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너 자신을 알라 1 : 노베 vs 유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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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묻는다.
“너는 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니?”
나는 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너는 노베니, 유베니?”
학생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선생님, 저는 5등급이라 노베입니다. ㅠㅠ”
“선생님, 저는 2등급입니다. 쫌 쳐요 ㅎㅎ. 유베인 것 같습니다.”
아니. 질문을 다시 봐라. 나는 ‘등급’을 물은 게 아니다. 분명, 등급은 노베, 유베를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지표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100% 유베, 노베를 판별하지는 못한다.
“선생님, 저는 IQ가 89입니다… 노베입니다.ㅠㅠ”
“선생님, 저는 IQ가 132입니다. 이 정도면 유베인가요?
아니. 질문을 다시 봐라. 나는 ‘지능’을 물은 것이 아니다. 분명, 지능이 높으면 공부를 ‘쉽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도 자부할 수 있다. 누구보다 나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껴왔다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내 하찮은 능력을 경험해왔다. 하지만 수능 점수는 나도 누구에게 지지 않았다.
“선생님… 그만 대답해 주시죠… 저 현기증 납니다.”
유베와 노베인 학생들에게서 드러나는 가장 큰 차이는 ‘일관성’에 있다.
유베인 학생은, 지문을 읽는데 있어서, 그리고 정답을 고르는 데 있어서, 명확한 기준이 있으며,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지문과, 같은 문제를 한 달 뒤에, 두 달 뒤에, 세 달 뒤에 풀려도, 심지어 일년 뒤에 풀리더라도 항상 비슷하게 얘기한다.
반면, 노베인 학생은, 항상 감으로 고른다. 이유도 설명할 수 없다. 그냥 그런 것 같다고만 얘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물을 때 마다 항상 대답이 들쭉날쭉하다.
한 문장 안에 너무 많은 의미를 담아 놨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쪼개서 설명해주겠다.
우선, '지문 독해'의 '일관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유베 학생들은 지문을 잘 읽는다. 잘 읽는다는 것이 뭐냐? 글쓴이의 의도에 맞춰서 읽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2026학년도 6월
인간은 정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정보는 인간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인간중심주의와 달리, 플로리디의 정보 철학은 인간을 정보적 존재의 하나로 간주한다. 인간을 포함한 세계 내 모든 존재는 속성과 행위가 정보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인간중심주의와 플로리디의 차이점을 논하고 있다. 유베인 학생들은 이를 파악하고, 차이점을 명확하게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노베인 학생들은 그냥 읽는다. 진짜 그냥 읽는다. 아무런 의미를 가져가지 못한다.
2026학년도 6월
[1문단] 재산 관계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므로 계약으로 권리와 의무가 인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사회· 경제적 조건을 달리하는 당사자들 간에서는, 약자 보호를 위해 법률로 그 내용이 정해지는 경우가 있고 이때는 이를 계약으로 변경할 수 없다.
[2문단] 임대차의 경우 그 내용은 계약으로 정해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임대차의 목적물인 임차물이 생활의 근거인 주택이나 생업의 근거인 상가이면 임차인 보호라는 과제는 계약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 그래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에는 계약보다 우선 적용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중략)
[3문단] 주택이나 상가 임대차에서도 법이 아니라 계약으로 재산 관계가 정해지는 경우가 있다. (중략)
⇒ 이 글은 첫 문단에서 ‘계약’이 우선인지, ‘법률’이 우선인지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2문단의 경우 ‘법률>계약’인 경우를 말하고 있으며, 3문단의 경우에는 ‘계약>법률’인 경우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2문단과 3문단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봐야할 것이다. 유베인 학생들은 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맞춰서 읽는다. 하지만 노베인 학생들은 2문단이 법률이 우선하는 것인지, 3문단이 계약이 우선하는 것인지 조차도 모르고 그냥 읽는다. 그러니 아무런 의미도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문을 잘 읽는다하더라도, 노베 학생들은 여전히 선지에서 나가 떨어진다.
바로 '선지'의 ‘판단 기준’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평가원이 쓴 문장들을 정답으로 인정하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 ‘판단 기준’은 어디서 오는가?
첫 번째는 문장의 의도를 정확히 해석하는 것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의 수도는 서울이다.”라는 문장이 [지문]에 있다고 해보자.
유베인 학생들은
“서울은 한국의 수도이다.”
“한국의 수도는 부산이다.”
“부산은 한국의 수도이다.”의 세 [선지]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모두 한국의 수도가 어디인지를 묻는 문장이다.
하지만, 노베인 학생들은 이들을 개별적인 의미들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눈 앞에 같은 것이 있어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바하지 말라고?
다음의 예시를 보자.
[지문] 법 규범이 삶의 세계에 점점 더 깊숙이 개입하게 되어
[선지] 이전에는 법적 규제를 통해 해결하지 않던 문제들까지도 법의 해결 과제가 된다.
⇒ 이 둘은 완벽하게 같은 말이다. 하지만 16%의 학생이 이 선지를 해결하지 못했다.
[지문] 산화 극에서는 공급된 수소가 수소 이온과 전자로 분해되는 반응이 일어난다. 수소 이온은 전해질을 통해, 전자는 도선을 통해 환원 극으로 이동하면서 전기를 생산한다.
[선지] 수소 연료 전지에서 수소 이온은 전자와 마찬가지로 도선을 통해 이동한다.
⇒ 지문에 따르면, 이온은 전해질, 전자는 도선을 따라 이동한다. 이온과 전자는 다른 이동 경로를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선지를 틀린 선지로 인식하지 못했다.
