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코프스키 [1332076] · MS 2024 (수정됨) · 쪽지

2025-11-30 23: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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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트의 LP 논리학 정확한 해설(18 9평, 양자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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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논리에서는 ‘참인 동시에 거짓’인 진리치를 지닌 문장 을 다룰 수 없기 때문에 프리스트는 그것도 다룰 수 있는 비 고전 논리 중 하나인 LP*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LP에서는 직관적으로 호소력 있는 몇몇 추론 규칙이 성립하지 않는다. 전건 긍정 규칙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고전 논리에서는 전건 긍정 규칙이 성립한다. 이는 ㉡ “P이면 Q이다.”라는 조건 문과 그것의 전건인 P가 ‘참’이라면 그것의 후건인 Q도 반드 시 ‘참’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LP에서 전건 긍정 규칙이 성립하려면, 조건문과 그것의 전건인 P가 모두 ‘참’ 또는 ‘참인 동시에 거짓’이라면 그것의 후건인 Q도 반드시 ‘참’ 또는 ‘참인 동시에 거짓’이어야 한다. 그러나 LP에서 조건문의 전건은 ‘참인 동시에 거짓’이고 후건은 ‘거짓’인 경우, 조건문과 전건은 모두 ‘참인 동시에 거짓’이지만 후건은 ‘거짓’이 된다. 비록 전건 긍정 규칙이 성립하지는 않지만, LP는 고전 논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들에 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의의가 있다.> 18 9평 27~32번 문제.

* LP : ‘역설의 논리(Logic of Paradox)’의 약자  


혹시 위 지문의 부분을 한 번에 정확히 이해하신 분이 계실까요? 

한동안 저도 잘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최근에 Priest, Graham. "The logic of paradox." Journal of Philosophical logic (1979): 219-241.를 읽어보고 나서야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위 밑줄 친 부분에서 조건문이 '참인 동시에 거짓'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그 이유를 추론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사실 핵심적인 배경지식이 생략되어 있어서 알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지문에서는 그냥 그렇다고 하니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정확한 독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혹시, "전건과 후건 중 하나라도 '참이면서 거짓'이라면, 전체 조건문도 '참이면서 거짓'이 되겠지"라고 짐작하셨다면 이는 (문제 풀이에는 지장이 없겠으나) 오류입니다. 아래에서 구체적인 반례를 제시하겠습니다.


우선 위 지문에서 반드시 필요한데 누락된 배경지식은 바로,  "P이면 Q다"라는 조건문은, "P가 거짓이거나, Q가 사실이다"로 정의된다는 상식적인 것입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LP라는 당연하지 않은 관점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식 중 어디까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한정해줬어야 하는데, 위 제시문에서는 해당 설명을 생략했습니다. 아무튼 프리스트는 실제로 1979년 논문에서, 아래와 같이 서술했습니다(위 논문 중 227쪽). 아래에서 p는 참이면서 거짓을 의미하는데 전건을 뜻하는 P와 혼동될 수 있으므로 B 정도로 바꾸어서 생각하는 게 낫겠습니다.

 그리고 제시문에도 나와있듯이, 참이면서 거짓인 대표적인 사례는 앞에 나온 거짓말쟁이 문장입니다(위 논문 중 220쪽). " 'This sentence is false’ and ‘The Russell set is a member of itself’ are paradigm examples of such paradoxical sentences." (번역: "'이 문장은 거짓이다'와 '러셀 집합은 자기 자신의 원소이다'는 그러한 역설적 문장[참이면서 거짓]의 전형적인 예시들이다.")


진리표(왼쪽 아래) 읽는 법: P->Q의 구조 하에서, 전건의 진리치가 세로 범례의 t, p(b), f이며, 후건의 진리치가 가로 범례의 t, p, f인 경우, 해당 조건문의 진리치는 해당 교점의 진리표상 값에 해당합니다.


이제 경우를 나누어 생각해보겠습니다.

