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기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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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계승
4월로 들어서면서는 나는 얼마간 기동할 정신이 났다. 각혈하는 도수도 훨씬 뜨고 또 분량도 훨씬 줄었다. 그러나 침침한 방 안으로 후틋한 공기가 들어와서 미적지근하게 미적지근한 체온과 어울릴 적에 피로는 겨울 동안보다 훨씬 더한 것 같음은 제 팔뚝을 들 힘조차 제게 없는 것이다. 하도 답답하면 나는 툇마루에 볕이 드는 대로 나와 앉아서 반쯤 보이는 닭장 쪽을 보려고 그래서가 아니라 보이니까 멀거니 보고 있자면 으레 작은어머니가 그 닭의 장을 얼싸안고 얼미적얼미적 하는 것이다. 저것은 즉 고 덜 여물어서 알을 안 까는 암탉들을 내려다보면서 언제나 요것들을 길러서 누이를 보나하는 고약한 어머니들의 제 딸 노리는 그게 아닌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이다. 나는 물론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은어머니 얼굴을 암만 봐도 미워할 데가 어디 있느냐. 넓은 이마, 고른 치아의 열, 알맞은 코, 그리고 작은아버지만 살아 계시면 아직도 얼마든지 연연한 애정의 색을 띨 수 있는 총기가 있는 눈하며 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 부분인데 어째 그런지 그런 좋은 부분들이 종합된 ‘작은어머니’라는 인상이 나로 하여금 증오의 염을 일으키게 한다.
물론 이래서는 못쓴다. 이것은 분명히 내 병이다. 오래오래 사람을 싫어하는 버릇이 살피고 살펴서 급기야에 이 모양이 되고 만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내 육친까지를 미워하기 시작하다가는 나는 참 이 세상에 의지할 곳이 도무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 참 안됐다.
이런 공연한 망상들이 벌써 나을 수도 있었을 내 병을 자꾸 덧들리게 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또 순하게 먹어야 할 것이라고 여러 번 괴로워하는데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은 도리어 또 겹겹이 짐되는 것도 같아서 나는 차라리 방심 상태를 꾸미고 방 안에서는 천장만 쳐다보거나 나오면 허공만 쳐다보거나 하려도 역시 나를 싸고 도는 온갖 것에 대한 증오의 염이 무럭무럭 구름 일 듯 하는 것을 영 막을 길이 없다.
비가 두어 번 왔다. 싹이 트려나 보다. 내려다보는 지면이 갈수록 심상치 않다. 바람이 없이 조용한 날은 툇마루에 드는 볕을 가만히 잡기만 하면 퍽 따뜻하다. 이렇게 따뜻한 볕을 쬐면서 이렇게 혼곤한데 하필 사람만을 미워해야 되는 까닭이 무엇이냐.
사람이 나를 싫어할 성싶은데 나도 내가 싫다. 이렇게 저를 사랑할 줄도 모르는 인간이 남을 위할 줄 알 수 있으랴. 없다. 그러면 나는 참 불행하구나.
이런 망상을 시작하면 정말이지 한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힘이 들고 힘이 드는 것이 싫어도 움직여야 한다. 나는 헌 구두짝을 끌고 마당으로 나가서 담 한 모퉁이를 의지해서 꾸며 놓은 닭의 집 가까이 가본다.
혹 나는 마음으로 작은어머니에게 사과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이것은 왜 그러나? 작은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얼른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러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닭의 집 높이가 내 턱 좀 못 미쳤기 때문에 나는 거기 가로질린 나무에 턱을 받치고 닭의 집 속을 내려다보고 있자니까 냄새도 어지간한데 제일 그 수닭이 딱해 죽겠다. 공연히 성이 대밑둥까지 나서 모가지 털을 벌컥 일으켜 세워 가지고는 숨이 헐레벌떡 헐레벌떡 야단법석이다. 제딴은 그 가운데 막힌 철망을 뚫고 이쪽 암탉들 있는 데로 가고 싶어서 그러는 모양인데 사람 같으면 그만하면 못 넘어갈 줄 알고 그만둠직하건만 이놈은 참 성벽이 대단하다.
가끔 철망 무너진 구멍에 무작정하고 목을 틀어박았다가 잘 나오지 않아서 눈을 감고 끽끽 소리를 지르다가 가까스로 빠져나가는 걸 보고 저놈이 그만하면 단념하였다 하고 있으면 그래도 여전히 야단이다. 나는 그만 그놈의 끈기에 진력이 나서 못생긴 놈, 미련한 놈, 못생긴 놈, 미련한 놈, 하고 혼자서 화를 벌컥 내어 보다가도 또 그놈의 그런 미칠 것 같은 정열이 다시없이 부럽기도 하고 존경해야 할 것같이 생각키기도 해서 자세히 본다.
