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접 [591036]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7-02-01 05:06:42
조회수 17,954

[16수능 썰] (완결) 16수능, 채점,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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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orbi.kr/bbs/board.php?bo_table=united&wr_id=9107228 (이전 글들을 모아둔 곳)


이전 스토리에서 이어집니다.


(이거 동기들이 보더라고요 ㅂㄷㅂ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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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음을 편안히 먹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상태를


쭈욱 유지했을 무렵


2016학년도 수능이 있는 주의 첫 월요일이 밝아왔다.


- 이전 편에서 일부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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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 6야 종강날


언제나처럼 마찬가지로 다들


그 날에 있을 대박을 다짐하며 


마지막 수업은 끝이 났다.



다들 집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


사물함에서 책들을 듬성듬성 꺼내던 필자는


문득 4개월을 잠시 머릿속으로 돌아보았다.



후회, 아쉬움보다는


다시는 이런 생활을 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 내가 진짜 이 짓을 다시 하나보다..."



다시는 반수같은거 엔수같은거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복학하면 대학원 준비나 해야지. 학점은 4점대로"


...뭐라고 할까나 수능에 신물이 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서 수능 전날


수험표를 수령하기 위해 모교로 갔다.


모교 선생님들은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래 OO이 왔구나. 어떻게 이번에 잘 볼 듯 한겨?"


"허허허... 뭐 이번에 안 되면 고려대로 다시 복학하겠죠."



아는 선생님들을 만나 대충 인사드린 다음


수험표를 수령한 채로 모교 교정을 잠시 둘러보았다.



"햇살은 밝고 날씨는 좋네. 그새 인간다워진 분위기도 느껴지고."


유유히 교정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이윽고 시간은 흘러 밤이 되었다.


"아. 어차피 마음도 비웠는데 에헤라 띵가띵가 놀기나 하자."


커뮤니티나 그쩍그쩍거리면서 신나게 인터넷질이나 했다.


그렇게 놀다가 문득 1시 부근



"아무리 시험을 던졌다고 해도... 이제 잠은 자는게 낫지 않니?"


엄마의 한 마디를 듣고 이제 슬슬 잠을 자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잠을 일부러 자려고 자리에 누우면 생기는 고질병(?)이 하나 있다.


더군다나 아무리 그래도 몸이 다음 날에 어떤 일이 있을지 기억하니


이와 같은 반응이 생기는건 당연지사



"아 씨... 작년처럼 또 잠 안 오고 심장이 펑펑 뛰고 그러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막 들릴 정도로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그 때는 어디 부정맥이라도 걸린 줄 알았다.



"어쩌지..."


하고 잠시 고민하던 중 해결책을 떠올렸다.



"평소처럼... 태연하게... 긴장 안 하게..."


체온을 낮추는 겸 선풍기를 조심스럽게 틀었다.


(심장이 막 뛰면 체감 체온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그리고 비장의 카드(?)를 하나 꺼냈다.



"평소에 폰 게임을 자주 했으니 폰 게임이나 하면서 신나게 스트레스나 풀어볼까"


프렌즈팝(...)을 휴대폰 로딩화면에 띄웠다.


...그리고 프렌즈팝을 신나게 했다.


(하트 메세지까지 보내면서까지)



후일에 이 때의 풍경을 누군가가 증언하길


"야야 얘는 수능 전날에 프렌즈팝 해도 의대간 아이야"


(본인 속마음 : '오해야... 누적으로 쌓은게 얼만데;;;')


...그만큼 황당하다면 다소 황당한 풍경이긴 했다.


(이 이후로 한동안 이미지가 '매일 페북하고 프렌즈팝해도 의대감'으로 되어버렸던건 함정... 현실판 기만이 이렇게)



...물론 그 스테이지는 그 날 깨지 못 했다.


(이후 빡쳐서 한동안 안 하다가 이번 9월에 다시 해봤는데 드디어 그 스테이지를 깼다.)



여하튼 그렇게 프렌즈팝을 하다가 2시가 되었을 무렵


"아 눈은 졸린데 잠은 안 와... 이건 뭔 풍경이래..."


다시 계속 폰게임질(...)을 했다.



3시가 되었을 무렵 드디어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적게나마 잠이라는 꿀을 얻을 수 있었다.


덕분이었을까. 다음 날에 두뇌회전이 비교적 수월하게 되었던 것 같다.



여하튼 수능날 아침은 밝아왔다.


수능날 급하게 채비를 하고서


택시를 타고 부모님과 시험장으로 향했다.


(용돈 사정이 묶여있는 상태라)


그렇게 택시를 타고 시험장으로 향할 무렵



수능 시계를 안 가지고 왔다.



