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븐4Answer [592707] · MS 2015 · 쪽지

2023-01-09 20: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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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계열 진학을 앞둔 분들께 드리는 간단한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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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전에 국가고시를 치고, 이제 졸업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졸업까지 앞둔 마당이라 여기서 의치한약수 붙었다고 좋아하시는 분들 보면 옛날의 제가 생각나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드네요. 


지금의 기쁜 마음을 계속 간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분명 간직하지 못하실 순간이 올 것이니, 지금의 기쁜 마음을 충분히 누리셨으면 합니다. 원래 합격 직후가 가장 행복한 법이거든요. 


메디컬계열 진학을 앞둔 분들 모두 지금 기대가 가장 클 것이고, 한편으로는 많은 공부량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과연 졸업이 쉬울까 하는 일말의 걱정을 안고 사실 것입니다. 네 저도 1학년때 졸업 앞둔 12학번들 보면 인생 진짜 까마득해 보였는데 벌써 졸업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싶지만 막상 그 과정이 그렇게 행복하고 재밌었냐 하면 대답을 못하겠네요. 


만약 제가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의 저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떤 얘기를 할까 생각하다 보니 이 글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의대를 다녔다 보니, 타 메디컬 계열에 대해서 엄청 자세하게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해당 계열에 다니는 친구들에게도 물어보고, 그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종합한 내용이니 나중에 혹시라도 더 궁금하신 것이 생긴다면 친한 선배한테 물어보시는 것이 빠를 것입니다. 


1. 대학교 생활에 대한 기대는 좀 접는게 낫다. 

저는 옛날부터 의대는 대학교가 아니라 6년제 고등학교나 6년제 면허학원에 가깝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메디컬 계열의 과들이 다른 과와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바로 맨날 봤던 사람을 강제로 또 봐야 한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고등학교인데, 6년제고, 반이 바뀌지가 않아요.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는, 학점을 절대평가로 매기는 것이 아니라, 졸업생 중에서 몇등했냐를 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쟁하는 분위기가 생길 수 밖에 없고요. 

그래서 인간관계로 스트레스 받으실 일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꼴보기 싫은 사람이라도 피할 도리가 없으니까요. 

이 외에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있는 캠퍼스 생활은 거의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과때는 놀아라는 말도 이제 점점 옛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과 1학년 성적까지 매기는 병원도 있고, 대부분의 학교들이 본과1학년에 시작해야 할 과정들을 예과2학년 과정으로 내리고 있습니다. 예과가 더 이상 예과가 아니라는 얘기죠.

물론 그렇다고 대학교 생활을 아예 못하냐? 이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본인이 성적까지 원하실 경우 분명 이 부분은 어느정도 포기를 하고 가셔야 합니다. 


2. 내가 못할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전국에서 머리 좋다는 애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누군가는 1등을 하겠지만, 그 1등이 있기 위해서 누군가는 꼴지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메디컬 계열 진학생 대부분은, 이런 꼴찌하는 경험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제가 지금까지 유급된 경우들을 보면, 아예 안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많았지만, 의외로 평소에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 번아웃이 와서 던져버린 친구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해도 해도 성적이 잘 안나오니까 더 노력하다가 결국에는 정신력이 한계치에 도달해 버린 것이죠.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본인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실 필요가 있습니다. 


3. 내 정체성을 공부로 한정짓지 말자

위의 2번하고도 연관된 말인데, 보통 전교 1등을 하던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공부 잘하는 친구'라는 이미지가 생깁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중고등학교때는 인간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대학교 이후죠. 누군가는 거기서 '공부 못하는 친구'혹은 '평범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공부 잘하는 친구'로서 받았던 호의나 이득들이 사라지는 것을 생각해 놓지 않으셨다면, 분명 이게 나중에 본인에게 큰 방황의 요소로 작용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내 가능성을 '공부 잘하는 사람'으로 한정짓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상대평가 체제에서 누군가는 평범해져야 하고, 누군가는 꼴찌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공부 잘한다'에  한정되어 있다면 이 경우 올 스트레스와 후폭풍이 감당 가능하신가요? 

공부는 좀 못하지만, 사업에 재능이 있다/노래를 잘 한다/잘 논다/사람이 좋다 이런 이미지라고 나쁜건 아니잖아요. 


4. 내신은 챙기는게 좋다/빠른 졸업이 답이다

제가 졸업할 때가 되고, 동기들이 과 선택을 하는 것을 보니까 이 두가지가 와닿게 됩니다. 학점은 높으면 높을수록 내 선택권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왜 빠른 졸업이 답이냐. 휴학이든 유급이든 1년정도 꿇으면 내가 사회 나갈 시기가 늦춰진다. 이것도 당연히 맞는 얘기고요, 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집니다. 학교에서 하는 교육과정 개편이 학생에게 좋은 경우를 거의 못봤어요. 저도 제 후배들 교육과정 보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들어온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학점을 잘 따야 한다고 집착하시거나, 무조건 스트레이트로 졸업하겠다고 강박을 느끼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만 학점과 빠른 졸업이라는 저 이점을 버리려면, 본인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내신이 썩 좋지 않은 대신 제가 하고 싶은 일들 하고 다녔던 것에 전혀 후회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경험을 쌓고 싶어서 휴학한 친구들중에 후회하는 경우는 잘 못봤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뭔가 본인에게 뜻이 있거나, 앞으로도 후회 안할 자신이 있는게 아니라면, 학점은 챙기고 졸업은 최대한 빨리 하는게 좋습니다. 


5. 저공비행은 신중하게

유급만 당하지 않을 정도로 간당간당하게 공부하는 사람들을 저공비행한다고 하는데,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만만하게 보시면 안돼요. 

 저공비행 하던 사람 중에 매 학기말 교수님께 이번에는 어떤 참신한  반성문을 써야 하나 고민 안한 사람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담대하지 않으면 이짓 못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학습자료가 충분히 제공되거나, 나를 도와줄 친구들이 있는게 아니면 저공비행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정말 친한 친구들이 있다면 유급 위기가 왔을 때 떠먹여 줘서라도 멱살잡고 캐리해 줍니다. 저공비행러들은 대부분 이런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친구가 없다 이런 경우는 저공비행이 아니라 다큐9분 사고사례가 됩니다. 매년 그랬어요. 새 학기 시작하면 별로 존재감 없던 친구가 하나씩 사라져 있습니다. 

내 학교가 야마(족보)나 학습자료가 불충분하다+나는 친구가 없다=저공비행하다 큰일나는 확실한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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