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오늘의 상식: 사라예보 사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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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총격 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은 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 사라예보 사건은 우연에 우연에 다른 우연이 겹치면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라예보 사건은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에 방문했을 때 나란히 암살당한 사건이다
암살의 표면적인 이유는 세르비아의 영토여야 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강탈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압제자를 처단한다는 것
우선 이 방문 일자부터가 정말 예술이었는데
6월 28일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원래 점유하던 나라인 세르비아의 역사적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1389년 1차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 왕국이 오스만 제국에게 패배하여 멸망한 날이자
1913년 제2차 발칸 전쟁 때는 역으로 오스만 제국에 승리를 거두면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상징이 된 날이다
어찌 보면 전승기념일 1주년 비슷한 날이기도 한 셈
하필 이 6월 28일은 결혼에 우여곡절이 많았고 또 서로 많이 사랑했던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다
그 결과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의 동반 행차, 그리고 민족주의적 기념일을 노린 '청년 보스니아' 단체의 암살 기도는 예정대로 수순을 밟았고
1914년 6월 28일 아침이 밝는다
사라예보는 자신들 본국의 황태자인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를 영접하기 위해 분주했다
곳곳에 행사 분위기가 만연했고 보스니아 총독이 직접 나와 대공 부부를 호종하기로 되어 있었다
9시 20분 특별열차를 타고 사라예보 역에 정차한 대공 부부는 보스니아 총독과 함께 뚜껑 없이 사방이 트인 의전용 차량에 올라탔고
길가에 늘어선 '환영 인파' 한가운데를 지나며 자동차는 목적지인 오스트리아군 군사 훈련지로 향한다
원래라면 앞서 있던 두 단원이 먼저 대공 부부를 쏘아야만 했으나 두 사람 모두 타이밍을 놓쳐 실패, 일단은 대공 부부를 보내주게 된다
하지만 아직은 끝난 게 아니었으니 당일 10시 10분 경 네델코 차브리노비치가 대공 부부의 차량에 수류탄을 던지는 데 성공했고
...놀랍게도 에임이 안 맞아 차량에 튕겨 나가 버린다!
그 결과 차에 탑승한 대공 부부와 보스니아 총독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채로 애꿎은 수행원 2명과 군중 10명만 상처를 입는다
독약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암살범은 삼킨 독약이 불량이라 얄짤없이 체포됐고, 현장은 난리가 났다
황태자가 암살당할 뻔했다는 급전을 보내기 위해 기자들은 분주해지고 군중은 경악에 빠지고 경찰들은 패닉에 빠지고
개판도 이런 개판이 따로 없다
당연히 암살이 한번 실패하고 난리가 났으니 암살단원들도 현장에서 급히 철수했고
가브릴로 프린치프 또한 단원들과 함께 다음을 기약하며 자신이 자주 가던 모리츠 실러(Moritz Schiller) 카페에 간다
문제는 암살 미수 이후 대공 부부의 행적이다
사라예보는 황태자를 수류탄으로 환영하냐며 사라예보 시장을 불러 신나게 조인트를 깐 페르디난트 대공은
보스니아 총독의 만류를 무릅쓰고 자신의 암살 미수로 다친 수행원들을 위문차 방문하기로 결심한다
방문을 말릴 수 없다면 차라리 안전한 길로 가기라도 하자고 생각한 총독은 대공에게 '안전한 지름길이 있으니 거기로 가면 괜찮을 거다'라고 말했고
그렇게 그들은 수행원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향한다
그런데 여기서 충격 반전
운전수는 보스니아 총독에게 원래 가야 할 길 말고 지름길로 가라는 말을 미처 듣지 못했고 원래 예정되어 있던 바로 그 길로 가 버린다
지름길과 원래 예정된 길이 분기되는 바로 그 지점에 위치한 모리츠 실러 카페에서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저 멀리서 황태자 부부가 탄 차량이 이쪽으로 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 분명히 황태자였다
인파도 줄었겠다 차량 속도도 그렇게 빠르지 않겠다
설상가상으로 보스니아 총독이 운전수에게 "이봐, 길을 잘못 들었어!"라고 말해 차는 후진을 위해 정차한 상태였다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소매에서 역사를 바꿀 권총 한 자루를 꺼냈고
페르디난트 대공과 보스니아 총독에게 각각 한 발씩 총탄을 격발한다
첫 발은 페르디난트 대공의 경동맥을 관통, 두 번째 발은 대공을 감싸려던 조피 대공비의 복부를 관통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 기도를 막기 위해 성능좋은 방탄복(이미 스페인 국왕의 목숨을 살린 적 있는)을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탄복이 막아주는 복부가 아니라 목에 치명상을 입으면서 아무 의미가 없게 됐다
또 한편으로 방탄복을 안 입은 조피 대공비는 복부에 치명상을 입고 말았으니
이것이 역사의 우연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조피 대공비는 심각한 내출혈로 인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전 차에서 즉사했으며
페르디난트 대공 또한 "조피! 조피! 죽지 마시오! 아이들을 위해 살아 주시오!"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기고
몇 분 뒤 영면에 든다
이후 역사의 전개는 잘 알려진 바와 같다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사라예보 총격 사건이 사실 세르비아 군부를 장악한 극단적 민족주의 단체 '검은 손'의 후원을 받았음이 명백해졌고
문답무용,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정부는 세르비아 왕국 정부에 최후통첩을 타전한다
세르비아 왕국 정부가 최후통첩을 거부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고
세르비아를 돕기 위해 러시아 제국이 총동원령을 선포, 그 모습에 독일 제국도 마찬가지로 총동원령을 선포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도 전쟁이 선포된다
독일 제국은 곧이어 러시아 제국의 동맹이었던 프랑스 공화국에 최후통첩을 타전했고
프랑스 공화국 또한 독일 제국과의 전쟁을 결의하면서 독일-프랑스 사이에도 전쟁이 성립
독일이 프랑스를 단기에 제압하고자 벨기에를 침공했고 이에 반발한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
이 모든 게 암살 직후인 6월 28일부터 8월 4일까지 일어난 모든 일이다
결과는 알다시피 4~5년 간의 지지부진한 전쟁 끝에 수백만 명의 죽음과 협상국의 상처뿐인 승리
세르비아 민족주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총탄 두 발이 만들어낸 나비효과다
뭐 사실 화약고 근처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데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만은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역사적 평가는 발칸 반도의 정세에 따라 계속해서 뒤바뀐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그를 '오스트리아 압제에 반대한 영웅'으로 포장하다가도
유고슬라비아 붕괴 이후에는 그를 '세르비아 민족주의 따위를 신봉하는 미치광이'로 격하하기도 했다
그저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그의 소원대로 보스니아가 세르비아의 영토가 되는 일은 없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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