(1) P는 참인데, Q만 참이면서 거짓(B)인 사례를 생각해보면. “세종대왕이 조선인이면, Q는 거짓이다”, 혹은 "세종대왕이 조선인이면, 러셀 집합은 자기 자신의 원소이다"의 경우, 굳이 당연한 전제를 덧붙이지 않아도 이미 후건이 '참이면서 거짓'이므로 전체 조건문 역시 '참이면서 거짓'이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2) 반대로 P는 명백한 거짓인데, Q만 참이면서 거짓(B)인 경우, 즉 “세종대왕이 미국인이면, Q는 거짓이다”의 경우, 소위 공허한 참의 원리에 의해 Q의 진리치와 무관하게 조건문은 항상 참이 됩니다. 이는 위 A->B는 A가 거짓이거나 B가 참이라는 말과 같다는 정의(LP에서도 수용됨)에 따라 도출됩니다. 따라서 전건과 후건 중 하나가 참이면서 거짓이면 반드시 조건문도 참이면서 거짓이라는 짐작은 위와 같은 반례가 있으므로 틀린 것입니다. 또다른 반례는 (3) 전건이 B이고, 후건이 T인 경우입니다(P가 거짓이면, 세종대왕은 조선인이다). 이 경우 진리치는 T입니다. 어차피 참인 후건에 대해서 전건이 참이면서 거짓이더라도 달라질 이유가 없습니다.

제시문에 나온 사례(전건은 B, 후건은 F)는, (4) "P가 거짓이면, 세종대왕은 미국인이다"로 상정할 수 있고, 이 경우 전체 조건문은 참과 거짓 중 하나로 분류되지 않으며(참이라고 하려면 전건이 F이거나, 전건이 T이면서 후건이 T이어야 하고, 전체 조건문을 거짓이라고 하려면 전건이 T, 후건이 F여야 함), 전체 조건문은 참이면서 거짓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5) P가 참이면서 거짓이고, Q도 참이면서 거짓인 경우는, "P가 거짓이면, Q가 거짓이다"로 상정되고, 이 경우에도 전체 조건문은 참이면서 거짓이 됩니다. 위의 5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전건과 후건에 참이나 거짓만 들어 있는 경우로서 고전 논리학대로 처리하면 됩니다. 복잡하게 설명했는데, 결국 9가지 가능한 경우(B가 섞인 5가지 + T나 F로만 구성된 4가지)를 요약하면 위 캡처에서 왼쪽 진리표라고 보면 됩니다.


제시문의 저자는 수험생이 LP에 대한 설명에 따라 위 진리표를 떠올리기를 바랐던 거 같고, 하나씩 뜯어보며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 도출이 불가능한 건 아닌 듯 합니다. 다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조건문의 정의가 LP에서도 동일하게 통용된다는 핵심 정보가 생략된 이상 이해하기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문제는 위 부분을 이해 못해도 풀 수 있도록 출제되었습니다. 어떤 해설들에서는 조건문의 전건이나 후건에 참이면서 거짓이 들어가면 당연히 전체 조건문도 참이면서 거짓이 된다는 식으로 틀리게 설명하는 것 같은데 이는 프리스트의 설명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접한 해설에서는 문제에 나온 (4)사례 외에 (2)나 (3) 사례[다소 반직관적일 수 있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간략히 연구해 보았습니다. 딱히 유용한 정보는 아닐 수 있겠으나 아무튼 원문에는 그렇게 되어 있으니 정확히 알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이들 중 4번이 문제로 나온 이유를 생각해보면, 진리표의 첫 행에 t b f가 아래 행에서 t b b로 바뀐 것에 주목해 보시면 됩니다. t b와 t b는 동일하므로 전건긍정의 반례가 되지 못합니다. f가 아니고 b로 바뀐 부분에서만 반례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한가지 추가: LP에서는 동어반복이라고 해서 반드시 참이 되지는 않습니다. '러셀 집합은 자기 자신의 원소이다'가 참이라면 '러셀 집합은 자기 자신의 원소이다'가 참이고 반대도 같다 는 쌍조건문은 순전한 참은 아니고 참이면서 거짓입니다. 양자컴퓨터에 비유해보면 앞에서는 참 뒤에서는 거짓이 되는 경우 때문에 그렇다고 직관적으로 추측해볼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러셀 집합은 자기 자신의 원소이거나 원소가 아니다 라는 문장도 참이면서 거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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