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가망없나 [1325791] · MS 2024 (수정됨) · 쪽지

2025-04-06 22:24:02
조회수 1,525

육진방언과 국어사: 한국어의 과거를 찾아서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2740989

이전 글


*컴퓨터로 보는 걸 권장합니다. 

(만약 글자가 깨진다면 아이폰이 옛한글을 지원하지 않아서입니다.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보시면 됩니다. 맥북은 모아쓰기가 아니라 풀어쓰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갤럭시는 모아쓰기로 보입니다)



육진 방언은 제주 방언과 함께 매우 보수적인 성격을 띠는 방언으로 유명하다. 육진 방언과 이 방언에 남은 고어의 흔적을 따라가며 우리말의 과거를 되짚어 보자. 우선 우리는 독일의 언어학자 Karl Brugmann이 제시한 '동일 과정설의 원리(uniformitarian principle)'를 전제하고 갈 것인데 이는 오늘날 언어 변이와 변화를 발생시키는 제약과 요인은 그 본질과 유형에 있어 과거의 그것과 대체로 동일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공시적인 현상이 필연적으로 통시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공시적인 변화는 항상 통시적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세국어의 음운


중세국어는 전기 중세 국어(EMK)와 후기 중세 국어(LOK)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중세국어'가 바로 LOK로 훈민정음 창제 이후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즉 15~16세기의 국어를 일컫는다. EMK는 보통 훈민정음 창제 이전으로,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를 의미한다.(학자마다 자세한 구분은 다를 수 있음) 


육진 방언은 음운 체계가 보수적이라 LMK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데 자음의 음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아무래도 중세국어 하면 다들 LMK만 생각할 테니 LMK는 '중세국어'로 쓰고, 전기 중세 국어를 나타내야 할 경우에만 EMK를 쓰겠다. 


1. ㅈ, ㅊ의 음가 


현대국어에서는 ㅈ, ㅉ, ㅊ 뒤에 오는 j계 이중모음들은 각 이중모음에 대응하는 단모음들과 동일하게 발음된다. '쟈'와 '자'의 발음이 유의미하게 변별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ㅈ의 음성적 특징으로 인한 것으로 현대국어의 ㅈ은 경구개음 [t͡ɕ]([ʧ]로도 표기함)이다. 반모음 /j/은 앞의 자음을 구개음화시키는 성질을 띠고 있는데(이 때문에 니, 냐의 ㄴ도 음성적으로는 구개음임), ㅈ 자체가 이미 구개음이므로 j라는 반모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냥 '자'와 같은 [t͡ɕa]라는 발음이 된다. 이 때문에 ㅈ, ㅉ, ㅊ과 j계 이중모음의 조합은 준말을 제외해서는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육진 방언에서는 '자'와 '쟈'가 그 발음이 다르다. ㅈ의 음가가 경구개음이 아니라 치음 [t͡s]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단모음이 오면 음성적으로는 치음 [t͡s]로, 모음 ㅣ나 j계 이중모음이 오면 음성적으로 경구개음 [t͡ɕ]으로 발음된다. 육진 방언 화자들은 자신들의 ㅈ의 발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곽충구(2012: 129)


화자들의 인식도 그렇고 곽충구 교수와 같은 연구자들의 연구 조사 자료도 그렇고 모두 '자'는 [t͡sa]로, '쟈'는 [t͡ɕa]로 발음됨이 확인된다. 표준어와 다르게 육진 방언을 포함한 일부 북부 방언에서만 ㅈ을 치조음으로 발음하는데, 혹시 이런 발음이 과거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것 아닐까? 

곽충구(2012: 129)


중세국어로 돌아가 보자. 중세국어를 공부해 본 언매러들은 알겠지만 중세국어 시기 ㅈ은 현대국어와 달리 경구개음이 아니라 치조음이었다. 이는 ㅊ도 마찬가지였다. 육진방언과 동일하다! 이 때문에 중세국어에서는 구개음화가 발견되지 않고 중앙어에서 ㅈ이 치조음에서 경구개음으로 음가가 정착된 근대국어에서야 구개음화가 발견된다. 육진방언에서는 근대국어의 중앙어와 달리 ㅈ의 음가가 경구개음으로 정착되지 않았으므로 중세국어와 같이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즉 육진방언의 'ㅈ'은 중세국어의 'ㅈ'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고어적인 특징을 지닌다. 


음운론적으로 [t͡s]와 [t͡ɕ]는 상보적 분포를 보인다. 즉, [t͡ɕ]는 모음 /i/ 또는 반모음 /j/ 앞에서만 나타나므로, /t͡s/의 변이음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음운 표기는 /t͡s/로 하고, [t͡ɕ]는 /t͡s + j/의 결합으로 분석할 수 있다. (예: '져낙[t͡ɕənak]'은 기저형 /t͡sjənak/에서 /j/ 앞에서 /t͡s/가 [t͡ɕ]로 실현된 결과). 육진방언에선 구개음화가 진행 중인데 이는 표준어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또 표준어의 어형이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이유로는 육진방언이 'ㅈ'의 변이음으로 치조음 [t͡s]과 경구개음 [t͡ɕ]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과 마치 근대국어 시기에 t͡s가 t͡ɕ로 합류되던 모습을 보이듯이 두 이음이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2. ㄹ의 음가


표준어는 당연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방언에서도 음절말 유음 ㄹ은 설측음 [l]로 조음된다. 우리가 하는 음절 말 ㄹ 발음이 이거다. 그런데 문헌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과거의 육진 방언과 현대의 육진 방언 조사를 보면 음절말 유음이 탄음 [ɾ]로 조음된다. 스페인어의 comer(먹다)나 hablar(말하다), 포르투갈어의 amar(사랑하다)의 발음을 찾아보면 음절 말 탄음이 어떤 발음인지 감이 올 것이다. 


아무튼 육진 방언에선 다른 모든 방언과 다르게 탄음으로 나타난다는 매우 특이한 성질을 지닌다. 우선 러시아의 자료들을 살펴보자. 


1874년 제정 러시아의 행정관이었던 푸칠로(Putsillo)는 한국인과의 소통을 위하여 『Opyt Russko-korejskago Slovarja』(로한ᄌᆞ뎐)"이라는 대역사전을 만든다. 


곽충구(1998: 148). [']는 러시아어의 연음(軟音) 부호. 


위 사진에서 화살표 왼쪽은 왜어유해에 실린 한국어를 영어로 전사한 것이고, 오른쪽은 푸칠로가 그것을 직접 교정하여 전사한 표기이다. 2a(나물채)와 2c(녈노)를 보면 자음 앞에서 ㄹ이 l이 아니라 r로 전사되었다. r은 [ɾ]을 나타내는 것이다. 


1904년 러시아 카잔에서 간행된 『Opyt Kratkago Russko-korejskago Slovarja』(試篇 露韓小辭典)"에서도 휴지나 자음 앞의 유음이 r로, 유음의 중복은 ll로 전사되었다. 20세기 초 카잔에서 발행된 한국어 자료가 몇 더 있는데 그 자료에서도 동일한 전사 방식을 볼 수 있다.

소신애(2008: 41)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전사 자료와 더불어, 곽충구 교수를 비롯한 육진 방언 연구자들의 조사 결과에서도 역시 유음이 [ɾ]로 발음된다는 것이 확인된다. 아래는 2007년에 곽충구 교수가 조사한 구술 발화 녹화 자료를 소신애(2008: 45)에서 분석한 결과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육진 방언의 보수성을 고려하면, 20세기 초 육진 방언에서 음절 말 유음이 r로 전사되고 현대 육진 방언 화자도 음절 말 ㄹ을 [ɾ]로 발음한다는 사실은 이전 시기 어느 단계에서 국어의 음절말 유음이 [ɾ]로 발음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음절말 위치에서 /ㄹ/이라는 음소가 일제히 [ɾ]이라는 음으로 실현되기에 일부 어휘에서만 보이는 산발적인 현상과는 다르다. 


국어의 자음들은 음절말 위치에서 통시적으로 미파화(불파음화)를 거쳤는데 국어의 유음도 이와 같은 과정을 겪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중세국어에서 음절말 ㅅ과 ㄷ이 대립되었듯이 더 이전인 EMK 혹은 고대국어(OK; Old Korean)로 가면 음절 말 자음들이 미파화를 겪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차자 표기를 바탕으로 보았을 때 한국어의 과거의 어형들은 CVCV(C는 자음, V는 모음) 구조에서 모음이 탈락하여 CVC가 되고 음절 말에 오게 된 C는 제 음가를 가지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음소에 통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적용하여 보면 고대국어의 CVrV의 구조를 가정했을 때 여기에서 마지막 V가 떨어져 CVr이 되고, 탄설음으로 발음되다가 결국 설측음 l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cat'의 원어민 발음은 보통 [캐트]보다는 짧고 [캗]보다는 길다. 이를 외파 내지는 released stop이라고 한다.)


중세국어에서 말음 ㄹ의 음가가 탄설음이었다가 ㄹ의 미파화로 인해서 근대국어에 설측음으로 바뀌었다는 견해에 대한 국어사적 근거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소신애(2008)). 중세 국어 시기와는 달리 근대 국어 시기에 이르러 ᄅ계 자음 군이 음절말에서 온전히 실현되지 못하게 된 자음군 단순화 현상, 근대 국어 이래로 치조음 앞 유음 탈락 규칙의 조건 환경이 협소화된 점(고광모(1996)에서도 동일한 견해를 보임),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며 'ㄹㅇ' 표기가 'ㄹㄹ'로 바뀌게 된 점이 있다. 이는 중세국어의 말음 'ㅅ'의 경우와도 비교할 수 있다. 중세국어의 ㅅ은 받침에 있을 때 대표음이 ㄷ으로 교체되지 않았고 ㅅ으로 발음되었다. 


