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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26-03-01 01: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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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썰 주의) 과거가 당신을 지배하고 날뛰도록 방치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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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순진난만하던 어린 시절 삼촌에게 했던 질문이 기억이 납니다. "사람마다 동일한 일을 겪더라도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받고 누군가는 거꾸로 기쁨을 느낀다. 신기하다" 고요. 특히 어렵고 힘든, 고통과 고난을 겪고도 훌훌 털어버리고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며 기복이 심하지 않고 오히려 정상 급의 위치까지 도달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멘탈이 강하다고 느끼며, 그러한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누구나 호평하고 본받고 싶어 합니다.



 저도 어제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서 멘탈이 강해질 필요가 있다! 남들에게 보이고 멋지게 인정을 받고 싶기 보다는, 순수하게 나의 이익과 나의 미래, 나 자신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위해서, 나 자신을 아끼고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멘탈이 강해져야 하겠다! 더 이상 과거가 나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퍼뜩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쟁사 특히 해전사를 자주 연구하고 공부해봤으니까 잘 아는데, 군함을 운용함에 있어서 damage control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배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작은 인공 섬과도 같습니다. 거대한 함선에 많은 인원이 상주하는데, 작은 불씨가 커져서 배 전체를 삼킬 수도 있고, 작은 구멍 하나가 침수를 유발하여 배를 침몰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함선은 특히 구획을 적절하게 나눠서, 침수나 화재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해당 구역에 제한이 되도록 격벽으로 막는 등의 조치를 취합니다.



 저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에, 과거를 적절히 격벽으로 분리하지 않고 나의 현재와 미래에 침범하고 날뛰게 내버려 두었구나, 마조히스트처럼 나 스스로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지 않고 과거가 나를 휩쓸고 침범하도록 방치를 해두었구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태도가 필요하구나를 이번에 퍼뜩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기분 나쁜 일이 재수없게 생겼다고 그 날을 하루 다 낭비하고 찌뿌둥하게 있기 싫으며, 수세적이고 수동적으로 과거에 끌려다니고 나의 가능성과 시간 자원을 낭비하기 싫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스스로 크게 발전했다고 뿌듯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더 이상 남들에게 보여지는 부분을 위해서 멘탈이 강해져야한다는 그러니까 외부에서부터 외적인 동기가 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관점에서 내가 좀 더 나아지기 위해서 멘탈이 강해져야 한다는 당위성과 필요성을 느낀 부분입니다. 외적인 동기에 의한 생각이었다면, 아마도 평가를 할 남들이 전혀 없는 곳에서는 또다시 과거에 흔들리고 삽질을 하고 있었을 텐데 항상 나와 함께하는, 나라는 존재를 기준으로 내적인 동기를 느끼게 되니 어디가서 기존의 약속을 배신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20년 이맘때 즈음부터 중증 우울증에 갖은 고생을 했었는데, 겨우 2026년이 되어서야 완치 극복 수순에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과거라는 트라우마와 위험을 내가 적절히 분리하고 격리시킨다면 나의 현재와 미래라는 부분까지 침범하지 못하겠구나!를 느꼈습니다

https://brunch.co.kr/@danwool/268





 불교의 유명한 선 관련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대학이 불교와 관련이 있는 대학이라 그런지, 명상도 해보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바이오 피드백이라는 명상 비슷한 것도 하면서 호흡을 통해 스스로의 기분과 긴장을 컨트롤하는 연습도 해보았는데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웠습니다. 딱히 스스로를 불교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본받을 만한 아주 멋진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일일이 타이핑하기 귀찮으니 '두 승려와 여인' 이야기를 검색해서 그대로 내용을 가져와보았습니다.






 트라우마라는 것은 과거의 있었던 일이며, 그 트라우마를 계속 놓지 않고 붙잡으며서 인간이 고통에 시달리는 것과 비슷하게 위의 이야기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교훈을 줍니다.





 치열한 입시 스트레스를 겪는 한국의 고등학생이라면 20대를 전후로 하여 정말 깊은 상처를 받는 일이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필자 또한 2015년~2016년의 일은 두고두고 트라우마로 남았으며,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성을 잃어본 첫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극복하는데 약 10년이라는 무시무시한 시간이 걸릴 정도로 깊은 상처로 남은 일이고, 어제와 오늘 마침 이때의 일이 생각이 나더군요. 그와 동시에, 그 일이 10년 동안 나에게 붙잡혀 있으며 나는 10년이나 그 일을 손에서 놓고 있질 않구나를 느끼고 이제는 좀 놓아주려고 합니다.



