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어휘사와 특수 어간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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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목(木)요일이면 수능이다. 나무(木)의 어휘사를 알아보자. 컴으로 보길 추천
중세 때 ‘나무'는 단독으로 쓰이거나 조사 ‘와’,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할 때에는 ‘나모’로,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쓰이면 ‘남ㄱ'으로 쓰였다. ‘남기(남ㄱ+이)'처럼 ㄱ이 덧난 것이다. ‘불휘 깊은 남ᄀᆞᆫ’의 ‘남ᄀᆞᆫ’도 ‘남ㄱ + ᄋᆞᆫ’이다.
이러한 어휘를 ㄱ 곡용 체언 또는 특수 어간 교체 체언이라고 한다. 전자는 ㄱ이 덧나는 체언만을 특정해서 이르는 말이고 후자는 꼭 ㄱ이 덧나지 않아도 특정 음운론적 이형태 교체를 보이는 체언도 포함한다.
어째서 ‘나무’는 이러한 특수한 쓰임을 가지게 됐을까? 우선 조선 이전의 기록을 보자.
“木曰南記 ... 松曰鮓子南 … 柴曰孛南木”
나무는 ‘남기(南記)’, ... 잣나무는 ‘자자남(鮓子南)’, 땔나무는 ‘발남목(孛南木)’이라고 한다.
《계림유사(1103)》
“大麓郡 本百濟大木岳郡 景德王改名 今木州”
대록군(大麓郡)은 본래 백제의 대목악군(大木岳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목주(木州)이다. 《삼국사기(1145)》 〈지리지〉 3권
우선 전기 중세 국어(EMK)로 여겨지는 계림유사의 기록을 보면
단독형 ‘나무'는 南記(남기) 정도로, 합성어인 ‘잣나무'와 ‘땔나무'에선 각각 ‘南(남)’과 ‘南木(나목)’으로 등장한다. ‘땔나무'를 뜻하는 孛南木(발남목, *블(火)나목)에서만 말음 ㄱ이 보이고, 그외의 어형에선 후기 중세국어 ‘나모/남ㄱ'와 비슷한 어형이 보인다.
그리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현재 천안의 일부에 해당하는 지명이 대목악군(大木岳郡) > 대록군(大麓郡) > 목주(木州) 이런 식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木岳(목악)은 ‘나무'의 옛말로 보는 게 정론이고 岳은 말음 첨기로 쓰인 한자다. 즉 말음에 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岳이고 木은 훈(뜻)으로 읽힌 한자다. 그러니 대충 ‘*나ᄆᆞᆨ’으로 재구할 수 있다.
나ᄆᆞᆨ에서 ㄱ이 탈락하고 아래아가 원순화를 거쳐 단독형에선 ‘나모’가, 모음이 탈락하여 ‘남ㄱ'이 되었다 볼 수 있다.
그러니 어휘사를 정리하면 ‘*나ᄆᆞᆨ>나모/남ㄱ>나무’ 이렇게 된다. 木의 상고한어가 /C.mˤok/(백스터-사가르)로 재구되는데 '나ᄆᆞᆨ'의 2음절과 유사해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다만 C가 모종의 자음인데 /n/이었을 거란 확신도 없고 고대 국어 'ᄆᆞᆨ'의 ㆍ가 다른 모음에서 분화된 것이라면 가능성은 적어진다. 흥미로운 추론이긴 하다.
그리고 ㄱ 곡용 체언들과 다른 특수 어간 교체를 보이는 체언들은 다 말음 ㄱ이 있었다가 ㄱ이 떨어지면서 특이한 쓰임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기록 하나 가지고 일반화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학자들이 어떻게 이런 결론을 냈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특수 어간 교체 어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1형~4형이라고 부르자.
1. ㄱ 덧생김(나모/남ㄱ)
2. ㄹㅇ(노ᄅᆞ/놀ㅇ)
3. ᅀㅇ(아ᅀᆞ/아ᇫㅇ)
4. ㄹㄹ(ᄆᆞᄅᆞ/ᄆᆞᆯᄅ)
이들은 체언에서뿐만 아니라 용언에서도 나타났다.