[지문] 사자봉 높은 돌이 용소(龍沼)를 굽어보되
바위 중턱 파인 곳에 돌 하나 끼어 있다
중의 말이 황당하여 대강 걸러 들으니
저 바위의 사자가 화룡더러 말하기를
이내 몸 육중하여 무너져 내려가면
너의 깊은 못이 터전도 없을 테니
네가 재주 많다 하니 내 발 조금 고여 다오
화룡이 옳게 여겨 건너편 산에 올라
저 돌을 빼다가 이 바위 괴었다 하네
[선지] 화자는 ‘중’에게 전해 들은 말을 통해 ‘사자봉’ 중턱 파인 곳의 위치가 사자 형상의 발밑임을 제시하고 있다.
⇒ 화자는 중의 말을 들었다.
중: “ 저 바위의 저 사자 모양 보이시죠? 저게 사자봉이에요. 저 녀석이 저~ 쪽에 화룡 보이시죠? 쟤한테 부탁하기를, 건너편 산에 저 돌 빼서 발에 고여달라고 했다네요. 그래서 저기 사자봉 중턱 파인 곳의 위치가 딱 사자 형상의 발밑으로 된 거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지문에서 나온 내용을 이미지로 상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11%의 학생이 이 선지를 고르고 장렬히 전사했다.
[지문] 거리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이 좋다. 넓고 양편에 소나무가 선 길은 송전 말고도 얼마든지 있을 게다. 그러나 이 길처럼 정하고 고운 길을 나는 일찍이 걸어 본 적이 없다. 혼례식장에서 이제 막 나오는 신랑 신부나 걸었으면 싶은 그런 길이다. 이 길이 끝나면 천공(天空), 해활(海闊), 거기엔 떡 뻗치고 선 것이 하나 있으니 초현실파의 그림처럼 의외의 것이되 배경에 조화되어 버린 철봉이 하나, 나는 뛰어가 매달리어 턱걸이를 겨우 네 번을 하다.
[선지] ‘초현실파의 그림’ 같은 공간에서 ‘뛰어가 매달리’는 행동을 하면서, ‘혼례식장’을 걷는 ‘신랑 신부’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 ‘바다로 나가는 길’에서는 ‘혼례식장’에서의 ‘신랑 신부’를 상상했고, 한편, ‘이 길이 끝나는 곳’에서는 ‘초현실파의 그림’같은 곳에서 뛰어가 매달리는 행동을 한다. 즉, 다른 장소에서 다른 행동을 한 것이다. 하지만, 21% 학생들이 이 선지를 고르고 장렬히 전사했다.
두 번째는 어휘에서 나온다.
유베인 학생은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노베인 학생은 단어의 의미를 ‘대충’ 알고 있다. 사실 자신이 알고 있는지, 모르는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보자.
경외감이 무엇인가? 몰랐는가? 그렇다면 너는 노베다. 이제 내가 알려주겠다.
경외감 (敬畏感): 어떤 대상에 대해 존경하면서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는 감정.
이렇게만 보면, 두려움이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면 예문을 한번 보자.
『 박완서, 그 가을의 사흘 동안』: 태아가 눈을 반짝 떴다. 이미 태아가 아니라 아기였다. 일순 나는 나를 관통하는 경외감에 소스라치면서 한 번만 더 힘을 주라고 힘차게 명령했다.⇒예문까지 보니, 경외감이라는 감정은 숭고한 대상이나 초월적인 존재 앞에서 느끼는 감정으로, 단순한 두려움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다. 즉, 너무 멋있거나 대단한 대상 앞에서의 존경심에 대한 표현, 예찬에 가까운 태도인 것이다.
세 번째는 경험에서 나온다.
유베인 학생은 정확한 개념을 ‘반복 경험’을 통해 학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답으로 인정되고 안되는 그 선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노베인 학생은 항상 ‘대충’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선이 굉장히 애매한 것이다.
이 세 경우에서 경외감을 판단해보라.
2010학년도 6월
이 경우는 경외감으로 인정되었다.
24학년도 수능
이 경우는 경외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경외감이라는 감정에 대한 선이 어느 정도 생겼는가?
경외감이란, 1)어떤 대상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감탄하며, 2)나와 대상 간의 어떤 넘을 수 없는 차이를 느끼면 성립하는 것이다.
자 이제 판단해볼까?
2026학년도 6월 모의고사
논쟁이 꽤나 있었다. 확실히 2)‘나와 대상 간의 어떤 넘을 수 없는 차이’가 눈에 학연히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 안에서 백미러를 통해 꽃들을 바라보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 꽃들을 보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늘을 온통 품고 있는 아주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예찬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저 세상의 아름다움까지도 온통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우도 앞선 경험을 통해서 경외감이라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좋다. 그렇다면, 정리해보자.
유베와 노베를 가르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유베 | 노베 |
일관성O | 일관성X |
지문 이해O (글쓴이의 의도O) | 지문 이해X (글쓴이의 의도X) |
선지 판단 기준O (문장 의도 O 어휘 O 경험 O) | 선지 판단 기준X (문장 의도 X 어휘 X 경험 X) |
너는 유베인가 노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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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보면 이게 정배일듯
공감됩니다ㅠㅠㅠ
앞으로도 좋은 칼럼으로 찾아 뵙겠습니다ㅎㅎ. 이후에 해결책도 같이 드릴게요.
반갑습니다 선생님
잘 볼게요 !

난 노베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