그런데 암탉들은 어떠냐 하면 영 본숭만숭이다. 모른 체하고 그저 모이 주워 먹기에만 열중이다. 아하 저러니까 수탉이란 놈이 화가 더 날밖에 하고 나는 그 새침데기 암탉들을 안타깝게 생각한 것이다. 좀 가끔 수탉 쪽을 한두 번쯤 건너다가도 보아 주지 원…… 하고 나도 실없이 화가 난다. 수닭은 여전히 모이 주워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뒤법석을 치는데 좀처럼 허기도 지지 않는다.
이러다가 나는 저 수탉이 대체 요 세 마리 암탉 중의 어떤 놈을 노리는 것인가 살펴보기로 하였다. 물론 수탉이란 놈의 변두가 하도 두리번거리니까 그놈의 시선만 가지고는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보통 사람 남자가 여자 보는 그런 눈으로 한번 보아야겠다. 얼른 보기에 사람의 눈으로는 짐승의 얼굴을 사람이 아무개 아무개 하듯 구별하기는 어려운 것같이 보이는데 또 그렇지도 않다. 자세히 보면 저마다 특징다운 특징이 있고 성미도 제각기 다르다. 요 암탉 세 마리도 기뻐하여 서 얼른 보기에는 고놈이 고놈 같고 하더니 얼마 만큼이나 들여다보니까 모두 참 다르다.
키가 작달막하고, 눈앞이 검고, 털이 군데군데 빠지고 흙투성이의 그중 더러운 암탉 한 마리가 내 눈에 띄었다. 새침한 중에도 새침한 품이 풋고추같이 맵겠다. 그렇게 보니 그럴 성도 싶은 게 모이를 먹다가는 때대로 흘깃흘깃 음분(淫奔)한 계집같이 곁눈질을 곧잘 한다. 금방 달려들어 모래라도 한 줌 끼얹어 주었으면 하는 공연한 충동을 느끼나 그러나 허리를 굽히기가 싫다. 속 모르는 수탉은 수선도 피는구나.
아무것도 생각 않는 게 상수다. 닭들의 생활에도 그런 갸륵한 분쟁이 있으니 하물며 사람의 탈을 쓴 나에게 수없는 번거로움이 어찌 없으랴. 가엾은 수탉에 내 자신을 비겨 보고 비겨 보고 나는 다시 헌 구두짝을 질질 끈다. 바람이 없어서 퍽 따뜻하다. 싹이 트려나보다.
얼굴이 이렇게까지 창백한 것이 웬일일까 하고 내가 번민해서…… 내 황막한 의학 지식이 그예 진단하였다. 회충……. 그렇지만 이 진단에는 심원한 유서가 있다. 회충이 아니면 십이지장충…… 십이지장충이 아니면 조충(條蟲)……이러리라는 것이다.
회충약을 써서 안 들으면, 십이지장충 약을 쓰고, 십이지장충 약을 써서 안 들으면 조충약을 쓰고, 조충약을 써서 안 들으면 그 다음은 아직 연구해보지 않았다.
어떤 몹시 불쾌한 하루를 선택하여 위선 회충약을 돈복(頓服)하였다.
안다. 두 끼를 절식해야 한다는 것도, 복약 후에 반드시 혼도(昏倒)한다는 것도…….
대낮이다. 이부자리를 펴고 그 속으로 움푹 들어가서 너부죽이 누워서, 이래도? 하고 그 혼도라는 것이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마음이 늘 초조한 법, 귀로 위 속이 버글버글하는 소리를 알아듣고 눈으로 방 네 귀가 정말 뒤통그러지려나 보고, 옆구리만 좀 근질근질해도 아하 요게 혼도라는 놈인가 보다 하고 긴장한다.
그랬건만 딱한 일은 끝끝내 내가 혼도 않고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3시를 쳐도 역시 그 턱이다. 나는 그만 흥분했다. 혼도커녕은 정신이 말똥말똥하단 말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렇다고 금방 십이지장충 약을 써보기도 싫다. 내 진단이 너무나 허황한데 스스로 놀라고 또 그 약을 구해야 할 노력이 아깝고 귀찮다.
구름 파듯 뭉게뭉게 불쾌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이러다가는 저녁 지으시는 작은어머니와 또 싸우겠군…… 얼마 후에 나는 히죽히죽 모자도 안 쓰고 거리로 나섰다.
막 다방에를 들어서니까 수군(壽君)이 마침 문간을 나서면서 손바닥을 보인다.
“쉬…… 자네 마누라 와 있네.”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얘, 요것 봐라.”
하고 무작정 그리 들어서려는 것을 수군이 아예 말리는 것이다.
“만좌지중에서 망신 톡톡이 당할 테니 염체 어델.”
“그런가…….”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발길을 돌리기는 돌렸으나 먼발치서라도 어디 좀 보고 싶었다.
솜옷을 입고 아내가 나갔거늘 이제 철은 홑것을 입어야 하니 넉달지간이나 되나 보다.
나를 배반한 계집이다. 3년 동안 끔직이도 사랑하였던 끝장이다. 따귀도 한 대 갈겨 주고 싶다. 호령도 좀 하여 주고 싶다. 그러나 여기는 몰려드는 사람이 하나도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다방이다. 장히 모양도 사나우리라.
