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Debussy [870531] · MS 2019 · 쪽지

2022-05-16 0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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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생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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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李箱)! 당신은 세상을 경영(經營)할 줄 모르는 말하자면 병신이오. 그다지도 '미혹(迷惑)'하단 말씀이오? 건너다보니 절터지요? 그렇다 하더라도'카라마조프의 형제'나'사십년'을 좀 구경삼아 들러보시지요. 


아니지! 정희! 그게 뭐냐 하면 나도 살고 있어야 하겠으니 너도 살자는 사기, 속임수, 일부러 만들어 내어놓은 미신(迷信) 중에도 가장 우수한 무서운 주문이오. 


이상(李箱)! 그러지 말고 시험삼아 한 발만 한 발자국만 저 개흙밭에다 들여놓아 보시지요. 


이 악보같이 스무드한 담소 속에서 비철비철 하노라면 나는 내게 필적하는 천의무봉의 탕아가 이 목첩 간에 있는 것을 느낀다. 누구나 제 내어놓았던 헙수룩한 포즈를 걷어치우느라고 허겁지겁들 할 것이다. 나도 그때 내 슬하에 이렇게 유산(遺産)되는 자손을 느끼면서 만재(萬載)에 드리우는 이 극흉극비(極凶極秘) 종가(宗家)의 부(符)작을 앞에 놓고서 저윽히 불안(不安)하게 또 한편으로는 저윽히 안일(安逸)하게 운명(殞命)하는 마지막 낙백(落魄)의 이 내 종생을 애오라지 방불(髣髴)히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분묘(墳墓) 될 만한 조촐한 터전을 찾는 듯한 그런 서글픈 마음으로 정희를 재촉하여 그 언덕을 내려왔다. 등 뒤에 들리는 풍경 소리는 진실로 내 심통을 돋우는 듯하다고 사자(寫字)하면 정경(情景)을 한층 더 반듯하게 매만져 놓는 한 도움이 되리라. 그럼 진실로 풍경 소리는 내 등 뒤에서 내 마지막 심통함을 한층 더 들볶아 놓는 듯하더라. 


미문(美文)에 견줄 만큼 위태위태한 것이 절승(絶勝)에 혹사(酷似)한 풍경이다. 절승에 혹사한 풍경을 미문으로 번안모사(飜案模寫)해 놓았다면 자칫 실족 익사하기 쉬운 웅덩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첨위(僉位)는 아예 가까이 다가서서는 안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나 고리키는 미문을 쓰는 버릇이 없는 체했고 또 황량, 아담한 경치를 '취급'하지 않았으되, 이 의뭉스러운 어른들은 직 미문은 쓸 듯 쓸 듯, 절승경개(絶勝景槪)는 나올 듯 나올 듯, 해만 보이고 끝끝내 아주 활짝 꼬랑지를 내보이지는 않고 그만 둔 구렁이 같은 분들이기 때문에 그 기만술(欺瞞術)은 한층 더 진보된 것이며, 그런 만큼 효과가 또 절대하여 천년을 두고 만년을 두고 내리내리 부질없는 위무(慰撫)를 바라는 중속(衆俗)들을 잘 속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왜 나는 미끈하게 솟아 있는 근대건축의 위용을 보면서 먼저 철근철골(鐵筋鐵骨), 시멘트와 세사(細砂), 이것부터 선뜩하니 감응(感應)하느냐는 말이다. 씻어버릴 수 없는 숙명(宿命)의 호곡(號哭), 몽골리언 플렉(蒙古痣), 오뚝이처럼 쓰러져도 일어나고 쓰러져도 일어나고 하니 쓰러지나 섰으나 마찬가지 의지할 얄판한 벽(壁) 한 조각 없는 고독(孤獨), 고고(枯稿), 독개(獨介), 초초(楚楚). 


나는 오늘 대오(大悟)한 바 있어 미문을 피(避)하고 절승(絶勝)의 풍광(風光)을 격(隔)하여 소조(蕭條)하게 왕생(往生)하는 것이며 숙명(宿命)의 슬픈 투시벽(透視癖)은 깨끗이 벗어놓고 온아종용(溫雅慫慂), 외로우나마 따뜻한 그늘 안에서 실명(失命)하는 것이다. 


의료(意料)하지 못한 이 홀홀(忽忽)한 '종생' 나는 요절(夭折)인가 보다. 아니 중세최절(中世摧折)인가 보다. 이길 수 없는 육박(肉迫), 눈먼 떼가마귀의 매리(罵詈) 속에서 탕아 중에도 탕아, 술객 중에도 술객, 이 난공불락의 관문의 괴멸(壞滅), 구세주의 최후연(最後然)히 방방곡곡(坊坊谷谷)이 독도(毒荼)는 삼투(滲透)하는 장식(裝飾) 중에도 허식(虛飾)의 표백(表白)이다. 출색(出色)의 표백(表白)이다. 