물론 중세국어의 ㄹ이 미파화되어 이미 설측음으로 실현됐다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EMK(많이 이르면 후기 고대 국어)에서는 ㄹ은 미파되지 않았고 외파되어 탄설음으로 발음되었다고 보기에, 육진 방언이 ㄹ의 보수적인 음가를 보존하고 있다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음절말 자음의 미파화는 모든 자음에 있어 일시에 진행된 것이 아니라 개별 자음에 따라 그 변화 시기가 달랐을 것이며, 방언에 따라서도 그 변화 시기가 달랐을 것이다. 20세기 초 육진 방언의 음성 전사 자료를 통해 국어의 자음들 중 유음이 가장 늦게까지 음절말 미파화에 저항하였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자료에서 탄음과 함께 설측음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보이는 것은 육진방언에서도 [ɾ]→[l]이라는 미파음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음운 변화와 내적 재구, 그리고 과거의 흔적  



1. ㅂ → ㅸ


중세국어의 순경음 비읍 'ㅸ'은 반모음 /w/로 통합되면서 현대 국어에 와서는 반모음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육진 방언에서는 대부분 'ㅂ'으로 나타난다. 다만 탈락한 예가 몇 존재하긴 한다. 우선 중세국어에서 ㅸ을 지녔던 혹은 지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어와 현대의 육진 방언 어휘를 비교해 보자. (1)과 (3a)의 '오온'은 중세국어에선 ㅸ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w계 이중모음이나 'ㅗ/ㅜ' 나타나는 예시들이다. 


곽충구(2012: 126)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육진 방언에서는 현대 중앙어와 달리 'ㅂ'으로 나타나는 어휘가 많다. 그런데 하나 놀라운 사실은 현대국어라면 모음 사이의 ㅂ은 양순 파열 유성음 [b]로 조음되지만 육진 방언에서는 양순 마찰 유성음 [β]으로 조음되는 어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표준어에서도 변이음으로 [β]가 등장할 수 있지만, [b]~[β]의 범위에서 서로 교체되며 변이음으로 나타난다. 이와 달리 육진 방언에서는 특정 어휘에서 [b]와 교체되지 않고 고정적으로 양순 유성마찰음 [β]으로 조음되는 어휘가 있다.  


위 사진에서 '하분자'와 '호분자'처럼 오른쪽에 [ ] 안에 발음 기호가 쓰인 어휘가 그러하다. 아직 [β]는 음운론적으로 음소의 지위를 얻기는 어렵지만, 일단 특정 환경에서 [b]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곽충구(2012)에서는 이 현상을 [β] 발생 초기로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변화가 특정 어휘에서 시작되어 점차 확산되는 단계로 해석한다. 만약 [β]를 포함하는 어휘가 늘어나 언중이 [b]와 다른 음성으로 뚜렷이 인식하게 되면, 음운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국어사에서 'ㅸ'의 기원에 관해선 크게 "기원적으로 ㅸ이 존재했다(다만 형태소 경계의 ㅸ은 기원적이지 않다고 봄)"라고 보는 기원설과 "/p/가 유성음 사이에서 약화되었다"라고 보는 약화설이 대립하고 있다. 육진방언에서 [β]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p/가 유성음 사이에서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에, 'p>ㅸ>w'의 단계적 변화설의 중요한 근거이다. 


위 사진의 예시 역시 약화설을 지지하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 


'ㅸ>ㅂ'의 기원설을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1)의 '가비'와 '기불다' 등의 어휘는 'ㅸ>ㅂ'로 변화한 형태이고, (2)의 '수울', '두울' 등의 어휘는 'ㅸ>w'로 변화한 형태이다. 기원설 지지자들은 'ㅸ>ㅂ'은 기원적으로 ㅸ을 가지던 어형이 기원적으로 ㅂ을 가진 어형에게 밀린 것으로 해석하거나, 형태소 경계의 ㅂ의 경우 'ㅂ>ㅸ>ㅂ'이라는 환원적인 단계를 설정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ㅂ>ㅸ>ㅂ'으로 보기보다는 'ㅂ>ㅸ'을 겪은 어형과 'ㅂ>ㅸ'을 겪지 않은 어형이 공존하다 후자가 전자와의 경쟁에서 이겼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 'ㅸ'이 기원적이라면 이 방언권에서 어떤 ㅸ은 'ㅸ>w'를 겪고 또 어떤 ㅸ은 'ㅸ>ㅂ'이라는 상반된 규칙을 적용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결정적으로 'ㅸ>ㅂ'의 변화 즉 마찰음의 폐쇄음화는 생리음성학적으로나 언어 보편적으로나 자연스럽지 않다. 의미의 강화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전제하지 않는 한 'ㅸ>ㅂ'은 수용되기 어렵다. 


약화설을 전제하였기에 위 예시들을 다시 보자면 (1)은 가장 보수적인 예가 되고 (2)는 어떤 이유로(어째서 모든 모음 사이의 ㅂ이 변하지 않았냐는 의문이 존재) 'ㅂ>ㅸ>w'의 변화를 겪은 예가 되므로 (2)는 변화의 선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3)은 개신형과 보수형이 함께 쓰이고 있는 예로 이 방언권에서 'ㅸ>w'가 진행 중임을 보여 준다. 


결론적으로 육진방언은 'p > ㅸ > w' 변화의 중간 단계인 [β]를 보존하고 있으며, 'ㅸ > w' 변화가 중앙어보다 늦게, 그리고 현재도 진행 중인 모습을 보여주기에 국어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육진 방언에는 ㅂ 불규칙 활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ㅂ 불규칙 활용도 역사적으로는 ㅂ>ㅸ>w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렇기에 중세국어에서 표준 한국어까지 ㅂ이나 ㅸ 표기가 쓰인 적이 없는 '기울다', '거웃', '억새', '어우르다(<어울다)', '저울' 등을 '*기블다', '*거븟', '*어벅새', '*어블다', '*저블' 등으로 재구할 수 있고, 이들이 'ㅂ>ㅸ>w'의 변화를 겪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또 고대 국어 시기에는 ㅂ 불규칙 활용이 없었으리라 짐작할 수도 있겠다. 



2. ㅅ → ㅿ


중세국어의 반치음 'ㅿ'은 표준어에는 대부분 음가가 소실되어 초성 ㅇ으로 나타나지만, 이 방언에서 대부분 'ㅅ'으로 나타난다. 탈락한 예가 몇 존재하긴 한다. 우선 중세국어에서 ㅿ을 지녔던 단어와 현대의 육진 방언 어휘를 비교해 보자. 


곽충구(2012: 133)



(5)는 중앙어와 마찬가지로 ㅿ이 탈락한 예들이다. (6a)는 형태소 내부, (6b)는 특수어간교체를 보이는 명사, (6c)는 파생어를 보인 것인데 모두 'ㅿ'이 'ㅅ'으로 나타난다. (6d)는 다소 특이한 변화인데 한자 日(ᅀᅵᆯ)이 ‘ᄉ’ 과 ‘ᄌ’으로 실현된 예이다. 


(5)와 (6)은 'ㅿ>∅'과 'ㅿ>ㅅ'이라는 상반된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ㅸ'과 동일한 논리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유성음 사이에서 폐쇄음이 마찰음화하는 것이 언어 보편적이고 또 일반적으로 사용 빈도가 높은 어휘군이 변화의 초기 단계에서 먼저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5)의 예는 ‘ᄉ>ᅀ>Ø’의 변화를 겪었고, (6)의 예는 그 변화를 겪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β]와 마찬가지로 이 방언에서 ᅀ의 음가인 [z]가 나타나야 한다.


다행히도 육진방언의 [z]에 대한 언급은 외국인이 저술한 여러 문헌에서 볼 수 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들리는 [z]는 두 가지 경로로 나온다. 하나는 'ㅅ'이 유성음 사이에서 [z]로 실현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성음 사이의 'ᄌ[d͡z]'이 폐쇄성을 잃고 [z]로 실현된 것이다. 푸칠로의  『로한ᄌᆞ뎐』(1874)에서 이를 볼 수 있다. 푸칠로는 한글 자모 ㅈ에 대응되는 음을 [ʦ]로 전사한 후 음성 전사형 상단에 이를 다시 [z]로 교정하였는데 이는 당시 /ㅈ/의 실제 발음을 반영하기 위한 시도였을 것이다. ㅅ도 마찬가지다. 우선 [s]로 전사하고 후에 그중 일부를 [z]로 교정하였다. 


소신애(2012a: 374)

소신애(2012b: 73) 


또 1900년 『Russko-Korejskie Razgovory』(露韓會話)라는 러시아어-한국어 회화 교재를 작성한 마트베프(Matveev)는 "Inogda, vprochem, vmesto [dz] slyshitsja [z](때로는, 그렇지만 [dz]가 [z]로 들리기도 한다.)"라며 육진 방언권에서 [dz](ㅈ) 대신 [z]가 조음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露韓會話』에도 두 경로를 통한 [z]가 등장한다. 



소신애(2012a: 375)


소신애(2012b: 74). (참고: ㄴ이 d로, ㅁ이 b로 전사된 것은 탈비음화를 반영한 것으로, 외국인 전사 자료에 흔히 등장한다.)


현대 육진 방언은 어떠할까? 곽충구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에도 [z]가 관찰된다. 