1. ㄱ 덧생김(시므-/심ㄱ-)
2. ㄹㅇ(다ᄅᆞ-/달ㅇ-)
3. ᅀㅇ(ᄇᆞᅀᆞ/ᄇᆞᇫᄋ)
4. ㄹㄹ( 누르-/ 눌-)
a/b 꼴에서 a형은 단독형으로 쓰이거나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또는 ‘와'와 결합할 때, b형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할 때 쓰였다. 이러한 동일한 교체를 보인다는 것은 이 유형이 같은 기원을 가진다는 뜻이 되며 이들 모두 말음 ㄱ이 탈락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훈민정음 이전 표기가 없다면 일반적으로 방언형을 통해 과거의 형태를 알아는데 이를 내적 재구라고 한다.
1형인 ‘구멍'의 방언에는 ‘구묵', ‘궁구', ‘궁기' 등이, 2형인 ‘노루'의 방언에는 ‘놀개’, ‘놀기', ‘놀구' 등이 나타난다. 이러한 방언형을 통해 ㄱ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 3형인 ‘아우'의 방언으로는 ‘앆', ‘아끼', ‘애까' 등이 있는데 반치음은 ㅅ으로 소급되므로 ‘아우'의 옛말 '아ᅀᆞ’가 ‘아ᅀᆞᆨ’이었다면 그 이전에는 ‘아ᄉᆞᆨ’이었을 것이다. ㅅ이 약화되지 않은 지역에선 반치음으로 약화되지 않고 ㅅ이 그대로 남았을 것이니 뒤에 조사 ‘이'나 접사 ‘이'가 붙은 ‘앗기' 정도의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끼' 등의 어형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4형도 마찬가지다. 마루(宗)의 방언에는 '말기', '맑', '말칸' 등이 있고 또 다른 4형 체언인 '하루'의 방언에는 '하룩', '할기' 등이 있다. 4형은 일반적으로 음절말에 ㄹ이 있는 ‘ᄆᆞᄅᆞᆯ’로 재구되곤 하나 1, 2, 3형과의 음운적으로 교체 환경이 동일하므로 ㄹ이 더 이전에는 ㄱ으로 소급될 가능성 일찍부터(이기문 1962) 제기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기문&램지(2011)에서는 4형을 말음 ㄱ이 아니라 말음 ㄹ로 재구하므로 '마루'의 고형은 ㄱ 받침이 아니라 ㄹ 받침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합당한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ㄱ>ㄹ의 변화를 거쳤을 수도 있다.
현대 방언 말고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다.
"獐山郡 祗味王時 伐取押梁【一作督】小國 置郡 景德王改名"
장산군(獐山郡)은 지미왕 때에 압량【독(督)이라고도 한다.】 소국(押梁小國)을 쳐서 취하고 설치한 군이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삼국사기(1145)》 〈지리지〉 1권
梁(량)은 전통적으로 tor(돌)로 읽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 기록에선 督(독/tok)이라 읽는다고 했다. 押(압)은 뜻(누르다)로 읽혔으니 대충 ‘노독'으로 재구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 기록으로 獐(노루 장)과 押梁/督(압량/독)이 대응함을 알 수 있으니 ‘노루'와 ‘*노독'이라는 재구음은 비슷해야 한다. ‘*노독'에서 ㄷ이 약화해서 ‘*노록'으로 발음됐고 이 형태가 ‘노루'와 대응해야 하므로 ‘노루'의 말음에는 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근데 말음 ㄱ이 탈락해서 1형이 되는 건 알겠는데 2~4형은 어떻게 되는 거임?”이라고 물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ㄱ 약화'라는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ㄱ 약화는 이미 15세기 공시태에도 보이는 현상으로 ㄹ과 ㅿ, 반모음 j, 또는 모음 ㅣ 뒤에서 ㄱ이 오면 ㄱ이 ㅇ으로 적혔다. 예를 들어 ‘물과'는 중세 국어에선 ‘믈과'로 적혀야 하나 ‘믈와'로 적혔고, ‘여의고'는 중세 국어에선 ‘여희고'로 적혀야 하나 ‘여희오'로 적혔다. 즉 특정 환경에서 ㄱ은 제 음가로 발음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4형의 체언의 재구형과 조사의 결합 시 양상을 보자.
