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연구를 하는 연구자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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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우리는 언제 창의성을 연습해야 하는가
2. 박사란 무엇인가
3. 학문이란 언어인가
4. 연구자란 무엇인가
1, 우리는 언제 창의성을 연습해야 하는가
과거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 하나가 바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였습니다. 다소 결론이 충격적이면서도 우리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질 않았는데, ‘단순 암기식으로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내용을 몽땅 머리에 외우고, 심지어 녹음을 해서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필기하고 암기하여 그대로 답안지에 적는 것’이 전국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 곳에서도 4.3점 만점의 아이들 중 4.0점을 넘는 학점을 받는 비결이었습니다. 이 학생들은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얼마나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학생인 것 같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크게 당황하면서, 굉장히 불편함을 느끼면서 스스로 그런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했으며, 주변에 보이는 그런 능력이 강한 창의적인 학생들은 하나같이 학점이 낮았었다고 답했다는 것 또한 충격을 주면서도 우리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질 않습니다.
여기에는 약간 웃픈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이, 당시 감옥처럼 갑갑했던 고등학교를 탈출하려고 했던 저를 어떻게든 달래시던 선생님들과 교수님들은 ‘대학은 다르다, 대학 가면 달라진다’ 라고 위로를 해주셨기에 그나마 위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아, 한국에서는 대학교마저 다르지 않구나’ 라고요… 다행히 최종 학력이 중졸이 되는 것은 막고 어찌어찌 고등학교를 버티고, 재수 생활을 거쳐서 대학을 오게 된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당연하게도 이러한 학습 방식과 교수법을 비판하며 대안을 찾고, 특히 미시간 대학생과의 비교 연구, 질적 연구를 통해서 창의성과 지식의 종류에 대해서 깊이 탐구를 합니다.
제가 논하고 싶은 것은 책의 세세한 내용이라던지, 책이 정말 정확한 연구를 수행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의성에 대해서 나름 설득력과 논리를 가지고 반문을 하던 어느 학생의 인터뷰가 기억이 납니다.
그 학생은 요리에 비유를 하면서, 우리가 아직 학부생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며 아직 우리는 ‘암기를 하고 수용적으로 무비판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견습생의 신분’에 비유를 하였습니다. 마치 처음 요리를 배울 때 냉장고에 어떤 식재료가 있는지를 우선 수용적으로 지식으로서 습득을 해야 응용이 가능하고 요리가 가능한 것처럼, 일단 우리는 학부생이고 교수 기준에서 갓난 아기 수준이니 일단 무작정 암기를 하고 배워야 뭔가를 써먹을 수 있는 단계 아니겠냐고요.
이 논리는 상당히 그럴 듯하여 제 마음에도 오랫동안 남았고, 이번 기회에 ‘대체 그럼 언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제 나름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위와 같은 논리의 문제는 무엇이냐면, 그럼 도대체 언제부터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느냐? 라는 반문에 대해서 적절히 답을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보편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기존에 없던 지식을 만들거나, 아니면 새로운 프레임으로 기존의 지식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혁신을 가져와야 의미가 있는 박사 과정에 도달하였을 때 비로소 창의성을 발휘를 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기에, 본격적으로 비판적 사고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럼 박사 과정에 도달할 때까지 주구장창 수용적이고 무비판적인, 암기 위주의 교육을 받던 사람이 박사 학위를 시작했다고 하루 아침에 창의성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기존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새로움을 창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전 들었습니다.
뉴턴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항상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멀리 내다보고 살아갑니다. 고전 역학을 창시하고 집대성한 위대한 물리학자인 뉴턴 또한 당대의 천체물리학자들이 수집한 천문학 기록 등을 참고하지 않았더라면, 지구가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는 믿음 속에서 지동설에 대한 근거를 조금씩 모으고 있던 학자였다면 분명 고전역학을 집대성한 <프린키피아>라는 역작을 집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미 그가 탄생하기 이전에 수많은 학자들이 이 세계에 대해서 나름의 관찰과 토론을 해왔었고, 어느정도 알려진 사실을 통해서 뉴턴은 그 위에 올라가서, 선대 학자들의 어깨 위에 올라가서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었던 것이죠.
