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8792540
교무실 안 생김새는, 컴퓨터가 설치된 넓은 칸막이 책상 곳곳에 각 반 담임들이 앉아 있고, 학생은 앞문으로 들어와 뒷문으로 빠지게 돼 있다. 건너편은 학년부장의 자리, 담임이 그 맞은편에 앉아 있다. 담임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담임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앉으렴."
학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내가 저번에 말한 전형은 생각해 봤어?"
"정시."
옆반 담임이 힐끗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담임이 갑자기 한숨을 쉬며 허리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정시로 간다고 해도, 내신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대학이 대부분이야."
"정시."
"제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렴. 수시 6장이 아깝지 않니?"
"정시."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옆반 담임이 입을 연다.
"우리 학교같은 일반고에서는 수시로 가는게 정시보다 훨씬 유리하고 편리한 전형이야. 내가 맡고 있는 반 아이들만 해도 벌써 반 1등,2등, 3등이 모두 수시를 썼단다. 네가 수시를 쓰게 되면, 너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대학 합격을 보장받을 것이며, 최저만 맞추면 당당히 대학 신입생이 될 수 있어. 그렇게 된다면 대학의 초목도 너의 입학을 반길 거야."
"정시."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담임이 다시 입을 연다.
"너의 심정도 잘 알겠어. 오랜 학교 생활에서, 항상 성실히 수업에 참여해 온 너의 태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과 성적치고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2점대의 내신을 받은 너의 처참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단다. 나는 너의 내신 등급을 탓하기보다도, 너의 성실한 학교 생활을 기록한 생활기록부를 더 높이 평가해. 내가 권유하는 수시 전형으로 인한 일체의 불이익은 없을 것을 약속할게. 너는..."
"정시."
옆에 앉은 옆반 담임이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학생은 말없이 창가 쪽으로 다가가 하늘을 본다.
담임은 말없이 학생상담자료카드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학생의 카드를 꺼내본다. 그 카드에는 학생의 장래 희망과 목표 대학이 적혀 있다.
담임이 천천히 창가에 서 있는 그 학생을 향해 다가가 물었다.
"너는 목표로 하는 대학이 어디니?"
"......"
"음, 서울대학교군."
담임은, 자리에서 정시 배치표와 과거 선배들의 진학 결과를 모은 자료를 뒤적이면서
"2점대라면 어중간한 내신이야. 물론 내신 1등급을 따기 쉬운 과목이 어디 있겠니? 정시올인을 해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이야기지만, 재수를 해 봐야 내신의 소중함을 안다고 하잖니? 네가 모의고사에서 전과목 평균 1등급과 2등급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건 알아. 수시로 70%가량이나 뽑고 정시로 고작 30% 밖에 뽑지 않아 내신보다 모의고사가 잘 나오는 많은 학생들이 억울함을 겪는 우리나라 입시 제도의 모순을 누가 부인..."
"정시."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니야. 다만 우리 반 내 소중한 제자가 재수... 아니 정시로 대학을 가겠다고 나서니, 담임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기를 안 할 수 있겠니? 재수를 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생각해 보렴... 푸른 20대의 청춘이 무려 1년 더 소모되고, 힘든 일과를 보내며 열심히 공부해도 1년동안 더 투자한 시간의 가치는 잔인하게도 오로지 수능 성적 하나만으로 평가되고.. 나이가 들어봐야 20대의 소중함을 안다고 하잖니? 성실한 너를 아끼는 너의 담임으로서, 난 네가 20대의 1년을 대학 진학에 더 쏟기보다는, 올해 대학에 진학하여 너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면 좋겠구나. 차라리 올해 대학을 진학하고 반수를 준비하는 건 어떻겠니? 눈을 조금만 낮.. 아니 넓게 보자. 너가 쓸 수 있는 다른 수시 전형이.."
"정시."
"너는 제일 모의고사를 잘 봤을 땐 평균 1.2등급이었지만, 제일 시험을 못 봤을 때는 평균 2등급 가량까지 떨어져 봤던 아이야. 마킹 실수를 했었는지, 긴장을 너무 많이 했었는지, 컨디션이 안 좋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냉정한 현실은 성적표에 찍힌 숫자만을 보는 걸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문과에서 정시로 평균 2등급이면 서울시립대도 못 가는 성적이라구. 그런 네가 모의고사와는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수능 시험장에서 단번에 서울대학교에 척하고 붙을 성적이 그리 쉽게 나올 것 같아?"
"정시."