1형
*나ᄆᆞᆨ + 이 → 나ᄆᆞ기 → 남기(모음 탈락)
*나ᄆᆞᆨ + 도 → 나ᄆᆞᆨ도 → 나ᄆᆞ도(자음 탈락) → 나모도(ㅁ에 의한 원순모음화)
*구믁 + 이 → 구므기 → 굼기(모음 탈락)
*구믁 + 도 → 구믁도 → 구므도(자음 탈락) → 구무도(ㅁ에 의한 원순모음화)
2형
*노ᄅᆞᆨ + 이 → 노ᄅᆞ기 → 놀기(모음 탈락) → 놀이(ㄱ 약화)
*노ᄅᆞᆨ + 도 → 노ᄅᆞᆨ도 → 노ᄅᆞ도(자음 탈락) → 노로도(선행하는 ㅗ에 의한 원순화)
*시륵 + 이 → 시르기 → 실기(모음 탈락) → 실이(ㄱ 약화)
*시륵 + 도 → 시륵도 → 시르도(자음 탈락)
3형
*아ᄉᆞᆨ + 이 → 아ᅀᆞ기(ㅅ 약화) → 아ᇫ기(모음 탈락) → 아ᇫ이(ㄱ 약화)
*아ᄉᆞᆨ + 도 → 아ᅀᆞᆨ도(ㅅ 약화) → 아ᅀᆞ도(자음 탈락)
*무슥 + 이 → 무ᅀᅳ기(ㅅ 약화) → 무ᇫ기(모음 탈락) → 무ᇫ이(ㄱ 약화)
*무슥 + 도 → 무ᅀᅳᆨ도(ㅅ 약화) → 무ᅀᅮ도(자음 탈락 & ㅜ에 의한 원순화)
4형
*ᄆᆞᄅᆞᆨ + 이 → ᄆᆞᄅᆞ기 → ᄆᆞᆯ기(모음 탈락) → ᄆᆞᆯ이(ㄱ 약화) → ᄆᆞᆯ리(ㄹ 첨가)
*ᄆᆞᄅᆞᆨ + 도 → ᄆᆞᄅᆞᆨ도 → ᄆᆞᄅᆞ도(자음 탈락)
4형의 경우 ㄱ이 아니라 ㄹ을 말음으로 가졌다는 재구 방식에 따르면
*ᄆᆞᄅᆞᆯ + 이 →ᄆᆞᄅᆞ리 → ᄆᆞᆯ리(모음 탈락)
*ᄆᆞᄅᆞᆯ + 도 →ᄆᆞᄅᆞᆯ도 → ᄆᆞᄅᆞ도(자음 탈락)
이런 재구가 가능하고 훨씬 간단하게 설명이 된다. 대부분 4형은 말음 ㄱ이 아니라 말음 ㄹ로 재구한다. 다만 방언형의 ㄱ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다만 ㄱ으로 재구할 시에는 ㄹ 첨가를 설명하기 어려워지는데 적당한 합의점을 찾을 필요가 있을 듯하다.
재구되는 모음이 아래아나 ㅡ인 것은 15세기 국어에서 흔히 탈락하는 모음이 ㆍ와 ㅡ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약모음이라고도 하는데 모음 탈락을 설명하기 위해선 재구할 때 ㆍ나 ㅡ를 쓰는 편이다.
위에서 체언 말고 용언에서도 이러한 교체형이 있었다고 했는데 언매를 열심히 했다면 2형 용언과 4형 용언이 현대 국어에서 어떤 활용을 하는지 알 것이다. 바로 ‘르 불규칙'이다. 따라서 ‘르 불규칙’은 기원적으로 말음 ㄱ의 약화로 인해 형성된 불규칙라고 볼 수 있다. 모두가 이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러한 변화로 르 불규칙이 형성되긴 했다. 위에서 언급한 ‘노루-누르다'의 대응으로 ‘누르다(press)'의 고대 국어 어형에선 말음 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2형인 ‘가르다(<가ᄅᆞ다)’의 방언에는 ‘갉다'가 있고, 3형인 ‘바수다(<ᄇᆞᅀᆞ다)’의 방언에는 ‘뿌숙다', ‘뿌식다' 등이 있다. 문제는 4형이다. ㄱ을 가지는 방언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말음 ㄹ로 재구하는 게 안전해 보이긴 한다.