 2015년은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인데 누구나 그렇듯이 이 시기에는 대학 입시를 위한 스펙 쌓기로 정신이 없는 시기입니다. 당시 동아리 창설부터 활발한 활동을 하던 저에게는 지도 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가끔 말한 적이 있는 그 화학 여선생님이셨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후 같이 일을 하면서 어마어마한 구박과 폭언, 책임전가와 화풀이를 당하면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하도 정신없이 사느라 제대로 그것을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했었고, 그나마 아버지는 주말부부로 먼 곳에서 직장을 구핫니느 바람에 상호작용이 제한되었었습니다. 그나마 엄청나게 정시적 학대 당하던 것을 엄마한테 자주 하소연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같은 가족으로서 저의 편을 들어주기 보다는 오히려 선생님  편을 들었는데 이때 은근히 같은 여성이라고 편을 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으이구~ 하면서) 어른들 말이 다 맞아~" 따위 소릴 들었는데 그 소리를 들은 이후로 더 이상 엄마한테는 도움이나 조력을 받을 수 없겠구나 싶어서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좀 엉뚱한 시기 화약고에 불씨가 붙어버리는데, 1년간 그렇게 쌩고생을 하고 겨우 고3이 되어 2016년이 되어서야 당시 화학 선생님의 마수로부터 도망을 칠 수 있었고, 후배들에게 동아리를 물려주었습니다. 여러가지 요소가 겹쳤지만 화학 선생님으로부터 온갖 괴롭힘을 당하던 저는 드디어 혼자만의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성적이 급상승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엄마가 하필이면 제가 안방 앞을 지나가면서 아버지와 하는 이야기를 흘려듣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실없이 가벼운 태도로 웃으면서 아버지한테 "수학 성적 20점 올리는데 200만원 들었다" 라는 소릴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대충 해석을 하자면 성적이 급상승 하는데 그 과정에 들어간 학원비를 이야기 한 것으로, 당시 이 이야기를 듣고 하도 충격을 먹어서 일주일간 방에 틀어박혀서 식음을 전폐한 일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때 이성이 뒤엎어질 정도로 깊은 분노를 느꼈던 이유를 나름 설명해보자면, 당시 화학 선생님으로부터 갖은 학대와 고생을 당하던 저를 엄마는 전혀 편들어주거나 진지하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고 오히려 화학 선생님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같은 가족 편조차 들지 않는 엄마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물질적으로 계산해보자면 고2 내내 1년간 온갖 정신적 학대를 당하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쉬움이 많이 느껴져서 드디어 악마같던 화학 선생님으로부터 해방되어 이제 나의 노력으로 스스로 성적을 대폭 올린 것에 대해서, 절 칭찬해주고 인정해주지 못할망정 이제는 학원비 소리를 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마 따지고보면 그 화학 선생님에 의해서 단순히 정신과 시간을 희생당한 것 뿐만 아니라, 이렇게 성적이 빨리 오를 수 있었던 놈이 그간 성적을 못 올린 것을 보자면 1년간 들인 학원비를 허공에 뿌린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 화학 선생님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할망정, 이제는 나의 순수한 노력과 성취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학원비가 얼마가 들었다는 둥 실없는 소리나 하는 것을 보고 인생에서 가장 심하게 실망하고 분노를 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때 수직상승을 하려고 꿈틀거리던 성적이 다시 위에서 대가리가 깨져서 박살나서 오히려 약간 더 떨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그때 대단히 아쉬운게 제가 지금 수준까지의 현명함이 없어서, 당시 그 일에 대해서 너무나 깊은 억울함과 원망감에 휩싸여서 이후 1년을 잘 보내지 못했습니다. 당시 성적을 뚫고 올리던 기세가 너무나도 가팔라서... 아마 그때 그 일을 훌훌 잘 털어버리고 별 시답지 않은 소리에 대해서 크게 반응하지 않고 현명히 대처했다면 제가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원하던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드러납니다. 이전까지는 이 일에 대해서 저를 크게 화나게 만든 엄마에 대한 원망감 밖에 없었고, 난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억울함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었습니다. 저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 내가 그때 그냥 개소리에 대해서 개소리로 치부하고 개가 짖을 때 열차가 그냥 무심하게 달리듯이 목표를 향해 흔들리지 않고 달려갔다면, 나의 상태와 기분을 적절히 관리하고 스마트하게 관리하였다면 오히려 피해를 줄일 수 있었겠구나를 이제서야 좀 더 명료하게 정리하고 깨달았습니다.