문제는 우리가 무조건 거인에게 종속되어, 앞서 간 학자들의 이론을 무조건 다 외우고 공부를 하기에는 이때까지 너무나도 많은 학자들이 위대한 발견과 발명을 했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해도 고등학교까지, 물리학에 대해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까지 매우 러프하고 간략하게 중요한 것들 위주로 빠르게 훑고 지나감에도 상당히 많은 시간을 암기와 학습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대학에 와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빠르게 훑고 지나왔던 중요한 개념들과 위인들의 사상을 이제 세세하고 복잡하게, 깊이 있게 배우기 시작합니다. 인류 역사가 6천년 정도 기록이 되었고, 우리의 삶이 아마 100년 정도이니 평생동안 인류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도 모자를 정도로 공부할 양이 많이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내일은 인류가 하루만큼 더욱 진보하여 새로운 지식을 추가하였을 테니, 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제자리에 있기 위해서 점점 더 빨리 달려야만 겨우 제자리에 있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유명한 천재 물리학자의 말만 들어도 어쩌면 우리는 평생 암기와 수동적 학습을 해도 모자라는 시대에 온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볼 때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없다”라고 했으니, 우리는 평생을 양자역학 하나에 집중을 하고 온전히 이해를 하기 위해서 투자를 해도 모자른 삶을 살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런 식으로 따지면 우리는 항상 초보이고,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이고, 전체 인류가 쌓아온 지식에 비해서 너무나도 적게 알고 있으며, 심지어 공부를 한 것을 까먹기도 하니 평생동안 수동적으로 암기를 해도 모자를 정도로 많은 지식을 공부만 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다 보니 저는 중간에 생각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하고, 과연 내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하고, 내 나름의 지식을 활용하여 비판적 사고력을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저의 결론은 다름 아닌 ‘지금 당장’ 입니다.
우리가 중학생 때 배우는 피타고라스 정리는, 피타고라스가 살던 당대에는 최신의 이론이었으며 당시 인류 지식의 최전선이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우리가 초등학생 수준의 지식을 알고 있을 때, 오로지 관찰과 유추, 상상과 생각을 통해서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한 것이죠.
피타고라스 정리에서 흥미로운 점은 왼쪽 그림처럼 타일 바닥을 보고도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혹시 모르죠 피타고라스가 우선 이런 관찰을 통해, 직관적으로 직각삼각형의 두 변과 빗변 사이의 관계를 알고, 그 다음 엄밀하게 수학적으로 증명을 한 것일 지도요.
피타고라스뿐만이 아닙니다. 예컨데 우리가 고등학생 수준의 지식을 공부를 했다면, 과거 어느 시대 인류의 최전선의 지식과 일치하던 시기를 특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우리가 고등학생때 배운 내용을 가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추론과 상상,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을 나름 동원하여 우리 기준으로 대학생 수준의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거나 정리를 했겠죠. 우리가 교육 과정에서 과거 학자들이 발견한 내용들의 요약본을 빠르게 훑는다는 점에서 바라본다면, 지금 이 순간 대학생인 우리의 지식 수준도 과거 어느 인류 시대에게는 당대 최고의 학자가 가진 최대의 지식이었을 것입니다. 그 학자는 지금 우리가 대학생으로서 가진 지식을 가지고 여러가지 상상과 생각, 유추를 하고 창의성을 발휘하여 또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고 이 세계를 더욱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었겠죠.
어제까지는 팔 운동만 주구장창 하다가 갑자기 오늘부터 마라톤을 시키면 잘 못하는 것처럼, 박사 과정이 되어 본격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새로운 논문을 써서 발표를 해야할 때 비로소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면 과연 창의성을 잘 발휘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앞선 학자들이 쌓아 올린 연구들은 우리가 평생 수동적으로 암기를 해도 다 못 외울 정도로 많은데, 단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때 초보라는 이유로, 일단 냉장고에 어떤 식재료가 있는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만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력을 죽이고 수동적으로 암기에만 몰두한다면 과연 장기적으로 뛰어난 학자로 성장할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최근에 저는 신경과학을 공부하면서 창의성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뇌에는 scale free라는 특성의 유무가 존재하고, 그 scale free 특성에 따라 인간의 뇌가 강건하고 효율적으로 잘 연결이 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그림으로도 그리고 시각화를 열심히 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비슷한 아이디어가 존재해서 이미 제가 그린 그림보다도 더 예쁘고 또렷한 그래프로 나타낸 논문이 존재하더군요. 한편으로는 제 아이디어가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기에, 제가 새로운 논문으로서 발표할 수 없다는 점에 실망스러웠으나 제 추론과 상상력, 창의성이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단지 타인이 보기에는 제가 그 논문을 보고 베낀 것인지, 아니면 제 스스로 자력으로 기존의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창의성을 동원하여 추론을 한 것인지 구분을 하지 못하기에 저의 논문을 accept하지는 않겠지만, 저 스스로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창의성을 발휘하여 그 결론에 도달했는지, 단순히 암기와 수동적 학습으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보고 배웠는지 말이죠.