곽충구(2012: 136)


(10a)는 'ㅅ'이 탈락한 형태로 '마시다'가 '마이다'로 쓰인다. 이는 '마시다>마ᅀᅵ다>마이다'와 같은 과정을 생각할 법하며 'ᄉ>ᅀ>Ø'의 예로 볼 수 있다. (10b)는 'ㅅ'이 [z]와 대응되는 경우이다. (10c)의 '콩조시'는 문헌자료에 보이는 '조이(召史)'의 선대형일 것이므로 '*조시>*조ᅀᅵ>조이>주이>쥐'의 변화를 겪었으리라 생각된다. (10d)는 '윷'을 뜻하는 중세국어 'ᅀᅲᆺ(<*ᅀᅲᇧ?)'의 방언형으로 ㅅ~ㅈ의 대응을 보여준다. (10e)는 차용어인데 자연스럽게 [z]가 발음된다는 점에서 중부방언권보다 [z]의 조음이 용이함을 알 수 있다. (11)은 유성음 사이에서 'ㅈ'이 [z]로 실현된 예이다.


따라서 육진방언에는 [z]이 실재한다. 그렇다면 19세기 말과, 20세기, 그리고 현재에서도 [z]가 보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형태소 내부에서라도 ㅅ은 유성음화를 겪어 [z]로 조음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반치음 ㅿ의 형성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논의에서는 'ㅸ'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ㅿ의 기원을 보통 'ㅿ' 기원설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중세국어의 'ㅿ'에 대응하는 현대 방언형 중 'ㅅ'으로 나타나는 형태들은 기존의 'ㅿ>ㅅ'으로 보기보다는 'ㅅ>ㅿ' 변화가 완전히 확산되지 못한 비개신형 즉, 변화의 잔재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ㅅ>ㅿ' 변화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ㅂ>ㅸ'처럼 복합어의 형태소 경계에서만 일어났다고 보았다. 이기문(1972)을 비롯한 대다수의 원로 학자들은 '동일한 환경에서는 동일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소장문법학파의 '규칙성 가설(regularity hypothesis)'에 어긋난다며 동일한 유성음 환경 조건을 가진 어휘들 중에서도 ㅅ>ㅿ 변화가 일어난 예와 일어나지 않은 예가 공존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한국어의 'ㅅ'은 유성음 환경에서도 유성음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ㅅ>ㅿ'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ㅂ'이 어두에서는 [p]로, 어중에서는 [b]로 유성음화되는 것은 그것에 대응하는 유기음 ‘ㅍ’의 유기성이 이 환경에서 약화되어 그것과 충분한 거리를 가지기 위한 것인데 그와 달리 'ㅅ'은 대응하는 유기음이 없어 유성음화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중세에서도 동일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규칙성 가설은 한계가 있다. 실제 언어 변화는 규칙성 가설의 예측과 달리 예외가 많으며, 변화가 어휘마다 점진적으로 퍼져나가는 '어휘 확산 가설(Lexical Diffusion Hypothesis)'로 설명될 수 있다. ㅅ>ㅿ 변화에 나타나는 예외들은 변화가 완료되기 전에 중단되어 남은 잔재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과연 현대 'ㅅ'의 비유성음화가 중세의 'ㅅ>ㅿ'를 부정할 근거가 될 수 있느냐이다. 통시적으로 'ㅅ'의 유기성이 증가하여 현대보다 과거에 'ㅅ'이 유성음화되기 쉬웠을 수도 있지 않은가? 또 이들의 주장은 내적 모순을 보인다. 일부 복합어에서 'ㅅ>ㅿ'을 인정하였는데 과거의 'ㅅ'이 유성음 사이에서 유성음화되는 것이 불가능했다면 이 같은 복합어 내부에서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났다는 것인가?


이들은 중앙어뿐 아니라 다른 방언에도 중세 이전에 ㅿ이 존재했고, 이것이 후대에 ㅅ으로 합류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ㅅ>ㅿ'의 변화가 유성음 환경에서 일괄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ㅅ>ㅿ'의 변화를 상정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라면, 'ㅿ>ㅅ'의 변화 역시 같은 문제를 보인다. 같은 환경에서 어떤 ㅿ은 ㅅ으로 나타나고 ㅈ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ø(탈락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어사에 따라 ㅿ>ㅅ 외에
ㅿ>ø, ㅿ>ㅈ 변화 또한 일어났다는 것인데 결국 음 변화의 비일관성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ㅿ>ㅅ'은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이다. 유성음 환경은 일반적으로 무성음을 유성음화시키는 약화의 환경이다. 이 환경에서 유성음 /z/(ㅿ)가 무성음 /s/(ㅅ)로 변하는 강화 현상(ㅿ>ㅅ)은 음성적으로 매우 부자연스럽다. 이런 변화는 일어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어나더라도 소수 어휘에 국한되는 산발적 음변화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어 방언에서 ㅿ 대응형이 ㅅ으로 나타나는 광범위한 현상을 이 부자연스러운 변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중세 문헌상 유성음 간 ㅅ을 가진 단일어가 후대 문헌이나 현대 방언에서 ㅿ형(탈락 직전의 약화된 [z] 형태 포함)이나 ø형(탈락형)으로 나타난다면, 이는 유성음 간 ㅅ>ㅿ>ø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적극적인 증거가 된다.



소신애(2012b: 54-55)

이 예들은 ㅅ의 약화/탈락이 단일어 내부에서도 만약 그것이 모음 사이라면  'ㅅ>ㅿ'이 일어났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 변화의 적용 범위가 훨씬 넓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방언형들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단일어 중 ㅅ을 지니는 어사가 ㅅ 유지형과 탈락형을 보이는데, 탈락형은 역시 'ㅅ>ㅿ>ø'로 해석해야 하기에 반드시 복합어일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 과정은 육진 방언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육진 방언은 보수적이다. 현대국어와 달리 육진 방언에서 [z]가 실현된다는 사실은 결국 과거에는 ㅅ이 보다 유성음화되기 쉬웠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기존의 해석은 어휘 확산 과정에서 변화가 적용된 어휘와 아직 적용되지 않은 어휘가 공존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육진방언의 기록과 중세 및 근대국어의 기록, 그리고 언어 보편적인 경향을 바탕으로 유성음 환경의 'ㅅ>ㅿ>ø'이 실재하였고 또 ㅅ 유지형은 비개신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함을 보였다. 그렇다면 (6d)의 '삼월삼질'의 '질'과 같은 'ㅿ>ㅈ'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이 변화의 핵심은 ㅿ의 지위가 휘청휘청하던 시절 유성음 환경에서 실현된 ㅿ[z]와 ㅈ[dz] 간의 '음성적 유사성'이다.ᅀ(/z/)이 비음운화되면서 그 음성 실현 [z]는 청자에게 불안정하고 애매한 소리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소신애(2012a: 379)


그림 1: 청자가 화자가 발음한 ᅀ의 실현형 [z]를 듣고, 이것을 음성적으로 유사한 /ㅈ/의 변이음 [dz] (또는 [z])로 잘못 인식하여 기저형을 /ㅈ/으로 재구조화한다. /VzV/ → [VzV] → 청자가 Vd͡zV로 오인 → /Vt͡sV/ 재구조화.


그림 2: 청자가 [z]를 정확히 듣지만, /ㅈ/이 유성음 사이에서 약화되어 [z]로 실현될 수 있다는 규칙(lenition rule)을 과도하게 적용한다. 즉, 실제로는 ᅀ에서 온 [z]임에도 불구하고, /ㅈ/에서 온 것이라고 잘못 판단하고 그 약화 규칙을 "되돌려" 기저형을 /ㅈ/으로 재구조화한다. /VzV/ → [VzV] → 청자가 /ㅈ/→[z] 규칙을 역으로 적용 → /Vt͡sV/ 재구조화.


따라서 ㅿ>ㅈ은 청자의 오지각 또는 과도 분석에 의한 음운론적 재해석이라 할 수 있겠다. 



3. ㄱ → ㅇ(ɦ)/ㅎ(h) 


중세국어의 현대국어와 마찬가지로 'ㅇ'은 음가가 없다. 그렇지만 일부 환경에 한하여 음가가 있었으리라 추정되는 ㄱ의 약화(나랏말쌈 님의 글을 참고하자) 표지 'ㅇ'이 있다. 이 'ㅇ'이 음가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논란이 되는 주제이지만 이기문(1961) 이래로 보통 후두 유성 마찰음 [ɦ]으로 본다(고교 과정은 아님). 이기문은 ㄹ, j, ㅣ 뒤의 ㄱ이 [g]으로 발음되고 이 [g]이 [g]>[ɣ]>[ɦ]>ø’의 변화를 겪었다고 보았고, [ɦ]의 단계가 ㅇ으로 표기되었다고 보았다. 


이 중세국어의 'ㅇ(ɦ)'은 현대 국어에선 'ㄱ'이나 'ㄹ'로 나타나거나 ㅇ(무음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선 중세국어에서 ㅇ(ɦ)를 지녔던 혹은 지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어와 현대의 육진 방언 어휘를 비교해 보자.


곽충구(2012: 137-138)



(12a)의 예는 ㅇ(∅)으로 나타나는 예시들이고, (12b)는 'ㄱ'을 보존하고 있는 예로 중세국어에서 'ㄹㅇ'의 연쇄를 보이는 ‘다슬오다, 기들오다, 알오다' 등과 대응된다. 


(12c)는 중세국어의 'ㅎ'이 육진방언에서는 'ㄱ'으로 대응되는 예이다. 이들은 중세국어 어형들이 'ㄱ>ㅎ'을 겪었을 것임을 보이는 것으로, 'ㄱ>ㅎ'의 마찰음화는 'ㅎ>ㄱ'보다 더 자연스럽고 언어 보편적이다. (12d)는 보수형 ‘게그르다’와 개신형 ‘게흐르다 [kexɨɾɨdá]’가 한 개인의 발화에서 수의적으로 나타나는 예를 보인 것이다. '게그르다'(보수형)와 '게흐르다[kexiridá]'(개신형)를 수의적으로 사용하는 현상을 보면, ㄱ > ㅎ > ø 변화가 매우 느린 속도로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왔을 것이다.


