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물돌이 [606510]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7-01-01 03: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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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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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년 간 아주 많은 걸 배웠다.

아주 쓰라리고 고통스럽지만 소중한 것들을 배웠다.

재수는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은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자 추억임은 확실한 것 같다.


나의 1년을 영화로 만든다면 정말 재미없을 것이다.

같은 장면의 무수한 반복.

6시 기상. 셔틀버스 놓치지 않기 위해 새벽공기 가르며 정류장으로 뛰어들음. 7시 10분 도착. 빽다방에서 아이스커피 사들고 7시 15분 등원. 플래너를 꺼내 하루를 계획. 그 후 비문학 공부. 수업 시작. 졸지 않으려고 커피 마시기. 쉬는 시간에도 비문학. 그러다가 점심시간. 초스피드 밥팟과 함께 15분 내로 주파. 다시 와서 점심시간 내내 공부. 모든 수업이 끝나고 자습의 시작. 중간에 나무 졸리면 엎드려서 정확히 20분 취침. 다시 잠 깨며 공부. 저녁시간 역시 15분 내로 컷. 다시금 공부. 10시 땡하면 튀어나가서 셔틀버스에 착석. 달리는 버스 창 밖을 바라보며 우울함과 열등감을 비롯한 각종 감정과 생각에 허우적거리며 스스로를 혐오하거나, 걱정말아요 그대를 들으며 스스로를 위로해주거나, 아니면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집에 도착하면 어느덧 11시. 기타를 치거나 산책을 하면서 우울함과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거나 체력을 위해 공원을 뛰거나. 다시 6시 기상....


그런데 영화로는 재미 없지만 소설로 만든다면 재미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문학적으로는 의미 있을 것이다.


자기자신의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질문,탐색.

끓어오르는 열등감을 억누르기 위해 나는 소중한 사람이고 가치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발버둥.

오르지 않는 성적에 좌절하지만 끝까지 목표를 내리지 않는 긍정성.

남과의 비교, 나는 왜, 남들은 저런데...


그리고 내 인생 가장 한심하고 찌질했던 짝사랑까지.


그렇게 이러한 한 씬으로 2월부터 11월 초까지 반복.


그러다


결국 내 눈 앞에 다가온 대망의 수능.

잘 봐야 한다는 중압감이 의식을 짓누른 걸까. 너무나도 아쉬운 결과.

너무 억울하고, 너무 아쉽고, 너무 죄송하고, 너무 무섭고 너무 두렵고....

울지 말아야지 울면 안되지 되뇌이면서 감정을 추스리다가

시험장 밖 동생과 함께 손을 흔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그만 울음을 터뜨려버린 그 슬픔의 방울방울 까지.


그렇게 나의 수험생활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나는, 내 인생은 여전히 계속 되더라.


수험 생활동안 정말 누가 봐도 열심히 한 친구 몇 명이 수능을망쳤다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고 놀기도 많이 놀은 친구 몇 명이 수능을 잘 봤거나 수시로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억울함 분노 슬픔 무력함 축하함 등의 복잡미묘한 감정.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정시. 곧 이야기의 끝을 보게 되겠지.




2016년에는 인생을 배웠다.

여러 감정을 느꼈다. 더 추락할 곳 없었던 것 같던 내 인생은 한 번 더 추락했고 밑바닥을 경험했다. 온갖 부정적 간정이란 감정은 다 경험해봤다.


여러 교훈도 얻었다.

인생은 실전이다.

결과가 과정을 결정한다. 하지만 내 자신은 과정이 규정한다.

수미잡.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는 이상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자존감이 정말 중요하다.

세상은 원래가 불공평하다. 이 세상에는 잘난 놈 천지다. 원래그렇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자.

등등



누군가에겐 2016년은 행복하고 즐거운 한 해 였을 것이다.

대학을 간 친구들은 새내기의 즐거움, 입시지옥 해방의 쾌감을 만끽하며 청춘을 보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해보고.


나에게 2016년은 참으로도 어두웠던 1년이었다. 남들 대학가서 놀 때 그 토할 정도로 지겨운 기출 문제를 다시 풀었고 오르지 않는 성적으로 누구보다 마음 고생했다.

얻은 것 하나 없는 초라한 1년인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남들에 비해 1년이 늦기 때문애 스물한살을 누구보다 가치있게 소중하게 보낼 수 있고

열등감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진심어린 위로를 건낼 수 있게 되었으며

성적이 오르지 않아 고생하는 학생들 그리고 이제 고3인 내 동생에게 공부에 관해 한 마디 말을 할 때도 상처 주지 않게 조심할 수 있게 되었고

대학으로만 누군가를 규정하는 것은 정말 옳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고

노력이 전부 항상 결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뼈 아픈 사실 역시 미리 깨닫게 되었다.

한심한 짝사랑의 결말과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누군가와 인연을 맺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되었다.


많이 겸손해지고 성숙해지고 깊어질 수 있었던 2016년이었다.

이젠 행복해지고 싶다! 꽃길을 걷고 싶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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