"시험을 보러오는 인간이 시계를 안 가져오냐!"


수험장 앞에 도착한 후 부랴부랴 


주변에서 시계를 구할만한 곳이 없나 둘러봤다.



"편의점에서 시계 안 팔아..."


살짝 당황했을 무렵, 방도를 찾았다.



시험장 앞 잡상인(...) 분들이 파는


아날로그 싸제 시계를 하나 샀다.


"어휴... 이렇게 허술한 시계가 가격이 무슨"



그래도 급한게 죄고 안 챙겨온게 죄라고


잡상인(...) 분에게 구매한 시계를 하나 차고


시험장으로 급하게 들어갈 준비를 했다.



들어갈 때 모교 선생님 한 분이 응원하고 계셔서


잠시 그 쪽으로 가서 인사드린 뒤


시험장 교실에 들어갔다.



대충 앉아서 둘러보니 


모교 교복을 입은 수험생들도 몇 명 있었다.


"내 살다살다 후배랑 같은 시험장에서 보다니"


가만히 앉아서 시험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예비령이 울리고 감독관이 들어왔다.


각자 1교시 전 휴대폰에 이름표를 붙이고 감독관에게 제출한 후


준비태세를 갖추었다.



준비령이 울리자 감독관은 1교시 국어영역 OMR 답안지와


시험지를 차례차례 나눠주었다. 


필적확인 문구와 인적사항 모두 완벽하게 적은 후


본령만을 기다렸다.



"뚜뚜 뚜뚜"


"1교시 본령입니다. 수험생 여러분들은 문제지 표지를 넘기고 문제를 풀어주십시오."


1교시 국어영역 시험이 시작되었다.


일제히 시험지 표지를 넘기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음~ 화법 작문 올해도 소재가 특이하구만."


마음을 비운 탓이었을까 


편한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화작문 중간중간에 찝찝하거나 걸리는 문제들은 있었다.


그 경우 따로 표시를 하고 1바퀴를 돌린 후 재판단을 하기로 결정했다.




15번에 도달했을 때 


"문법적으로 가장 정확한 문장... 좋아 이런건 차근차근 분석하면서 푸는거야"


15수능 맞춤법 문제에서의 뼈아픈 실패를 기억하면서 


차근차근 선지 하나를 읽어가며 문장구조를 파악해가며 풀었다.



"2번 깔끔하군... 어?!?"


4번 선지를 읽었을 때 문득 그 분이 생각났다.


"그 분이 이런 어투를 많이 사용하지... 그 분은 못 푸는 수능문제...엌ㅋㅋㅋㅋㅋ"



비문학에 도달했을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학지문과 기술지문에서 반갑게 인사하는 물리용어들


그리고 문자로 설명되어 있는 수식들이었다.


"좋아... 이런건 내가 다 읽어서 박살내주지"



물리는 필자에게 생소한 소재였지만


이거는 문과생도 풀도록 만드는 국어영역(구 언어영역)이다.


즉, 문과생도 읽고 풀 수 있게 만든 지문과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철칙을 세우고서 지문을 읽어나갔다.



생소한 물리 개념어들은 동그라미나 네모 표시를 하고 (상위개념-네모/하위개념-동그라미 식으로)


정의 부분에는 살짝 물결표 밑줄을 재빠르게 긋고


어떤 개념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 부분에는 괄호 표시로 문단을 묶었다.


또한 수식을 설명한 문단 부분에는 옆에다 슬며시 메모를 하면서


지문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수식을 공식처럼 적어나갔다.



이렇게 지문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문제로 갔을 때


(이래도 시간은 별로 안 걸렸다. 리트에서 이보다 더한 지문들은 수없이 봤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준비한 도구들로 문제들은 간단히 풀렸다.



"훗... 리트로 다져진 나의 비문학 실력엔 물리 소재...? 돌림힘...? 그딴 것도 당할 수 없다."


잠시 LEET로 비문학을 대비해왔던 자신을 자뻑하면서


쭉쭉 풀어나갔다. 그대로.


스트레이트로 풀어나가다가


문학 부분에서 난제를 하나 만나게 되었다.



33번에서 2번과 4번이 헷갈린 것이었다.


일단 이것도 표시를 해두고 스트레이트로 1바퀴를 돌렸다.


그 결과 남은 두 문제가 각각 장벽이었는데


하나는 작문, 하나는 이 문제였다.


작문은 다시 생각해보고 쓱싹 풀고 기억에서 지워버렸고....


이 문제의 경우에는 "2번은 눈치보니까 원칙이 없는 것 같고... 4번은 원칙이 없는거..."식으로


뭔가 두 선지가 매우 비슷해보여서 난제였다.