(12e)는 현재 ‘ᄀ’의 유지형과 탈락형이 공존하는 예를 보인 것인데 변화의 중간 단계형이라 할 수 있는 [ɣ]나 [ɦ] 유지형들은 보고되지 않는다. (12f)는 특수어간 교체를 보이던 용언들로 중앙어와 달리 ㄱ이 탈락하지 않았다. 


결국 'ㄱ'은 'ㅎ'으로 약화(마찰음화)하거나 'ㅇ(ɦ)'으로 약화(유성음화)한다는 것인데 정확히 어떤 환경에서일까? 기존에 'ㄱ' 약화·탈락에 관한 연구들은 주로 'ㄹ'이나 반모음 /j/ 뒤와 같은 특정 환경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중세 국어 문헌에서 해당 환경의 'ㄱ' 탈락 사례가 비교적 명확하게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방언들의 ㄱ 유지형이나 ㄱ 탈락형, 그리고 표준어의 어형들을 고려하면 보다 넓게 볼 필요가 있다.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실제 방언, 특히 일상적인 구술 발화 자료를 살펴보면, '모음 간' 환경에서도 'ㄱ'이 약화되거나 탈락하는 사례가 상당수 발견된다. 물론 환경별로 변화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특정 조건에서 변화가 실제로 일어난다는 점을 중시한다면, 국어 전반에 걸쳐 '유성음 사이에서의 ㄱ 약화·탈락'이라는 더 포괄적인 음운 변화 규칙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ㄱ의 약화를 아주 쉽게 접하기도 한다. 경상도 사투리로 알려진 '많이 무라'가 바로 그것이다. '무라'는 분명 '묵다(먹다)'의 활용형이다. '먹다'가 아니라 '묵다'인 이유는 동남방언에서는 'ㅓ'와 'ㅡ'가 변별이 되지 않기에 '먹다'는 '믁다'와 같고 '믁다'가 원순모음화를 겪어 '묵다'가 됐기 때문이다. 이 '묵다'는 활용을 하면 당연히 '묵어라'가 되고 그 발음은 [무그라] 또는 [무거라]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발화를 들어보면 ㄱ이 들리지 않는다. ㄱ이 약화된 것이다. 


이 변하의 기제는 무엇인가? 바로 유성음 간 동화이다. 유성음 사이에서 'ㄱ'이 동화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유무성(voicing)이고 다른 하나는 간극도(aperture; 발음을 할 때 입을 벌리는 정도)이다. 유성음 사이에 놓인 'ㄱ'이 주변 유성음의 성대 진동에 동화되어 [g]가 유성음 [ɣ]나 [ɦ]로 발화되는 것이다. 이는 [b]나 [s]가 [β]와 [z]가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때에 따라선 폐쇄음 'ㄱ'이 간극도가 더 큰 주변의 모음이나 공명음에 동화되어 유성음화가 일어나지 않고 마찰음화만 일어나 ㅎ에 가까운 소리 [x]나 [h]가 되기도 한다. 둘 모두 조음하기 더 쉽게 하기 위해 일어나는 변화이다. 


이러한 음성적 점진성은 변화의 초기 단계가 음성적 변이음에서 비롯되어 점차 음운 차원의 동화 현상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을 나타낸다. 즉, 처음에는 유성음 사이에서 'ㄱ'을 조음할 때 주변음의 영향으로 유성성/간극도 동화가 수의적으로 일어나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특정 음성 변이형([ɦ] 등)이 안정화되고(변이음 실현), 결국 음운 규칙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 20세기 초 함북 육진 방언 자료에서 'ㄱ'의 변이음으로 [ɣ]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었고(kɨɣǝ(그거)<綴字p.13>, kɨɣǝt’ǝri(그것덜이; 그것들이)<會話p.53>) 곽충구(2015a)에 의하면 1세기 동안 이 방언에서 약화/탈락 예가 증가했다는 사실이 보고되는바, 이러한 음성적 자유 변이가 통시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바탕으로 꽤나 많은 어휘에 'ㄱ'을 재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4. CVC → CC(ft. CVk>Ch)


우리말에는 방언의 경우 받침에 격음을 보이는 것들이 많은데 그 대응이 특이한 경우가 있다. ㄲ-ㅊ-ㅌ이 대응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C는 자음(Consonant)을, V는 모음(Vowel)을 나타낸다. 모음이 탈락하여 자음군이 형성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곽충구(2015a: 152-153)


위 표의 (I~IV)는 말자음 ‘ᄐ’, ‘ᄁ’, ‘ᄎ’이 서로 대응하는 예들을 유형화한 것이고 (V~VI)은 (I)류와 유사한 변화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예들을 제시한 것이다.


중세국어에는 어말자음군 ㅺ이 존재하였는데 단독으로 실현될 때나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ㄱ이 탈락한 'ㅅ' 받침으로 나타났고,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할 땐 'ㄱ'이 나타났다. 'ㅺ'은 근대국어로 넘어오며 자음군단순화를 겪어 표준어에는 여러 받침으로 나타났는데 ㅅ, ㅊ, ㅌ 등으로 나타난다. 중세/근대국어 및 다른 방언과 비교할 때 볼 수 있는 복잡한 대응관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를 내적 재구를 이용하여 과거의 형태를 복원하고 탈락, 축약 등 여러 기제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어중모음탈락(syncope)과 ㄱ>ㅎ의 마찰음화를 전제할 것이다. 


고대 국어로 갈수록 우리말은 음절이 많았고 개음절성이 강했다고 여겨진다. 재구를 함에 있어 어중모음탈락을 상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탈락하는 모음은 주로 'ㆍ'나 'ㅡ'로 재구하는 편이며 이들이 음운론적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소위 약모음(schwa)이라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약모음이 과하게 많아진다는 문제가 있으며 이들은 본래 'ㆍ'나 'ㅡ'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ㄱ>ㅎ'은 이미 앞서 "ㄱ → ㅇ(ɦ)/ㅎ(h)"에서 다루었으니 위를 참고하자. 


     유형 I (돗자리, 돛, 숯) 


중세국어의 'ㅺ'이 이 방언의 'ㅌ' 또는 'ㄲ'과 대응하는 예이다. 이들 ㅌ 말음어는 시기와 지역을 막론하고 그러한 대응을 보이지 않는 '돝'이나 '밭', '빛' 등과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이들 'ㅌ'은 어떤 음운변화의 결과일 것이다. '돗자리'의 방언형에 '도수'와 '돆(<도ᇧ)'가 보이므로 원형을 '*도ᄉᆞᆨ'으로 재구할 수 있다. 중세국어의 '도ᇧ'은 '*도ᄉᆞᆨ'의 아래아가 탈락한 형태, '도수'는 말음 ㄱ이 탈락한 '*도ᄉᆞ'의 후신으로 볼 수 있다. '돝'은 '도ᇧ>돋ㄱ>돋ㅎ>돝'의 과정을 상정하여 격음화를 설명할 수 있다. 


‘숯’의 방언형 ‘숚, 수수, 숱’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중앙엉의 '숯'과 '돛'처럼 ㅊ이 보인다. 이는 '돝'과 '숱'이 구개음화를 겪은 다음에 이형태의 단일화로 '돛'과 '숯'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방언에서는 아직 형태소 경계에서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았기에 '돛

'이 분포하지 않는 이유가 설명된다.


그러나 어째서 중세국어 문헌에는 '도ᇧ'과 '수ᇧ'만 보이고 '*도ᄉᆞ'나 '*수스'는 안 보이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해서는, ‘*도ᄉᆞᆨ’이 중세국어 이전에는 모음 조사와의 통합과 무관하게 어중모음탈락을 겪었기 때문이라 추정해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예시는 또 있다. 중세국어의 '엻(麻)'과 'ᄒᆞᆰ(土)' 및 육진방언의 '엵', '흙'을 동남방언형 '여륵'과 '흐륵'과 비교하면 중세국어형과 육진방언형은 어중모음탈락을 겪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유형 II (팥, 새끼) 


중세국어의 'ㅺ'이 이 방언의 'ㅊ'과 대응하는 예이다. '팣/퐃'과 '패끼'는 중세국어 'ᄑᆞᆾ'과 'ᄑᆞᇧ'을 계승한 것이지만 중세국어에 이 두 형태로 분화되기 전 선대형을 어떻게 재구하느냐가 문제이다. 이때 중요하게 쓰이는 것이 ㅈ의 음절말 중화이다. 중세국어 시절 '곶'은 '곳'으로 쓰였는데 이는 말음에서의 ㅈ이 ㅅ과 같이 발음되었기 때문이다. 즉 '팥'을 '*ᄑᆞᄌᆞᆨ'으로 재구한다면 어중모음 탈락을 겪어 '*ᄑᆞᆽㄱ'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ㄱ>ㅎ'이 적용된 어형은 'ᄑᆞᆾ', ㄱ>ㅎ이 적용되지 않고 ㅈ의 음절말 중화를 겪은 형태가 'ᄑᆞᇧ'이라고 할 수 있다. '새끼'도 동일하게 설명할 수 있다. 중앙어 '팥'과 같은 ㅌ 받침의 형성은 'ㅅㄱ>ㄷㄱ>ㄷㅎ>ㅌ'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구개음화를 의식한 과도교정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같은 중부방언 안에서 또는 같은 육진방언 안에서 어찌하여 ‘ᄀ>ᄒ’이 큰 시간 폭을 두고 동일한 어사에 적용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II)류의 ‘팣’(육진방언)은 ‘ᄭ’ 자음군 형성 이전에, (I)류의 ‘돝’(육진방언)과 (II)류의 ‘팥’(중부방언)은 ‘ᄭ>ᄗ’ 단계에서 ‘ᄀ>ᄒ’ 규칙의 적용을 받은 것이고 (I)류의 ‘돆, 숚’, (II)류의 ‘패끼’(육진방언)은 아예 ‘ᄀ>ᄒ’ 규칙을 적용받지 않은 것이 된다. 아직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또 '숯'을 이 부류에 넣어 본래 *수즉>*숮ㄱ'으로 재구하고 ㅈ이 중화되면 '수ᇧ', 중화되지 않고 ㄱ의 마찰음화가 일어나 '숯'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육진 방언의 보수성을 고려하면 육진 방언에 어째서 ㅈ이나 ㅊ형이 보이지 않는지 의문이다. 또 중세국어부터 ㅊ이 보이는 팥(ᄑᆞᇧ~ᄑᆞᆾ)이나 도끼(돗괴~도최)와 달리 '숯'과 '돛'은 18세기에 갑자기 ㅊ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근대국어의 구개음화로 재구조화가 되지는 않았을지 그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유형 III (삿자리, 닻, 덫)  