"제발 현실 좀 직시하렴. 우리 학교는 일반고지만, 학교 밖에는 너 말고도 특목고, 자사고, 외고, 반수생, n수생들이 정시로 서울대를 노리고 있단다. 일반고에서도 1점대 내신을 받지 못한 네가, 그 사람들을 상대로 그리 쉽게 서울대 합격을 쟁취할 수 있을 것 같니? 내가 가진 통계에 의하면, 우리 학교에서 지금까지 서울대학교로 진학했던 학생은 10명 중 9명꼴로 모두 수시로 진학했단다. 나머지 1명은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거의 올1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엘리트였단다. 게다가 요즘처럼 수능이 쉽게 나오는 기조로 가는 추세인 경우에는 정시에서 한 문제를 틀릴 경우, 그 타격이 얼마나 쓰리고 아플지 짐작이 가니? 그 한 문제 차이로 전국에 있는 수백명에서 수천명의 희비가 엇갈리는 게 정시야. 너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다 수능 때 성적이 오를 거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우리 학교 선배들의 수능 성적을 보면, 오히려 모의고사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다수이고, 오르는 경우가 소수란다. 수능 때의 긴장감도 이유지만, 그보다도 학교 밖에 있는 실력파 수험생들이 다수 유입되기 때문이지. 나는 이 교무실에 고3인 너희들의 원활한 대학 진학을 돕기 위해 있는 거란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대학 합격의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정시."
"모의고사가 잘 나올수록 수시에 불만이 많은 법이야. 그러나 그렇다고 애써 3년동안 만든 자기의 내신 성적을 없애버리겠니?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말이야. 올해 안에 대학에 못 간다면 재수..? 재수하면 된다고? 우리 학교 졸업한 선배들이 가끔씩 교무실에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항상 속상함을 털어 놓고 간단다. 재수하면 성적이 금방 오를 줄 알았더니 막상 그런 것도 아니라고 말이야.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아이들은 고3 때 공부를 못 했던 아이들이 아니야. 학교에서 전교권에 들었던 아이들이 대다수란다. 성적이 오른다고 쳐도, 문과 정시가 얼마나 실수 하나를 용납 안 하는 잔인한 시험인지는 너도 이미 모의고사를 통해 느끼지 않았니? 무엇보다도, 모의고사와 수능은 다르단다. 작년같은 경우에도 9월 모평 때 국어b 가 1컷이 100일 정도로 쉽게 나왔는데 수능 때 평가원이 국어b에서 엿을 날려서 많은 수험생이 피본 걸 너도 알잖니? 그 많은 수험생들이 올해 정시에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들 게 뻔한데 네가 그 소리없는 전쟁에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뛰어들겠다고..? 지금껏 학생들의 진학 실적을 보아온 너의 담임으로서, 나는 너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극구 말리고 싶구나. 부디..."
"정시."
담임은 연민에 찬 눈초리로 학생을 바라보며 말한다.
" 서울대에 가려면 한국사와 제2외국어를 응시해야 해.. 자료를 보니 너는 한국사 내신 성적도 1등급이고, 교육청 모의고사 때도 항상 1등급을 받아 왔구나. 그래서 그런지, 너는 더욱 열심히 하면 수능 때 한국사 1등급을 받는 것이 무난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능 한국사에 응시하는 집단은 우리 학교 전교생과, 그리고 고3들끼리만 보는 모의고사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지엽적인 문제에 예상 등급컷보다 높은 등급컷을 자랑하는 게 수능 때 한국사야. 그리고 너처럼 서울대를 노리는 사람이 다수 응시하기에, 표점도 짜서 만약 수능 후 서울대학교 이외의 다른 대학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사탐 표점에서 큰 손해를 안고 가게 된단다. 한국사는 그렇다 쳐도, 제2외국어는 어떻게 할 거니? 네가 지금부터 제2외국어에 힘을 쏟으면 다른 과목에 소홀해질 우려도 있을 뿐더러, 높은 등급컷에 네가 받을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 거야.. 등급컷에 스트레스를 받기 싫다면 아랍어에 응시하면 되겠지만 안 그래도 가시밭을 걷는 것같은 정시 준비에 도박을 더 걸어서야 되겠니?"
"정시."
담임은,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어느새 자리에 와서 상담 내용을 들은 학년부장을 돌아본다.
학년부장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하고 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담임의 책상 위에 놓인 생활기록부에 이름을 적고 문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최인훈,『정시』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나 생각해보니 은근 MZ인듯 8 0
수제 왁뿌볼도 만들고 수제 두쫀쿠도 만들어보고 그냥 릴스에 나왔던 유행하던건 다 만들어본듯
-
난 성적이 항상 우상향이었음 0 1
맨날 호머식 ㅇㅈㄹ하면서 살아서 실제 점수는 늘 우상향했음 재수생활중에도 수학을 제외하곤 우상향중임
-
현역 7모때 찾았다 4 0
레전드 수탐퍼거였네 이때 31311 물리는 또 백분위 왜 저래
-
반갑다 4 0
.
-
3년동안커리어하이모의고사가 0 1
세종대 적정이었는데 수능 한방 홈런으로 중경시 공대가기
-
수학이 딸려서 수학만 파면 다른 과목이 떨어질 거임 1 0
수능성적을올리는건사실상불가능한
-
질문받다가 잘 수도 있긴 해요 다른 분이 답변해주실 수도 있고요
-
내 공부시간은 음수인데 4 0
평균 하루 -7시간 정도 공부함
-
예전 성적 보는데 신기하네 3 1
작년 9월부터 국수탐 등급이 1242 3122 3112 이런데 12개중 4개만...
