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생기(7)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6705315
'정희! 노(怒)하였오. 어젯밤 태서관(泰西舘) 별장(別莊)의 일! 그것은 결코 내 본의는 아니었오. 나는 그 요구를 하려 정희를 그곳까지 데리고 갔던 것은 아니오. 내 불민(不憫)을 용서하여 주기 바라오. 그러나 정희가 뜻밖에도 그렇게까지 다소곳한 태도를 보여주었다는 것으로 저윽히 자위를 삼겠오.
정희를 하루라도 바삐 나 혼자만의 것을 만들어 달라는 정희의 열렬한 말을 물론 나는 잊어버리지는 않겠소. 그러나 지금 형편으로는 '안해'라는 저 추물을 처치하기가 정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오.
오늘(三月三日) 오후 여덟 시 정각에 금화장(金華莊) 주택지 그때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어제 일을 사과도 하고 싶고 달이 밝을 듯하니 송림을 거닙시다. 거닐면서 우리 두 사람만의 생활에 대한 설계도 의논하여 봅시다.
3월 3일 아침 S'
내게 속달을 띄우고 나서 곧 뒤이어 받은 속달이다.
모든 것은 끝났다. 어젯밤에 정희는—
그 낯으로 오늘 정희는 내게 이상 선생님께 드리는 속달을 띄우고 그 낯으로 또 나를 만났다. 공포(恐怖)에 가까운 번신술이다. 이 황홀한 전율을즐기기 위하여 정희는 무고(無辜)의 이상(李箱)을 징발(徵發)했다. 나는 속고 또 속고 또 또 속고 또 또 또 속았다.
나는 물론 그 자리에 혼도하여 버렸다. 나는 죽었다. 나는 황천을 헤매었다. 명부(冥府)에는 달이 밝다. 나는 또다시 눈을 감았다. 태허(太虛)에 소리 있어 가로되, 너는 몇 살이뇨? 만 25세와 11개월이올시다. 요사(夭死)로구나. 아니올시다. 노사(老死)올시다.
눈을 다시 떴을 때에 거기 정희는 없다. 물론 여덟 시가 지난 뒤였다. 정희는 그리 갔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는 끝나지 않는다. 왜?
정희는 지금도 어느 빌딩 걸상 우에서 뜌로워스의 끈을 풀르는 중이요 지금도 어느 태서관 별장 방석을 베고 뜌로워스의 끈을 풀르는 중이요, 지금도 어느 송림 속 잔디 벗어 놓은 외투 우에서 뜌로워스의 끈을 성(盛)히 풀르는 중이니까다.
이것은 물론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재앙이다.
나는 이를 간다.
나는 걸핏하면 까무러친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철천의 원한에서 슬그머니 좀 비껴서고 싶다. 내 마음의 따뜻한 평화 따위가 다 그리워졌다.
즉 나는 시체다. 시체는 생존하여 계신 만물의 영장을 향하여 질투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이리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정희, 간혹 정희의 훗훗한 호흡이 내 묘비에 와 슬쩍 부딛는 수가 있다. 그런 때 내 시체는 홍당무처럼 확끈 달으면서 구천을 꿰뚫어 슬피 호곡한다.
그동안에 정희는 여러 번 제(내 때꼽째기도 묻은) 이부자리를 찬란한 일광(日光) 아래 널어 말렸을 것이다. 누루(累累)한 이 내 혼수(昏睡) 덕으로 부디 이 내 시체에서도 생전의 슬픈 기록이 창공 높이 훨훨 날아가나 버렸으면—
나는 지금 이런 불쌍한 생각도 한다. 그럼—
— 만 26세와 3개월을 맞이하는 이상(李箱) 선생님이여! 허수아비여!
자네는 노옹(老翁)일세.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骸骨)일세. 아니, 아니.
자네는 자네의 먼 조상(祖上)일세. 이상(以上)
十一月二十日 동경(東京)서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울 학교 친구중에 ebs로 개념만 듣고 예제 한번씩 풀더니 블라 스텝3까지 푸는애가...
-
뱃지받았다 2
히히
-
한완수 같이 강의없이 공부하는 자습서로 독학하고싶은데.. 폴라리스 네비게이터 말고는 본적이 읎음
-
없는 데도 있음? 내 친구가 그렇다는데 오...