 이전에 반추와 트라우마에 대해서 여러 차례 글을 쓴 바와 같이, 또 다시 그런 화학 선생님 같은 사람을 만났다간 진짜 인생이 ㅈ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또 다시 이런 일을 겪었다가는 그땐 진짜 완전히 무너져서 그대로 인생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해 대비하려는 자세 때문에 그 일이 그토록 오랫동안 뇌리에 각인이 된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마지막에 쓴 글처럼 이후에는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을 지도자나 멘토로 만나지 않았고 오히려 대단히 좋은 인연을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그 소릴 들었어도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그냥 시원하고 대국적으로 "아 기분도 참 ㅈ같은데 게임이나 몇 판 하고 스트레스 풀고 털자. 내 할 일이 시급하고 중요하니까 거기에 좀 더 집중하자 옆에 사람이 개소리를 하는 것에 흔들리지 말자" 라고 하였다면 아마 스스로 보기에나 남이 보기에나 좀 더 멋지고 훌륭하다고 평가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 막 들더군요.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벌써 잘 드러납니다. 답은 '분리'이며, 그러한 안좋은 과거, 상처를 빠르게 극복하고 지금 하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여 궁극적으로 2차 피해에 얽메이지 않고 빠르게 탈출하는 것은 적절한 격리와 분리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워낙 인생에 있어서 처음 겪어보는 강렬한 충격이었던지라, 그 때는 적절히 대처를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보고 아~ 그때 내가 좀 더 잘 현명하게 대처했다면 시간낭비 돈낭비 체력낭비 인생낭비 안하고 더 효과적으로 살았을텐데 아쉽다~ 하는 것 또한 그 자체로 또 다른 반추이며 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보면 즐겁고 좋은 일도 얼마든지 많이 있으며, 조금만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면 그러한 기분 좋은 일, 생산성 있고 뿌듯한 일을 함으로서 불안과 후회라는 과거로부터 빠르게 탈출할 수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워낙 기분에 좌우되고 감정기복이 심하던 저는, 무슨 일만 있으면 그 일 때문에 하던 일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휘둘리며 생산성이 급락하던 패턴을 반복해온 것 같습니다.



 이미 벌어진 불행은 곧 과거이며 과거는 통제할 수 없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그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충분히 통제 가능합니다. 항상 좋아하는 탄산음료를 원샷을 때릴 수도 있고, 잠깐 기분이 잡치니까 영화를 보고 낄낄대고 기분전환을 한 다음에 다시 일에 집중력을 투입할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과거를 잊으려고 의식하는 것 또한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심리학과 뇌과학은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잊어버리려는 의식적인 행동 자체가 그 과거를 다시금 상기한다고 확실하게 알아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부정적인 과거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아예 다루지 않는 것 또한 집착하는 것 만큼이나 다소 좋지 않은 행위인 것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되 그것이 날 지배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여 나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더 큰 일에 대해서도 잘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한창 우울증이 심하던 시절에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자주 보곤 했었습니다. 그야말로 인생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제각기 정말 창의적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고민과 고통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야~ 내가 겪은 고통은 진짜 명함도 못 내밀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 정도로 수많은 통제 불가능한 고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다보면, 부처님이 어째서 천재인지, 부처님이 어떻게 이 세상은 고통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 알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통제불가능한 부분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고통이 제가 찾은 핵심 공통점입니다. 타인에 의한 고통, 과거에 묶인 트라우마와 고통 등등 즉문즉설에서 볼 수 있는 핵심은 바로 통제 불가능성입니다.



 그러한 점에 대해서 법륜 스님은 스스로를 바꾸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시곤 합니다. 지금 제가 말한 통제 가능성 여부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결국 법륜 스님께서는 통제 불가능한 것을 바꾸려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며, 그 대신 통제 가능한 부분 바로 자기 자신에 집중하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에 대입해보면, 엄마가 저를 지지하지 않고 가족의 편을 들지 않고 오히려 이상하고 엉뚱한 사람 편을 들다가, 종국에는 뒤통수에다가 총질을 하는 듯한 말을 통해서 저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은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저의 태도와 향후 저의 행동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사실 그때는 몰랐죠 통제 불가능한 줄 알고, 그냥 그 말에 흔들리고 집착했으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마저도, 통제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비슷하게도 후술하겠지만 어제 대단히 실망스러운 민원 답변을 받았습니다. 제가 통제할 수 없는 그 민원 답변과,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전 대단히 신경을 많이 쓰고 기분이 많이 나쁘고 해서 해야 할 일도 집어 치우고,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무수한 행동 특히 기분전환을 위해서 그냥 유튜브 틀고 스트레스 푼다음에 털털하고 시원하게 벗어던지고 다음의 일 곧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일을 제가 포기를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아 또 이렇게 내 아까운 시간과 인생을 썩힐 수 없고, 이렇게 즐거운 일이 많고 다양한 흥미진진한 세상을 놔두고 과거가 나를 지배하게 둘 수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황급히 장문의 글도 쓰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난 것을 잘 정리해서 기록을 해두어야, 나중에 또 잘 써먹고 현명하게 부정적인 일을 넘길 수 있겠구나! 해서요.