심지어 암기를 위한 공부에서조차 이런 창의성을 발휘한, 긴 과정을 거쳐 공부에 몰입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욱 암기에 효과적이라는 것이 경험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예컨데 F=ma라는 공식을 단순히 외운 학생과, 미적분 개념을 활용해서 F=ma라는 식을 여러 방식으로 유도해보고, 그 의미를 곱씹어보고, 수학적 증명을 직접 해가며 창의성을 발휘해 유추를 한 학생은 그 뇌리에 더욱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이제 좀 이해가 가실까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다는 말은 단순히 거인들의, 선대 학자들의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아닙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는 과정 속에서, 선대 학자들은 어떠한 사고 과정을 통해 그러한 창의성을 발휘했는지, 왜 그러한 결론을 내렸는지, 당대에 어떤 지식을 활용하여 무슨 사고법을 적용하여 합리적인 추론을 내리고 인정을 받았는지를 알아가면서, 수용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암기하고 공부함과 동시에 창의성을 동시에 발휘하고 연습을 하면서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남들이 다 알아내어 증명을 했고, 인터넷과 교과서에 있는 지식을 혼자 밤새 끙끙거려서 유추하고 증명해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 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목적지향적으로 우리가 특정한 도구를 활용하고 어떤 공식을 활용해서 문제를 풀 때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남들이 증명하고 유용하다고 정리를 해둔 것을 잘 골라서 응용하는 것이 하나의 좋은 태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학문을 추구하고 학자로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은, 항상 매 순간 새로운 공부를 수동적으로 함과 동시에 능동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연습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박사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석사나 박사 등 학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취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흥미롭게도 전 취업의 관점에서 박사 학위가 얼마나 불일치하는지, 그럼 대체 박사를 왜 하는지, 어떤 사람이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고졸자보다는 대졸자가 더욱 취업에 유리하고 성공적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며 이는 최소한 한국에서는 확실히 맞는 말입니다.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적당한 고등 교육을 받은 인력을 끊임없이 요구했고 대학은 그에 맞춰 인력을 공급해왔으며, 고학력은 곧 높은 연봉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럼 대졸자들 중에서도 석사 학위나 박사 학위처럼 더더욱 더 많은 공부를 오랫동안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취업도 더 잘되며 더욱 높은 연봉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이 부분에 오자마자 헛웃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을 것입니다. 오히려 대학졸업자의 취업률은 석사 졸업자나 박사 졸업자의 취업률보다 높고, 게다가 역설적으로 대졸에서 석사졸, 박사졸로 갈수록 거꾸로 취업률이 더욱 떨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때문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이어지는 학력에서는 학력과 취업률이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그 이상의 학력에서는 오히려 떨어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보입니다. 전 오늘 박사 취업에 대한 것보다도(또한 제가 박사 학위 취득은 물론 박사 취업도 안 해보았기에)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보아 박사의 본질에 대해서 나름 유추한 것을 설명해보겠습니다.
제 자랑을 하나 하자면, 저는 삼반수를 했습니다. 재수 생활을 하고, 그 재수 성적표를 가지고 부산대를 1학기 다니고 나서 바로 휴학을 하고 삼수를 하는데 1학기 휴학을 했으니 반수라서 삼반수이지요. 그때 영어 선생님께서 저를 극찬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어가 절대평가가 되었는데 저는 평소 영어를 잘했기에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전략적으로, 영어 수업 시간에만 영어를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제가 잘 못하는 수학과 과학에 집중 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영어 수업 시간에는 매우 열심히 공부를 했었습니다. 당시 제 태도를 좋게 봐주셨는지 영어 선생님과 면담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전 부산대에서 1학기를 다닌 후였는데, 그때 ‘컴퓨팅 사고력’이라고 해서 컴퓨터처럼 사람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정확하고 계산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에 대해서 배웠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업을 들으니, 제가 수학을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되더군요. 예컨데 전 같은 문제를 풀 때 어제 풀 때랑 오늘 풀 때가 달랐고, 항상 풀이가 중구 난방에 낙서가 많이 있었습니다. 반면 잘하는 친구들은 항상 풀이가 일관되었고, 과학적이며 특정한 문제 상황과 조건에 대해 기복 없이 정확한 풀이법을 간결하게 적용하여 빠르게 풀어냈었습니다.