1형
*ᄃᆞᄆᆞᆨ- + -아 → ᄃᆞᄆᆞ가 → ᄃᆞᆷ가(모음 탈락)
*ᄃᆞᄆᆞᆨ- + -고 → ᄃᆞᄆᆞᆨ고 → ᄃᆞᄆᆞ고(자음 탈락)
*시믁- + -어 → 시므거 → 심거(모음 탈락)
*시믁- + -고 → 시믁고 → 시므고(자음 탈락)
2형
*다ᄅᆞᆨ- + -아 → 다ᄅᆞ가 → 달가(모음 탈락) → 달아(ㄱ 약화)
*다ᄅᆞᆨ- + -고 → 다ᄅᆞᆨ고 → 다ᄅᆞ고(자음 탈락)
*거륵- + -어 → 거르거 → 걸거(모음 탈락) → 걸어(ㄱ 약화)
*거륵- + -고 → 거륵고 → 거르고(자음 탈락)
3형
*ᄇᆞᄉᆞᆨ- + -아 → ᄇᆞᅀᆞ가(ㅅ 약화) → ᄇᆞᇫ가(모음 탈락) → ᄇᆞᇫ아(ㄱ 약화)
*ᄇᆞᄉᆞᆨ- + -고 → ᄇᆞᅀᆞᆨ고(ㅅ 약화) → ᄇᆞᅀᆞ고(자음 탈락)
*그슥- + -어 → 그ᅀᅳ거(ㅅ 약화) → 그ᇫ거(모음 탈락) → 그ᇫ어(ㄱ 약화)
*그슥- + -고 → 그ᅀᅳᆨ고(ㅅ 약화) → 그ᅀᅳ고(자음 탈락)
4형
*ᄆᆞᄅᆞᆨ- + -아 → ᄆᆞᄅᆞ가 → ᄆᆞᆯ가(모음 탈락) → ᄆᆞᆯ아(ㄱ 약화) → ᄆᆞᆯ라(ㄹ 첨가)
*ᄆᆞᄅᆞᆨ- + -고 → ᄆᆞᄅᆞᆨ고 → ᄆᆞᄅᆞ고(자음 탈락)
*누륵- + -어 → 누르거 → 눌거(모음 탈락) → 눌어(ㄱ 약화) → 눌러(ㄹ 첨가)
*누륵- + -고 → 누륵고 → 누르고(자음 탈락)
'누르다'는 괜찮지만 '마르다', '흐르다' 같은 경우가 말음 ㄱ으로 재구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위의 체언과 마찬가지로 4형의 경우 ㄱ이 아니라 ㄹ을 말음으로 가졌다는 재구 방식에 따르면 아래와 같다. 문제는 '-고' 같은 ㄱ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왜 약화되지 않았냐 하는 게 아닐까
*ᄆᆞᄅᆞᆯ- + -아 →ᄆᆞᄅᆞ라 → ᄆᆞᆯ라(모음 탈락)
*ᄆᆞᄅᆞᆯ- + -고 →ᄆᆞᄅᆞᆯ고 → ᄆᆞᄅᆞ고(자음 탈락)
*누를- + -어 → 누르러 → 눌러(모음 탈락)
*누를- + -고 → 누를고 → 누르고(자음 탈락)
순서대로 '담그다', '심다', '다르다', '거르다', '바수다', '긋다', '마르다', '누르다(押)'이다.
고대 국어 시기는 ㄱ 약화가 일어나기 전이라 그냥 '심다'는 '시믁다'로, '심어'는 '시므거'와 비슷하게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약모음의 탈락으로 인해 고려 시대쯤 이러한 활용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누르다'의 경우도 '누륵다'였다가 ㄱ이 약화되어 '누르다'가 됐을 것인데 문제는 왜 ㄹ이 첨가됐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차라리 ㄱ이 아니라 ㄹ이었다고 재구하는 게 아닌가 싶다.
4형 용언은 중세 국어 시기에선 ᄅᆞ/르 불규칙 활용을 했다고 보는데 여기서 2형 용언은 4형 용언에 유추되어 16~17세기쯤에 ㄹㅇ이 아니라 ㄹㄹ형이 된다. 아래아도 사라지면서 2형과 4형이 통합되며 르 불규칙 용언이 형성된다. 즉 ‘달아'로 쓰다가 언중이 ‘눌러'나 '흘러'와 같은 표기를 의식하여 ‘달라'로 쓰게 된 것이다. 현대 국어의 르 불규칙 용언 중 중세 때 2형이었던 단어들은 고대 국어에 어간 말음 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4형은 말음이 ㄱ보다는 ㄹ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러한 단어들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바로 성조가 평성-평성(LL)이라는 점이다. 체언일 시 성조가 평성-거성이거나 평성-상성이라면 이러한 특수 어간 교체를 보이지 않는다. 단 용언인 경우에는 1~3형은 엄격히 LL 성조에서만 보이지만 4형은 '누르-(押)'와 같이 평성-거성(LH)인 단어도 포함된다.
