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요청) 왜 실력 상승 과정에서는 하락기가 찾아오는가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7408885
안녕하세요, 칼럼을 썼던 렐트리입니다.
오늘은 국어 영역의 방법론이 아니라, 제가 직접 겪었고 또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마주했을 법한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우리는 공부를 하다 보면 문득 잔인한 진실과 마주하곤 합니다. 분명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았고, 정말 이 악물고 펜을 붙잡으며 공부했는데, 왜 성적표의 숫자는 내 노력에 응답하지 않는 걸까요? 아니, 오히려 왜 뒷걸음질 치는 걸까요?
이런 상황이 올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의 공부 방법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 내 방향성이 틀렸던 거야."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로 가보자."
불안함이 밀려올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그 결론은 대개 본질적인 변화가 아닌,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떠나는 유랑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를 완벽한 공부법을 신기루처럼 쫓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방식을 의심하고 이리저리 완벽한 방법론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정작 내실을 다져야 할 시간은 더 나은 방법을 고집하고 비교하는 데 소모되곤 하죠.
노력이 배신감을 주는 그 순간,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하게도 우리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는 것이 늘어나고 시야가 넓어집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장의 구조가 보이고, 출제자의 의도가 어렴풋이 읽히기 시작하며, 적용할 수 있는 수많은 개념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분명 '어제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풍부해진 지식이 때로는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생각의 가지는 넓게 뻗어 나가고, 그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예전에는 단순하게 읽고 정답을 골랐다면, 이제는 "이 단어가 이런 뜻으로도 쓰이지 않을까?", "혹시 이 선지는 이런 함정을 판 게 아닐까?" "이런 식으로도 출제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과도한 의심과 복잡한 사고가 개입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결국, 늘어난 지식만큼 사고의 속도는 느려지고 판단은 흐릿해집니다. 시야가 넓어진 만큼 보지 않아도 될 것들까지 보게 된 셈입니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실력이 퇴보해서가 아니라, 늘어난 정보를 효율적으로 정제하고 통제하는 '체계'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를 비슷하게 보여주는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자 마이클 가자니가는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진행했습니다. 피실험자들에게 화면 위아래 중 한 곳에 무작위로 나타나는 빨간 점의 위치를 맞추게 한 것이죠. 점이 위에 나타날 확률은 80%, 아래는 20%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출현 순서만큼은 완벽하게 무작위였습니다.
이 실험을 500번 가까이 반복했을 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단순한 비둘기들은 금세 위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위쪽만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비둘기들은 확률 그대로 80%에 육박하는 적중률을 기록했죠. 하지만 인간은 달랐습니다. 인간은 나타난 점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특정한 규칙'과 '복잡한 패턴'을 찾아내려 애썼습니다. "방금 위에 세 번 떴으니 이번엔 아래일 거야"라는 식으로 자신만의 정교한 가설을 세운 것이죠.
결과는 인간의 패배였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패턴을 찾으려 고집부린 인간의 예측률은 비둘기보다 무려 13%나 낮았습니다.
사실 우리의 공부도 이 실험과 다를 바 없습니다.
머릿속에 든 것이 많아지고 시야가 넓어질수록, 우리는 과거에 미처 신경 쓰지 않았던 사소한 부분까지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문장의 본질을 꿰뚫기보다 지엽적인 단어 혹은 색다른 풀이방식 하나에 매몰되고, 출제자가 의도하지도 않은 숨겨진 패턴을 찾으려 애를 씁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점의 규칙을 찾으려다 비둘기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인간처럼, 우리 역시 알면 알수록 더 복잡하게 꼬아 생각하는 지식의 저주에 빠지는 것입니다.
결국 실력이 느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이 풍부한 정보들이, 역설적으로 정답으로 가는 길목마다 쓸모없는 사고의 노이즈를 만들어냅니다. 고민의 시간은 길어지지만 정답률은 떨어지는, 즉 노력의 배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분명히 어제보다 똑똑해졌으나, 좀더 복잡해졌기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 많이 틀리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지식의 저주'와 역설적인 성적 하락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답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합니다. 그저 묵묵히, 계속해서 연습하는 것뿐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사고의 과부하는 지식이 머릿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성장통입니다.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우선 실을 계속 뽑아내야 하듯, 우리 뇌가 넘쳐나는 정보를 정교하게 분류하고 체계화할 때까지 절대적인 연습량을 채워주어야 합니다.
결국 끊임없는 반복과 훈련을 거치다 보면, 무질서하게 날뛰던 쓸모없는 사고들은 서서히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안개 속을 걷는 것 같던 복잡한 시야는 어느 순간 다시 단순하고 명쾌하게 정돈됩니다. 복잡함을 통과한 뒤에 찾아오는 이 진정한 단순함이야말로 고수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증거입니다. 평소에는 신경쓰면서 고민하던 것들이 더 정돈된 시야로 보았을 때 아주 단순하게 풀리는 것이죠. 그러니 점수가 흔들린다고 해서 다시 방법론의 늪으로 도망치지 마십시오. 당신의 사고가 스스로 질서를 잡을 때까지, 뇌가 이 풍부한 지식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그저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의 방법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직 완숙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제발 방법론의 늪 속에서 허덕이지 마세요. 당신은 잘하고 있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새벽공부 레츠고도리 0 0
-
레전드 앰수생 2 1
씨발 6시에 일어나야하는데 ㅋㅋㅋㅋㅋ
-
잇나요? 나 도태남인데 자살해야해요 학벌을 올려야해요 학벌을 올리면 나 행복해질까요...