“자네 만나면 헐 말이 꼭 한마디 있다네.”
“어쩔라누?”
“사생결단을 허겠대네.”
“어이쿠.”
나는 몹시 놀래어 보이고 레이먼드 하튼같이 빙글빙글 웃었다. ‘아내…… 마누라’라는 말이 낮잠과도 같이 옆구리를 간지른다. 그 이미지는 벌써 먼 바다를 건너간다. 이미 파도 소리까지 들리지 않았느냐. 이러한 환상 속에 떠오르는 내 자신은 언제든지 광채 나는 루바슈카를 입었고 퇴폐적으로 보인다. 소년과 같이 창백하고 무시무시한 풍모이다. 어떤 때는 울기도 했다. 어떤 때는 어딘지 모르는 먼 나라의 십자로를 걸었다.
수군에게 끌려 한강으로 나갔다. 목선을 하나 빌어 맥주도 싣고 상류로 거슬러 동작리 갯가에다 대어 놓고 목로 찾아 취토록 먹었다. 황혼에 수평은 시야와 어우러져서 아물아물 허공에 놓인 비조 처럼 이 허망한 슬픔을 참 어디다 의지해야 옳을지 비철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응…… 넉 달이 지나서 인제? 네가 내게 헐 말은 뭐냐? 애 더리고 더리다.”
“이건 왜 벤벤치 못하게 이러는 거야.”
“아니, 아니, 일테면 그렇다 그 말이지, 고론 앙큼스런 놈의 계집이 또 있을 수가 있나.”
“글쎄 관둬 관둬.”
“관두긴 허겠지만 어차피 말을 허자구 자연 말이 이렇게쯤 나가지 않겠느냐 그런 말이야.”
“이렇게 못생긴 건 내 보길 처엄 보겠네 원!”
“기집이란 놈의 물건이 아무리 독헌 물건이기루 고렇게 싹 칼루 엔 듯이 돌아설 수가 있냐고.”
우리들은 술이 살렸다. 나야말로 술 없이 사는 도리가 없었다.
노들서 또 먹었다. 전후불각으로 취하여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려야겠어서 그랬다.
넉 달…… 장부답지 못하게 뒤끓던 마음이 그만하고 차츰차츰 가라앉기 시작하려는 이 철에 뭐냐 부전(附箋) 붙은 편지 모양으로 때와 손 자죽이 잔뜩 묻은 채 돌아오다니,
“요 얌체두 없는 것아, 요 요 요.”
나는 힘껏 고성 질타로 제 자신을 조소하건만도 이와 따로 밑둥 치운 대목 기울 듯 자분참 기우는 이 어리석지 않고 들을 소리도 없는 마음을 주체하는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넉 달…… 이 동안이 결코 짧지가 않다. 한 사람의 아내가 남편을 배반하고 집을 나가 넉 달을 잠잠하였다면 아내는 그예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요 남편은 꿀꺽 참아서라도 용서하여서는 안 된다.
“이 천하의 공규(公規)를 너는 어쩌려느냐?”
와서 그야말로 단죄를 달게 받아 보려는 것일까.
어떤 점을 붙잡아 한 여인을 믿어야 옳을 것인가. 나는 대체 종잡을 수가 없어졌다.
하나같이 내 눈에 비치는 여인이라는 것이 그저 끝없이 경조부박한 음란한 요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 없다.
생물이 이렇다는 의의를 훌떡 잃어버린 나는 환신(宦臣)이나 무엇이 다르랴. 산다는 것은 내게 딴은 필요 이상의 ‘야유’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한 여인에게 배반당하였다는 고만 이유로 해서 그렇다는 것 아니라 사물의 어떤 포인트로 이 믿음이라는 역학의 지점을 삼아야겠느냐는 것이 전혀 캄캄하여졌다는 것이다.
“믿다니 어떻게 믿으라는 것인구.”
함부로 예제 침을 퇴퇴 뱉으면서 보조(步調)는 자못 어지럽고 비창한 것이었다.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고 나면 약삭빨리 내 심경에 아첨하는 이 전신의 신경은 번번이 대담하게도 천변지이가 이 일신에 벼락치기를 바라고 바라고 하는 것이었다.
“경칠…… 화물 자동차에나 질컥 치여 죽어 버리지. 그랬으면 이렇게 후텁지근헌 생활을 면허기라두 허지.”
하고 주책없이 중얼거려 본다. 그러나 짜장 화물 자동차가 탁 앞으로 닥칠적이면 덴겁해서 피하는 재주가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능히 빠르다고는 못해도 비슷했다. 그럴 적이면 혀를 쑥 내밀어 제 자신을 조롱하였습네 하고 제 자신을 속여 버릇하였다.
이런 넉 달…….
이런 넉달이 지나고 어리석은 꿈을 그럭저럭 어리석은 꿈으로 돌릴 줄 알만한 시기에 아내는 꿈을 거친 걸음걸이로 역행하여 여기 폭군의 인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거암과 같은 불안이 공기와 호흡의 중압이 되어 덤벼든다. 나는 야행열차와 같이 자야 옳을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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