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plis mon VET [649853] · MS 2016 · 쪽지

2016-05-22 02: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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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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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사실 난 고등학교 다닐 적만 해도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않았다.

굳이 핑계거리를 찾자면 이과에서 문과로, 문과에서 이과로 넘어다니던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는데, 정말 개인적인 것이니 그저 이런 일이 있었다는 일만 밝혀놓는 정도만.

아무튼간에 나는 그리 공부를 열심히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나라는 사람의 분류를 확정하자면 평범한 학생들의 경우에 들었다고 봐야겠지. 강의 있으면 강의듣고, 학원 가야하면 학원가고,  인강은 겨우 1회차를 끝내고, 야자는 하는데 어쩌다 pc방 가고싶으면 pc방 가고 그러는 학생.

그러다 생각보다 6,9평을 잘봤다. 뭐 이정도면 인서울 중하위권, 지거국 3대장 정도는 가겠네 싶더라. 이왕 수시도 전부 논술로 쓴 겸에, 충분히했다 싶어서 9월부터는 어느 정도 풀어져지냈다. 그러다 10평도 잘 봤고, 아무 의미없는 행동이었지만 뭐 각종 입시사이트 분석도 이 정도면 6,9평의 그것과 비슷한 학교를 갈 수 있다 알려주었고, 그래서 놀았고. 그게 전부였다.

그러다 겨울날, 이상하게도 따뜻하던 그 날. 항상 자신있어하던 1교시부터 망하고 말았다.
3년 내내 모의고사에서 최저점이 95점이던 국어가 80점으로... 원래 못하던 수학은 말할것도 없고. 밥먹고 곧 우울해하고. 이미 최저도 조졌다는 생각에 꾸역꾸역치던 한국사는 밀려쓰고.

칠까말까 계속 고민하던 제2외국어. 경험삼자하고 시험을 마저 치루고 나가던 길에 친구가 아직 기다리고 있더라. 울면서 가려던 길 친구가 있어 울지않았다. 그냥 아 그렇구나. 인생이 이렇게 되는것이구나. 하며 생전처음 들었던 골목길을 지나, 언제나 그렇듯 친구와 학교를 거쳐, 집으로 회귀.

그 해 11월 이후 졸업까지는 괴로운 날들 밖에 없었다. 수능을 망친 상태로, 와 옆반 누구는 38x점이래. 의대도 가겠네. 뭐 그렇겠지? 따위의 대화를 듣는게 행복할 사람은 없겠지만, 아무튼 나는 더욱 그랬다. 다들 이런 대화가 아무 의미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음에도 꺼낼 수 있는 주제가 수능, 입시, 대학 밖에 없다는게 비참했다. 나와 네가 떠드는 말에 상관없이 인생은 흘러갈 것이라는 걸, 수능을 못 보더라도 굉장한 금수저이던 그 친구는 우리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고, 정시로 그 학교를 갈 성적이 나오지않은 친구도 이미 '수시'합격한 이상 -이 바닥에 우리가 계속 머무른다면- 최소한 우릴 몇년은 앞서있는 것 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소리를 지껄일 수 밖에 없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아마 그네들도 비슷한 생각이었을거다. 그래도 그 즈음 우리의 머릿속엔 도통 그러한 이야기밖에 들어있질 않았다.

여하한 종류의 경험들이 벌써 작년의 것이라는게, 그 해, 그날의 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지칭할 수 있다는게 어느새 놀라워진 날이 찾아왔다. 하지만 변함없이, 그때까지도 나는 한심했다. 그리고 지금도 한심하고, 앞으로도 한심할 예정이다. 경험이란 명목으로 아무런 의미없이 9급 시험을 치고, 델프를 공부하고, 테스트다프도 토플도 그래 이것저것, 공부하고, 남는것은 없고.

내가 좋아하던, 어쩌면 아직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배우며 그쪽의 사람과 좋은 관계에 있고, 싫어하던 친구도 행복한 대학생활을 보내는 모양이고, 다른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도 다들 괜찮은 학교에 가거나 또는 괜찮은 학교를 가기위해 그럭저럭 노력들을 하고 있는 모양이고. 나만 이렇게 침전하는게지. 침전하는거야,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하루하루 표류하다, 학벌이란 동력원마저 잃어버린 나는, 이렇게 침전하는게야.

처음부터 이곳에 적응하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나와 개인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허나 절대 이것은, 내가 너희보다 원래 공부를 더 잘했는데 따위의, 우월감의 발로는 아니다. 그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 살다보면 참 좋은 사람임에도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는데, 20대의 문턱에서 그것을 집단 단위로 느끼게 된 것. 그렇게 나는 이곳의 한국사람들보다 해외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흥미와 정을 붙히게 되었다. 또는 그들도 나름대로 나에게 흥미를 느낀것일지도. 분명 '내국인'과 '외국인'의 관계였지만 나와 그들 사이에는 고향과는 생소한 곳에서, 생소한 사람들과 부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과 음악, 맥주는 서로를 친해지게했던 하나의 촉매.

아무튼 그리하여 나는, 수능공부도 잊고, 나름대로 인생의 의미도 찾지 못하고, 지방 어디에선가 표류하다 마침내 침전하고 있다. 내가 이곳에 글을 남기는 것도 그런 맥락에 있다. 천천히 침전해가는 패배자의 글, 어쩌면 평범한 사람의 글. 누가 읽을까싶지만 sns조차 끊고, 가끔씩 오르비에만 오곤하는 성실한 내 친구들을 위해,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글 한 개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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