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특 생윤 p.76 4번 제시문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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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초기진압 님의 지속적인 요청을 받아 글 하나를 써보려고 합니다. 결국 평가원 기출문제 제시문의 표현과 ebsi가 고치지 않은 표현을 지적하는 것이다 보니, 저는 개인적으로 수험과는 조금 거리가 멀 수 있다고 판단하므로, 윤리과 논란에 머리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다고 판단하시는 분들께서는 안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롤스 "정의론"에서 ‘일반적 정의관’과 ‘정의의 두 원칙’
이 글의 목적은, 수능 윤리 수험계에서 롤스의 입장이라고 통용되고 있는(일부 개론서에서도 그렇게 보는) "모든 사회적 가치―자유와 기회, 소득과 부, 그리고 자존감의 사회적 기반―는 이러한 가치의 일부 또는 전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모든 사람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라는 문장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올해 초에 27 수특 생윤 p.76 4번에 수록된
정의의 일차적 주제는 사회의 주요 제도가 권리와 의무를 배분하고 사회 협동체로부터 생긴 이익의 분배를 정하는 방식이다. 이를 정하는 정의의 원칙은 당사자들의 원초적 합의의 대상이다. …(중략)… 모든 사회적 가치는 이러한 가치의 일부 또는 전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모든 사람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라는 제시문에 대해, "그 말은 롤스가 자신의 입장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 정의관'의 입장입니다. 또, 학생들에게 이 표현은 롤스가 축차적 서열을 설정한 것이랑 배치된다는 점에서 교과의 기본 개념과도 충돌이 있는 지점입니다. 이는 학문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며,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의문을 제기하게 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제시문 텍스트를 그 사상가의 입장으로 학습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지문 선정은 정정이 필요해 보입니다."라며 정정 신청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왜 저런 문장이 수능 윤리 수험계에서 롤스의 입장인 것처럼 통용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아마 다음 세 텍스트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20.09 윤사 18
23수완 p.49
23수완 해설지 p.13
실제로 이렇게 외우고 풀었어도 당시 고난도 문제였던 23 수능 9번 ㄱ. "최소 수혜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소득은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를 롤스 O로 판정해서 맞출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문형상, 평가원이 저 문장을 참고해서 냈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화두가 된 문장과 수능 문장은 동치는 아닙니다. 후자는 사회적 가치의 범주를 '소득'으로 좁혔고, 전자는 '모든 사회적 가치'를 논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왜 저 문장이 롤스의 정확한 입장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는지 적어보겠습니다. 이학사 판본 "정의론" p.107~108에 따르면, 저 문장은 "일반적 정의관(general conception of justice)"에 해당하며 롤스는 "나는 일반적인 정의관을 제외해두고 대신에 서열을 이루는 두 원칙의 특수 경우를 검토해보고자 한다(For the most part, I shall leave aside the general conception of justice and examine instead the two principles in serial order)"라고 주장합니다. 관련 내용을 좀 길게 인용해 보면 다음 같습니다. 밑줄은 제가 친 것입니다.
이 두 원칙이 그 내용에 있어서 다소 특수한 것임이 사실이고 그에 대한 인정 여부는 결국 내가 해명하고 증명해야 할 어떤 가정에 달려 있다는 것도 명백한 일이다. 당분간 주의해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원칙들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는 보다 일반적인 정의관의 한 특수한 경우라는 점이다.
모든 사회적 가치 – 자유, 기획, 소득 및 자존감의 기반 – 은 이들 가치의 전부 또는 일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 단순한 불평등은 부정의가 된다. 물론 이러한 정의관은 지극히 애매하며 따라서 해명을 필요로 한다.
첫 단계로서 사회의 기본 구조는 어떠한 기본적 가치들, 즉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자 하는 것들을 분배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가치들은 보통 그 사람의 합리적 인생 계획이 무엇이든 간에 소용되는 것이다. 이를 보다 단순화시켜 사회가 취급할 수 있는 주요한 기본적 가치들이 권리, 자유, 기회 및 소득과 재산이라고 생각해보자. 이러한 것들은 사회적 기본 가치들이다. 다른 기본 가치들, 예를 들어 건강과 정력, 지력과 상상력 등은 자연적 가치들이다. 물론 이것들을 소유하는 것도 기본 구조의 영향을 받기는 하나 직접적으로 그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모든 사회적 기본적 가치들이 균등하게 분배된 가상적인 최초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여기에서 모든 사람은 유사한 권리들과 의무들을 가지고 있으며, 소득과 재산도 동등하게 나누어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개선점을 판단함에 있어 기준을 제공한다. 만일 재산과 조직 내의 권한을 불평등하게 가름으로써 그러한 가상적인 최초의 상황에서보다 모든 사람의 처지가 한층 나아질 수 있다면, 그러한 불평등은 일반적인 정의관에 부합될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약간의 기본적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사회적·경제적 이득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어떤 종류의 불평등이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아무런 제한도 가하지 않으며 다만 모든 사람들의 처지가 개선될 것만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노예 상태를 용납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경우를 상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대신에 돌아오는 경제적 보상이 월등할 때, 사람들이 그들의 정치적 권리를 내버릴 수 있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두 원칙이 배제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거래이다. 그 원칙들을 서열적으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참작해야 할 여건들하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기본적 자유와 경제적·사회적 이득과의 교환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체로 나는 일반적인 정의관을 제외해두고 대신에 서열을 이루는 두 원칙의 특수 경우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 텍스트에 따르면 롤스는 ‘일반적 정의관’을 자신의 최종 입장으로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롤스는 일반적 정의관의 특수한 경우(special case)를 정의의 두 원칙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정의의 원칙이 서열적으로 배열되지 않으면 사회적‧경제적 이득이 기본적 자유와 교환되는 것을 허용하게 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정의 제1원칙에는 ‘기본적 자유의 평등’을, 정의 제2원칙에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배속하고 축차적 서열을 설정한 정의의 두 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해석은 저의 독창적인 해석이 아니라, 다음 두 문헌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홍성우, 존 롤즈의 "정의론" 읽기" 1부 2장 11절 "정의의 두 원칙"
정의의 두 원칙과 비교되는 일반적 정의관은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모든 사회적 가치 ―자유와 기회, 소득과 부, 그리고 자존감의 사회적 기반― 는 이러한 가치의 일부 또는 전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모든 사람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정의의 두 원칙과 일반적 정의관을 비교하려면 우선 사회의 기본적 구조가 이른바 기본적 가치(primary goods)를 분배한다고 가정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 가치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기본적 가치는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합리적 인생 계획을 위해 요구되는 것이다. 기본적 가치에는 권리·자유·기회·소득·부·자존감 등의 사회적인 기본적 가치와 건강·정력·지능·상상력 등의 자연적인 기본적 가치가 있다.