내부(乃夫)가 있는 불의. 내부가 없는 불의. 불의는 즐겁다. 불의의 주가낙락(酒價落落)한 풍미(風味)를 족하(足下)는 아시나이까. 윗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흔, 이 한경(漢鏡)같이 결함(缺陷)의 미(美)를 갖춘 깜쪽스럽게 새침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을 보라. 7세까지 옥잠화(玉簪花) 속에 감춰두었던 장분(粉)만을 바르고 그 후 분을 바른 일도 세수를 한 일도 없는 것이 유일의 자랑거리. 정희는 사팔뜨기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대항하기 어렵다. 정희는 근시 6도(六度)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대항할 수 없는 선천적 훈장이다. 좌난시 우색맹, 아― 이는 실로 완벽이 아니면 무엇이랴. 


속은 후에 또 속았다. 또 속은 후에 또 속았다. 미만 14세에 정희를 그 가족이 강행으로 매춘시켰다. 나는 그런 줄만 알았다. 한 방울 눈물— 


그러나 가족(家族)이 강행(强行)하였을 때쯤은 정희는 이미 자진하여 매춘한 후 오래오래 후(後)다. 당홍댕기가 늘 정희 등에서 나부꼈다. 가족들은 불의(不意)에 올 재앙을 막아줄 단 하나 값나가는 다홍댕기를 기탄(忌憚)없이 믿었건만— 


그러나— 


불의는 귀인(貴人)답고 참 즐겁다. 간음한 처녀(處女)— 이는 불의 중에도 가장 즐겁지 않을 수 없는 영원(永遠)의 밀림(密林)이다. 


그럼 정희는 게서 멈추나? 


나는 자기소개를 한다. 나는 정희에게 분수(分手)를 지기 싫기 때문에 잔인한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다. 


나는 벼(稻)를 본 일이 없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생년월일을 가끔 잊어버린다. 구십(九十) 노조모(老祖母)가 이팔소부(二八少婦)로 어느 하늘에서 시집온 십대조(十代祖)의 고성(古城)을 내 손으로 헐었고, 녹엽 천년의 호도나무 아름드리 근간을 내 손으로 베었다. 은행나무는 원통한 가문(家門)을 골수에 지니고 찍혀 넘어간 뒤 장장(長長) 4년 해마다 봄만 되면 독시(毒矢) 같은 싹이 엄 돋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나 이 모든 것에 견뎠다. 한번 석류나무를 휘어잡고 나는 폐허를 나섰다. 


조숙(早熟), 난숙(爛熟), 감(柿) 썩는 골머리 때리는 내. 생사(生死)의 기로(岐路)에서 완이이소(莞爾而笑), 표한무쌍(剽悍無雙)의 척구(瘠軀) 음지(陰地)에 창백(蒼白)한 꽃이 피었다. 


나는 미만 14세 적에 수채화를 그렸다. 수채화와 파과(破瓜). 보아라 목저(木箸)같이 야윈 팔목에서는 삼동(三冬)에도 김이 무럭무럭 난다. 김 나는 팔목과 잔털 나스르르한 매춘(賣春)하면서 자라나는 회충(蛔蟲)같이 매혹적인 살결. 사팔뜨기와 내 흰자위 없는 짝짝이 눈. 옥잠화(玉簪花) 속에서 나오는 기술(奇術) 같은 석일(昔日)의 화장(化粧)과 화장전폐(化粧全廢), 이에 대항하는 내 자전거 탈 줄 모르는 아슬아슬한 천품(天稟). 당홍댕기에 불의와 불의를 방임하는 속수무책의 내 나태. 


심판(審判)이여! 정희에 비교하여 내게 부족함이 너무나 많지 않소이까? 


비등비등? 나는 최후까지 싸워보리라. 


흥천사(興天寺) 으슥한 구석 방 한 간, 방석 두 개, 화로 한 개. 밥상 술상— 


도전(接戰) 수십합(數十合). 죄충우돌. 정희의 허전한 관문(關門)을 나는 노사(老死)의 힘으로 들이친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발(反撥)의 흉기는 갈 때보다도 몇 배나 더 큰 힘으로 나 자신의 손을 시켜 나 자신을 살상한다. 


지느냐. 나는 그럼 지고 그만 두느냐. 


나는 내 마지막 무장(武裝)을 이 전장(戰場)에 내세우기로 하였다. 그것은 즉 주란(酒亂)이다. 


한 몸을 건사하기조차 어려웠다. 나는 게울 것만 같았다. 나는 게웠다. 정희 스커트에다. 정희 스타킹에다. 


그리고도 오히려 나는 부족(不足)했다. 나는 일어나 춤추었다. 그리고 그 방 뒤 쌍창 미닫이를 열어젖히고 나는 예서 떨어져 죽는다고 마지막 한 벌 힘만을 아껴 남기고는 나머지 있는 힘을 다하여 난간을 잡아 흔들었다. 정희는 나를 붙들고 말린다. 말리는데 안 말리는 것도 같았다. 나는 정희 스커트를 잡아 젖혔다. 무엇인가 철석 떨어졌다. 편지나. 내가 집었다. 정희는 모른 체한다. 


속달(S와도 절연한 지 벌써 다섯 달이나 된다는 것은 선생님께서도 믿어주시는 바지요? 하던 S에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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