"...이렇게 뜻이 헷갈릴 땐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뜻을 유추하는 거야!"


조상님이 속담을 만들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정확한 뜻을 찾아보기로 했다.



"고양이는... 냐옹...냐옹... 울잖아? 근데 고양이가 쥐를... 쥐 사정을 보는게 뭔가 자기가 만만해서 그런건 아니잖아? 냥이가 쥐보다 쎈데... 옥희도가 쥐는 아니잖아!"


고심끝에 2번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1교시 국어영역 시험은 끝났다.


"하... 이번 화작문부터 문학까지 다들 만만치가 않은 난제 투성이들이었다..."


과연 채점하면 결과가 잘 나오기는 하려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2교시 수학영역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수학 1컷 100.... 실화냐?"


15수능보다 더 빨리 30번에 도달하고 나니 문득 정신이 바짝 들었다.



1년도 넘게 지난 것이라 이 당시 본인이 취했던 풀이과정은 자세히 기억 안 나지만


차근차근 계수들을 해체해나가면서 항등식에 접근해나갔다.


(얼핏 보면 생긴건 무리방정식 같아보이긴 하...는 아니고 항정식이긴 항정식임)


희미한 기억으로는 그 결과 상수함수 또는 답이 0인 막장상황이 나왔던 기억이다.



"그래... 출제자를 믿자... 출제자는 우리를 떨어트리려 하는 분이 아니야... 문제를 맞추게 하기 위해서 온갖 힌트를 심어놓았어..."


다시 문제를 살펴보았다.


"응 0은 아니야~"


상수함수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답을 냈던 기억이다.


물론 시간이 거하게 남아서 남는 시간동안


검토를 두세바퀴 돌린 다음 30번을 수학적으로 완전히 증명하는데 시간을 사용했다.


(그 결과 30번의 답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건 덤이다.)



그렇게 2교시 수학영역도 끝이 났다.


"이번에도 100점이군..." 


9평에서 죽을 쒔던 것과는 달리


수능이 워낙 쉽게 나와서 잘 풀린 것 같다


컷이 어떻든 100점이라서 좋다... 이랬던 기억이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서 3교시 영어영역이 시작되었다.


듣기야 언제나처럼 무난하고 느으으으리게 나왔기에


듣기를 풀면서 독해문제 중 쉬운 문제를 찔금찔금 풀어두는 등 여유를 부렸다.


그렇게 듣기가 끝나고 독해문제에 진입했을 때



"이번에 연계가 많이 나왔는지 아닌지는 중요한게 아니다. 나는 EBS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재미있겠는데?"



신나게 비연계문제들처럼 순수실력으로 팍팍 풀어나갔다.


그렇게 ~30번->장문독해->빈칸+간접쓰기 순서로 풀어나가서


34번에 도달했을 무렵


"...어? 이거 불수능 느낌인데?"


14수능 영어B형 이래로 오랜만에 머리에서 김이 살짝 나기 시작했다.


곧바로 겹쳐 입었던 옷들을 벗고 반팔차림으로 문제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간접쓰기들을 풀어나갈 무렵 문득 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건 난전이다. 여기서 무너지면 끝장이다."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XX 어차피 여기서 무너지면 망할거 막 난전이나 신나게 붙어보자"


그렇게 영어시간을 하얗게 불태운 채로 3교시도 끝났다.



그리고 4교시 탐구영역


생명과학I 첫페이지 문제들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야 씨... 15수능 때는 생2 불바다더니 이젠 생1 불바다냐... 생명과학 교수들 노양심이냐?"


문제지를 빠르게 넘겨보며 풀만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유전 문제들.


"유전 문제... 침착해 이건 난전이야 난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아가야지 무너지면 끝장이다."


생명과학I 또한 엄청난 유전문제들과의 난전을 치렀다.



생명과학II는 언제나처럼 기출변형 문제들이 맞이했다.


"와 생1에 비해선 힐링받는 느낌이야" (느낌만, 점수는 테러다. 백분위 96이 말이 되냐....ㅂㄷ)


강대 수업에서 지겹게 풀어본 유형이 나왔을 때는 


"오오 박OO가 갓OO이었다니" 하고 슬며시 감탄했다.



그렇게 18번과 20번을 남겨둔 상황


"거참 18번 드럽게 기네"


조건 하나하나 해석해가면서 18번을 해체해서 푸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그러고보니까 4~5분이 남은 상황


"일단 답안지 마킹하고...."


20번 빼고 모두 마킹했을 때 유난히 2번이 적어보였다.