'삿자리'의 '삿'은 '삳ㄱ'에서 온 것으로, '사ᇧ'이 아닌 이유는 이 '사ᇧ'의 표기가 근대국어에야 등장하고 이 당시의 ㅅ은 ㄷ과 소리가 같았기에 '삳ㄱ'과 같기 때문이다. 또 중세 때부터 '샅'이 보이므로 원형을 '사ᇧ'으로 보면 'ㅅㄱ>ㅌ'이 중세국어에 일어났다고 보아야 하나 이는 타당하지 않다. '삳ㄱ'에서 ㄱ>ㅎ의 변화를 겪어 육진방언에서는 '샅'이 등장하는데, '닽'도 동일하다. 근대국어에 보이는 '샃'은 구개음화와 연결할 수 있을 것이며 육진 방언에 ㅊ 형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방언에선 아직 구개음화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어째서 '삮'과 같은 형태가 보이지 않는지는 의문이다. 



     유형 IV (겉, 겿, 홑): 


중세의 ㅈ과 ㅊ이 육진방언에서 ㅊ과 ㅌ에 대응하는 경우이다. ㅈ, ㅊ, ㅌ의 대응을 분명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중세국어의 '겇'이 '겉'으로 나타나는 것은 구개음화를 의식한 과도교정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어째서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은 육진방언에 (겉)과 같은 어형이 보고되는지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유형 V (북(杼), 북(根土)): 


중세국어의 'ㄱ'이 육진방언 'ㄲ'에 대응하는 경우이다. 북(杼)은 '부수'로도 쓰이는데 모음 조사가 오면 '붂'으로, 자음 조사가 오면 '부수'로 교체되어 쓰인다. 즉 '*부슥'으로 재구할 수 있다. 이 '*부슥'이 모음 조사 앞에서는 '붂(<*부ᇧ)'으로, 자음 조사 앞에서는 ‘부수’로 교체된 것이다. 그러나 중앙어에서는 '북'으로 쓰이기에 '*부슥>*부ᅀᅳᆨ>*부윽>북'의 변화를 상정해야 한다. 



     유형 VI (윷, 창애): 


중세국어의 형태만으로는 말음이 정확히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는 체언이다. 훈몽자회에 'ᅀᅲᆺ(>윷)'으로 쓰였는데 말음 ㅅ이 ㅊ에서 중화된 것인지, ㅺ이 자음군단순화를 겪은 형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대어 '윷'을 고려하면 *ᅀᅲ즉'으로 재구하고 모음 탈락으로 '*ᅀᅲᇧ'과 'ᅀᅲᆾ'으로 분화되어 쓰였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방언형 '뉴끼'는 'ㅺ'의 존재를 암시하는데 어두의 반치음이 ㄴ으로 대응되는 예는 '윷'이 유일하다. 곽충구(2015a)에선 '뉴스'를 바탕으로 '*뉴슥'으로 재구하였지만 '*뉴즉'으로 재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창애'는 '챢'과 '챠스'로 나타나므로 육진방언의 형태를 고려하면 '*챠ᄉᆞᆨ'으로 재구할 수 있다. 중앙어에서는 '*챠ᅀᆞᆨ'으로 쓰여 '*챠ᅀᆞ/챠ᇫㅇ'의 특수어간교체를 보였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고 '챠ᄋᆞ'는 '챠ᅀᆞ'의 후대형이라 할 수 있다. 



5. ㅎ 말음 체언 


ㅎ 말음 체언(이하 ㅎ 말음어)이란 중세 한국어에서 말음으로 /ㅎ/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타나는 체언으로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나 평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할 때는 ㅎ이 덧났고, 그밖의 조사와 결합하거나 단독형으로 쓰일 때는 ㅎ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ㅎ 말음어는 보통 18세기 말에 사라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일부 어휘에 한해서 19세기까지 유지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말음 'ㅎ'을 잃어버린(h>ø) 후에도, 그 'ㅎ'이 있었던 자리의 '흔적'이 남아 있을까? 형태소 경계에서 격음화가 일어난 것이 흔히 거론되지만 이를 제외하여도(사실 이는 ㅎ 소실 이전의 현상이기도 하다),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바로 조사와의 결합이다. 


"나라이 입하옵시며"라는 기독교의 주기도문이 있다. 어째서 '가'가 아니라 '이'가 쓰였느냐 할 수 있다. '나라'는 ㅎ 말음어였고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가 오면 ㅎ이 덧났으니 모음으로 끝난 체언으로 인식되지 않아 '이'라는 조사가 붙어 '나라히'로 쓰였다. 그러나 ㅎ이 모음 사이에서 약화되자 '나라이'가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라'는 모음으로 끝나는 체언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겪게 되어 '나라가'가 새롭게 자리를 차지한다. 원래는 주기도문도 '나라히'였으나 어느새 '나라이'로 전해지게 되면서 이 주기도문이 '나라가'로 바뀌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은 중앙어에서는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으며, 다른 방언에서도 규칙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전국적으로 산재하는 현상이긴 하나 실현 정도가 높지 않다). 그러나 육진 방언에서는 이와 비슷한 계열의 흔적이 꽤나 뚜렷이 보인다. 


우선 러시아 카잔에서 간행된 초기 한국어 학습 자료들에는 당시 육진 방언 구어가 음성 기호로 정밀하게 전사되어 있는데 조사와 결합할 때 ㅎ 말음 체언이었던 체언들이 특이하게 쓰이는 것이 보인다.


소신애(2023: 56-57)


(10)은 목적격조사의 예이다. 육진 방언에서 모음으로 끝나는 체언 뒤에 붙는 목적격 조사는 '으/르'인데 ㅎ 말음어였던 '뒤', '위', '코', '바(索; 현대어의 멜빵과 질빵에 남아있음)' 등 뒤에 자음 뒤에 붙는 '으'가 결합한다. 이때 조사 '으'는 선행 체언의 말음절 모음에 동화되어 장모음처럼 실현된다. (9)는 부사격조사 '-ㄹ르/을르'의 예로 모음으로 끝나는 체언 뒤에는 '날갤르'와 같이 'ㄹ르'가 결합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9)에서 볼 수 있듯이 '을르'가 실현되었다. 또 (10)과 (11)도 마찬가지다. 모음으로 끝나는 체언 뒤에는 부사격조사 '르'와 보조사 '는'이 붙어야 하는데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 뒤에 붙는 '으르'와 '으는'이 붙었다. 


또 20세기 초 육진 방언에서 '뒤', '위', '코', '바' 등의 단독형은 '이'가 결합된 형태인 '두이', '우이', '코이', '바이'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주격과 그 형태가 동일하다. 중요한 점은 이들 체언에서는 음절이 축약되지 않고 모음 연쇄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와 동일하게 소신애(2023)은 이를 말음 'ㅎ'의 흔적이 남아 음절 축약을 저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패턴은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소신애 교수가 중국 길림성에서 수집한 자료와도 일치한다. 


여러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소신애(2023)에 따르면 이 '흔적' 현상은 이전 시기 발화에 출현했던 곡용형이 화자들의 머릿속에 용례로 저장되어 잔존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법을 화자의 머릿속에 내재된 언어 사용 패턴 혹은 습관으로 생각해 보자. 행동 습관이 환경 변화 후에도 일정 기간 유지되는 것처럼, 화자의 발화 습관 역시 음운 환경이 변하더라도 과거의 패턴을 유지하려는 경향, 즉 일종의 관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또, 폐쇄적인 언어 공동체일수록 보수성이 강한데 이 때문에 전통적인 언어 사용 규범이 충실히 전승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전의 언어적 불규칙성 또한 폐쇄적인 방언에서 더 오래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문헌 기록에는 전국적으로 ㅎ 말음어 뒤에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 뒤에 붙는 조사가 붙었지만 현재에 와서는 그런 경향이 줄어든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결국 ㅎ 말음어는 육진 방언의 보수성으로 기존의 발화 습관이 타 방언에 비해 더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이같이 예외적인 조사의 결합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이다.


6. 말 자음(받침)


육진 방언은 그 어간말 자음 체계가 중세국어의 유성 마찰음(ㅸ, ㅿ, ㅇ)이 각각 /ㅂ, ㅅ, ㄱ/으로 반영된 점을 제외하면 근대국어와 대체로 일치한다. 

