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렙노프사(인 것) [1244908] · MS 2023 (수정됨) · 쪽지

2023-08-10 0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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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학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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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번 글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제 동기분들도 제가 글 올리자마자 카톡으로 "너 혹시 저렙노프사야?" 라고 특정해주셔서 글을 하나 더 적어볼까 합니다.


우선 말씀드리자면 이 글은 제가 영어 공부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다가 외국어 학습에 있어서 매우 유익한 영상을 우연히 발견해서 이를 공유하고자 쓰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장 수능 영어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 저는 수능이 끝난 뒤로 영어를 그냥 잘하고 싶었고 딱히 시험 준비같은 목적 없이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개강 전에는 집에서 TED같은 영어 컨텐츠 영상을 주로 종종 찾아봤고 개강을 한 뒤에는 매일 통학하면서 지하철에서 4시간씩 단어장을 외웠습니다.


??: 현 밖에서 통학하는데 편도 2시간 거리예요.


그런데 그렇게 몇 달 정도 공부를 했는데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외국어 학습 방법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이런 영상을 발견했었습니다.



이 영상은 언어 습득에 관한 스티븐 크라센 교수의 강연인데 영상을 보면서 글을 읽을 수는 없으니 영상 내용을 설명하면서 진행하겠습니다.


우선 이 영상에서 크라센 교수는 처음부터 폭탄 발언을 던지고 시작합니다. 바로 "인간은 언어를 유일하게 단 하나의 방법으로만 습득한다. 이는 인간이 소화를 모두 같은 메커니즘으로 수행하고, 뇌에서 시각 정보를 모두 같은 메커니즘으로 처리하는 것과 같다" 라는 것이었죠.


이 말은 즉 한국인이 모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든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든, 아니면 반대로 미국인이 모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든 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든 모두 그 원리는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그 하나의 원리는 무엇이냐 했을 때, 크라센 교수는 '이해가능한 입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해가능한 입력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예시를 듭니다.


첫 번째 예시는 그냥 독일어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독일어를 전혀 모른다는 가정 하에 방금 한 말을 아무리 반복하든, 느리게 말하든, 받아쓰게 하든, 암기를 시키든 여러분은 절대 독일어를 습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예시는 똑같이 독일어로 말하는 것이었지만 동작이 추가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Das ist meine hand.



Das ist mein kopf.


이런 방식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 예시에서 저 독일어 문장을 대강은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크라센 교수는 이처럼 번역에 의존하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 표현을 '이해가능한 입력'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해가능한 입력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언어를 습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죠.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언어는 입력만으로 습득될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예전부터 메디소드(https://orbi.kr/profile/1220944)라는 분의 칼럼을 읽어왔고, 그 분의 주장대로 모든 지식, 기술의 습득은 논리적인 아웃풋을 계속해서 능동적으로 도출해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했습니다.


반면 크라센 교수의 주장은 지극히 수동적인 방법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두 주장 모두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에 메디소드님께 개인적으로 질문해보았습니다.



(혹시 작아서 안보일까봐 따로 적겠습니다.)


나: 안녕하세요 제가 선생님 칼럼을 몇 달 전부터 계속 읽어왔는데 질문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쪽지 남깁니다. 선생님의 칼럼은 전반적으로 능동성을 매우 강조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를 단순히 내용을 반복적으로 입력하는 방법보단 그 내용을 다양한 방식으로 출력하는 훈련을 통해 지식형 시험에서는 내용의 암기를, 사고형 시험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사고력, 응용력을 기르는 것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를 저의 경우에 대입해 생각해보니 확실히 내신, 수능을 불문하고 전자의 방법보단 후자의 방법이 더 옳은 방법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론에 따라 선생님의 칼럼을 읽기 전부터 해오던 외국어 공부에도 이를 그대로 적용하려 했었습니다. 최종적인 목표는 원어민과 같은 외국어 실력을 갖는 것이고 그를 위해서는 그 언어로 출력을 하는 훈련을 계속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단어를 외울 때에도 한국어를 먼저 보고 그에 대응하는 외국어 뜻을 떠올리거나, 일상 속에서 외국어로 말하고 생각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과는 달리 몇 달간의 공부에도 불구하고 외국어 실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https://www.youtube.com/watch?v=fnUc_W3xE1w 이 영상을 보았습니다. 이 영상에서는 우리가 모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이든 외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이든 다르지 않고 인간은 단 한 가지 방식으로만 언어를 습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단 한 가지의 방법은 이해가능한 입력이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아기에게 언어를 가르칠 때 사탕을 들고 '사탕'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능한 입력의 한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출력을 위주로 한 훈련은 언어 습득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이해가능한 입력만을 계속 축적하면 그 언어로 말하는 능력까지 자연스레 습득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칼럼의 이론에도 동의하고 위 영상의 이론에도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왜 대부분의 학습 과정에서는 선생님의 이론이 맞는 것 같은데, 언어라는 부분에서만 정반대의 이론이 맞는 것 같은지 의문이 듭니다.


