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Debussy [870531] · MS 2019 · 쪽지

2022-05-27 0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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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팽이 역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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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깨이기는 일찍 깨었다는 증거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또 생각하면 여관으로 돌아오기를 닭이 울기 시작한 후에 - 참 또 생각하면 그 밤중에 달도 없고 한 시골길을 닷마장이나 되는 읍내에서 어떻게 걸어서 돌아왔는지 술을 먹어서 하나도 생각이 안나지만 둘이 걸어오면서 S가 코를 곤 것은 기억합니다. 


여관 주인 아주머니가 아주 듣기 싫은 여자목소리로 「김상! 오정이 지났는데 무슨 잠이요 어서 일어나요」그리는 바람에 일어나 보니까 잠은 한잠도 못잔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까 아홉시 반이니까 오정이란 말은 여관 주인 아주머니가 틀림없읍니다. 곁에서 자던 S는 벌써 담배로 꽁다리 네개를 만들어 놓고 어디로 나갔는지 없고 내가 늘 흉보는 S의 인생관을 꾸려넣어가지고 다니는 것 같은 참 궁상스러운 가방이 쭈굴쭈굴하게 놓여있고 그 속에는 S의 저서가 들어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양말을 신지않은 채로 구두를 신었더니 좀 못박인 모서리가 아파서 안되었길래 다시 양말을 신고 구두를 신고 툇마루에 걸터 앉아서 S가 어데로 갔나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까 건너편 방에서 묵고있는 참 뚱뚱한 사람이 나를 자꾸 보길래 좀 계면쩍어서 문밖으로 나갔더니 문 앞에 늑대같이 생긴 시골뚜기 개가 두 마리가 나를 번갈아 흘낏흘낏 치어다보길래 그것도 싫어서 도로 툇마루로 오니까 그 뚱뚱한 사람은 부처님처럼 아까 앉았던 고대로 앉은 채 또 나를 보길래 참 별 사람도 다많군 왜 내 얼굴에 무에 묻었나 그런 생각에 또 대문깐으로 나가니까 그때야 S가 어슬렁 어슬렁 이리로 오면서 내 얼굴을 보더니 공연히 싱글벙글 웃길래 나는 또 나대로 공연히 한번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대체 어디를 갔다 왔느냐고 그랬더니 참 새벽에 일어나서 수 십리 길을 걸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여태 잤느냐고 나더러 게으른 사람이라고 그러길래 대체 어디어디를 갔다 왔는지 일러바쳐보라고 그랬더니 문무정에 가서 영감님하고 기생이 활쏘는 것을 맨처음에 보고 - 그래서 무슨 기생이 새벽부터 활을 쏘느냐고 그랬더니 대답은 아니하고 또 문회서원에 가서 팔선생의 사당을 보고 기운정에 가서 약물을 먹고 오는 길이라고 그리길래 내가 가만히 쳐다보니까 참 수십리 길에 틀림은 없지만 그게 원 정말인지 곧이 들리지는 않는다고 그랬더니 「에하가끼」를 내여 놓으면서 저 건너 천일각 식당에 가서 커피를 한잔 먹고 왔으니까 탐승비용은 십전이라고 그리길래 나는 내가 이렇게 싱겁게 S에게 속은 것은 잠이 덜 깨였거나 잠이 모자라는 까닭이라고 그랬더니 참 그렇다고 나도 잠이 모자라서 죽겠다고 S는 그랬읍니다. 


밥상이 들어왔습니다. 반찬이 열 가지가 되는데 풋고추로 만든 것이 다섯 가지 - 내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여관 주인아주머니가 오더니 찬은 없지만 많이 먹으라고 그리길래 구첩반상이 찬이 없으면 찬 있는 밥상은 그럼 찬을 몇 가지나 놓아야 되느냐고 그랬더니 가지수는 많지만 입에 맞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면서 여전히 많이 먹으라고 그리길래 아주머니는 공연히 천만에 말씀이라고 그랬더니 그렇지만 소고기만은 서울서 얻어먹기 어려운 것이라고 그리길래 서울서도 소고기는 팔아도 경찰서에서 꾸지람하지 않는다고 그랬더니 그린게 아니라 송아지 고기가 어디 있겠냐고 그립니다. 


