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지박약이 정시로 입시의 정점을 찍은 방법 - 시스템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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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솔직히 제가 의지가 엄청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저는 제가 얼마나 쉽게 흐트러지는지 잘 압니다.
집에 있으면 눕고 싶고,
핸드폰이 옆에 있으면 보고 싶고,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지 해놓고 막상 주말 되면 늦게 일어나고,
“조금만 쉬고 해야지” 하다가 하루 지나갑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냥 저를 너무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일부터 진짜 열심히 해야지.”
“이번엔 폰 안 봐야지.”
“주말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부해야지.”
이런 계획 별로 안 세웠습니다.
왜냐하면 될 리가 없거든요.
물론 가끔은 될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걸 기본값으로 잡으면 망합니다.
사람이 매번 각성 상태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고등학교 때 주말 공부도 그랬습니다.
저는 제가 주말 아침 7시에 벌떡 일어나서, 상쾌하게 씻고, 책상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공부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될 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핸드폰이 옆에 있는데도 안 보고 공부할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도 될 리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폰을 두고 나갔습니다.
공부할 책만 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오전 10시에 가서, 오후 4시에 나왔습니다.
끝입니다.
대단한 계획도 아니고, 멋있는 루틴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주말에 늦게 일어나도 10시까지는 학교에 가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6시간은 거기 박혀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6시간 동안 공부가 잘 된 날도 있었고, 안 된 날도 있었습니다.
멍하니 앉아 있던 날도 있었고, 책 펴놓고 한숨만 쉬던 날도 있었습니다.
근데 그래도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았습니다.
집에 있었으면 폰 봤을 겁니다.
침대에 누웠을 겁니다.
“조금만 쉬고 해야지” 하다가 밤 됐을 겁니다.
너무 뻔합니다.
그래서 그냥 그 상황 자체를 피한 겁니다.
학교에 가면 적어도 도망갈 구멍이 줄어듭니다.
폰이 없으니까 폰을 못 봅니다.
침대가 없으니까 눕지 못합니다.
책밖에 없으니까 결국 책이라도 보게 됩니다.
제가 말하는 시스템은 이런 겁니다.
거창한 게 아닙니다.
그냥 제가 딴짓할 수 있는 선택지를 미리 줄여놓는 겁니다.
재수학원도 비슷했습니다.
저는 혼자 하면 제가 알아서 잘 관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될 리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등록했습니다.
돈을 내고,
정해진 시간에 가고,
주변에 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빠지면 티가 나고,
일단 앉아 있어야 하는 곳.
그런 곳에 저를 넣은 겁니다.
“내가 알아서 잘하겠지”가 아니라,
“내가 알아서 하면 안 할 수도 있으니까, 안 하기 어렵게 만들어야겠다.”
이쪽에 가까웠습니다.
입대도 비슷했습니다.
군대 가기 싫었습니다.
당연히 가기 싫죠.
근데 계속 생각하면 계속 미룰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가지.”
“조금만 더 있다가 가지.”
“아직 시간 있잖아.”
이러다가 계속 도망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입대 취소가 힘든 시점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청했습니다.
거의 마음은 이거였습니다.
“일단 지르자.”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도망칠 곳은 대충 막아놨으니까, 이제 어떻게든 버텨보자.”
멋있는 방식은 아닙니다.
솔직히 좀 무식하고, 미래의 나한테 떠넘기는 방식 맞습니다.
근데 저는 이게 마냥 나쁜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꽤 잘 맞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순수 의지만으로 매일매일 완벽하게 굴러가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핸드폰이 옆에 있어도 안 보고,
집에 있어도 안 눕고,
아무도 안 시켜도 하루 종일 공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근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그 사람들을 그대로 따라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요즘 운동도 비슷하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운동할 마음이 생기면 가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갈 날이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규칙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핸드폰을 하더라도 체단실에 가서 한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생각보다 효과 있습니다.
침대에서 핸드폰을 보면 그냥 끝입니다.
이미 누워 있는데 다시 일어나서 운동복 입고 체단실 간다?
쉽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안 갑니다.
근데 체단실에 가서 핸드폰을 보면 다릅니다.
일단 몸이 거기에 가 있습니다.
기구가 옆에 있습니다.
운동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면 폰 좀 보다가도
“온 김에 한 세트만 할까?”
이렇게 됩니다.
그 한 세트가 두 세트가 되고,
두 세트가 그냥 운동이 됩니다.
핵심은 의지가 아니라 위치인 것 같습니다.
내 몸을 어디에 두느냐가 생각보다 큽니다.
집에 있으면 집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독서실에 있으면 독서실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체단실에 있으면 체단실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그래서 의지가 약하면, 의지를 키우려고만 하지 말고 도망갈 구멍부터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폰을 못 참겠으면 폰을 멀리 두면 됩니다.
집에서 공부가 안 되면 집 밖으로 나가면 됩니다.
아침에 못 일어나면 억지로 6시 기상 계획을 세우기보다, 늦게 일어나도 무조건 박혀 있을 장소를 만들면 됩니다.
운동 가기 싫으면 일단 운동하는 공간에 몸부터 넣으면 됩니다.
의지를 아예 안 쓴다는 말은 아닙니다.
의지는 필요합니다.
근데 매 순간 의지를 쓰려고 하면 금방 지칩니다.
폰 안 보려는 의지,
눕지 않으려는 의지,
딴짓 안 하려는 의지,
공부 시작하려는 의지,
운동 가려는 의지.
이걸 하루 종일 계속 쓰면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의지를 한 번만 쓰는 쪽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가는 데 한 번.
재수학원 등록하는 데 한 번.
입대 신청하는 데 한 번.
체단실 가는 데 한 번.
그다음부터는 시스템이 어느 정도 저를 끌고 가게 만드는 겁니다.
물론 이 방식이 항상 좋은 건 아닙니다.
미래의 나에게 너무 떠넘기는 방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되돌리기 어려운 선택은 조심해야 합니다.
근데 적어도 공부나 운동처럼 어차피 해야 하는 일에서는 꽤 괜찮았습니다.
저는 의지가 강해서 버틴 게 아니라,
제 의지를 못 믿어서 버틴 쪽에 가깝습니다.
저를 못 믿으니까 폰을 두고 갔고,
저를 못 믿으니까 학교에 박혀 있었고,
저를 못 믿으니까 재수학원에 등록했고,
저를 못 믿으니까 입대 신청도 취소 어려운 시점에 던졌고,
저를 못 믿으니까 운동도 일단 체단실에 가서 폰을 봅니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의지였던 것 같습니다.
멋있는 의지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같은 감동적인 의지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이거였습니다.
“나는 가만히 두면 또 흐트러질 사람이니까, 흐트러지기 어렵게 만들어야겠다.”
저한테는 이게 제일 현실적이었습니다.
수험생활 하면서 매번 자기 의지 탓만 하면 끝이 없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하지?”
“나는 왜 폰을 못 끊지?”
“나는 왜 계획대로 못 하지?”
이렇게 자책하기 전에, 그냥 구조를 바꾸는 게 더 빠를 수 있습니다.
의지를 믿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의지를 너무 자주 꺼내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겁니다.
계속 버티는 의지보다,
도망 못 가게 만드는 한 번의 선택이 더 셀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조금 무식하고, 별로 멋있지도 않은 방식이었지만
그래도 효과는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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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 입장에서 와닿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