 법륜스님의 말씀과 비슷한 이야기를 얼마 전 페이커가 총리와의 인터뷰에서 한 일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아는 세계 최정상이잖아요? 당연히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압박도 있을 것이고, 여러 말 못할 속사정들도 있을 것이고 마음고생도 심했을 것입니다. 어느 분야이든지 튼튼한 멘탈이 뒷받쳐주지 않는다면 1등 달성과 유지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페이커가 한 말이 법륜스님과 한 말, 그리고 이번에 제가 정리한 부분과 상당히 일맥상통하다고 느낍니다.



 




 쉽게 말해서 '통제할 수 없는 것(결과)은 포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과정과 연습 등등)에 집중한다' 라는 말인데 정말 멋진 말이고, 역시 어느 분야 탑은 마음가짐조차 나 따위와는 범접할 수 없구나 싶더군요.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생각 자체도 통제 가능한 것이잖아요? 페이커만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했으며 페이커만이 할 수 있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아니잖아요? 나도 얼마든지 노력하면(몹시 힘들겠지만 20년 넘게 사고방식이 굳혀졌고 관성이 있을 테니까) 저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특히 저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려고 들지 않고 오히려 통제 불가능한 과거와 이미 일어난 트라우마에 나를 그냥 방치하고 내버려 두었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이 세상에 고통과 시련이 없는 인생이 없듯이, 정말 재수없게 똥을 밟을 수도 있는 것이고 하여간 안좋은 일은 분명 누구에게나 예기치 못하게 닥칠 수 있고, 특히 중요한 일을 앞두고 신경이 예민하고 곤두서 있을 때 닥치면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항상 학교 시험기간마다 엄마랑 자주 마찰이 있었던 것 같은데, 특히 그때는 시험을 앞두고 예민하다보니까 엄마의 바늘 같은 말이 평소라면 저라는 풍선을 터뜨리지 못했을 것 같은데, 긴장감으로 빠방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을 툭툭 건드리니까 항상 그 때마다 터지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부분도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자기 인생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누구나 예민해지고 긴장감이 높아집니다. 선천적인 성격이 크게 작용하는 영역입니다.



 동시에 풍선이 터지고 나서의 나의 행동은 충분히 통제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 안좋은 일과 기분에 좌우되어 흔들리던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되더군요. 마치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재수없게 터진 안좋은 일과 타인의 기분 나쁜 말, 불행하게도 어이없는 타이밍에 터진 일 자체가 마치 나의 주인공인 것처럼 날뛰도록 냅두고 방치한 면이 있습니다. 이건 얼마 전부터 은근히 느끼던 것인데, 너무 열내고 성내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를 아예 내지 말고 참자는 말이 아니라, 너무 심각하게 진지하게 접근하고 무겁게 받아들이고 온 신경을 다 써서 힘겹게 다투지 말고 적당히 힘 빼고 거리 두고 내 기분과 생각을 지배하도록 관여시키지 말자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명언이라고 인스타에도 자주 올라오는 내용들인데, 사실 여부와 출처를 떠나서 꽤 괜찮은 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특히 스트레스 받고 속 터지고 불행한 일로 기분이 ㅈ같으면 그냥 잠 좀 더 자고 더 많이 먹고 휴식 취해라라는 부분이 신경이 쓰이죠? 저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곧 제가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 통제 가능한 것을 해서 빨리 부정적인 잔념으로부터 탈출하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하게 어제 오늘 대단히 기분이 안좋고 실망스럽지만,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부분 그러니까 글이나 쓰면서 회고하고 성찰해보고, 그것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풀리지 않으면 평소 좋아하는 맛있는 것이라고 좀 입에 넣고, 정 안되고 지치면 잠 좀 푹 자고 상쾌하게 회복을 하는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더 이상 휘둘리고 질질 끌려다니고, 통제 가능한 영역까지 전부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수밀 격벽을 견고하게 쌓으려고 합니다.