마침 20번도 선지 3개 중 2개를 해체하는데 성공해서 2번선택지와 4번선택지가 남은 상황


"4번이면 출제자 나가 죽으라 그래~ 2번이다"



그렇게 16수능이 끝이 났다.


"후... 정말 엿같은 수능이었다. 무슨 수학빼고 다 난전이냐"



집에 가는 택시를 타며 


페북에다가 "내가 이딴 짓 다시 하나보다!" 라는 글이나 


"I'm free~~~"(렛잇고 짤)을 올리는 등 해방의 기쁨을 누리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고 신나게 해방의 기쁨을 누리다가


"시험을 던지긴 했지만 그래도 시험에 대한 예우는 다 해야 하는 법.... 채점은 해봐야지"


EBS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빠른채점 서비스를 이용했다.



빠른채점 서비스의 묘미라면 과목당 답을 한번에 입력한 상태로


채점하기를 툭! 누르면 점수랑 오답 정답이 전부 뜨는


마치 클릭 한 번에 복권을 긁는 것과도 같은 그런 짜릿한 한 방의 묘미다.



먼저 잘 봤을 확률이 가장 높은 수학을 입력해보았다.


"그럼그럼.... 100점이 아니면 뭐겠어?"


100점이었다.



그 다음 난전을 심하게 한 편인 국어를 입력해보았다.


"하... 이거 망하면 그냥 깔끔하게 복학이다."



98점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점수였다.


"이...이정도 난이도인데 98점?"


순간 갑자기 기분이 급 업 되었다.



이후 약 1시간 뒤 영어 답안이 나왔다.


하지만 빠른채점 서비스는 늦게 열리는 듯 했다.


"에라이... 복권 긁는 맛이 제맛인데... 과연 영어는 얼마나 망했으려나"


하나하나씩 채점을 해보았다.


92점이었다.



처음에는 "아... 영어 80점대 초반 찍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이정도면 선방이야."


하며 안도감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 영어만 아니어도 의대 프리패스에 준하는 성적일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멘붕의 감정이 들어올 무렵


친구 한 명에게 전화가 왔다.



"어이 OO! 시험은 잘 봤냐?"


"일단 의대 각은 나오는 듯... 근데 영어 92점이 참 아쉽다 하..."


영어 92점에 대한 한탄을 한 1분 가까이 늘어놨던 것 같다.



"이미 지나간 것이고 이미 나온 점수인데 후회하면 뭔 소용이야. 나만 해도 국어 아니었으면 대학 프리패스인데! 근데 이미 나온 결과잖아. 그치? 쓸데없는 후회나 걱정말고 그 정도면 잘본거야 임마"


이 말을 듣고 괜스리 들었던 부정적 감정을 죄다 바로 잡았던 기억이다.


(참고로 얜 서울대다. 그님대 방지용 설명)



밤이 되었을 때 드디어 탐구 빠른채점도 열리기 시작했다.


생명과학1 43점, 생명과학II 48점이었다.


"...아? 생1 43점 이거 실화냐?"


바로 당황해서 등급컷으로 찾아 들어갔는데


등급컷은 다른 의미로 당황하게 만들었다.



"1컷 40?" (실채점으론 42점이었지만 이 당시는 40점이 1컷으로 추산되었음)


이 말도 안 되는 점수를 받았는데, 그게 또 1등급 안정권이라고 한다.


등급을 천천히 계산해보았다.


11211


1등급 3개였다.


그토록 오래 갈망했었던 의대 최저 만족이었다.


정시로도 의대를 충분히 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엄마! 드디어 내가 1등급 3개를 맞췄어! 이젠 의대 논술을 날리는게 아니라 응시할 수 있다고!!"



채점 전에는 예상하지 못 했던


믿을 수 없도록 괜찮은 성적이었다.



다음날 강대로 가서 바로 논술수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하도 대기자들이 많아서 틈새시장을 노리는 겸


서메 논술수업을 신청해서 몰래 수강했지만 말이다.


(재수 때 담임센세가 계시길래 교무실로 찾아가서 "선생님이 그 때 연대 시스템생물 쓰라고 한거 안 쓰고 고대 바시의 쓴거 죄송해요(?) ㅎㅎㅎ(?)"라는 이상한 인사를 드린건 덤인가...)



강대 6야 담임센세를 찾아가서 논술자료도 얻고


"6야 다닐 때 맨날 프렌즈팝같은 폰게임만 하고 4시 지각등원하고 그래서 죄송해요... ㅎㅎㅎㅎ"


라고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선생님의 대답은 "ㄴㄴ ㄱㅊ 어차피 이번에 점수 잘 받았는데 그럴수도 있지.")