 

   6-1. 양순파열음: ㅂ, ㅍ


'갑-(溜)', '깁-(補)', '돕-(協)', '솝-(插)', '칩-(寒)' 등의 /ㅂ/ 말음 용언이 존재하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ㅂ 불규칙 활용을 하지 않는다. 이는 중세 국어 이전의 현상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일부 어휘에 한하여 '가깝우니 ~ 가까우니'와 같이 /ㅂ/과 /w/의 수의적 교체가 나타나는데 이는 표준어 영향일 수도 있지만, 중세국어 'ㅸ' 불규칙 활용의 잔재(ㅸ > w) 혹은 그 변화의 초기 단계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또, 중세국어 'ᄀᆞᆸ-', '칩-' 및 근대국어 '솝-'은 이 방언에서 각각 '갑-', '칩-', '솝-'으로 대응하여 보수성을 보여준다. 중앙어에서 '솝-'은 사어가 되고 '갑-', '칩-'이 '괴-', '춥-'으로 재구조화된 것과는 다르다. 


중앙어의 '겨릅', '두릅'의 말음 /ㅂ/이 육진방언에서는 /ㅍ/('겨릎', '드릎')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근대국어에서 /ㅂ/으로 변화하기 이전의 모습이다. 중앙어에서도 본래 ㅍ이었으나 단독형을 의식하여 기저형이 ㅂ으로 재구조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음군과 관련하여 볼 때 육진방언은 자음군단순화가 일어나지 않아 중세국어와 동일하게 '삽(shovel)'이 아니라 '삷'으로 쓰이고, 또 '닑다(>읽다)'와의 혼효가 일어나지 않아 '읊다'가 아니라 중세국어와 같은 형태인 '읖다'로 쓰인다. 



   6-2. 치(조)음: ㅅ, ㅈ, ㅊ, ㄷ, ㅌ 


'깃-(茂)', '닛-(繼)', '뭇-(集)', '붓-(注)', '줏-(拾)', '쫏-(琢)' 등의 /ㅅ/ 말음 용언이 존재하는덴 역시나 규칙 활용을 한다. ㅅ 불규칙이 없다. 이중 '깃-'은 중세국어 시절에는 모음 어미가 오면 ㅅ이 ㅿ으로 교체되었는데, 현대국어에서는 사어가 된 반면 육진 방언은 '깃-'을 남아 있다. 또 '줏-'의 경우 중앙어에서는 '줍다'로 재구조화를 겪었지만, 육진 방언은 '줏-'으로 어간이 유지되었다. 


육진방언엔 말음이 ㅈ, ㅊ인 체언이 많은데 이는 중앙어와 달리 ㅈ>ㅅ의 변화를 겪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말음 ㅈ의 예로는 '깆(魂魄衣)', '깆(분배한 몫)', '거붖(거웃)', '꽂(花)', '송곶(錐)' 등의 ㅈ으로만 나타나는 체언과 '궂~굿', '이웃~이웆'처럼 ㅅ~ㅈ의 교체를 보이는 체언이 있다. 말음 ㅊ의 예로는 '깇(비의 자루를 제외한 부분)', '봋(樺皮)', '짗~깇(羽)' 등의 체언과 '깇-(咳)', '맟-(終)', '및-(及)', '슻-(시치다)' 등이 있다.


'꽂', '거붖' '깆(魂魄衣)', '깆(襟)', '깆(몫)'은 어휘 자체도 고어이지만 말자음도 역시 고어적이다. 다만 일부 어휘는 마치 근대국어의 변화를 보여주듯 이 방언에서 ㅈ 말음이었던 어휘들이 ㅅ 말음으로 변하고 있다. '꽂'(花)의 'ㅈ'은 중앙어에서 유기음 'ㅊ'으로 변화하였지만 육진방언에선 변하지 않았다. 명사 ‘겇’, ‘봋’, ‘슻’, ‘짗’ 등과 용언 ‘깇-’(咳), ‘맟-(終), 및-(及), 슻- (시치다)’도 역시 중세국어와 같다. 


'ㄷ' 말음이 많다는 것 또한 대단히 특징적이다. 현대국어에서 ㄷ 말음 체언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가욷(半)'. '곧~굳(處)', '굳(坑)', '돌겯(돌꼇)', '갇(笠)', '몯(釘)', '붇(筆)', '벋(友)', '숟~수데기~숱(머리의 숱)', 등이 있다. 중세/근대국어와 동일하다. 특히 '가욷'은 현대 국어에선 사어가 된 말로 '절반'을 의미하는 고유어이고, '숟~수데기'를 통해 '숱'의 ㅌ은 기원적인 것이 아니고 'ㄷㄱ' 연쇄에서 ㅌ이 됐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매우 일부 어휘에서만 '뜯 > 뜻'과 같은 ㅅ으로의 변화가 보이며, 이는 어휘 확산의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근대국어 시기에 나타난 변화이므로 이 방언에서 볼 수 있는 변화는 문헌 기록의 변화와 평행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육진 방언은 ㅅ 되기(곽충구(2015a)는 '마찰음화'라는 용어를 썼지만 고광모(2014)에 의하면 그러한 용어는 적절치 않다)를 겪지 않은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현재 그러한 변화가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다. 


ᄐ 말음으로는  '궅(隅)', '고순돝(蝟)', '돝(豚)' 등의 체언과 '깉-(遺, 餘), 밭-(近, 濾)' 등의 용언이 있다. 궅(隅), 돝(豚), 깉-(遺, 餘)’은 중앙어에서는 사어가 되었지만 육진 방언에는 아직 남아 있다. 또 대응이 특이한 일부 ㅌ 말음과 ㅊ 말음에 대해선 앞서 언급한 "4. CVC → CC"에서 다루었다.  


비음 어간의 경우 자음 어미가 올 때 필수적으로 경음화가 일어나지 않으며, 제보자에 따라 '신고'를 [신고]로 발음하기도 [신꼬]로 발음하기도 한다. 20세기의 자료에서는 경음화가 잘 보이지 않지만 현재 점점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외의 비음과 유음, 연구개음은 크게 차이가 없으므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과거의 잔재와 살아남은 고어들   



음운과 달리 어휘는 체계성이 약하고 외부(사회, 문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잔재성을 논하기 어렵다. 또한 차용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개신파와 잔재라는 이분법적 사고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육진 방언 어휘의 잔재적 특징을 계열 어휘(수사, 인체어 등), 형태론적 특징(자립형식 유지), 의미론적 특징(고어 의미 유지)을 통해 고어적 요소가 어떻게 남아 있는지 분석할 수 있다. 흔히 "모든 단어는 자신만의 역사를 가진다(every word has its own history)"라고들 한다. 어휘 변화의 복잡성을 전제하고 가자. 


1. 계열 어휘:


계열 어휘란 쉽게 어휘가 특정 계열을 이루어 분류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곽충구(2015b)에선 수사, 인체어, 친족어 등 기초 어휘와 가옥, 음식, 농기구 등 문화 관련 어휘를 분석하였다. 


수사는 음운 면에서만 중앙어와 차이를 보인다. 대체로 표준어와 동일하나 '한나'에선 ㄴ이 첨가되었고, '두울'은 'ᄫ>w'의 변화를, '야듧'과 '얄'은 이들의 모음이 기원적으로 /jʌ/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체어에는 중세나 근대 문헌에서 볼 수 있는 어휘가 많다. '가달(가랑이)', '눈두베(눈꺼풀)', '닛검(잇몸)', '머리끼(머리카락)', '배앨(창자)', '뱃북/배뿍(배꼽)', '숫구무(숨구멍)', '신다리(넓적다리)', '오좀캐(오줌통)', '입수늙(입술)', '자시(자위)', '쟈개미(겨드랑이)', '쥬래(목청)', '콩퐃(콩팥)', '하느바디(입천장)', '허티(종아리)' 등이 그 예다. 


'눈꺼풀'을 눈을 덮는다고 하여 조어된 '눈두ᄫᅦ'의 고형일 '눈두베', '북/복'의 ㅂ과 ㄱ의 위치가 바뀌기 전인 '뱃북', 근대국어에 나타나는 '니거음'과 관련될 '닛검', 조선관역어의 "髮 墨立吉"의 '墨立吉'과 관련될 '머리끼', 입천장을 입 속 하늘이라 하여 조어된 '하ᄂᆞᆯ/입하ᄂᆞᆯ'과 관련될 '하느바디' 등. 인체어가 특히 고어적이다. 


곽충구(2015b: 193)


친족어의 특징으로는 부계와 모계의 방계 존속에 대한 호칭어가 같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또 친족 호칭어는 한자어 친족어가 적으며 '큰' 대신 '맏/몯'을, '고모/이모' 대신 여전히 '아재'를 쓰는 등 고어적인 요소가 많다. 이 점은 서북방언도 동일하다. 북부방언에 남아 있는 이러한 친족 어휘 체계는 부계 중심의 친족어 체계가 자리 잡기 이전의 체계를 보여 주는 잔재로 생각할 수 있다. 


가옥 명칭을 보자. 함경도의 전통 가옥구조는 양통식 '田' 모양의 8칸 집인데 이 구조를 반영하는 특수 어휘가 다수 존재한다.('가맷목', '강냥', '구팡', '납새', '바당', '부석니매', '샛문', '어간문', '정지', '조앙깐', '채녘', '채석', '후런' 등). 이들 중 일부('납새', '헷긑', '듕도리')는 고어의 흔적을 보이지만, 대부분은 지역 특성을 반영하며 표준어 대응어와 의미/구조 불일치하므로 잔재적 성격이 부족하다. 또 '후런'은 만주어 차용어이다. 