 

법륜 스님이 강조하시는 것들도 종합해보면 결국 통제 불가능 한 것은 너무 통제하려고 괜히 힘빼지 말고 내버려 두고, 통제 가능한 부분에 집중하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야 좀 말씀들이 이해가 됩니다





 2025년은 2015년으로부터 딱 10년 지난 해로 2015년 1년간 쌓이고 쌓인 응어리가 엄마의 가벼운 언행으로 불씨가 붙어버려 폭발한 것처럼, 2025년 1년간 이어진 행정심판과 소송은 저를 충분하게 갉아먹었고 굉장한 소모전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리고 딱 2026년 초인 지금, 그간 쌓인 1년간의 분노와 억울함이 응어리지다가 터지려던 찰나 이번에 장문으로 정리한 부분을 깨닫고 나서 저는 통제 가능한 영역에 집중하였으며, 상당히 성공적으로 2차 피해 없이 확산을 제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뿌듯하기도 하고 글의 주제로서도 적절하겠구나 싶어서 급하게 타이핑을 하는 것입니다.



 2024년 즈음에 은평구에서 조현병 환자가 아무런 죄 없는 사람을 일본도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고가 터진 이후, 전국적으로 도검에 대한 전수조사 및 관리 체계가 엄격해졌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마침 조현병 환자가 사고를 터뜨려 준 덕분에, 정신질환자 전반에 대한 감시와 감독이 강화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정신질환으로 여러 차례 병원을 방문한 기록이 있는 저에게도 2025년 경 뒤늦게 소명 통지가 왔고, 이를 정신과 담당 의사한테 설명하면서 행정청에서 요구하는 소견서 및 진단서 등의 소명 자료를 급히 요청하였습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제대로 소명 안하면 압수 및 벌금 등의 무시무시한 처벌을 예고했거든요.



 그런데 참 어이없게도, 날 길이 15cm 이상이면 전부 도검인데 아마 일반인으로서 도검의 기준도 모르고, 관련 결격사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심지어 필자가 가진 도검은 일본도가 아니라 큰 식칼보다도 약간 작은데 날 길이가 15cm 이상이다보니까 도검으로 분류되는 물건이었거든요. 사실 평소 가지고는 있었지만 별 신경도 안쓰고 검집에 넣어서 자취방 구석탱이에 처박아두는 바람에 그 존재도 잊고 살았을 정도로, 일본도처럼 무슨 벽에 걸어두고 존재감을 미친듯이 뿜어대는 그러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근데 도검에 대해서 잘 모르고, 게다가 한번 만나면 한 2분 정도만에 상담이 끝나는 바쁜 대학병원 교수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교수가 이상하게 듣고 제가 가진 것이 '일본도'라고 착각하여, 의무기록 사본에는 '일본도를 보유하고 있다' 라고 기록을 해두었으며, 자기가 이해한 일본도 소유를 전제로 하여 '도검을 소유한 것이 긴장을 유발하여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서, 진단서 발급을 거부함을 설명하였다' 라고 적어두었습니다. 교수가 일본도라고 잘못 인식한 것을 저도 뒤늦게 행정청에 자료를 출력하여 제출하는 과정에 알았습니다.







 문제는 이 부분이 행정청의 먹잇감이 되어서, "봐라 전문의가 안전하게 사용을 확신할 수 없는 위험인물 아니냐. 넌 압수다" 라고 하면서 전후사정을 들을 새도 없이 바로 압수 조치를 해버렸습니다. 영치를 하는 과정이라던지 행정청이 압수 명령을 내린 이유가 딱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닌데 설명하다보면 너무 길어져서 이 정도로 생략하겠습니다.



 나중에 하도 황당해서, 교수한테 가서 따졌고 정정을 하였습니다. 내가 언제 일본도를 보유했다고 말했냐 내가 가진 것은 큰 식칼 정도 되는 칼인데, 교수님이 일본도라고 적어두고 그것을 전제로 진단서를 발급 거부하는 바람에 그게 마치 전문의가 안전을 확신하지 못한 소견으로 인지되어 행정청이 그것을 근거로 압수를 때려버렸다. 이게 말이 되냐 정정해주고, 적법한 소견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일본도로 잘못 이해한 부분을 도검이라고 정정은 해주었지만, 소견서나 진단서를 발급해주는 것은 계속 거부를 하더군요. 제가 이에 대해서 "그럼 집에 식칼도 못 두는 것이냐. 식칼이 어떻게 정신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냐(보통 이런 일에 대해서는, 자타해 위험이 있다고 여겨져 범죄에 쓰이지 못하게 예방하는 것을 위함인데 쌩뚱맞게도 칼을 가진 것이 정신건강 악화와 관련이 있다는 논리로 교수가 적어두었습니다), 그 정도 칼을 집에 두는 것이 어떻게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냐 너무 주술적이고 비과학적이지 않느냐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는 "다른 도검을 신청할 수도 있다"(이 부분도 교수가 잘못 아는 것으로 보이는게, 도검소지 허가증이라는 것은 운전면허처럼 한번 발급받으면 무한히 다른 도검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도검 한 정당 한 개씩 할당되는 방식입니다. 다른 도검을 신청할 수가 없습니다) 라는 식으로 동문서답하면서 계속 진단서를 안끊어주더군요.