이와 같은 관찰에 더해 제가 스스로 잘하는 영어와 비교해보니, 공부하는 스타일이나 시험을 푸는 스타일 등에서 다양한 차이가 있었고, 또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과 저의 공통점 차이점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당시 영어 선생님께 면담을 하면서 제 학습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결정적으로 이런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학습은 과학적이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말에 대단히 좋아하시면서 그 영어 선생님은 “너는 삼수 2년 동안 이 세상의 도를 터득하는구나. 맞다 이 세상의 도가 어디 특별한 곳에 있냐 수능에도 도가 있다”라고 칭찬을 해주셨었습니다. 재수 학원에서 집중적으로 2년 동안 수능이라는 시험에 대해서 제가 못하는 부분과 잘하는 부분을 비교 관찰하고, 못 하는 부분을 잘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방법을 체득하고 스스로의 습관을 고친 것이 최초의 방법론에 대한 제 깊이 있는 고찰이었으며 이때의 깨달음은 이후 동국대학교 입학 이후 <수능 국어 비문학의 과학적 학습법>이라는 제목의 800쪽짜리 전자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제가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방법, 방법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날 동국대 물리학과의 조훈영 교수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박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박사 학위로 먹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만 해도 박사 학위 전공 분야랑 학부생들을 가르치는 분야가 다르다. 박사의 의의는 최고를 경험해보는 것이다” 라고요.
저는 이 말을 듣고 굉장히 의아했습니다. 물론 가끔 박사 학위 분야가 일치하여, 제 지도교수님처럼 박사 학위 분야를 그대로 따라가서 교수 생활을 하시는 분도 계시긴 합니다만, 박사 학위 분야는 매우 세밀하고 좁은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하기에 당연히 확률적으로 그 분야에 딱 맞는 일자리가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박사 학위를 왜 받고, 왜 그렇게 깊이 있는 공부를 할까에 대해서 고민을 하였고 나름 비유를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대학교에 들어와서 대략 4년간 물고기를 예로 들어 사냥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웁니다. 어느 학과에서는 조류를 잡기도 하고, 어느 학과에서는 토끼를 잡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4년간 특정 동물을 잡았다고 해서, 평생동안 그것만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4년간 그저 단지 예시에 불과한, 어느 특정 동물을 대상으로 했을 뿐이지 본질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동물을 사냥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배우면서 사냥에 대한 깊은 본질을 얻고 통찰력을 깨우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달을 가리킬 때 달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죠. 우리는 달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컨데 수능에서 수학 국어 과학 영어 등을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는데, 매년 50만명의 학생들이 모두 제각각 수학교육과 국어교육과 과학교육과 등에 가지 않습니다. 제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전 <수능 국어 비문학의 과학적 학습법>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수능 국어 비문학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과학적으로 글을 잘 읽고 핵심을 빠르게 파악할까에 대해서 정리를 했습니다만 평생 국어교육을 하면서 살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저에게 주어진 소재가 수능 국어였고, 그것을 나름 잘 하였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통찰을 얻었기에 그 내용을 책으로 잘 정리하여 남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저는 박사 학위를 가지지는 않았으나 그런 면에서 박사 학위를 따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제가 가고 싶은 존스홉킨스의 신경경제학과 이대열 교수님은, 학부로는 경제학과를 나왔으며 석사는 심리학과를 나왔고 박사 학위는 고양이의 시각 피질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원숭이와 컴퓨터를 활용하여 인간의 decision making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계시죠. 박사 학위때 고양이를 연구했다고 해서, 평생동안 반드시 고양이만 가지고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는 단지 하나의 예시일 뿐이고 고양이의 시각 피질을 하나의 예시로 삼아서 깊이 있는 연구와 공부를 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통해 교수가 되어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태 물고기가 유망했고 물고기 사냥법만 배우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시대인 줄 알았으나 어느 날 물고기가 멸종하고 갑자기 조류가 유행할 수 있습니다. 그때 물고기 사냥을 통해서 사냥에 대한 깊은 본질을 깨우친 사람은, 남들보다 앞서서 사냥의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더욱 빠르게 조류라는 새로운 유행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고 선구자가 될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아! 그래서 물리학과 교수님이 최고를 경험하라고 하신 듯 합니다. 괴짜 사업가 일론 머스크는 재료공학도 출신이지만, 지금은 AI나 뉴로모픽 등 재료공학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까지 손을 뻗쳐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재료공학 출신이고 전공이니까 평생 재료공학만 하고 살아야 한다? 천만에 말씀이라는 말이죠.
굳이 멀리 박사까지 갈 것 없이 저희 학과의 선배님들 이야기만 들어봐도 웃깁니다. 저희 학과는 재료공학부로 컴퓨터공학이나 코딩, 프로그래밍을 거의 배우지 않지만, 막상 저희 학과 선배들을 뽑은 곳에서는 면접에서까지 하드웨어 관련된 전공 지식을 중점적으로 묻더니 막상 채용하고 나서는 소프트웨어 분야 공부를 시키고 코딩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하더군요. 회사 입장에서는 코딩 요만~큼 조금 미리 알고 있는 사람보다도, 다른 분야라도 좀 깊이 있게 공부를 해본 사람이 더 중요하고 유용하다는 것입니다.
