사람과 술 마시는 것을 매우 즐긴다. 대부분 술에도 매우 강하다.


하룻밤 새 마시는 술의 양 : 3~4병 이상



5.???
-도대체 무슨 유형이라고 표시해야 할 지 모르겠다. 쉴새없이 혼자 마신다. 물론 주위 사람과 이야기는 나눈다. 하지만 남이 마시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술을 먹는 데 주력한다. 알콜 중독으로 발전할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중에 뻗으면 죽어버린 시체 치우느라 다른 사람들만 고생한다.


하룻밤 새 마시는 술의 양 : 4병 이상



6.한계를 돌파해보자! \'Limit Breaker\'
-술을 잘 마시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술을 좋아하거나 많이 마시려고 한다. 2번 유형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이 유형은 가능한 한 많은 술을 마시려 한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보인다. 술자리가 시작되면 거의 빠지지 않고 나타난다. 하지만 술은 그리 강하지 않다. 보통 소주 3병이면 KO되어 버린다. 하지만 3병까지 절대로 빼지 않고 주는 대로 마신다. 참 마음에 드는 유형이다. 술 마시고 아무데서나 토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하룻밤 새 마시는 술의 양 : 3병 가량




내 자신은 스스로 3번과 4번 유형의 사이라고 생각한다. 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 어쨌든 나는 새터에서 첫째날 소주 4병 반, 둘째날 소주 3병 반을 비우고 이틀 다 밤을 샜다. 덕분에 일출을 볼 수 있었다.


뭐, 새터에서의 술자리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다. 어차피 술자리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생활의 일부이다 보니...





(3)유흥문화

서울대 정문에서 나와서 신림동 쪽으로 걸어가면 있는 상점가를 일반적으로 \'녹두거리\'(줄여서 녹두)라고 부른다. 왜 이렇게 불리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나도 확실히는 잘 모르므로 패스하겠다. 귀찮다.

일반적으로 \'대학생의 유흥문화\'라고 하면 호프, 나이트, 클럽 등을 생각한다. 조금 럭셔리하게 가자면 칵데일 바, 라이브까페 등을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생도 이런 유흥문화를 가지고 있냐고? 천만의 말씀.

위에 제시한 유흥문화를 가질 수 있는 대학은 신촌과 대학로에 있는 대학들 뿐이다. 학교 앞 유흥가에는 오직 \'술집\' 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서울대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서울대생의 밥->술로 이어지는 Basic Course를 살펴보기로 하자.

일단 녹두거리의 Main Street 입구에 있는 롯데리아. 통칭 녹두리아에서 만난다. 그곳에서 고기를 먹기 위해 녹두인의 대표고기집. \'돼지저금통\'으로 간다.(1인분 2500원이다. 고기도 맛이 괜찮지만, 대나무통주가 매우 맛있다. 달짝지근하면서 술기운이 살살 도는게 정말 일품이다.)
고기와 함께 술을 한 병 정도 들이켰다면 이제 술집으로 간다. 술집 이름은 특별히 열거하지 않겠다. 너무 많아서 다 열거하려면 내 손이 아프다; 술집에 가면 일반적으로 소주를 시킨다. 종종 폭탄주를 마시기도 한다. 물론 남녀가 가거나 할 경우는 조금 약한 걸 시키기도 한다. 어쨌든 기본은 소주이다. 안주와 함께 술을 좀 마시고 나면 다음엔 뭘 할까?

아무것도 할 게 없다.

동아리 행사나 개강파티 등 단체 행사가 아닌 경우는 술집에서 마실 만큼 마시고 2차, 3차 후 그냥 헤어진다. 가끔 좀 많은 인원이 모일 경우, 마음맞는 인원끼리 다시 같이 술을 다른 곳으로 마시러 가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유흥 시설은 없다. 나이트라든지, 클럽 등의 시설은 말 그대로 \'전혀 없다\'. 이는 서울대생이 \'놀기 싫어해서\' 가 아니라, \'신림동이 너무 후져서\' 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이트나 클럽이 들어올 만큼 세련된 동네가 아니다. 정말로.

어쨌든, 서울대 근처에서 가능한 유흥문화는 \'술\'을 빼면 정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클럽 등을 가려면 적어도 신촌 쯤은 가 줘야 한다. 결국 녹두거리는 유흥가라기보다는 그냥 \'먹고 마시는\'장소일 뿐이다.
(참고로, 나는 1학기 동안 녹두에서 거의 살다시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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