결론
중세 국어 때 특수 어간 교체를 보이던 단어들은 고대 국어 시기 혹은 이른 중세 국어 시기(고려 초)에 음절말 자음 ㄱ이 존재했으며, 이 음절말 ㄱ이 탈락하거나 2음절 모음이 탈락하며 이형태 교체를 보이게 됐다(4형은 ㄹ로 재구되기도 함).
근대국어로 넘어서며 두 가지 형태가 경쟁하다 중부 방언(경기, 강원, 황해, 충청)에선 ㄱ이 탈락한 형태가 주로 쓰이게 됐고(나모>나무, 불무>풀무, 노로>노루, 여ᅀᆞ>여우, 등), 그에 반해 일부 방언에서는 2음절 모음이 탈락한 형태들이 주로 쓰이게 됐다(낭그/남기, 놁/놀기, 여끄/에끼, 등). 그렇게 '나무', '여우', '풀무', 등 ㄱ이 없는 형태가 서울에서 주로 쓰이고 표준어가 된다.
참고 문헌
Alexander Vovin(2003), Once Again on Lenition in Middle Korean
Ki-Moon Lee & S. Robert Ramsey(2011), A History of the Korean Language
Samuel E. Martin(1996), Consonant Lenition in Korean and the Macro-Altaic Question
유필재(2003), 후기중세국어 용언 어간의 성조와 기저형 설정
조성문(2009), 중세국어의 특수어간 교체에 대한 음운론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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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국어에 특이한 교체를 보이던 단어가 고대에는 단일형을 가졌다는 얘기가 흥미롭지 않나요
고대의 단일형이 중세에 와서 곡용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네요. 국어사는 알면 알 수록 신기합니다. 의견 하나 여쭙고 싶어 댓글 작성합니다. 'ㄹㅇ'활용형의 'ㅇ'의 음가 여부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다ㄹ.- + -아 같은 경우 '달아'로, 달- + -아 같은 경우 다라로 활용되는 이유가 두 체언의 활용 양상을 구별하기 위해서라고 배웠습니다. 근데, 여기서 '달아'의 'ㅇ'이라는 놈이 음가가 존재하는지(유성 마찰음인지), 아니면 음가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입장을 여쭙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음가가 있다고 보고 후두 유성 마찰음이 정설, 연구개 마찰음이 소수설입니다. 이는 고영근 교수의 표준중세국어문법론에서도 실려 있는 내용으로 이기문 교수의 설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굳이 분철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ㅇ을 후두 유성 마찰음으로 봅니다. 그나마 여기까지가 학부생 수준일 겁니다. 학교문법에서 다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후두유성마찰음으로 보는 것이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음운론적으로 '다ㄹ.-+-아'의 구성에서 아래아가 탈락하고 모음 어미 '-아'가 후두 유성 마찰음으로 발음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마찰음은 아니었을 거라고 보는 견해도 역시 있습니다. 이 견해에서는 그저 '다라'와 발음이 똑같았을 거라고 보고 말씀하신 대로 형태/의미론적 이유를 언급하는데, 음소적 표기가 엄격히 지켜졌던 15세기 공시태에서 ㄹㅇ과 VㄹV(모음+ㄹ+모음)가 구별되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 ㄹㅇ이 통시적으로 ㄹㄹ형으로 변하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달아'가 '다라' 즉 [taɾa]와 같은 발음이었다면 ‘달라’와 같이 변화하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탄설음 [ɾ] 앞에 ㄹ이 첨가되면서 이들이 모두 설측음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해야 하는데 상당히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든지 ㄹㅇ형은 그것의 연철 표기와는 음가가 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렇지만 후두 유성 마찰음을 인정하기에는 몇몇 문제가 있습니다. 이 경우, '달아'는 [talɦa]로도 [taɾa]로도 해석되지 않고 [tal-a]와 같지 경계를 둔 내지는 휴지를 둔 발음으로 해석됩니다. 이 견해에선 ㄹㅇ은 모두 전통적인 [VlɦV]가 아니라 [Vl-V]로 여겨집니다. 이에 관해선 고경재(2023)에서 다루고 있으니, 기회가 되면 읽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https://www.kci.go.kr/kciportal/mobile/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929234
고경재 교수님 수업을 듣다보니
“ㅇ”의 음가가 없다고 가정하고
아이들을 가르쳤었습니다.
근데, 고등학교 내신 문제에는
음가가 있다고 가정하고 출제되었더라구요. ㅠㅠ
자세한 설명 정말 감사드립니다.
