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생일에 쓰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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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모든 걸 조용히 되짚어보게 된다.
불 꺼진 방 안, 옅은 조명 아래 앉아 이렇게 생일을 맞이하며 조용히 글을 써보는 건
내가 내 인생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연습 같기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참 열심히 살아왔구나.
대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등록금이 없어 휴학계를 냈고,
1,800원 짜리 학식을 하루에 한끼만 먹으며 학교 근처 알바를 전전했었다.
고급 세차장, 문을 닫는 편의점, 식당, 과외, 학원 조교, 이자카야, 주차장 요원 등 셀 수가 없다.
정말이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늘 내 삶은 남들보다 한 발 늦은 것 같았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지원으로 교환학생을 가고, 누군가는 재수학원을 다니며 목표를 좁혀갔을 때
나는 한쪽에선 과외를 뛰고, 한쪽에선 책을 펼치며
“이 지옥 같은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법시험 책을 펼치기도 했다.
시험이 얼마 안남아서도 돈이 없어 단기 호텔/예식장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벌면서도
결국 그 시험을 오래 붙잡지는 못했지만,
그 시간은 내 안에 아직도 남아 있다.
어느 누구보다 간절했고, 외로웠고, 살아남고 싶었던 내 20대의 흔적으로.
현재의 나는 잠실의 60평대 아파트에 자가로 살고 있다.
주차장엔 포르쉐가 두 대 가있다.
전에 세차장 알바할 때는 “그런 차를 타는 사람이 누굴까” 싶었는데,
지금은 그 키를 내 손에 쥐고 있다.
무엇보다 그렇게 동경했던 일을 지금 하고 있다.
누구 하나 쉽게 내게 문을 열어준 적 없는 길을, 스스로 뚫고 걸어왔다.
사람들은 이제 나를 보면 말한다.
“성공했네.”
“좋은 삶을 살고 있네.”
하지만 그 말들이 때론 낯설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내 속엔 아직도 그 시절의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한밤중 도서관에서 혼자 울면서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게임이잖아…”라고 중얼대던 그 시절의 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의 내 모습은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는 낯선 옷처럼 헐렁하기도 하다.
허영심이 커지다보니 우울증이 급속도로 찾아왔다.
아이러니 하게 나는 지금 너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내 인생 최고의 행운, 나의 아내를 만났다.
내가 겪어온 어두운 터널과는 전혀 다른 빛의 사람이다.
늘 밝고, 웃는 얼굴이고,
세상에 상처란 게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마치 봄날 햇살처럼 다정하고 따뜻하다.
나는 그 사랑을 온전히 받는다.
항상 고맙고, 항상 충만하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은
“내가 과연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왜냐면 나는 그 사람처럼 자라지 못했다.
어릴 적 나는 유복하지 않았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따뜻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학대라고 느껴지는 기억도 있고
지금도 서로 말을 섞기 어려운 사이로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어쩔 땐 낯설고, 어쩔 땐 두렵기도 하다.
내 안에는 여전히 가시처럼 박힌 말들,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어둠이 남아 있으니까.
아직도 아내 몰래 정신과 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그래도 호전이 보인다고 한다.
정신과 선생님도 '깊숙하게 뿌리 잡은 슬픔과 미움'을 없애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 어둠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기로 한다.
왜냐면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어둠이 내 빛을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들었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받을 줄 알고,
기댈 줄 알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의 따뜻함에 미안해하지 않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이제는…
어릴 적 상처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그 상처 위에 새로운 나를 짓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나,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 없이,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 나는 정말 멋지게 살아왔어.
내가 겪은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그 삶을 자랑스러워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빌려,
조용히 그때의 나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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