-
난 4급 공익임 3
신검과 탐구 둘 다
-
성적표발표~연대수시발표 10일동안 연대에 불합격 시키게할 방법없나요? 입학처가서...
-
유형과 풀이가 정해져있으니 기계적 풀이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결과물이 완성된다면 오르비에 올려볼게요
-
시대대치재종반입니다. 라인업 어떤가요? 국어 : 김재훈, 윤지환 수학 : 김범찬,...
-
오늘 학교에서 한 말 21
"계산이요" "아이스아메리카노 사이즈 업해서 한잔이요" "네"
-
아니 지방약 vs 설대메디컬 제외 원하는 과가 닥전임? 20
인스타 보는데 댓글에 서울대 내려치기 뭐지… 닥후는 아니어도 닥전은 아니지 않음?
-
의대도 항상 느끼는건데 11
주변에 의대생들도 편차가 되게 심한 듯 분명 집안도 좋은 인설의 인데도 나같은...
-
일반화학 시간에 그러면 괜찮을려나
-
메가패스 환급 0
어디서 신청하나요.... 안 보여요ㅠㅠ
-
강의실에서 큐브 답변 조지고 있으면 반수각 잡는 사람같아요? 4
수업 시작전에 할게없서요
-
이 단어장 하나로 충분하려나요
-
반갑습니다 2
-
시발 뭐지
-
나는 이해 감 0
왜 이해 가나 길게 쓰려다가 생각해 보니 적절치 않은 것 같고, 내 개인사도 있고,...
-
ㅇㅂㄱㅇㅂㄱ 2
안뇽
-
어려지고 싶다ㅜㅜ
-
보통 기출 학습을 다 하셨을거란 말이죠 질문1) 혹시 '기출을 공부했다 or 기출을...
-
눈 웰케 많이옴? ㄷㄷ 나 집갈 수 있겠지 오늘
-
오늘 공부 포기 5
오전에 좀 공부했는데 컨디션이 심각하게 안 좋아서 반데옾 할거임 자러가야지
-
이루매 커엽네요 2
-
잘먹겠습니다 1
맛있는 점심식사
-
오숩완 5
-
일회용 전담 1
이거 피기 시작했는데 원래 이렇게 맛이 안 나나요? 목만 조금 시원하고 입안에서...
-
과잠 사야됨? 9
고민중
-
3모를 제패하겠다 13222? 목표 ㄱ
-
같이 힘내요 저도 안자고 달림
-
학교에서 수특 독서&문학으로 진도나간다하는데 내신대비용으로 학원 다닐거라서 굳이...
-
후속기사가 이어집니다
-
작수 28, 30 2개 틀렸고 6평 92 (28,30) 9평 96 (30) 원래는...
-
여기서 버스타고 잠실가고 잠실에서 2호선으로 한양대역가고 거기서 또 언덕 올라서...
-
물1지1에서 물1생2공부해볼까 하는데 투투 아니면 메리트 크게 없으려나요
-
아 진짜 ㅈㄴ 싫다 왤케 힘들지
-
클렌징 폼 원래 500원 2개 정도로 개많이 짜서 얼굴에 비벼댐 난 이게...
-
어제 일찍 잤더니 하루가 쾌적함 12시 12시 반 사이에 무조건
-
해설은 피뎁으로 보죠??
-
둘다 玄(검을 현) 黑(검을 흑) 둘다 검다라는 한자가 들어갔는데
-
내신 선생 따라 어떻게 나올지 대충 각이 서서 좋음
-
반분위기조옺댔다 1
정시러인데 진짜 쌤들 첫시간브터 수시라이팅 존나하고 반에 공부하는애들이 없다 ㅋㅋ...
-
원래 단순표점합에 영어환산점수 더하면 됐는데 국어표점x1 수학표점x1.2...
-
배달시켰는데 14
왜 백미밥 아니야ㅡㅡ
-
게시물 댓글에 전부 좋은 사람들만 모인거 같아 기분이 좋네요 많이 배워가요 아 물론...
-
완전 맛있다 쿠키도 주셨다
-
현역때 교육청은 97,98 이렇게 안정적인데 평가원만 보면 89 ㅇㅈㄹ나서 스트레스...
첫번째 댓글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