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30대의 달리기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6908551
30대의 달리기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삼수 끝에 이뤄냈다는 말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울었던 일도,
괴로웠던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작은 눈에서 시련과 출혈과 애증을 겪었던
숱한 기억들은 이제 더는 자랑이 되지 못한다.
나는 자랑을 하기 위해서는
실패할 수 없다.
실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패를 상상하는 것은
내가 밟은 이 땅이 꺼지고
높디 높은 청명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찔하다.
나는 이제 빨리 달리지는 않아도
달려야 한다.
이를 악물고
오래 달려야 한다.
신발끈을 묶고
달려야 한다.
튀기는 빗물에 바지가 젖고 양말이 젖어
신발에 타들어가는 악취가 내 코 저만치
스밀 때에도 이를 악물고 달려야 한다.
과정에 더는 귀기울여 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배신감과
어쩔 수 없는 현실인정을 하며
신발끈을 묶고 달려야 한다.
실패가 자랑이 될 수 있도록.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첫번째 댓글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