 교수가 협조를 안해주는 사이 행정소송 과정에서는 경찰이 "봐라 전문의가 너를 위험한 인물로 보니까 소견서나 진단서를 안 끊어주고, 의무기록 사본에 저렇게 소견을 적어놓은 것 아니겠느냐" 면서 잠재적 위험인물로 몰아갔고 행정소송이 행정청의 주장을 받아들여준 덕분에, 전 국가 공인 '도검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무슨 짓을 할 지 몰라서 일단 압수해야 하는 인물'로 지정이 되어 기본권을 제한을 받았습니다.







 특히 의사의 처방과 진단, 결과 관찰이 끝나서 종합적으로 의견을 적는 '소견서나 진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일단 소명에 응하기 위해서 급히 의무기록 사본을 뗴어서 제출했더니, 그 부분 중에서 일부를 가져와서 "이 부분 보니까 니가 스스로는 호전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니 말이 거짓말인거 같음"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었습니다. 경찰이 이 짓에 한번 맛이 들리더니 행정소송까지 가서도 의무기록 사본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서, 편하게 마음대로 해석을 하고 저를 위험인물로 몰아가더군요.



 변호사로부터 '의무기록 사본을 소견서로 취급하여 행정청이 해석하는 것은 전형적인 행정소송 사안이다'라는 설명을 듣기도 하였지만, 의사도 대면 진료가 원칙이며, 의무기록 사본만을 가지고 병명을 파악하거나 호전 여부 등을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의사 자격증은 커녕 관련 지식도 전무한 경찰은 마음놓고 저렇게 의무기록 사본의 내용을 발췌해와다가 거짓말을 대놓고 하는 것을 보니까 하도 열이 받아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수모를 당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제발 좀 상식적으로 사실 그대로 소견서나 써달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갖은 핑계를 대면서 교수는 계속 오히려 행정소송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안좋고 스트레스를 줄테니까 취하하라고 종용하였습니다(누구 때문에 이 지랄 이 난리를 겪고 있는데 씨발아).



 참다참다 의료법 17조, 정당한 사유 없이 소견서를 발급 거부하면 안된다는 것을 뒤늦게 찾아서, 해당 부분으로 관할 보건소에다가 민원을 넣었습니다. 제가 볼 때 이러이러한 사정과 상황이 있는데, 교수가 처음에 지가 잘못 이해해서 소견서 발급을 거부해놓고서는 이제는 식칼을 집에 두는 것이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상식을 초월하는 핑계를 대면서 소견서 발급을 거부한다고 말이죠. 그나마 의대 교수의 말 중에 행정소송이 대단히 큰 스트레스와 부담을 줄 것이라는 말은 확실히 사실이라고 체감하였습니다 2025년 3월부터 얼마나 압박을 많이 받았는지 정신이 피폐해짐을 느꼈습니다.



 2025년 중간에 뭐 같은 철학 교수를 만나는 바람에 또 고생을 한 적이 있었는데, 행정심판과 행정소송 등을 더불어 이러한 일으 자꾸 겹치다보니까, 아~ 내가 이 사회에 별로 안맞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그건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것일 뿐이고,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미련을 갖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지금은 전혀 다르게 생각합니다.



 2025년 8월부터는 독일로 초청받아서 단기 유학을 가는 등 정말 바쁜 한 해였습니다. 이렇게 좋지 않은 일도 있었고, 좋은 일도 같이 겹친 바쁜 한 해였습니다.








 이제는 슬슬 1년쯤 이 수모를 당하니까 지겨워지고 인내심이 바닥이 나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대 교수에게 행정 처분을 적절하게 심사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했고 어제 딱 결과가 통지되었습니다. 평소 의사인 아버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건소 직원 등 의료기관 및 보건부 담당 소속 공무원들이 의사들에게 갑질을 그렇게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의사의 권위에 복종하고 의사가 일단 무슨 말이라도 하였으니 의료법 위반은 아니라고 통지를 하더군요.