나는 상에 놓인 송아지 고기를 다 먹은 뒤에 냉수를 청하였더니 아주머니가 손수 가져오는지라 죄송스럽다고 그리니까 이 냉수 한 지게에 오전 하는 줄은 김상이 서울살아도 - 서울사니까 모르리라고 그리길래 그것은 또 어째서 그렇게 냉수가 값이 비싸냐고 그랬더니 이 온천 일대가 어디를 파든지 펄펄 끓는 물밖에는 안 솟는 하느님한테 죄 받은 땅이 되어서 냉수가 먹고 싶으면 보통 같으면 거저주는 온천물을 듬뿍 길어다가 잘 식혀서 냉수를 만들어서 먹을 것이로되 유황 내음새가 몹씨 나는 고로 서울서 수도물만 홀짝홀짝 마시고 살아오던 손님들이 딱 질색들을 하는 고로 부득이 지게를 지고 한 마장이나 넘는 정거장까지 냉수를 한 지게에 오전씩을 주고 사서 길어다 먹는데 너무 거리가 멀어서 물통이 좀 새든지 하면 오전어치를 사도 이전어치밖에 못 얻어 먹으니 세음을 따지고 보면 이 냉수는 한 대접에 일전씩은 받아야 경우가 옳은 것이 아니냐고 아주머니는 그러는지라 그것 참 수고가 많으시다고 그럼 이 냉수는 특별히 조심조심하여서 마시겠다고 그랬더니 그렇지만 냉수는 얼마든지 거저 드릴것이니 염려말고 굴떡굴떡 먹으라고 그리는 말을 듣고서야 S와 둘이 비로소 마음놓고 먹었습니다. 


발동기 소리가 왼종일 밤새도록 탕탕탕탕 나는 것이 헐일없이 항구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난다고 S가 그리는데 알고 보니까 그게 바로 한지게에 오전씩하는 질기고 튼튼한 냉수를 길어올리는 「펌프모오터」소리인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밥값을 치르려고 얼마냐고 그리니까 엊저녁을 안 먹었으니까 칠십전씩 일원 사십전만 내이라고 그리는지라 일원짜리 두 장을 주니까 거슬를 돈이 없는데 나가서 다른 집에 가서 바꾸어가지고 오겠다고 그리는 것을 말리면서 그만 두라고 그만 두라고 나머지는 아주머니 왜떡을 사먹으라고 그리고 나서 생각을 하니까 아주머니더러 왜떡을 사먹으라는 것도 좀 우습시도 하고 하지만 또 돈 육십전을 가지고 「파라솔」을 사가지라고 그릴 수도 없고 말인즉 잘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나니까 생각나는 것이 주인아주머니에게는 슬하에 일점 혈육으로 귀여운 따님이 한분 계신데 나이는 세 살입니다. 깜박 잊어버리고 따님 왜떡을 사주라고 그렇게 가르쳐 주지 못한 것은 퍽 유감입니다. 


주인 영감을 못보고 가는 것 같은데 섭섭하다고 그리면서 주인 영감은 어디를 이렇게 볼일을 보러 갔냐고 그리니까 「세에루」양복을 입고 「네꾸다이」를 매고 읍내에 들어갔다고 아주머니는 그리길래 나는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하고 곧 두 사람은 정거장으로 나갔습니다. 


대체로 이 황새선이라는 철도의 「레일」폭은 너무 좁아서 똑 「튜럭 크레일」폭만한 것이 참 앙증스럽습니다. 그리로 굴러 다니는 기차 그 기차를 끌고 달리는 기관차야말로 가엽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그야말로 사람이 치우면 사람이 다칠지는 기관차가 다칠지는 참 알수 없을 만치 귀엽고도 갸륵한 데다가 그래도 「크롯싱」에 오면 말뚝에다가 간판을 써서 가로되 「기차에 조심」그것을 읽은 다음에 나는 S더러 농담으로 그 간판을 사람에게 보이는 쪽에는 「기차에 조심」그렇게 쓰고 기차에서 보이는 쪽에는 「사람에 조심」 그렇게 따로따로 썼으면 여러 가지 의미로 보아 좋겠다고 그래 보았더니 뜻밖에 S 또 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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