3. 학문이란 언어인가
저는 어려서부터 과학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보통 제 질문과 호기심을 해결해주었거든요. 태양계에서는 어떤 행성들이 돌고 있는지, 그런 태양계가 어째서 우리 은하를 돌고 있는지, 티눈은 왜 피부에 생기는지, 왜 아침 하늘은 파란데 저녁 하늘은 노란색에 주황색인지 등등.
어렸을 때 제 눈에 대부분의 현상들은 주로 과학으로 쉽게, 특히 화학으로 자주 설명이 되었습니다. 마침 저를 가르치던 과학 과외 선생님도 화학과 출신이셨기에 화학에 대해서 알게 모르게 많이 배우고 있었고, 학과도 화학을 주로 사용하는 재료공학부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20살이 넘어서 대학에 들어오고 본격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점점 제 초점은 인문학으로 옮겨갔습니다. 사람들은 주로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할까, 왜 우리는 분노와 화를 내는 것일까, 이 논쟁에서 어느 쪽이 타당한가, 민주주의는 왜 최선의 제도로 정착이 되고 널리 퍼졌을까 등등.
저는 무의식적으로 과학이나 인문학들을, 이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이자 렌즈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안경이나 렌즈, 시각에 대한 속담이 많이 있습니다. 뭐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 라던지, ‘장님 코끼리 만진다’ 라던지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전 이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색상의 렌즈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면, 다 같이 모여서 난상 토론을 펼치면 결국 투명한 렌즈로 바라보았을 때의 세상을 그대로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코끼리의 각 부분을 모두 만져본 장님들이 다 같이 모여서, 각자 자신이 만진 부분을 묘사하고 그것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면 결국 우리는 코끼리를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코끼리를 완전하게 이해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유명한 언어 중 하나는 바로 물리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시적이던 시기에, 왜 달은 지구로 떨어지지 않고 사과만 지구 아래로 떨어지냐에 대해서 지구가 이 우주의 가장 맨 밑바닥이라고 생각하였고, 우리가 바라보는 천장인 우주는 일종의 천국처럼 생각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서술하던 세계관에서, 아이작 뉴턴이라는 걸출한 학자가 수학을 이용해서 객관적으로 엄밀하게 왜 달은 떨어지지 않고 사과만 떨어지는지 등을 잘 서술한 것이죠.
지금도 생각해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어떻게 깰 수 있었을까, 혹시 뉴턴은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지금 바라보아도 당대의 기준에서 혁신적이었고, 객관적이고 엄밀한 렌즈로 이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고전역학이죠.
문과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수학을 자주 사용하며 객관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학문은 다름아닌 경제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과 못지 않게 수학을 많이 쓰고, 단순하고 명료한 전제 조건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벌어지는 가격 책정 문제, 정책의 효과에 대한 분석, 수요 공급 패턴 등을 조사했죠.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기에는 당시 행동주의와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아, 인간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새로운 전제를 제시한 행동경제학이 유행하기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참고로 제가 최근 읽었던 경제학 서적 중 가장 재미있던 서적은 홍콩과기대 김현철 교수님의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우리가 선의에 의해서, 애매모호한 바람과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진 정책이 실제로 분석을 해보니 얼마나 허무맹랑했으며 비효율적이었고, 역효과를 냈으며 심지어 잘못된 정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큰 악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흥미롭게 읽었던 책입니다.
예전에 어느 일본인의 트위터 글을 보았는데, ‘공부라는 것은 이 세상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는 것이다’ 라고 쓴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약 영어를 잘 한다면, 영어로 된 논문이나 책을 읽고 이해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끼리 소통을 하고 제가 영어로 아이디어를 전파할 수 있습니다.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를 잘 한다면 일본인들과 소통하고 대화를 잘 할 수 있겠죠. 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학문, 예컨데 철학을 잘 하면 철학 세미나나 학회에 가서 관련 전공자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고 어려운 어휘나 전문 용어를 구사하며 막힘없이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 우리가 만약 수학을 잘한다면, 우리가 자연어로 표현하기 힘든 엄밀한 개념들도 수학이라는 객관적인 언어로 표현을 해서 남들을 설득할 수 있고, 심지어 인도 사람이나 중국 사람처럼 자연어가 안 통하는 사람과도 수학 기호로서는 서로 통하며 의미를 전달하고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어를 잘 하면 그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들과 잘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볼 때, 어느 학문을 잘 한다면 그 학문을 하는 사람들과 잘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전 학문이 바로 각자 이 세상을 바라보는 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어떤 학문을 공부하고 한다는 것은 그 학문에 대한 다양한 능력, 특히 독해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저는 철학에 대한 깊은 식견이나 연습, 내공이 없기에 비트겐슈타인의 저서를 읽으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즉 저는 철학에 대한 독해력이 부족한 것이죠. 반면 철학과 교수님들은 비트겐슈타인은 물론 철학 서적들을 막힘없이 읽고 이해하며, 일반인에게는 설명이 필요한 어렵고 함축적인 용어도 굳이 설명 없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독해력의 차이인 것이죠.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하고, 해당 학문의 특성을 바탕으로 능수능란하게 어떤 사건이나 이 세계의 속성에 대해서 기술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 학문의 특장점이 모두 다 다르고, 결국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학문들은 각자 일종의 언어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어릴 때에는 컴퓨터 언어가 도대체 왜 언어인지, 영어나 국어가 언어지 대체 저런 이해하기 힘든 수식들이 왜 언어라고 불리는지 이해가 안되었지만, 이제는 인간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의사소통 도구라는 점에서 충분히 언어로서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서 다른 인간과 연결해주는 다양한 도구들, 철학이나 미학이나 심리학이나 통계학 등등 모두 다 각자 언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의견에 대해서 철학과 교수님들이나 신경경제학 교수님은 이구동성으로 비트겐슈타인 후기 철학을 추천해주시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 읽어보거나 깊이 파보지는 못했습니다.