음식 명칭도 비슷하다. 지역 특색 음식('가랖떡', '오구랑떡', '기름굽이', '졸방떡')은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독자적으로 어휘가 발달하기도 했고, 중국 유래 음식('만튀'(←饅頭), '밴셰'(←匾食), '보교재'(←包餃子)) 어휘가 존재하기도 한다. 지역 문화와 밀접하여 잔재성 판단이 어렵다. 


농기구 명칭 역시 잔재성이 부족하다. 고어적 형태('난'(낫), '번디'(번지), '보섶'(보습), 등)이 쓰이지만, 지리/기후 환경을 반영한 고유 농기구('가대기', '후치') 및  중국 유래 농기구('드베'(←瓠種), '강차위'(←鋼錘), '쾌마우재'(←快毛子))도 확인된다. 


따라서 수사, 인체어, 친족어 등 기초어휘는 다른 방언에 비해 고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보수적 성향을 보인다 할 수 있고, 가옥, 농기구, 음식 어휘 등의 문화 어휘는 상대적으로 고어 잔재가 적고 개방적/지역적 성향을 보인다. 이 부류는 자연지리 또는 인문지리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2. 자립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 고어


중앙어에서는 사어가 되었거나 다른 단어의 일부로 화석화되어 남아있는 형태가 육진방언에서는 자립 형식 즉 독립적인 단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예시는 다음과 같다. 


끼다: '끼얹다'에서 보이는 '끼-'로, 육진 방언에서는 '화초나 곡식 따위에 물을 뿌리다', '물장난을 하며 상대에게 물을 뿌리다', '손으로 씨앗을 뿌리다'의 의미를 지닌다. 


딕: '챗딕'(채찍), '마챗딕(말채찍)' 등에서 보이듯 '치거나 두드리는 데 쓰는 도구의 자루'를 나타내며 현대국어에선 '채찍'에 남아있다. 


"딕이 여라 가지 잇습꿔니. 도리깨딕이, 마챗딕이, 쉐챗딕이. 챗잘기나 딕이."(‘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도리깻장부, 말채찍, 소 채찍. 채(鞭)의 자루 같은 것이 ‘딕’이지.)


깇다: '기침'의 어근이 되는 동사로, 중앙어에서는 이 동사가 사어가 되고 '기침'만이 남아 있지만 육진 방언에서는 아직 '깇다'가 쓰인다. 


송그랗다: '송글송글/송골송골'의 어근에 '-앟-'이 붙어 파생된 형용사이다. '살갗이나 표면에 내민 것이 작고 동그스름하다'라는 뜻이다. 


팓/푿/펃다: '푸덕이다/파닥이다/퍼덕이다'와 대응되는 동사로, 중앙어에서는 이들 용언에 '-억'이라는 접미사가 붙어 의성어가 되고 뒤에 '-이다'라는 동사 파생 접미사가 붙었다. '세차게 날개를 치다'를 뜻한다.


통: '모두, 전부, 온통, 전혀'를 뜻하는 말로, 중앙어 '온통', '통째' 등에 화석화됐다. 육진 방언에서는 명사, 관형사, 부사로 폭넓게 사용된다. 



3. 잔존 고어의 의미 및 통합 제약


중앙어와와 형태는 동일하거나 유사하지만, 육진방언에서 더 오래된 의미를 유지하고 있거나, 다른 통사적 통합(결합) 제약을 보이는 어휘가 존재한다. 


'계다'는 '일정한 시간이나 때에서 더 지나다'의 뜻을 지니는데 '기나다(<디나다)'와 뜻 차이가 있다. '거리다'는 '물에서 건지다'라는 뜻의 동사인데 문헌에서 보이는 것과 형태와 의미가 같다. '계다', '거리다'의 의미는 각각 '지나다', '건지다'가 지닌 의미 중 하나만 가지고 있다. 중앙어에서는 '계다', '거리다'가 사어가 되고, 다의적인 '지나다'와 '건지다'만이 생존하였다. 


한편, 중앙어와 형태는 같지만 의미차를 보이기도 하는데, 육진방언의 의미가 고어의 잔재일 수 있다. '밭'은 갈대밭이나 나무밭 등 넓은 지칭 범위를 가지고, '고기'(사람의 살 포함), '쟉다'(양이 적음 포함), '쟁기'(농기구 일반 지칭) 등은 중앙어보다 의미 범위가 넓으며 몇몇은 중세국어의 의미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중앙어에선 의미 분화/축소가 일어났음을 나타낸다. 


통합 제약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가즈'(<갓<ᄀᆞᆺ)은 부사 외에 명사로도 쓰이며, '별루(<별로)'는 '없다'와 같은 부정적 서술어뿐 아니라 긍정 서술어와도 쓰인다. 중세국어와 같다. 또 덛(>덧)은 단독으로 쓰이는 일이 없고 


'덛'은 중앙어(‘덧’)에서는 단독으로 쓰이는 일이 없고 ‘덧없다’에 화석으로 남아 있 다. 그러나 이 방언에서는 단독으로 쓰이기도 하고 복합어 ‘덛없다’로 쓰이기도 한다. 단독으로 쓰이더라도 '없다'와 함께 '덛이 없다'처럼 쓰이므로 통사론적 구성이 형태론적 구성으로 변하는 중간 과정을 보여준다. 




육진방언과 고문헌: 조선관역어 


『조선관역어(朝鮮館驛語)』는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중국의 관청인 회동관에 소속된 통사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든 조선어 교재이다. 훈민정음 이전에 외국인이 한국어를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어휘집으로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의 국어의 현실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남아 있는 판본 자체는 15세기 말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이는 개정본일 가능성이 높고 원본은 15세기 초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관역어』에는 아직 해독이 불가능한 난해 어휘들이 몇 실려 있으며 곽충구(2023)에서는 이를 잔재 지역의 성격을 띠는 육진 방언과 제주 방언을 바탕으로 해독하고자 했다. 이 논문에서 제시된 재구에 육진방언을 이용 가능한 세 가지 예시들을 알아보자. 다만 방언의 어휘가 과연 어디까지 소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므로 15세기 초에 과연 이러한 용어가 존재했을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띄어쓰기를 기준으로 왼쪽은 한어이고 오른쪽은 한국어이다. 한자어 뒤 괄호의 / /는 15세기 한어 재구음이다. 성조는 제외하였고 R은 권설음(retroflex)을 나타낸다. 



1. 草房 敢自直 (*가ᄌᆞᆨ + 집)


'草房'은 '초가집'을 나타내는데 『조선관역어』에서 이를 '敢自直(/kan-cï-cRjï)'으로 표기하였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를 'ᄀᆞᆯ새집' 정도로 보았는데 'ᄀᆞᆯ'은 '갈대'를 의미하고, '새'는 '풀'을 의미하는데 '새'의 경우 '푸새', '억새' 등 일부 어휘에 그 흔적을 남기고 사어가 됐다. 그렇지만 이 재구는 'ᄀᆞᆯ새'라는 합성어가 존재하였는지, 또 '自'의 성모(자음)나 운모(모음)이나 '새'를 나타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 문제이다. '自'는 『조선관역어』에선 'ᄌᆞ, ᅀᆞ, 즐, ᅀᅳᆯ, ᅀᆞᆯ' 등을 나타내는 데 쓰였기에 '새'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곽충구(2023: 806)


이때 육진 방언의 '가재기(<가자기<가작+-이)'를 떠올릴 수 있다. '가재기'는 '옥수수 따위의 곡물을 말리기 위해 임시로 지어 놓은, 초막같이 생긴 집.'을 의미한다. 또 김태균(1986)의 『함북방언사전』에는 ‘헛간’을 뜻하는 ‘가작’이 라는 말이 함북 학성에 쓰인다고 하였고, 또 리운규 외(1992)의 『조선어 방언사전』에는 ‘곳간’의 뜻을 가진 ‘가작’이 중국 길림성 화룡시에서 쓰인다고 하였다.


만약 '가작'이 '*가ᄌᆞᆨ'에서 온 것이라면, 敢自直은 '가ᄌᆞᆨ집'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육진방언의 '가작'은 집의 몸채가 아닌 '초막' 또는 '헛간' 등을 나타내지만, 본래 의미는 '초가'였을 가능성이 있다. 초막, 곳간, 헛간 등은 '초막집'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사람이 거주하는 '초가집'과는 다소 의미가 다르다. 그러나 '*가ᄌᆞᆨ/가ᄌᆞᆨ집'이 한자어 '초가(草家)'에 대체되었다면 이들의 의미가 바뀌었을 수 있다. 또, 自의 운모는 'ㆍ'를 나타내는 게 쓰였고 일반적이진 않지만 '사ᄅᆞᆷ>사람', '바ᄅᆞᆷ>바람', 'ᄀᆞᄌᆞ기>가자기(가지런히, 육진방언)' 등의 비어두 위치에서의 'ㆍ>ㅏ'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이다. 



2. 醬 自蓋 (*즐개)


'醬'은 '自蓋(/ci-kaj/)'으로 표기되었다. '醬'은 '장 장'이지만 단순히 고추장, 된장 같은 장류로만 보면 안 된다. 『康熙字典』나 『漢語大詞典』 등의 한어 사전을 보면 '醬'은 '장류에 절인 식품/반찬'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기존 연구에서는 '自蓋'가 해독상의 어려움이 있지만 일단 현대어 '찌개'로 보고 '*ᄠᅵ개'로 재구하였는데 'ᄠᅵ-(>찌-)'의 'ㅳ'은 어두자음군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自'로 표기하였을 이유가 없다. 앞서 보였듯이 自는 'ㅈ'이나 'ㅿ'을 나타내는 데 쓰였으므로 'ᄠᅵ개'로 재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육진방언과 서북방언에는 반찬을 뜻하는 말로 '즐개, 즐게' 등이 쓰이는데 '찌개'보다는 훨씬 의미적으로나 음운론적으로나 대응시키기 편하다. 



