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물돌이 [606510]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6-03-09 00: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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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54] 재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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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감정과 잡생각의 분출을 위한 넋두리가 담긴 일기이므로 악플,비난은 삼가주세요.ㅎㅎ




16.03.08.화

언제나, 항상, 느꼈던 것이지만 극한의 외로움이 계속해서 나를 엄습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셔틀버스 안에는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어떻게해서인지 서로 아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외롭다. 진짜 외로웁다....근데 이건 재수생 신분의 어떤 상황적 외로움이 아니라 근본적인 외로움인 것 같다... 버스 안의 아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이고 친해보이는데 나는 없다. 이 같은 지역에 살았던 같은 학생들일텐데 왜 나는 그들 중 아는 사람이 없는가? 아 물론 '아는' 사람은 더러 있다. 그러나 안 친하다. 하나도.
학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쉬는 시간이나 식사시간에 도대체 어떻게해서인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많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길래 저들과 이리도 이질적일까? 나에게 하자가 있는 걸까?
살면서 연애 한번 못해보고 그렇다고 우정을 쌓아 친구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물론 나는 소중한 절친 2명이 있지만 여기서는 넓은 인간관계를 얘기한다.)

지난 과거에
공부라는 거짓된 미명 하에 수 없이 거부한 소중한 많은 경험들... '공부해야지... 무슨...'이라면서 정작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제대로 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얼 해낸 것도 아니고... 왜 항상 나는 미적지근하고 애매하게 삶을 살아왔던가?

나는 지금 재수를 하고 있다. 아 아..
지난 과거에 이루어 낸 것이 없는 내가, 차라리 신나게 놀아서 공부아닌 것들을 쟁취한, 결과적으로는 같이 재수하는, 그들을 부러워하면서 느끼는 감정. 그게 나를 극도로 괴롭게 한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도대체 무얼 했는가.


외로움이 극한으로 치닫는 셔틀버스 속에서, 그 과거의, 현재의 비참함,타인을 향한 부러움, 후회감을 뒤로한채, 연습장을 꺼내 하루동안 공부한 것들을 되뇌인다.
학벌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다.

자신감.
 
자존감.

항상 열등감과 후회로 찌들은 나, 정말 한심하다.

그렇기에 인정해야한다.
해야만 한다.
내가 남들과 달리 과거에 해낸 것이 거의 없다는 걸, 항상 미지근하게 살아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처절하게 비참하자.
처절하게 외롭자.
나보다 나은 과거를 가진 이들을 보며 처절하게 느끼자. 환기되는 그 모든 감정을 처절하게 느끼자. 외면하지 말자. 현실도피하지 말자.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체감하자. '아 진짜 인생 X 같다' 라는 말이 무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재생 되도록.



이렇게 큰 상처와 아픔,후회감, 열등감을 느끼되
주저 앉아 있진 말자. 저 감정들의 원인이 나태하고 게으른, 한 번 뿐인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덧없이 흘려보낸 나의 삶의 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철저하게 뼈에 새기듯 인식하자.


후회와 자괴감에 빠져 또 다른 후회를 만들지 말자.
만화 미생에 나온 대사이다.

어쨋든 하게 된 재수의 1년. 단순히 SKY 학벌이 아니라 후회라는 족쇄를 끊어내는 애벌레의 '변태'과정으로 만들자.
더 비참하고, 더 힘들고, 처절하게 외로운 1년이 되게끔 해서 나비가 되리라.

인생 처음으로 후회와 미련이 단 한 톨도 안 남아 있는 1년. 새로운 삶을 위한 발판이 되게끔, 그렇게 이 1년을 보내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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