이후의 이야기는 살짝 뼈아픈(?) 이야기이기도 하고


프라이버시가 다소 들어있기에 대부분 생략한다. 


(완전한 과거형이라도 하기엔 아직 곤란하거나 현재형인 것도 있어서)



...그리고 시간은 흘러서 2016년 2월 22일


꼬인 추합일정이나 한동안 바빴던 사정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가 


자퇴원서 구비를 겨우 갖추었다.



친한 동기 녀석과 밥먹고 코노에서 간단하게 시간을 때운 뒤


오후 4시인가 5시 무렵이었을까


학사운영실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부모님싸인이나 도장이 담긴 자퇴신청서)



그 때 학과장 교수님은 수강신청 OT날이었기 때문에


한창 신입생들 앞에서 필리버스터 중이셨던 참이라


자리에 없으셨던 상태



"엌ㅋㅋㅋㅋ 이거 완전 학과장 교수님 없을 때 빈집털이인줄"


개드립아닌 개드립을 던지고


학사운영실에 들어가서 자퇴원서 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수속을 밟는 도중 학사운영실에 학장 교수님이 갑자기 들어왔다.


"아 이런 종강파티 때 저분과 새벽6시까지 강제잔류를 했었지..."


일단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폰만 열심히 만졌다.


학장 교수님이 잠시 학사운영실에 계시다가 바로 나가셨다.



"자퇴 사유가 무엇인가요?"


"타학교 진학입니다."


"그렇군요... 어느 대학 어느 계열인지 알 수 있습니까?"


"동국대학교 의학계열입니다..." (어차피 유전무죄 때문에 신상보호 따윈 이미 틀렸음 ㅈㅈ 공개해야지...)



부모님 확인전화까지 모두 마치고


자퇴확인서에 싸인만이 남았다.


"자퇴확인서 꼼꼼하게 읽어보시고 싸인하세요."



자퇴 사실, 재입학 조건 등등 자퇴 수속을 모두 마치고


확인서에 싸인을 했다.



"네. 이제 자퇴수속 완료되었습니다."


자퇴확인서 종이쪼가리(?)를 가방에 넣고


하나과학관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날씨는 흐릿하고 바람은 많이 불었다.



꿈은 이루는데 성공했지만 살짝 뭔가 아련한 느낌도 들었다.


"아... 이젠 여기가 우리 학교가 아니라 다른 학교구나..."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긴 했지만 기분이 묘했다.


이제는 그 길이 '가고 있는 길'이고 이 길은 '가지 않은 길'이 되었으니 말이다.



잠시 계단을 내려가면서 15학번 때 첫번째 새내기의 생활을 회상했다.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뭐 꿈 찾아가는 거라지만... 뭔가 슬프고도 아련하다."


직감적으로 드는 생각은 '이제 다시 오긴 어려운 추억이려나...'이었다.


첫번째 새내기의 어리숙하고도 낯선 경험들과 


자유를 처음 만끽했던 그 즐거움, 그리고 축제들과 수많은 추억들



하나스퀘어 온실까지 그 생각들을 하며 걸어갔다.


온실에 도착했다.


"여기서 공강 때마다 잠을 자고는 했지. 가끔씩 레포트도 쓰고말야."


잠시 1년동안의 추억에 잠기면서


소파에 앉아서 하늘을 그저 멍 바라봤다.


"날씨는 이럴 땐 또 왜 흐리냐?"


폰을 꺼내서 잉여짓이나 살짝 했다.



잉여짓을 하던 중 


용무를 마치고 온 '예전 동기' 녀석이 멀리서 보였다.


"학과장 교수님의 연설은 정말... 흠... 멍때리다가 온 듯"


"그 교수님 작년에도 대단했지...ㅋㅋㅋㅋ 것보다 이제 나 학번세탁으로 새내기 연장 ㄱㅇㄷ"



잡다한 잡담은 땡기다가 저녁무렵에 바이바이하고


여하튼 아련한 추억들은 긴 여운과 함게 남았다.


어차피 추억이 아름다운 만큼


다시 돌아오지 못 하는 상황인건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 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면서


"이제 새로운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의대라는 새로운 시작인 만큼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겠지."



이제 생명과학 학도의 길이 아니라


의학도, 그리고 의사로서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새로운 시작에 익숙해지기로 결정했다.


의대생이라는 삶 


그리고 의사라는 완전한 목표


한 때는 '가지 않은 길'이었지만


하지만 이제는 '가고 있는 길'이 된 '새로운 시작'



그렇게 16수능은 두번째 새내기의 시작과 함께 끝이 났다.


완전히 바뀐 길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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