3. 裙 扯罵 (*ᄎᆢ마)


'裙'은 '치마'를 뜻하는데 '扯罵(/cRhjə-ma/)'로 표기되었다. 기존 연구에서는 '치마'로 해독하였으나 모음을 'ㅣ'로 보기 어렵다. '妻 結直 扯'를 보면 알 수 있듯이, '扯'는 '妻'의 한국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쓰였는데 妻는 '쳐'로 읽혔다. 즉 '扯'는 '쳐' 또는 이와 가까운 이중모음을 지닌 음절을 나타내는 데 쓰였을 것이다. 


따라서 '쳐마' 또는 '*ᄎᆢ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선 한어의 /ə/는 주로 15세기의 'ㆍ'나 'ㅓ'에 대응하였고 /j/가 붙으면 이중모음이 되기에 '扯'의 모음 /jə/는 'ᆝ(ᆢ)' 또는 'ㅕ'를 사용한 것이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며 "ᆞᅳ起ᅵ聲 於國語無用 兒童之言 邊野之語 或有之 當合二字而用 如ᄀᆝᄀᆜ之類 ('ㆍ'와 'ㅡ'가 'ㅣ'소리에서 일어난 소리는 우리 나라 말에서 쓰임이 없으나 어린아이의 말이나 시골 말에 간혹 있기도 하니 마땅히 두 글자를 어울려 쓸 것이다)"라고 하며 15세기의 방언에는 j계 상향 이중모음 'j+ㆍ'와 'j+ㅡ'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扯罵'를 '*ᄎᆢ마'로 재구할 수 있다. 


육진방언에서 '치마'는 '치매', '챠매', '쳐매', '쵸매' 등으로 쓰인다. 한 방언권에 위와 같은 네 변이형이 분포하는 것은 음운변화의 관점에서 꽤나 특이한데 방언 내적으로도 변화했겠지만 역사적으로 여러 이주민들이 살았다는 점에서 다양한 변이형이 쓰이게 됐을 것이다. 


한편 문헌에서는 '치마', '쵸마', '츄마' 등이 나타난다. 중앙어는 '치마'였을 것이고 '쵸마'와 '츄마'는 방언의 영향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곽충구(2023: 817)


이렇게 되면 '치마'의 방언 분화형은 'ᅵ-ㅑ-ㅛ-ㅕ-ㅠ'의 대응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대응을 보이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기에 긴 역사 동안 시기와 지역 또는 체계를 달리하여 변화를 겪은 것이라 보아야 한다. 


육진 방언에서는 '마'가 '매'로 나타나는데 이는 저번 편에서 밝혔듯이 육진방언의 개음절 명사에는 '-이'가 결합되기 때문이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적  'ᆝ(ᆢ)'이라는 이중모음은 중앙어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방언에 이 음운이 존재한다는 점과 그 제주 방언의 어휘에 해당하는 다른 지역의 방언에서 'ㅑ~ㅕ'의 대응을 보이므로 우리말의 어느 시기에는 'ᆝ(ᆢ)'라는 음소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음소가 훈민정음 창제 이전 'ㅕ'로 합류되었고 방언에선 ㅕ로 합류된 'ᆝ(ᆢ)'과 ㅕ로 합류하지 않고 남은 'ᆝ(ᆢ)'로 분화되었다. 그리고 후자의 'ᆝ(ᆢ)'가 나중에 'ㅑ'로 변한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육진 방언의 '쳐매'와 '챠매'를 설명할 수 있다. '쵸매'는 ᆝ(/jʌ/)의 뒤 ㅁ의 영향으로 ㆍ(/ʌ/)가 'ㅗ'로 역행적 원순모음화를 겪은 것으로 파악 가능하다. 이는 문헌의 '쵸마'도 마찬가지다. 


'ᆝ'가 'ㅑ'로 합류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18세기에 'ㆍ'의 제2차 음가 소실 'ㆍ>ㅏ'의 비음운화 때문으로, 이때까지 'ᆝ'가 존재하였던 지역에서도 아래아의 음가가 사라지자 자연스레 아래아를 지닌 이중모음인 'ᆝ'도 'ㅑ'로 바뀌며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ᆝ의 방언권을 나누면 


15세기 이전에 ᆝ>ㅕ가 일어나 이중모음 체계에서 ᆝ가 소멸된 방언권인 중앙어

18세기 중엽까지 ᆝ를 유지하다 18세기 그 시기쯤 ᆝ>ㅑ가 일어나 ᆝ가 소멸된 방언권인 평안/함경 방언

'ㆍ'가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아 'ᆝ'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방언권인 제주 방언 


이렇게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치매'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단모음 ㅣ만 있다는 점에서 이중모음을 지닌 '챠매', '쳐매', '쵸매'와 비교하면 꽤나 뜬금없다. 중앙어를 차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중앙어의 '치마'를 설명함에 있어 ᆝ(/jʌ/)가 ㅣ(/i/)로 변했다고 보기에는 음운론적으로 그 과정을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는 j계 이중모음 중 ㅣ와 연결될 만한 이중모음이 있음을 알고 있다. 바로 ᆜ(/jɨ/)이다. 만약 /jɨ/의 ㅡ가 ㅣ로 전설화를 겪었다면 /ji/라는 마치 ㅣ를 길게 장음으로 발음하는 듯한 소리가 되고 여기서 '치마'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반모음 j는 전설성 반모음이기에 'ㅡ'가 전설화되었다고 설명하면 된다. 


이때 육진방언에서 '저녁'을 '지녁'이나 '지냑'이라고도 한다는 점이 힌트가 된다. '저녁'은 방언형에 'ㅑ~ㅕ' 형이 분포하고, 결정적으로 제주 방언에는 어두 모음이 'ᆞ'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ᄌᆢ냑>저녁'이라는 과정을 상정할 수 있다. 또 다른 'ㅕ~ㅣ'의 대응을 얻었다. 그러나 '*ᄌᆢ냑(cjʌnjak)'에서 '지냑'으로 가는 과정을 설명함에 있어 '*ᄌᆜ냑(cjɨnjak)'을 설정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만 '지냑'이라는 형태가 성립한다. 


'치마'는 15세기 국어에도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미 훈민정음 창제 이전 '*tshjʌma>tshjɨma'라는 'ᆝ>ᆜ'의 고모음화가 이루어졌고, 다시 전설모음화로 '*tshjɨma'가 'tshjima(치마)'가 된 것이다. '치마'는 '*ᄎᆢ마'와 비교하면 모음조화에 맞지 않는다. 즉 모음조화가 맞는 '*ᄎᆢ마'에서 맞지 않는 '*ᄎᆜ마'가 되었음은 꽤나 분명하지만, 이러한 고모음화를 입증할 만한 근거나 음성적 동기를 찾기 어렵다. 한 가지 편법으로는 이들을 '형태는 다르나 동일한 어원에서 변화한 한 묶음의 단어'인 쌍형어(doublet)로 보는 법이 있다.



위에서 얘기한 변화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곽충구(2023: 818-819)


이렇듯 여러 ㅕ-ㅑ-ㅠ-ㅛ의 이중모음을 지닌 형태들이 보이는 것은 쌍아래아를 재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참고 문헌 


곽충구 (1998), <로한ᄌᆞ뎐>의 韓國語와 그 轉寫에 대하여, 이화어문논집 10, 이화어문학회

곽충구 (2004), 중앙아시아 고려말의 역사와 그 언어적 성격, 관악어문연구 29,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곽충구 (2005), 육진방언의 음운변화 - 20세기초로부터 1세기 동안의 변화 -, 진단학보 100, 진단학회 

곽충구 (2007a), 중앙아시아 고려말의 자료와 연구, 인문논총 58,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곽충구 (2007b), 동북방언의 어휘 -함북방언을 중심으로-, 방언학 5, 방언학회

곽충구 (2012), 육진방언의 음성과 음운사, 방언학 16, 방언학회

곽충구 (2015a), 육진방언의 어간말 자음과 그 변화, 방언학 22, 방언학회

곽충구 (2015b), 육진방언 어휘의 잔재적 성격, 진단학보 125, 진단학회 

곽충구 (2023), 조선관역어(朝鮮館譯語)의 해독과 방언, 한글 84-3, 한글학회

김한별 (2016), 국어 음운사에서의 ‘/ㄱ/ 복귀’ 현상에 대한 해석, 국어사연구 23, 국어사학회

백두현 (1994), 이중모음 ' .. ' 의 통시적 변화와 한국어의 방언 분화, 어문론총 28, 한국문학언어회

소신애 (2005), 공시적 음운 변이와 통시적 음운 변화의 상관성, 서강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소신애 (2008), 중세 국어 음절말 유음의 음가와 그 변화 - 방언 자료와 문헌 자료에 근거하여, 국어학 53, 국어학회

소신애 (2012a), 국어의 ㅿ>ㅈ 변화에 대하여, 진단학보 114, 진단학회  

소신애 (2012b), 점진적 음변화로서의 ㅅ>ㅿ - 방언 반사형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 국어국문학 162, 국어국문학회

소신애 (2013), 모음 간 ㄱ 약화·탈락에 대하여 - 방언 구술 발화 자료를 중심으로 -, 방언학 18, 방언학회 

소신애 (2023), 중세국어 ‘ㅎ 말음 체언’의 말음 소실과 그 흔적 -함북 육진 방언을 중심으로-, 한글 84-1, 한글학회

rare-쉬라몬 rare-디지몬 어드벤처

0 XDK (+45,000)

  1. 10,000

  2. 10,000

  3. 5,000

  4. 10,000

  5. 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