... 이라고 관련 증빙 내용 등을 첨부하여 왜 비합리적이고 의사가 헛소리를 한다고 보는지, 주술적이고 비과학적인 이유로서 제가 납득하지 못했는지를 설명했더니








... 라고 결국 의사가 사유를 들긴 들었으니까, 의료법 17조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한 달만에 듣게 되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이 답변을 듣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던 것이, 당초 의사가 이상하게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의무기록 사본에 기록을 하였으며 그것이 경찰과 행정심판 과정에서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인정되어 사실인 것 마냥 증폭되었고, 의사는 배째라 소견서 못 써주겠다고 하면서 동문서답하고 무당이나 할 법한 소리를 하고 있으며, 행정청에다가 감독을 요청했더니 정당한 사유인지는 면밀히 확인하지 않고 일단 사유를 들긴 하였으니까 전문의의 자격과 권위, 자율성을 존중하여 의료법 위반은 아닌 것으로 파악한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민원 답변 또한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죠) 민원 답변을 들어보니 그야말로 팔다리가 꽁꽁 봉쇄된 것이, 의사는 진단서를 온갖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핑계를 대면서 거부하고 있고, 그 행위 자체가 근거가 되어 저는 위험한 인물로 낙인이 찍히고 경찰이 처분은 정당했다고 공문서에 의무기록 사본 내용 중에서 입맛에 맞는 부분을 발췌하여 근거로 삼고 있으며, 정신과 의사가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도 특히 의학 중에서도 정신건강이라는 주관성이 강하고 폭 넓은 자율성이 인정되는 영역이다보니까 행정부에서도 뭐라고 말하지 못하고 의사의 권위와 자율성에 문제 자체를 전가해버리니까 제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만약 제가 우울증이 한창 심하고 멘탈이 불안정하던 과거 같았으면 이렇나 사실에 절망하고, 의사나 경찰을 원망하면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제가 해야 하는 일상적인 일도 포기하고 폐인처럼 방구석에 처박혀서 썩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대단히 깊은 불쾌감과 불만, 답답함을 느끼며 도저히 방법이 없고 의사가 명백한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라서 뭐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고소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할 수 있는 옵션 자체가 없다보니까 상당한 무력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이 따위 일에 인생을 더 낭비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이상하게도 갑자기 들었습니다.



 앞서 설명한 페이커의 인터뷰 등을 우연히 본 것도 은근히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만, 특히 이 과정에서 과거 기독교를 잠깐 믿었던 시기 얻은 성찰이 기억이 났습니다. 제가 특히 기독교에서도 상당히 높이 평가하며 좋은 교훈으로 이해하는 부분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절망하여 2차 피해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큰 뜻이라고 생각하는 그러니까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며 부정적인 실망감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제가 배운 교훈은, 어떠한 고통과 시련이라도 긍정적으로 잘 해석하고 위안을 얻으며 통제 불가능한 불행이라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주도하게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인 해석과 개입을 통해서 '승화'시킨다는 점입니다(고등학생 때 문학 작품에서 본 기억 이후로 굉장히 오랜만에 쓰는 용어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에 겪는 불행과 무기력감에 휩싸여서 남은 가능성을 전부 다 낭비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생각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도, 동시에 미래에 더 큰 불행이 찾아왔을 때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이 기회에 키워두자! 라는 대단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의 초점이 옮겨갔습니다.



 단지 생각이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정신이 펄쩍 들더니 무기력감에 시간을 낭비하던 순간의 제 태도가 몹시 부끄럽고, 빠르게 회복하고 극복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필요를 강하게 느꼈습니다. 마치 앞서 페이커가 멋지게 한 말처럼, 나 자신도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나 이러이러한 ㅈ같은 일을 겪고 절망을 느끼긴 하였으나 훌훌 빠르게 잘 털고 넘어가서 생산성이 높은 일에 집중하였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쯤 되니까, 온갖 수모를 당하긴 하였으나 궁극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생을 더 탄탄하게 만들고, 그간 인생을 낭비하던 헛짓거리에 대해서 성찰을 하게 만들어주고, 이후 더 큰 불행이 닥쳤을 때 적절하게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해야하는 관점에 대해서 정비를 하는 중대한 계기를 마련(?)해준 정신과 의사 교수에게 참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요.