4. 연구자란 무엇인가
ㅍ자, 좀 비순수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우선 좋은 대학원에 있는 사람은 좋은 연구자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대학원을 가기 위해선 뭐가 필요할까요? 누구는 학점, 누구는 자격증, 누구는 어학 성적 등을 말하겠지만 전 그게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원에 가기 위해서는(특히 미국을 기준으로 해서는) 필요한 것이 거기서 잘 할 수 있다는 확신, 보증과 신뢰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것을 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아마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크게 2가지가 필요할 듯 합니다. 1. 그냥 실제로 잘 한 실적. 2. 실제로 잘 하지는 못했으나 그 과정에서 충분히 잘할 수 있는 퍼텐셜을 강하게 보여준 노력.
자 그렇다면 1번과 2번에서 말하는 실적이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논문입니다. 연구자들은 기존의 논문을 통해서 공부하고, 거기서 새로움이라는 가치를 더하여 자신의 논문을 씁니다. 어떠한 논문도 그 당시 기준으로 반드시 새로움을 가져야만 합니다. 리뷰 논문이 되었든 실험 논문이 되었든, 기존의 논문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았든, 아니면 기존의 연구들을 전부 다 부정하는 충격과 공포를 주든 간에 반드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세세하게 들어와서 좋은 논문이란 무엇일까요? 논문은 나의 주장과 근거를 질서정연하게 양식에 맞춰서 정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논문은 탄탄한 근거를 바탕으로 훌륭한 주장, 새롭고 참신한 주장을 잘 한 것이어야 합니다. 결국 잘게 쪼개고 쪼개고 들어가면 연구자는 근거와 나름의 논리, 설득력을 통해서 글이 되었든 수식이 되었든 영어가 되었든 간에 무언가를 설명하고 납득을 시키고 이해를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학부생에게는 잘 하면 강의를 잘 하는 사람으로, 학자들과 교수들에게 잘하면 논문 실적이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이겠죠.
요새 기업에서 채용형 인턴을 자주 말하더군요. 확실히 저도 미시경제학이나 노동경제학을 공부해본 것은 아니지만, 대충 듣기로는 새로운 사람은 최소 2년에서 3년간 무조건 해당 조직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합니다. 어떤 조직이 되었고 어떤 사람이 되었든지 간에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서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2년에서 3년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으로 기업에서 손실이 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리한 기업들은 그 돈을 아끼기 위해서 이제는 인턴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정직원은 아니지만 정직원스러운 업무를 쥐어주고, 한번 일을 시켜보거나 일을 처리하는 속도를 평가하거나, 아니면 미리미리 인턴 시절, 정직원의 업무를 숙달시켜서 바로 투입할 수 있게끔 준비를 하는 과정을 통해서 비용을 아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개인적으로 취업난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기업과 국가에서 반 정도씩을 서로 양보해서 채용형 인턴이라던지 현장실습 위주의 인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이 이제는 대학원에까지 강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학부생 인턴이죠. 학부생이 학점도 좋고 스펙도 좋고 어학 성적도 높고 전교 1등도 하고 공모전도 하고 자격증도 취득하고 다 좋아서 막상 뽑아 놓았더니 학부생 시절에 공부를 하는 것과, 대학원 시절 연구를 하는 것은 상당한 괴리가 있기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기대한 만큼 실적을 내지 못하는 불일치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죠. 사실 학부생의 공부나 업무 처리는 일반 직군의 개발에 좀 더 가깝고, 대학원생의 연구는 연구 직군에 가깝습니다. 연구 및 개발은 그저 뭉뚱거려서 이야기했을 뿐 서로 엄밀하게 다른 개념이고 물과 기름처럼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미리 대학원생 경험을 해보고, 특히 랩실이라는 것은 지도교수가 한 명의 CEO이자 리더로서 역할을 하는 작은 기업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마치 앞에서 언급한 채용 연계형 인턴처럼 미리 대학원생을 학부생 시절에 확보(납치?)해서, 일을 시켜보고 잘 처리하는지 평가도 해보고, 또 실제 일을 시키면서 교육도 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것입니다.
