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생일에 쓰는 일기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2823411
그래도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모든 걸 조용히 되짚어보게 된다.
불 꺼진 방 안, 옅은 조명 아래 앉아 이렇게 생일을 맞이하며 조용히 글을 써보는 건
내가 내 인생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연습 같기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참 열심히 살아왔구나.
대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등록금이 없어 휴학계를 냈고,
1,800원 짜리 학식을 하루에 한끼만 먹으며 학교 근처 알바를 전전했었다.
고급 세차장, 문을 닫는 편의점, 식당, 과외, 학원 조교, 이자카야, 주차장 요원 등 셀 수가 없다.
정말이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늘 내 삶은 남들보다 한 발 늦은 것 같았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지원으로 교환학생을 가고, 누군가는 재수학원을 다니며 목표를 좁혀갔을 때
나는 한쪽에선 과외를 뛰고, 한쪽에선 책을 펼치며
“이 지옥 같은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법시험 책을 펼치기도 했다.
시험이 얼마 안남아서도 돈이 없어 단기 호텔/예식장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벌면서도
결국 그 시험을 오래 붙잡지는 못했지만,
그 시간은 내 안에 아직도 남아 있다.
어느 누구보다 간절했고, 외로웠고, 살아남고 싶었던 내 20대의 흔적으로.
현재의 나는 잠실의 60평대 아파트에 자가로 살고 있다.
주차장엔 포르쉐가 두 대 가있다.
전에 세차장 알바할 때는 “그런 차를 타는 사람이 누굴까” 싶었는데,
지금은 그 키를 내 손에 쥐고 있다.
무엇보다 그렇게 동경했던 일을 지금 하고 있다.
누구 하나 쉽게 내게 문을 열어준 적 없는 길을, 스스로 뚫고 걸어왔다.
사람들은 이제 나를 보면 말한다.
“성공했네.”
“좋은 삶을 살고 있네.”
하지만 그 말들이 때론 낯설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내 속엔 아직도 그 시절의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한밤중 도서관에서 혼자 울면서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게임이잖아…”라고 중얼대던 그 시절의 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의 내 모습은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는 낯선 옷처럼 헐렁하기도 하다.
허영심이 커지다보니 우울증이 급속도로 찾아왔다.
아이러니 하게 나는 지금 너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내 인생 최고의 행운, 나의 아내를 만났다.
내가 겪어온 어두운 터널과는 전혀 다른 빛의 사람이다.
늘 밝고, 웃는 얼굴이고,
세상에 상처란 게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마치 봄날 햇살처럼 다정하고 따뜻하다.
나는 그 사랑을 온전히 받는다.
항상 고맙고, 항상 충만하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은
“내가 과연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왜냐면 나는 그 사람처럼 자라지 못했다.
어릴 적 나는 유복하지 않았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따뜻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학대라고 느껴지는 기억도 있고
지금도 서로 말을 섞기 어려운 사이로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어쩔 땐 낯설고, 어쩔 땐 두렵기도 하다.
내 안에는 여전히 가시처럼 박힌 말들,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어둠이 남아 있으니까.
아직도 아내 몰래 정신과 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그래도 호전이 보인다고 한다.
정신과 선생님도 '깊숙하게 뿌리 잡은 슬픔과 미움'을 없애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 어둠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기로 한다.
왜냐면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어둠이 내 빛을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들었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받을 줄 알고,
기댈 줄 알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의 따뜻함에 미안해하지 않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이제는…
어릴 적 상처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그 상처 위에 새로운 나를 짓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나,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 없이,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 나는 정말 멋지게 살아왔어.
내가 겪은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그 삶을 자랑스러워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빌려,
조용히 그때의 나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어.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f(x)=sin(0.5 pi x) (0<=x<=1) f(f(x))를 f^2(x)라고...
-
아 살 언제빼지 1
으악 71.3kg정도까지만 빼면 좋겠는데
-
논리실증주의자는 예측이 맞을 경우에, 포퍼는 예측이 틀리지 않는 한, 3
논리싫증주의자는 관심이 없다
-
문항수 많네요 뭐야뭐야
-
ㄹㅇ 개지리노 ㅋㅋ
-
국어는 신기하네 4
화법 6문항 언어 4문항 합쳐서 화법과 언어 총 10문항 독서와 작문 총 20문항...
-
보통 대입을 위한 학부모 상담은 꼭 필수가 아니라 원하는 학부모님만 신청해서...
-
생각해보니까 예비이거 통통이들을 위한 문제들이엇노
-
질거같음
-
끝나다
-
영어 노베 1
영어 아예 노베인 고2 정시러입니다… 워드마스터 고등 베이직 외우고 이영수 선생님...
-
세지는 만백 불안하다고 하시는데 최근 3~4년동안은 만백 항상 99이상 찍히더라구여...
-
카페인냅해보세요 5
카페인먹고 15-20분 자고 일어나면 엄청 개운하더라고요 추천드림
-
여르비처럼 5
마라탕 먹어야지 우헤헤
-
진짜 다 합치네
-
의지가 꺾여간다 2
3주만 참자............
-
투과전자현미경도아니고 뭐야
-
안녕하세요 :) 디올러 S (디올 Science, 디올 소통 계정) 입니다....
-
여친은 맨날 나보고 힘든 일 있으면 말하라고 왤케 자기 얘기를 안하냐고 뭐라하면서...
-
내 수준에 맞춰서 계획 다 짜주고 숙제도 요일별로 뭐뭐할지.. 정해주면 좋겠다ㅜㅜ...

와 되게 오랜만에 오셨네요팔로우해놓고 잊고 살아왔는데, 다시금 제게 귀감이 되어주시는군요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