 식칼이 정신건강에 위험을 줄 수 있다라는 미친 소리를 하는 교수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특히 정신과 의사가 그런 소리, 핑계를 대면서 진단서 발급을 거부한 행위에 대해서 딱히 제가 할 수 있는 대처 방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에피소드를 근거로 경찰이 저를 낙인을 찍고, 공문서에다가 의무기록 사본 내용을 가져와서 제가 하는 말들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행위도 제가 막을 수가 없습니다. 평소 공권력을 동원하여 의사를 괴롭히는 보건소가 이제는 거꾸로 의사의 권위에 판단을 넘겨버리고 민원을 뭉개는 행위에 대해서도 제가 딱히 따질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제 태도와 행동, 생각은 제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남들의 평가에 휘둘려서 "정말 내가 식칼을 소유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나약하고 위험한 인물인가?" 따위의 자기 의심에 빠져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갉아먹을 필요도 더더욱 없습니다. 내가 볼 때 의사나 경찰이나 보건소 공무원이 미친소리를 하고 있다고 적당히 선을 긋고 넝머가기만 하면 됩니다. 아~ 세상은 참 합리적이지 못하고 각자의 개인들이 권위와 특권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는구나! 정도의 교훈을 알았다면 나중에 제가 좀 더 조심해서 잘 넘길 준비를 하면 됩니다.



 기분이 좀 상했다? 싶으면 쇼펜하우어의 명언처럼 그냥 잠 좀 더 자고, 즐거운 일 좀 하고 기분 풀어서 원래 하던 일이나 마저 집중해서 잘 하면 됩니다. chatGPT의 조언처럼, 1년간 쌈박질을 하고도 법원에서 패소를 한다면 그냥 그 결과를 적당히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넘어가는 것이 제일 싸게 먹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집착하고 그 패소 때문에 국가가 날 기본권조차 줄 수 없는 인간이라고 분류하였구나~ 라고 스스로를 깍아내릴 필요도 없습니다(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였고, 너무나도 큰 수치라고 생각하여 행정소송을 어려운 와중에도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당한 피해는 과거에 묶인 매몰비용으로 처리해버리고, 그 매몰비용을 아까워하며 2차 매몰비용을 추가로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들이 뭔데 저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고, 저조차도 미래에 제가 무슨 일을 할 지를 모르는데 무슨 근거로 잠재적 위험 인물이라고 주장합니까.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집착하던 저의 모습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됩니다.







 상실감과 공허감, 허무감과 무기력감에 빠져서 멀쩡한 시간과 체력까지 낭비하기에는 이 세상에는 할 일이 너무나도 많고, 우리는 앞으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며 기회는 소중하면서도 희소한거구나를 이번에야 제대로 깨닫게 됩니다. 



 처음 행정소송까지 제기한 것도, 이대로 국가로부터 위험인물로 낙인을 찍혔다간 내 자존심과 자존감이 박살이 날 것 같다는 걱정에서 시작한 절박함이었으나 이제는 그냥 인생 한번 경험해보는거, 젊은 시절 남들은 경험하기 힘든 행정소송 한 번 적당히 치뤄보고 교훈이나 적당히 뽑아먹고 뱉자는 마인드로 바뀌었습니다. 확실히 소송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면서, 논리적으로 나의 주장을 잘 정제하여 판사라는 중재자에게 전달하는 일을 겪어보기만 하면서도 배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통제 불가능한 결과에 대해서 너무 애쓰고 열내지 말자, 쓸데없는 힘 빼지 말자는 생각을 합니다. 수영을 잘 하는 방법도 물 속에서 억지로 뜨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유속과 흐름을 고려하며 적당히 힘을 빼는 것처럼 말이죠.



 전쟁사든 인생사든 여러 역사를 보다보면, 정말 저건 진짜 심각한 억까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운과 불행이 겹쳐서 한 사람을 파멸시킨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것에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잘 헤쳐나간 멋진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왜 자신을 부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강하게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중언부언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과거는 통제 불가능하기에 그 과거가 그대로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만 머무르게 냅두고, 통제 가능한 영역과 엄격히 분리하여 구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구분을 현명하게 잘 하고 통제 가능한 영역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면 누구라도 멋지고 훌륭하다는 평을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간 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과거의 트라우마가 저를 먹잇감처럼 농락하는 것을 방치해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잘 대처해야 할지 잘 알겠고, damage control을 잘 해서 작은 침수나 화재가 2차 피해까지 확산하지 않도록 적절히 컨트롤하는 것이 점차 자신이 붙으며 앞으로 항상은 아니지만 멘탈 관리를 이전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겠구나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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