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17번이 무오류인 이유 (국어의기술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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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
철학에서 특정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인격’, 그중 ‘나’를 ‘자아’라고한다. 인격의 동일성은 모든 생각의 기반이다. 우리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동일한 인격이기에 과거에 내가 한 약속을 현재의 내가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다. 칸트 이전까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주관’은 인식의 주체를 가리키며, ‘인식’은 ‘앎’을 말한다.
17.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갑 :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경우, 본래의 자신과 재현된 의식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야.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신체 전체의 기여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지. 즉,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인격일 수 없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고, 살아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이 문항의 정답이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국어의기술이라는 유튜브인데, 그 영상의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튜브 링크 : 2026학년도 수능 국어 17번: 정답없음
이제 해당 영상의 유튜버가 주장하는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3번 선지에서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그냥 <보기>에 대놓고 적혀 있으므로 논란의 여지가 없이 적절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3번 선지에서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이라고 말한 부분입니다. 최초로 문항 결함을 주장한 국어의기술 유튜브에서는 '수적 동일성'을 가져와서 설명하지만, 그건 고3들에게 지나친 설명이구요.
쉽게 말하자면 제시문은 '단일한 주관'이 인격의 동일성의 조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때의 조건은 필요조건입니다.) 제시문에 대놓고 적혀있죠 이건. 그런데 <보기>의 갑이 제안하는 상황은 '단일한 주관'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원래의 자신이 있고, 또 프로그램이 있기에, 주관이 둘이죠.
따라서 제시문 1문단의 입장 즉 칸트 이전의 유력한 견해(->사실상 데카르트를 가리킴)는, 갑의 입장(=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이 옳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갑이 말한 '신체'는 필요없고, 대신 '단일한 주관'이란 조건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말하겠죠. 도식화하자면
<보기>의 갑 : 생각하는 나의 (시간적) 지속 + 살아있는 신체 -> 인격의 동일성
1문단의 데카르트 : 생각하는 나의 (시간적) 지속 + 단일한 주관 -> 인격의 동일성
따라서 이유는 좀 다르지만, 어쨌든 데카르트와 갑의 결론(=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결론)은 동일합니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갑의 결론 자체는 옳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3번 선지는 적절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평가원은 3번 선지가 정답이라고(=3번 선지가 적절하다고) 발표하였으므로, 이 문항엔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유튜브에서 말한 문제 제기의 핵심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유튜버의 결론은 잘못입니다. 평가원 측에서 이 견해의 결론을 반박한다면, 3번 선지에서 '갑의 입장'이라고 말한 부분에 주목할 것입니다. 요컨대 평가원은 아마도 '갑의 입장'이라는 것은, 단순히 갑의 결론 뿐만 아니라, 갑이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그 논리적 과정 모두를 포괄한다고 답변할 것입니다. 데카르트와 갑은 단순하게 결론만 같을 따름이지, 그 까닭이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데카르트가 갑의 입장이 옳다고 하지는 않겠죠. 그리고 일상적 관점에서는 이와 같은 평가원의 예상 답변 논리가 자연스럽긴 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 문항을 푸는데, 논리적 과정은 틀렸지만 정답만 맞힌 경우를 두고, "네가 옳다."라고 할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예시는 지금 17번 문항의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와 갑의 상상 토론에서, 그들이 "이 객관식 문항의 정답이 몇 번이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상상 토론을 하는 상황이고 따라서 단순히 결론만 일치한다고 그 토론에서 "갑이 옳다."라고 데카르트가 말할 것이라고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해당 유튜버의 핵심 뼈대가 되는 중간 과정의 논리 자체는, 저는 지금도 옳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 논리를 적용하여 17번 문항의 3번 선지를 해석하더라도 문항에는 아무런 오류가 없다고 평가원이 답변할 것이고, 이것이 제 결론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저는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하였는데(=이 논의는 제 학부 전공인데), 처음에는 해당 유튜버의 결론까지도 맞다고(=이 문항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약간 시간을 두고 다시 생각한 결과, 입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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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을 읽다보니 의견을 여쭙고 싶은게 있어 글 남깁니다. 저는 칸트 이전까지의 유력한 견해(앞으로 a라고 하겠습니다)가 '단일한 주관'을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 라는 명제의 필요조건으로 제시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a가 "복수의 주관일 경우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기보단 애초에 복수의 주관일 경우 자체를 상정하지 않았다 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은가하는 의문이 듭니다. 바로 뒷 문단인 2문단의 첫 번째 문장에서 칸트가 이에 반박하며 '자기의식'을 인격의 동일성의 충분조건이라 제시한 것처럼요. 이에 대해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글쓰신분도 논리적으로 데카르트와 갑의 결론은 같다고 말씀하시네요. 수능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이유가 다른 경우에는 그 이유를 써 주지(---을 통해 이런 결론에 도달), 마음대로 유추할 수 없습니다. 내신도 아니고 수능에서 수험생은 시험치는 그 순간에 이 선지에서 드러난 그대로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결론이 같다면 이 선지는 오류가 맞습니다. 님처럼 약간 시간을 두고 생각한 결과...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거죠. 게다가 데카르트와 칸트의 대화를 보기로 주고 데카르트의 의도를 이해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반인이 이 글을 읽고 이해한 반응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선지 결론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