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cha Heifetz [870531] · MS 2019 · 쪽지

2022-05-09 10:3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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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시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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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석(太昔)에 좌우(左右)를 난변(難辨)하는 천치(天痴) 있더니 그 불길(不吉)한 자손(子孫)이 백대(百代)를 겪으매 이에 가지가지 천형병자(天刑病者)를 낳았더라 


암만 봐두 여편네 얼굴이 왼쪽으로 좀 삐뚜러징 거 같단 말야 싯? 


결혼한 지 한 달쯤 해서. 


처녀가 아닌 대신에 고리끼 전집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독(讀)파했다는 처녀 이상의 보배가 송(宋)군을 권(勸)하게 하였고 지금 송(宋)군의 은근한 자랑거리리라. 


결혼하였으니 자연 송(宋)군의 서가(書架)와 부인 순영 씨(이 순영이라는 이름짜 밑에다 씨(氏)짜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 내 가엾은 처지가 말하자면 이 소설을 쓰는 동기지)의 서가가 합병할밖에―합병을 하고 보니 송(宋)군의 최근에 받은 고리끼 전집과 순영 씨의 고색창연한 고리끼 전집이 얼렸다. 


결혼한 지 한 달쯤 해서 송(宋)군은 드디어 자기가 받은 신(新)판 고리끼 전집 한 질을 내다 팔았다. 

반만 먹세― 


반은? 


반은 여편네 갖다 주어야지―지난 달에 그 지경을 해 놓아서 이달엔 아주 죽을 지경일세― 


난 또 마누라 화장품이나 사다 주는 줄 알았네 그려― 


화장품? 암만 봐두 여편네 얼굴이라능 게 왼쪽으로 <약간> 삐두러졌다는 감이 없지 않단 말야―자네 사년 동안이나 쫓아댕겼다니 삐두러징 거 알구두 그랬나 끝끝내 모르구 그만두었나? 


좋은 하늘에 별까지 똑똑히 잘 백인 밤이 사 년 전 첫여름 어느 날이었던지? 방송국 넘어가는 길 성벽에 가 기대선 순영의 얼굴은 월광(月光) 속에 있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항라적삼 성긴 구녕으로 순영의 소맥(小麥)빛 호흡이 드나드는 것을 나는 내 가장 인색한 원근법에 의하여서도 썩 가쁘게 느꼈다. 어떻게 하면 가장 민첩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순영의 입술을 건드리나― 


나는 약(約) 삼 분 가량의 지도(地圖)를 설계(設計)하였다. 우선 나는 순영의 정면으로 다가서 보는 수밖에― 


그 때 나는 참 이상한 것을 느꼈다. 월광(月光) 속에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순영의 얼굴이 웬일인지 왼쪽으로 좀 삐뚜러져 보이는 것이다. 


나는 큰 범죄(犯罪)나 한 사람처럼 냉큼 바른편으로 비켜섰다. 나의 그런 불손(不遜)한 시각을 정(訂)정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위(位)치의 불리(不利)로 말미암아서도 나는 순영의 입술을 건드리지 못하고 그만두었다(실로 사 년 전 첫여름 어느 별빛 좋은 밤). 경관이 무엇하러 왔는지 왔다. 나는 삼천포읍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순영은 회령읍에 사는 사람이라고 그런다. 내 그 인색한 원근법이 일사천리지세로 남북(南北) 이천오백리(二千五百里)라는 거리를 급조하여 나와 순영 사이에다 퍼 놓는다. 순영의 얼굴에서 순간 월광이 사라졌다. 


아내가 삼천포에서 편지를 했다. 곧 돌아가게 될는지 좀 지체가 될는지 지금 같아서는 도무지 짐작이 서지 않는단다. 


내 승낙 없이 한 아내의 외출이다. 古물장사를 불러다가 아내가 벗어놓고 간 버선짝까지도 모조리 팔아먹으려다가― 


아내가 십중(十中)의 다섯은 돌아올 것 같았고 십중(十中)의 다섯은 안 돌아올 것 같았고 해서 사실 또 가랬댔자 갈 데가 있는 배 아니고 예라 자빠져서 어디 오나 안 오나 기다려 보자꾸나― 


싶어서 나는 저녁이면 윤(尹)군을 이용해서는 순영이 있는 바아 모로코에를 부리나케 드나들었다. 


아내가 달아났다는 궁(窮)상이 술먹는 남자에게는 술 먹기 좋은 구실이다. 십중(十中) 다섯은 아내가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눈치를 눈곱만치라도 거죽에 나타내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조금도 슬프지 않은 슬픔을 재주껏 과장해서 순영의 동정심을 끌기에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던적스러운 청승이 결국 순영을 어찌할 수도 없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순영은 광(光)주로 갔다. 가던 날 순영은 내게 술을 먹였다. 나는 그의 치맛자락을 잡아 찢고 싶었다. 나는 울었다. 인생은 허무이외다 그러면서―그랬더니 순영은 이것은 아마 술이 부족해서 그러나 보다고 여기고 맥주 한 병을 더 청하는 것이었다. 


반 년 동안 나는 순영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에 십중(十中) 다섯으로 아내가 돌아왔다. 나는 이 아내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지 않는 아내를 나는 전의 열 갑절이나 사랑할 수 있었다. 내 순영에게 향하여 잔뜩 곪은 애정이 이에 순영이 돌아오기 전에 터져 버린 것이다. 아내는 이런 나를 넘보기 시작했다. 


반 년만에 돌아온 순영이 돌아서서 침을 탁 배앝는다. 반 년 동안 외출했던 아내를 말 한 마디 없이 도로 맞는 내 얼굴 위에다― 


부질없는 세월이 사 년 흘렀다. 아내의 두 번째 외출은 십중(十中) 다섯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내 고독(孤獨)을 일금 일 원 사십 전과 바꾸었다. 인쇄 공장 우중충한 속에서 환자처럼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똑같은 생활을 찍어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순영이 그의 일터를 옮기는 대로 어디까지든지 쫓아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일금 일 원 사십 전에 팔아 버린 내 생활에 그래도 얼마간 기꺼운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직 순영 앞에서 술잔을 주무르는 동안뿐이었다. 그러나 한 번 돌아선 순영의 마음은―아니 한 번도 나를 향하지 않은 순영의 마음은 남북(南北) 이천오백리(二千五百里)와 같이 차디찬 거리 저편의 것이었다. 그 차디찬 거리 이편에는 늘 나와 나처럼 고독한 송(宋)군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는 이미 순영 앞에서 내 고독을 호소할 수조차 없어졌다. 나는 송(宋)군의 고독을 빌어다가 순영 앞에서 울었다. 송(宋)군의 양(良)심이 증(蒸)발해 버린 뒤의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몹시 고민한다. 얼굴이 종이처럼 창백하다. 나는 이런 송(宋)군의 불행을 이용하여 내 슬픔을 입증(立證)시켜 보느라고 실로 천만 어(語)의 단자를 허비했다. 순영의 얼굴에는 봄다운 홍조(紅潮)가 돌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 틈엔지 나 자신의 위치를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필사의 노력으로 겨우 내 위치를 다시 탈환했을 때에는 이미, 


송(宋)선생님이세요? 이상(李箱) 씨하구 같이(이것은 과연 객쩍은 덧붙이개였다) 오늘 밤에 좀 놀러 오세요―네? 


이런 전화가 끝난 뒤였다. 송(宋)군은 상반기 상여금을 받았노라고 한잔 먹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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