혹시 국문이나, 언어학 전공이신가요? 감탄스럽네요
김무림(2005)에서 지적하듯이 이미 많은 학자들이 후두 유성 마찰음의 존재에 의문을 표했습니다. 다만 학교문법에서 중세 국어에 한해서는 이기문 교수와 고영근 교수의 영향력이 상당합니다(현대국어는 이관규 교수나 고영근 교수). 아무튼 ㅇ의 음가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분철 표기, 반모음 첨가의 부재('여희요'가 아니라 '여희오')를 그 근거로 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의 문제는 과연 ㅇ이 후두 유성 마찰음 즉 적극적 기능을 하고 있었느냐입니다. *g>*ɦ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널리 받아들여짐에도 학계에서 이기문 교수의 마찰음 가설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 통시적인 변화가 15세기 공시태에서 살아남았다고 볼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ㅇ이 ɦ이 아니어도 충분히 이러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지적하자면 이기문 교수의 국어사개설 그리고 고영근 교수의 표준중세국어문법론은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알타이어족에 대해 회의적으로 입장을 바꿔 가던 이기문 교수지만 국어사개설에서만큼은 알타이어족에 꽤나 긍정적입니다. 또 ㅇ의 적극적 기능이나 의도법 선어말 어미 '-오-' 역시 말입니다. 고영근 교수는 ㅇ과 선어말 '-오-'의 경우 이기문 교수의 설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데 학교문법 특히 교과서 서술에 있어서는 표준중세국어문법론이 많이 참고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는 교육 과정이 바뀜에 따라 더 이상 쓰이지는 않지만 2010년까지는 '고등학교 문법'이 쓰였습니다. 이 책의 '옛말의 문법'이란 단원 역시 고영근 교수의 표준중세국어문법론을 그대로 따라 교과서에 ㄱ 약화는 후두 유성 마찰음의 증거라는 식으로 서술이 됐으며, 몇몇 임용 서적에도 후두 유성 마찰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언어와 매체로 개정된 이후 교과서에서 이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교사들은 아마 후두 유성 마찰음이 정설인 것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사들이 임용 준비를 할 때나 대학에서 수업을 들었을 때나 후두 유성 마찰음으로 배웠을 수 있으니까 말이죠. 평가원에서는 당연히 지문을 내고 출제하겠지만 내신이라면 아무래도 교사가 이러한 내용에 익숙하다면 수업 때 마찰음을 언급했을 수도 있고 이를 가정하고 문제를 출제했을 수 있을 듯합니다.
김무림(2005), "중세 국어 분철 표기 'ㄹ-ㅇ, △-ㅇ'의 음운론적 해석"에서 ㅇ의 적극적 기능에 대해 자세히 지적하고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ㅇ을 후두 유성 마찰음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반론이 '국어학계'에서는 많이 제기됐지만, 후두 유성 마찰음 설만큼은 '교육계'에서 더 흔한 듯합니다. 아무래도 교육에 있어서는 보수적이어서 그런 듯합니다.
물론 중세 국어라는 게 연구가 확실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후두 유성 마찰음이 아닌 쪽으로 실리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전공자는 아니고 그냥 취미로 공부하는 06입니다.
물론 중세국어라는 게 추측의 연속이라 뭐가 맞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음가가 있다는 설도 없다는 설도 각자의 논리 전개가 있기에 앞서 말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말은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ㅇ의 음가에 관한 뚜렷한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고 보시기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대학교 문법은 맞다 아니다의 수준을 넘어가니까요.
이기문 교수님을 너무 부정적으로 묘사한 거 같아서 정정하자면 알타이어족 때문에 개인 감정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계통을 제외한 분야에서는 매우 훌륭한 업적을 남기셨죠. 후두 유성 마찰음 역시 가능성 있는 설입니다. 김무림(2005) 역시 ㅇ에 음운론적 변별 자질을 부여하였으므로 이기문 교수님의 설과 어찌 보면 궤를 같이 합니다. 고경재(2023)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기문 교수의 후두유성마찰음 설이나 김무림(2005)와 고경재(2023)의 음절 경계 설이나 둘 다 연철과 분철 표기가 분명히 다른 것은 인정합니다. 차이는 그 음성적 실현에 대한 것입니다. 앞서 분철이라고 반드시 후두 유성 마찰음일 필요는 없다고 하였는데 이 논리는 분철의 ㅇ이 반드시 음절 경계를 위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기문 교수의 설을 지지하는 논문 역시 여럿 나오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