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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Break [1421309] · MS 2025 (수정됨) · 쪽지

2026-01-09 22: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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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사 교수) 오르비의 기원에 대해.araboza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6952363

안녕하세요, 오늘은 또 다시 고대 로마와 관련된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고대 로마에도 오르비와 비슷한 성격의 사교 모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오르비의 어원이 로마의 공용어 역할을 했던 '오르비스 옵티무스' 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흥미로운 연결고리입니다. 


고대 로마인들 역시 일류 지식인들 및 원로원들, 특히 법 관련 지식을 갖춘 이들이 모여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을 다지는 정기적 모임을 가졌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원전 1세기경 시작된 응가나스 산다나스 (Vnganas Sandanas) 였습니다. 


당대 로마는 지중해 패권을 거머쥠과 동시에 정치적 혼란까지 겪고 있어, 응가나스 산다나스는 큰 권위를 가지는 집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들은 단순한 지적 사교 모임을 넘어선,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는 자리의 조성을 지향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로 로마의 공중 화장실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이것은 그들에게 큰 의의를 선사했습니다.


먼저, 그들은 새로운 회원이 가입하면 서로의 대변을 한 스푼씩 떠서 맛을 보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대변의 맛과 향을 통해 그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지식의 담대함을 측량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의식이었습니다.


대변을 먹다가 구토를 하거나, 사망한 자는 불순하거나 배움이 부족한 자로 취급되어 즉시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단순한 담론 집합체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행동에 나서는 단체이기도 했습니다.


가령 아우구스투스가 집권할 당시, 이들은 반대파를 탄압하기 위해 해당 반대파들의 거처 앞에 똥이나 오줌을 모아서 던지는 행동을 벌였습니다.  


5현제 시대에는 시민들의 지적 수준 향상을 돕고자 자신들의 대변을 담아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 역시 존재합니다.





그러나, 3세기에 접어들며 로마의 국력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응가누스 산다나스 역시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국 4분할 칙령 공포 이듬해 반포된 '토일레투스 칙령' 에 의해 공중 화장실에서의 집단 회의가 전면 금지됨에 따라, 단체는 사실상 강제 해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여러 후신들이 미약하게나마 명맥을 이어갔지만, 최종적으로 476년 서로마가 멸망하며 응가누스 산다나스는 최후를 맞게 됩니다.





비록 역사 속 단체로 남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특히 지식인과 같은 엘리트 계층이 자신의 지혜와 대변을 서민층과 나누고자 노력한 점은 양분화가 극심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큰 본보기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강의는 짧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are-메롱!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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