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ball_archive [1347482] · MS 2024 (수정됨) · 쪽지

2025-04-21 1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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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윤 윤사 재밌다고 철학과 오는 것이 맞는가 - 눈덩이의 중간고사 준비 공리주의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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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의 뇌피셜과 드립이 난무하는 글입니다. 설명을 위해서라면 교육 과정의 선타기가 아니라 선에서 멀리뛰기를 시전하는 필자이니 이 점 유의 바랍니다. 참고로 오늘은 교육 과정도 아닙니다 껄껄. 반박시 여러분의 의견이 맞습니다.


*필자가 재미있는 글을 추구하다 보니 맞춤법 실수가 잦습니다. 사실 그냥 능지가 모자란 것이니 넓은 아량을 베풀어 양해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예 여러분 반갑습니다. 눈덩이 아카이브의 눈덩이입니다. 생존 신고하러 왔습니다.




자퇴 마렵다




 필자 역시 중간 고사 기간에 맞게 고통을 받는 중입니다. 미리 말하는데 오늘 글은 철학과에서 무얼 배우는지 체험을 할 수 있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애들은 가라 이말이야) 오늘 그중 첫 번째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를 다뤄볼 예정입니다. 공리주의를 우리는 뭐 있나 싶은 사상을 보지만 이거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와 센즈)




 여러번 말 하지만 윤리학이라는 학문은 결국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학문입니다. 공리주의의 목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고 결국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살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이번 시험의 주인공은 밀이지만 밀의 이해를 위해 벤담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벤담의 경우 당시의 법/정치/경제적 제도는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장애물에 가깝기 때문에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 하며 제도의 방향성을 만들기 위해 ‘도덕과 입법의 원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예상하셨겠지만 공리주의입니다.




 공리주의는 크게 2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하나는 결과가 좋으면 그게 좋은것이라고 보는 결과주의이고 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것이라는 의미의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를 의미합니다. 내재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결국 쾌락입니다.




 또한 벤담은 홉스의 입장을 일부 계승하여 인간은 이기적 동기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심리적 이기주의를 주장합니다. 참고로 밀은 초기에 심리적 이기주의를 받아들이지만 나중에는 포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험적 지식을 부정하는 관념연합주의를 인정합니다.





<벤담의 입장이자 밀이 받아들인 전제>


① 공리의 원리 -> 쾌락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고 쾌락을 극대화하는 행위는 옳음


② 심리적 이기주의 -> 인간은 이기적 동기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경향이 있음


③ 관념연합주의 -> 앎은 경험적 지각에 의해 성립됨 (원래는 더 복잡한데 이것만 기억하면 됨) 





 

 근데 밀의 우울증을 격고 ‘지적 위기’를 겪으면서 심리적 이기주의를 포기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빌드업이고 이제 밀의 이론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시작에 앞서 저는 공리주의, 즉히 밀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형이상학적 진리를 부정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공리(쾌락)을 추구하는 사상가들이니 당연히 감성을 중시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나 봅니다. 밀이 우울증에 빠지고 지적 위기에 봉착한 것은 자신이 한평생 옳다고 믿었던 공리주의가 공허한 사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밀은 홈스쿨링을 받았고 k-교육열은 뺨 싸다구를 휘갈길 수 있는 상상도 못할 수준의 조기 교육을 받았습니다. 9살 때 이미 5개 국어를 마스터하고 열 두 살 때 정치학, 논리학, 경제학에 두각을 보인 천재였습니다. 그런데 두각을 보였다는 말을 반대로 하면 12살 애한테 정치학, 논리학, 경제학을 가르쳤다는 뜻이 됩니다. 쾌락 계산기 였던 벤담의 친구인 제임스 밀(이분도 공리주의자입니다.)은 본인의 아들을 진짜 계산기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현대 사람이라 그런지 저는 삶의 감동, 감성같은 요소들이 질적으로 고등한 쾌락일지는 몰라도 계산은 힘들고 더 크게 쾌락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었는데 벤담이나 제임스같은 사람들은 똑같이 강도, 지속성, 확실성, 근접성, 다산성, 순수성, 범위등의 잣대로 계산 가능한 똑같은 쾌락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밀은 ‘세상의 행복을 증진하는데 성공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고 결국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감정적 공허감으로 우울증에 걸린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밀은 워즈워스의 시를 읽으며 감성적으로 회복하고 우울증을 극복합니다. art of life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인만의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밀은 우울증 이후에도 공리주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감성의 중요성을 발견하면서 인간은 이기적 동기에 의해서만 행동한다는 심리적 이기주의를 포기하게 됩니다.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의 원리를 받아 들이되 삶의 기술을 3가지 영역으로 나눠 ‘인간성’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① Moral (도덕성)

 여기서 말하는 도덕은 좁은 의미의 도덕으로 타인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고려하는 요소입니다. moral한 행동은 비난이나 칭찬의 대상으로 의무나 책임감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② Prudence (실용성, 신중함)

 prudence한 행동은 나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한 행동인지에 따라 하는 행동입니다. 이는 도덕적(moral)한 의무는 아니지만 자기 관리 차원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건강을 챙기거나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행위는 prudence한 행위일 것입니다.




③ Aesthetics (미학, 숭고함, 이상)

 aesthetic한 행위가 양적 공리주의와 질적 공리주의를 구분하는 가장 큰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양적 공리주의는 3가지 영역을 나눌 필요 없이 공리의 원리에 따르면 그만이라고 할 것이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인간의 감성을 간과하고 ‘인간성’을 저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 밀의 걱정에서 나온 것 아닐까 싶습니다. aesthetic한 행위는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행동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거든요. 용기 있는 희생이나 품위 있는 태도같은 것이 포함됩니다.




 이 세 가지 영역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최대 행복을 위한 상호 보완적인 삶의 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진정한 인간은 타인에 대한 책임,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 이상적 인간으로 나아가려는 고귀함을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밀의 의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 글은 밀이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을 대응하면서 공리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볼 예정입니다.




 다음주까지는 필자의 시험 기간이라 윤리 과목에 겹치는 사상가들은 글로 정리해서 올리기는 할껀데 이거 그냥 시험 공부하는 거라서 학습 자료로 올리지는 않을 예정입니다.(오히려 생활 상담실 아닌가요?) 철학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면서 아 저기는 거르면 되겠다라고 깨달으시거나 오 저기가 나의 진리의 빛인가 하면서 낚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미리 말하자면 공리주의 -> 소크라테스 -> 데카르트 -> 스피노자 순으로 제가 공부를 해야 되는데 시험은 봐야 되고 시험 준비는 정말 귀찮군요. 정리해보고 아 이건 진짜 아닌데 싶은 친구들은(높은 확률로 스피노자) 안 올릴 예정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는 시험의 노예 눈덩이 아카이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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