마치 계단을 오르듯, 좋은 대학원, 좋은 석사 과정을 가기 위해서는 미리 학부 인턴생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가능하면 실적도 쌓는 것이 좋고, 그것을 바탕으로 좋은 석사 과정을 거치면서 실적을 쌓고 그것을 통해 한 계단 올라가서 박사를 밟는 식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듯이 성장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일반적인 패턴일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첫 단추부터가 도저히 맞질 않더군요. 저는 일단 연구자로서 꿈을 정한 뒤, 좋은 대학원에 가고 싶어서 일단 논문을 읽던 논문을 쓰던 실험을 하던 코딩을 하던 연구를 하던 뭔가 경험을 쌓기 위해서 학부 인턴생을 엄청나게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메일도 많이 써보았고 면담도 많이 해보았는데 전부 다! 광탈을 해버렸습니다.
여기서 살짝 멘탈이 무너진 것이, 제 지도교수님은 물론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학부 인턴생의 기회를 얻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고, 심지어 좀 어렵다면 무급으로라도 들어가서 도제식으로 교육을 받는다는 느낌으로 가서 내가 용역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받는다고 생각하고 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셨거든요. 저는 여러 랩실에 광탈을 하면서 '내가 학부 인턴쉽마저도 얻지 못할 정도로 헛살았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서 저를 나름 좋게 평가해주시는 감사한 교수님들의 여러 객관적인 평가가 있었습니다. 우선 장환영 교육학과 교수님은 1. 일자리는 특정한 스킬을 요구하지만 구직자들은 모든 일에 대응을 하고 준비를 해야하기에 일자리와 사람이 매칭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라고 하셨으며, 통계학과의 안홍엽 교수님은 저를 좀 더 높이(?) 평가하셔서 2. 학생이 학생 설계 전공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 아니냐고(물론 이 말은 교육학과 교수님도 해주셨습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했는데 거기에 맞는 일자리가 없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래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를 종합해서 제 지도교수님과 오랜만에 만나서 말씀을 드리니, 2번을 크게 공감하시면서도 말씀을 하시는게 3. 학부 인턴생은 정해진 role이 뚜렷하게 없고 랩실마다 교수님마다 바라는 바가 너무나도 다르다. 어떤 교수님은 바라는 것이 없고 전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약속만 잘 지키고 출석만 잘 하고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교수님도 계시고, 어떤 교수님은 예비 석사생으로 준 석사급의 열정은 당연히 깔고 그 정도의 스킬과 지식, 연구 역량을 미리 가지고 있는 사람을 요구하기도 한다. 니가 어정쩡한 랩실의 어정쩡한 곳을 지원했을 리가 없으니 많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냐고 말씀하시더군요.
다소 마음의 위로는 되었지만 여전히 원인이 불분명하게 느껴지고, 또 컴퓨터공학과 교수님들의 경우 최소 학부 3학년 정도는 되어야 배경 지식이 있고 연구를 할 만하다고 생각하여 뽑아주지 않겠냐고, 저는 이제 컴공 기준으로는 1학년 수준의 전공밖에 듣질 못했으니(이게 아까 말한 그 새로운 길을 개척한 대가이죠) 학부 인턴생으로 뽑기에는 좀 꺼려지고, 좀 극단적으로 양자 컴퓨터를 같이 연구하자고 고등학생이 와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 아니겠냐고 하시더군요.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제 지도교수님은 고등학생이라도 의지만 있고, 미적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찌어찌 식을 통해서 보고 응용하고 의지만 있다면 마치 식물을 기르듯이(저희 지도교수님은 연구를 식물 키우기에 비유합니다 꾸준한 관심을 중시하시죠) 하면 대학원생만큼 혹은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저와 중학교 동창이면서 스탠포드 박사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항상 저보고 너무 큰 그림을 그린다고 너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말을 했었는데, 또 동시에 입시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분의 평가, 즉 '과학철학자스럽다 메타 학문적인 고민을 많이 한다' 를 종합해보니까 드디어 제 강점과 장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바로 너무나도 거시적인 그림에 열광하고 열중하며, 구체적인 하드 스킬, 세세한 도구를 다루는 능력, 제 좋은 아이디어를 받쳐줄 데이터와 근거(그래서 앞에서 논문 이야기를 길게 한 것입니다)를 효과적으로 정리할 역량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제가 종종 교수님들로부터 구박을 좀 받은 것이 너무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가?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자제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그 생각이 겹치면서 한꺼번에 몰리면서, 마치 물이 100도에서 101도가 되면서 전부 기화하듯이 드디어 임계점에 다다르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아! 난 큰 그림은 잘 그렸었고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것(그러니까 철학적인 것)들은 잘 다루고, 유추를 잘 해왔고 글로도 잘 표현해왔지만, 구체적인 수치로서 표현하고 설명하는 능력이 부족했구나! 라고요.