-
개정 시발점 들어도 되나요 0 0
고2이고 1학기 대수 확통 2학기 미적1 기하 배우는데 수학을 못하는편이라 지금은...
-
뭔가울거같은데 2 0
눈물이항상안나옴
-
반가운 사람들이...
-
자체제작 모고같은 거 보면 다 난도를 괴랄하게 내시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정보...
-
전 일찍 자려고 했어요.. 4 1
진짜에여
-
다들 수능 잘 봐서 2 1
다시 한번 행복한 겨울을 지내길 바라요 .. 항상 응원합니다 ㅎㅇㅌ
-
시간의 아버지는 평등하여 2 1
좋았던 기억도 슬펐던 기억도 모두 같은 빛깔로 덮어버린다 언젠가는 나도 분명 기억의...
-
부엉모 22번 ㅈㄴ신기해 0 1
개쩌는 문제같음 자취의 방정식을 몰라봤었구나
-
난서울대에갈수없슴... 9 1
왜냐면..... 서울대가나를싫어함
-
얌전히기다리기 3 1
-
자야겠다 2 2
머갈 리셋하고 멍하게 일과 보내고 저녁즈음부터 새벽까지 우울 흡수 방출하고 잠으로 전원끄고 무한반복
-
나 진짜로 8 1
서강대 넣고 알바트로스 탑 앞에서 기도하고왔단말야... 재학생분들이 속으로...
-
자야겟드 7 0
개망햇네 다들잙자
-
세인트 선생님은 진짜 말안됨 3 3
나한테 자연과학대 넣으라고 하셨는데 물리에서 빵나더라
-
slaemf 6 0
tkfkdgody
-
떡밥 돌릴게 5 2
이차성징 이전 이야기랑 우울밖에 없음 예전엔 진득하게 좋아하는게 있었는데 요즘은...
-
오늘 센츄 나오려나 0 0
괜히 신청한거같기도 하고
-
두달간 서강대에 미쳐살았음 7 2
농담이 아니라 학ㄱ교 끝나고 집에오면 제일먼저 하는일이 서강대 칸수확인하는거였어...
-
내가 대학에 어쩌다 왔지 0 1
남들은 즐기는 걸 못즐기고 있긴 한데
-
아직도 기억남 3 0
고속성장을 처음 돌려본 나는 정신이 다시한번 아득해졌음
-
우리는 지금 도태되고있음 6 1
누군가는 지금도 공부를 하거나 내일을 위해 잠을 자고 잇을거임
-
수능날 기억 0 1
없음.... 걍 저능저능빔 맞고 컨디션 안좋은채로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나왔다는것밖에...
-
난근데 2 0
뭔가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서 수능대박을내고 설컴에갈수있을줄알았음
-
존댓말하기 주 있어설 그때 존댓말 안쓰면 막 존댓말기간 1주씩 늘어나기 그런거...
-
기특한 아들인 줄 아시지만 사실 피규어를 들키기 싫어서 직접 청소할 뿐입니다
-
국어치고는 3 1
아 뭔가 될거같았는데 수학 14번 안풀린는 순간부터 정신이 아득해졌음
-
수능날 7 0
채점하기 전까지 전과목 5개 밑으로 틀린 줄 알았음
-
ㅇㅂㄱ 0 0
-
약 먹으니까 여친 사라졌네 2 2
미쿠 피규어 어디감
-
수능날 기억 4 1
수능장에서 나오자마자 엄마한테 한번더하겠다했음
-
난 피구는 진짜 goat임 5 0
학교짱이였음
-
태권도 좋은 기억은 4 0
주럼기 같은 거 다하면 피구시켜줫는데 그 탱탱볼로 하는 피구가 개재밋엇음 ㅋㅋ...
-
이런 글 있었었는데 ㅋ ㅋ ㅋ ㅋ
-
아진짜자야겟다 1 0
몸이버그를일으키는듯 자잘요 여러분들행복하시고 오늘도화이팅
-
현역 실모 푸는거 어떤가용3모전에 더프 서프 푸는거 ㄱㅊ나요?글구 현역이여서 잘...
-
내가 도태된게 아니라 5 0
주변을 도태시킨거임 아무튼 그런거임 ㅇㅇ
-
그땐 어릴 때라 예쁨받아서 좋은 기억뿐이네요 뭐하고 계시려나요
-
태권도 그 국기원가면 0 0
겨울에 도복입고 진짜 벌벌떨면서 서있었는데
-
ㄹㅇ
-
내 오랜 고민이다.... 얼핏 보면 또 공식적 사회화 기관이 될 수 있을 것 같긴...
-
지금이순간에도 6 0
나는실시간으로도태되고있는거임
-
개인적인 소원 1 0
미국-밸리 오브 파이어 도로 독일-포르쉐 박물관 구경하기 일본-세븐스타/피스/...
-
중학교때 1 2
우리학교에 일본인 유학생 친구가 많이 있었는데 왠진 모름 그냥 그런 학교였음...
-
합기도, 태권도 특 3 0
잘못하면 발바닥 맞음
-
우선 저는 수시 최저러이고 수능에서 제대로 미끄러진 탓에 6지망이었던 학과에...
-
가끔 커뮤니티에서 학창 시절 얘기들을 듣다 보면 5 1
이게 어디 구룡성채나 할렘가에서 학교생활을 하셨나 고민되는 게 좀 많습니다
-
내 초딩때 ㄹㅈㄷ설 4 0
친구랑 블록 가지고놀다 싸우고 내가 걔 머리 때렸는데 내 손에금이가서 붕대 3달인가 했음




킵고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