나: 요약하자면 선생님의 학습에 관한 이론(출력이 입력보다 중요)에 동의하지만 어째서 언어라는 부분에 대해서만 정반대의 이론(입력이 출력보다 중요)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메디소드님: 우선 시간 관계상 영상의 앞 부분만을 보고 쓰고 있다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저의 주장과 저 사람의 주장을 정리하면 세 가지 공부법이 있을 수 있겠군요. 1)이해 불가능한 입력 2)이해 가능한 입력 3)스스로 출력 저 사람의 주장은  1)과 2)를 비교하고 있는 듯합니다. 독일어를 반복해서 듣거나 써봐도 효과가 없는 것은 애초에 이해를 못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제가 주장하는 것은 2)와 3)의 비교입니다. 저는 어떤 영어문장을 읽어서 1번 이해한 경험과 실제로 1번 사용해본 경험을 비교하면 후자가 더 학습 효과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해한 뒤에 사용해야겠죠.) 저분 말하는 'comprehensible input'은 'input'보다는 'comprehensible'에 초점이 맞춰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 그렇다면 영상 속에서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 말하기를 연습하는 출력이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출력이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단지 번역에 기대기 때문인 것이고, 많은 입력을 통해 그 언어에 충분히 익숙해졌다면 그 언어에 감정을 담아서 번역에 의존하지 않고 실사용을 하는 것 역시 충분한 효과가 있다고 이해하면 되는 것일까요?


나: 결론적으로 input의 형태로든 output의 형태로든 comprehensible이라는 특징이 가장 핵심적인 것이고, 즉 언어가 단순히 번역에 의한 껍데기로 쓰이느냐 아니면 언어에 영혼이 담기느냐가 언어를 습득시키고 실력을 향상시키는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요?


메디소드님: 넵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저는 내용을 언어로 받아들일 때든 생성할 때든 그것이 '이해가능한 상태인 것'이 가장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 외의 방법은 효과가 없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내용이 이해가능하지 않을 경우 그 내용은 문법에 근거해서 번역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은 전형적인 문법 번역식 교수법을 채택하고 있고 그래서 저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10년 넘게 영어를 공부했지만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는 제가 수능이 끝난 뒤로 했던 공부들이 무의미했던 이유도 보여주죠. 쉽게 말해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언어를 번역에 의존해서 삽질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막상 생각해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저희가 모국어인 한국어를 배울 때 번역에 기대어 다른 언어를 통해 배웠나요? 애초에 아는 언어가 없으니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한국어를 구체적인 내용이든 추상적인 내용이든 상관없이 충분히 유창하게 구사합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해보자면 이해가능한 내용을 입력의 형태로든 출력의 형태로든 많이 다루는 것이 언어를 습득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자 동시에 유일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는 우선 처음부터 생소한 언어를 출력의 형태로 다루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초심자의 단계에서는 위의 크라센 교수의 두 번째 예시와 같이 그 언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입력을 많이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예시로는 TED-Ed(https://www.youtube.com/@TEDEd), English Comprehensible Input for ESL Beginners(https://www.youtube.com/@ComprehensibleEnglish) 등과 같이 충분한 시각 자료가 주어지는 컨텐츠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준이 점차 올라서 영어로 된 내용을 듣거나 읽을 때 한국어의 개입이 없어진 것 같다면,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크라센 교수는 이를 TPRS(Teaching Proficiency through Reading and Storytelling)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는데 이야기에는 맥락이 있으므로 그 자체로 나름 이해가능하다는 성질을 갖고, 감정이 담기기 때문에 추상적인 내용도 쉽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어 실력이 꽤 높은 수준까지 도달했다면 좀 더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내용을 접하거나, 아니면 메디소드님의 방법대로 영어로 생각을 하거나 말하는 것을 시도해본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또한 핵심적으로 모국어에 기대면 외국어 습득의 효율이 떨어지므로 가급적이면 한국어 자막을 사용하거나 번역기를 자주 사용하는 등의 행위는 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제가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분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라기보단, 제가 본 영상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저의 미래 계획을 짜는 느낌으로 적은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공유할 만한 의견이나 유용한 영어 컨텐츠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댓글에다가 "세줄요약좀." 이라고 적으실 분 있을 거 뻔해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속도로 세줄요약 미리 해드렸습니다.


1.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방법은 유일하다.

2. 그 유일한 방법은 본문에 나와있다.

3. 본문을 읽으면 "이해가능할" 것이다.





참고한 내용들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iTsduRreug

https://www.youtube.com/watch?v=J_EQDtpYSNM

https://www.youtube.com/watch?v=yW8M4Js4UBA

https://en.wikipedia.org/wiki/Input_hypoth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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