정의의 두 원칙과 일반적 정의관을 비교해 볼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즉 일반적 정의관이 사회적인 기본적 가치를 분배할 때 어떤 종류의 불평등을 허용할 것인지 아무런 제한 사항도 마련해놓지 않고서 그저 모든 사람의 처지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입장의 표명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 정의관에 따를 경우 돌아오는 경제적 보상이 정치적 권리를 압도할 정도가 되면 많은 사람은 그 보상 앞에 무릎을 꿇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정의의 두 원칙은 원천적으로 이런 종류의 거래를 배제하기 위해 그 원칙을 서열적 순서로 배열한다. 그래서 이 원칙은 평등한 기본적 자유가 경제적·사회적 이득과 교환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기본적 권리와 자유는 경제적·사회적 이득과는 엄격히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은 사회적인 기본적 가치 사이에 엄존하고 있는 차이를 보여준다. 일반적 정의관은 이러한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롤즈 "정의론"' p.109~111
1.1.5.6 일반적 정의관
1.1.5.6.1 일반적 정의관의 내용
(e1.1.5.6.1.1) 일반적 정의관에 따르면 불평등한 분배에 의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낫다. 즉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불평등한 분배가 허용된다. 이런 일반적인 정의관에서는 불평등에 대한 조건으로 오로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전제하기 때문에 평등한 기본적 자유에 대한 침해를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q1.1.5.6.1.2) 모든 사회적 가치들 ― 자유, 기획, 소득, 재산 및 자존감의 기반 ― 은 이들 가치의 전부 또는 일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107)
1.1.5.6.2 일반적 정의관과 정의의 두 원칙의 차이점
(e1.1.5.6.2.1) 일반적 정의관에 의하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면 모든 종류의 불평등을 인정하게 되어 평등한 자유의 권리도 침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 정의관은 불평등의 정도에 대한 제한 조건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등한 기본적 자유를 포기하는 대가로 경제적 이익이 충분히 주어지는 경우에 일반적 정의관은 이를 정의롭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정의의 두 원칙은 평등한 자유의 원칙인 제1원칙이 제2원칙에 항상 서열적으로 우선하기 때문에 경제적, 사회적 보상이 주어진다고 해서 평등한 자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말할 가능성은 없다.
(q1.1.5.6.2.2)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약간의 기본적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사회적, 경제적 이득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정의관은 어떤 종류의 불평등이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아무런 제한도 가하지 않으며 다만 모든 사람의 처지가 개선될 것만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노예 상태를 용납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상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대신에 돌아오는 경제적 보상이 월등할 때, 사람들이 그들의 정치적 권리를 내버릴 수 있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두 원칙이 배제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거래이다. 그 원칙들은 서열적으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참작해야 할 여건들 하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기본적 자유와 경제적, 사회적 이득과의 교환을 허용하지 않는다.(108)
이러한 논거로 정정 신청을 넣은 결과, ebsi는 다음 같은 답을 주었습니다.

일반적 정의관이 롤스의 입장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결국 '제시문이 롤스인 것은 알 수 있지 않냐!'는 논지로 보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쨌든 ebsi가 해당 제시문을 수정하지 않는 한, 수능에서 '일반적 정의관'과 '정의의 원칙'의 명시적 차이를 묻는 선지는 출제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위의 텍스트와 재저술 p.95의 "이 우선성은 제1원칙에 의해 포괄되는 기본적 권리들 및 자유들이 차등의 원칙에 의해 규제되는 사회적·경제적 이익과 교환(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거래(trade-off)”)되는 것을 배제한다."라는 문장에서도 볼 수 있듯 롤스가 '축차적 서열'을 굉장히 중시한 사상가였음은 재확인할 수는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반적 정의관'에서 '모든 사회적 가치’ 자리에 ‘소득을’ 바꾸어 넣으면 "정의론" p.123의 다음 문장에 부합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에서 '일반적 정의관'을 롤스의 최종 입장으로 수용하지 않고도 23 수능 9번 ㄱ. "최소 수혜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소득은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와 24 9평 15번 ㄷ. "재산의 평등한 분배가 정의 원칙에 의해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선지를 합당하게 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정의로운 것으로 판단되는 분배를 나타내는 무차별 곡선을 가정해보자. 그럴 경우 차등의 원칙은 만약 두 사람(간단히 두 사람의 경우만 국한할 경우)의 처지를 모두 더 낫게 해줄 별다른 분배 방식이 없는 이상 평등한 분배가 더 바람직하다고 하는 의미에서 강력한 평등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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