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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프레드 비온 [1461164] · MS 2026 · 쪽지

2026-05-17 22: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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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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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윤에서 다루는 후기 하이데거 글을 읽다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 오묘한 말을 한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요. 이는 후기 하이데거의 '시적으로 철학하는 문체'에서 발원한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에 인용된 신상희역 "숲길"의 글을 읽어보면 하이데거가 일종의 선지자적 시각을 본인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 점을 알면 후기 하이데거 글의 맥락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공유합니다.


"우리가 존재의 종말론으로부터 사유해 본다면, 어느 날 우리는 이른 새벽의 저 까마득한 옛날을 앞으로 다가올 저 까마득한 훗날에서 고대해야만 하며,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저 까마득한 날을 바로 그 날에 의거해서 숙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술의 본질은 아주 서서히 드러난다. [기술의 본질이 드러나는] 이 날은 순전히 기술적인 날로 탈바꿈된 세계의 밤이다. 이 날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다. 그 날과 함께 단 하나의 끝도 없는 겨울이 들이닥친다. 그때는 인간에게 보호가 거절될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자의 무사함도 어둠 속에 묻힐 것이다. 온전한 것은 스스로 물러선다. 세계는 온전함을 상실하게 된다. 그 때문에 신성에 이르는 흔적으로서의 성스러운 것이 은폐될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성스러운 것에 이르는 흔적, 즉 온전한 것[여기에 구원의 손길이 포함]도 소멸된 것도 소멸된 것처럼 보인다. 단지 소수의 죽을 자들[죽음을 죽음으로서 흔쾌히 떠맡을 수 있는 인간]만이 절망적인 것[온전함을 상실한 존재]을 절망적인 것으로서 절박하게 감지할 수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들은 어떤 위험이 인간에게 다가오고 있는지를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 위험은 인간이 존재 자체에 대해 있는 그의 관계에서 인간의 본질에게 다가와 관계하기 시작하는 그런 위협에 존립하는 것이지, 어떤 우발적인 개개의 위협에 존립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위험이야말로 진정한 위험이다. 위험은 모든 존재자에 이르는 심연[세계의 심연] 속에 스스로를 숨기고 있다. 이 위험을 간파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일찍이 심연에 도달하는 그런 죽을 자들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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