쉽게 말해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크게 2가지 방향, 탑 다운과 바텀 업 방식이 있었다면 전 무조건 큰 그림부터 그리고,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방향성을 바라보면서 나무가 아닌 숲만 쳐다보았기에, 나무를 세세하게 분석하고 관찰하고 돋보기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질 못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더군요.
다만 스스로에게 다행인 것이 아! 내가 헛수고를 하면서 이상한 인생을 산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이제서야 제 문제와 약점이 어렴풋이 잡히고 애매모호하게 보이던 것이 뚜렷하고 명료하게 보이니까 그 해결 방안 또한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평소 친한 사람들, 자주 보던 사람들이 지적해주던 단점 '너무 추상적이고 거대한 질문을 던져댄다'와, '그것을 논문으로 어떻게 쓸 것이냐'라는 질문을 듣다보니 정말 저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현하고 시각화하고 분석하고 수학적으로 객관적으로 근거를 준비할 세부적인 능력이고, 그걸 위해서는 아까 위에서 또 컴공 교수님들이 말한 학부 3학년 정도 되는 배경 지식과 여러 스킬들이구나! 가 서로 아귀가 맞고 맞물리면서 말이 다 이해가 되고 서로 모순이 사라지게 되더군요.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랩실에서는 학부 인턴생에 대한 기대를 매우 낮게 보면서, 논문이나 실적은 잘 안 나올 것이라고 하시면서 학부 인턴생의 중요성과 가중치를 낮게 보시는 분도 계십니다. 반면 학부 인턴생 때 SCI급 논문을 써서 실적으로써 무장을 하고 좋은 대학원 채용 경쟁을 뚫으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더군요.
이 또한 교수님마다 어떤 교수님은, 학부 인턴생 출신이 와서 자기 이런 논문 썼었다고 첨부하는데, 보면 10점 만점에 2~3점 정도 밖에 안되기에 전부 reject해버린다고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또한 상당히 저에게 모순으로 느껴졌습니다. 어떤 교수님들은 학부 인턴생을 굉장히 중요하게 보고, 어떤 교수님은 중요하지 않게 보고.
제가 느낄 때 중요한 것은 경험과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테스트하고, 아까 말한 것처럼 예비 대학원생으로서 업무를 경험해보고 적성과 흥미를 확인하는 것이며, 그것에서 좀 더 나아가서 운이 좋고 결과가 맞아 떨어지면 논문으로서 실적이 받쳐 준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방학 2달씩 하는 학부 인턴생이 연속적인 실험을 잘 해서, 그것도 좋은 논문을 쓸 확률이 대단히 낮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좀 말이 서로 아귀가 맞고, 서로 모순되고 충돌되고 양립 불가능해 보이던 말들이 서로 이해가 되면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학부 인턴생에게 중요한 것은 '증명'이지 '스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서울대에서 인턴을 해봤다! 어느 랩실에서 학부 인턴생으로서 2달간 열심히 뭔가 특정 실험을 해봤다! 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했으며 향후 어떤 식으로 발전을 시키고 싶고, 그것을 질적으로 내게 어떻게 발전의 요소로 삼았으며 혹시 운이 좋아서 정량적으로 좋은 스펙인 SCI급 논문으로도 출판을 해서 객관적인 검증을 받았으면 금상 첨화라는 것이지, 명목적인 스펙이나 정량적 점수가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세무 회계에서는 합목적성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본질적이고, 목적에 잘 부합하는 것을 중요하게 본다는 말이겠죠? 그만큼 우리는 점점 껍질을 버리고, 더욱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에 주목하고 그것을 평가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과거 IQ 검사가 처음 제시되었을 때는 그것이 거의 유일하게 지능을 임시방편으로나마 측정하는 기준이었기에 자주 쓰였고 심지어 우생학의 요소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 지능 이론 등 더욱 인간의 복잡한 지능을 이해하고 함부로 예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량적인 스펙에 열중하는 한국 사회도 점점 정성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요구하는 합목적성에 부합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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