-
국어 백분위 100 3 0
2309시행 고1 2409시행 고2 2503시행 고3 2611 수능 나머지는 대부분 99임
-
수능만잘보고싶다 0 3
난예전6모성적이 25244정도엿음 영어는왜더내려가고있을까
-
이러다 140일이 아니라 100일의 기적 물어보게 생겼음 0 0
공부시간 6시간 실화야
-
오르비 들어올때마다 7 0
ㅈㄴ 아무나 잡고 저격하고싶음 내 안에 끓어오르는 호승심을 누르며 살고있음
-
수능 만점 받는법 3 0
물2 지2 선택 ㄱㄱ
-
간쓸개 < ㄱㅊ나요? 0 0
이감 오프 살때 딸려오는데 번장에 올리는게 좋음? 아님 걍 풀까요 평 좋아보이진...
-
세상은 원자와 빈공간뿐 2 1
나머지는 의견이다
-
언기사화 이지랄 ㅋㅋ
-
오르비에서 6 1
열심히 확통 사탐 바이럴을 하고 있음 살 사람은 살아야제
-
근데 의지할 사람 있으면 10 1
좋긴 한듯요
-
현역인데 사람 많은 현강 별로 안좋아해서 여태까지 현강은 따로 안들었었는데...
-
난 저때 인설의를 끔꾸고 이후 닉네임으로써 설의를 꿈꾸고 또 그 이후 생2...
-
라이브로 이번에 개강하는 스프린트부터 수강하려는데 문풀위주로 알고있어서 지금부터...
-
6평 9평말고 수능점수도 의미없음 12 2
다음 수능때 더 잘보면 됨。
-
더집중이안되고먼가호흡이힘든?느낌이드는데이거멀까
-
2509 화작 93점 3 0
공통 4점 화작 3점 틀 백분위는 84 ㄹㅈㄷ
-
문학은 나의 자부심 중 하나엿는데.. 그냥 나락 갓어요 매체에서 2개 나가고…...
-
이거 0 0
화작 미적 영어 사문 생윤 90 98. 2. 96. 89 백분위입니다 공대 전기전자...
-
씻지 말까 7 1
이번주에 4번이나 샤워해서 좀 그런데
-
이건 확실한데.
-
미적을 하고 있는데 88점 이상을 넘기기가 어렵네요.. 강x 기준 미적 고점 찍거나...
-
재수생 6평 성적 ㅇㅈ 3 1
다들 화이팅!
-
고2 겨울에 오르비에서 3 1
지1 바이럴당하고 잘하고있던 물1 버렸음
-
그래야 다른 나라랑 수교를 잘 맺을수가 있음
-
이거조회수머임뇨 1 1
머지이거
-
공부기록 7/1 3 1
x가 ~일 때, 어떤 부등식이 항상 성립하는지를 증명하는 문제 f(x)<g(x)면...
-
개표 방송 시발 진짜 내가 왜 그걸보고있었는지 시발 백 83은 진짜 fuck
-
립 글로스 메이킴 fㅓ쓰 커스 암어 메킷 월크!!!!
-
나는 현역 6평부터 삼수 9평까지 싹다 꼴아박고 삼수 수능 한방 대박으로 국어 빼고...
-
14년생6모인증 14 5
국어마킹잘못해서98점에서더오른거같아 다시갈게..........
-
더 놀라운점 2 0
현역 10모 국어 5등급 전에 현역 9모 국어는 93점으로 3등급이엇음
-
6모 고속 성대 단풍인 사람들 4 2
같이 논술 쓰자 인재는 성균에 모였으니 우리의 논술 접수가 우연이겠느뇨
-
쌍사 질문 2 1
재수하고 있고 쌍사 선택했습니다 동사는 2월달부터 시작했고 사문하다가 5월말에...
-
아니학교독서실 8 0
이딴식이라고. 자습시간에. 잡것듷아..하아………
-
국어도 노력으로 올렸으니 1 0
영어랑 탐구는 어떻게는 가능할거라 생각해요 진짜 탐구는 내가 어떻게든 정복하고 만다
-
파운데이션vs개정시발점 2 0
고2모고 3~4뜨는데 이미 수1 수2를 학원에서 3번정도 돌렸었어요 파운데이션 듣고...
-
수학 좀 도와주새요 0 0
현재 수2 기출, 수1 이해원 풀고있는데 이해원 진쩌 개 ㅈ나게안풀리고...
-
님들아 허들링 아직안나옴? 4 0
대성드가면 2026 허들링이라고 써있는거 저거 작년꺼임? 김범준 지금 그럼 인강...
-
미적분 내신 단답 찍을 숫자 ㅊㅊ 좀 10 0
아무거나
-
요즘 글 좀 많이썼다고 5 0
4명 팔취는 너무해요 ㅠㅠㅠㅠㅠㅠㅠ
-
맞팔구 6 1
까지가 이제 25시즌 스토리이고 26시즌을 플레이중~
나잖아 시발
2015년쯤 글이네요

맞음뇨존나난데

사실 정파라면 모두의 얘기일지도작년 생각이 나네요 ㅋㅋㅋ

고된 정파의 길..이 분 아직도 수능 준비 중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