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론(2)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6513636
김유정 편
이 유정은 겨울이면 모자를 쓰지 않는다. 그러면 탈모인가? 그의 그 더벅머리 위에는 참 우굴쭈굴한 벙거지가 얹혀 있는 것이다. 나는 걸핏하면,
“김형! 그 김형이 쓰신 모자는 모자가 아닙니다.”
“김형!(이 김형이라는 호칭인즉은 이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 어떡하시는 말씀입니까?”
“거 벙거지, 벙거지지요.”
“벙거지! 벙거지! 옳습니다.”
태원도 회남도 유정의 모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벙거지라고밖에! 엔간해서 술이 잘 안 취하는데 취하기만 하면 딴사람이 되고 만다. 그것은 무엇을 보고 아느냐 하면…….
보통으로 주먹을 쥐고 쓱 둘째 손가락만 쪽 펴면 사람 가리키는 신호가 되는데 이래 가지고는 그 벙거지 차양 밑을 우벼파면서 나사못 박는 흥내를 내는 것이다. 하릴없이 젖먹이 곤지곤지 형용에 틀림없다.
창문사에서 내가 집무랍시고 하는 중에 떠억 나를 찾아온다. 와서는 내 집무 책상 앞에 마주 앉는다. 앉아서는 바위 덩어리처럼 말이 없다. 낸들 또 무슨 그리 신통한 이야기가 있으리요. 그저 서로 벙벙히 앉았는 동안에 나는 나대로 교정 등속 일을 한다. 가지가지 부호를 써서 내가 교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불쑥,
“김형! 거 지금 그 표는 어떡하라는 표구요?”
이런다. 그럼 나는 기가 막혀서,
“이거요, 글자가 곤두섰으니 바루 놓으란 표지요.”
하고 나서는 또 그만이다. 이렇게 평소의 유정은 뚱보다. 이런 양반이 그 곤지곤지만 시작되면 통성(通姓) 다시 해야 한다.
그날 나도 초저녁에 술을 좀 먹고 곤해서 한참 자는데 별안간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 1시나 가까웠는데…… 하고 눈을 비비고 나가 보니까 유정이 B군과 S군과 작반(作伴)해 와서 이 야단이 아닌가. 유정은 연해 성히 곤지곤지 중이다. 나는 일견에 ‘익키! 이건 곤지곤지구나’ 하고 내심 벌써 각오한 바가 있자니까 나가잔다.
“김형! 이 유정이가 오늘 술 좀 먹었습니다. 김형! 우리 또 한잔 하십시다.”
“아따, 그러십시다그려.”
이래서 나도 내 벙거지를 쓰고 나섰다. 나는 단박에 취해 버려서 역시 그 비장의 가요를 기탄없이 내뽑은가 싶다. 이렇게 밤이 늦었는데 가무음곡으로써 가구(街衢)를 소란케 하는 것은 법규상 안 된다. 그래 주파(酒婆)가 이러니 저러니 좀 했더니 S군과 B군은 불온하기 짝이 없는 언사로 주파를 탄압하면, 유정은 또 주파를 의미 깊게 흘깃 한번 홀겨보더니,
“김형! 우리 소리 합시다.”
하고 그 척척 붙어 올라올 것 같은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강원도아리랑〉 ‘팔만 구암자’를 내뽑는다. 이 유정의 〈강원도아리랑〉은 바야흐로 천하 일품의 경지다.
나는 소독젓가락으로 추탕 보시깃전을 갈기면서 장단을 맞춰 좋아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한쪽에서 S군과 B군이 불화다. 취중 문학담이 자연 아마 그리된 모양인데 부전부전하게 유정이 또 거기가 한몫 끼이는 것이다. 나는 술들이나 먹지 저 왜들 저러누, 하고 서서 보고만 있으니까 유정이 예의 그 벙거지를 떡 벗어던지더니 두루마기 마고자 저고리를 차례로 벗어던지고는 S군과 맞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싸움의 테마는 아마 춘원의 문학적 가치 운운이던 모양인데 어쨌든 피차 어지간히들 취중이라 문학은 저리 집어치우고 이제 문제는 체력이다. 뺨도 치고 제법 태권도들 한다. B군은 이리 비철 저리 비철 하면서 유정의 착의 일식(着衣一式)을 주워 들고 바로 뜯어말린답시고 한가운데 가 끼어서 꾸기적꾸기적하는데 가는 발길 오는 발길에 이래저래 피해가 많은 꼴이다.
놀란 것은 주파와 나다.
주파는 술은 더 못 팔아도 좋으니 이분들을 좀 밖으로 모셔 내라는 애원이다. 나는 S군과 협력해서 가까스로 용사들을 밖으로 끌고 나오기는 나왔으나 이번에는 자동차가 줄지어 왕래하는 대로 한복판에서들 활약이다. 구경군이 금시로 모여든다. 용사들의 사기는 백열화한다.
나는 섣불리 좀 뜯어말리는 체하다가 얼떨결에 벙거지 벗어진 것이 당장 용사들의 군용화에 유린을 당하고 말았다. 그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전선주에 가 기대서서 이 만화를 서서히 감상하자니까……
군은 이건 또 언제 어디서 B 획득했는지 모를 5홉들이 술병을 거꾸로 쥐고 육모방망이 내휘두르듯 하면서 중재중인데 여전히 피해가 많다. B군은 이윽고 그 술병을 한번 허공에 한층 높이 내휘두르더니 그 우렁찬 목소리로 산명곡응(山鳴谷應)하라고 최후의 대갈일성을 시험해도 전황은 여전하다.
B군은 그만 화가 벌컥 난 모양이다. 그 술병을 지면 위에다 내던지고 가로대,
“네놈들을 내 한꺼번에 죽이겠다.”
고 결의의 빛을 표시하더니 좌충우돌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S군, 유정의 분간이 없이 막 구타하기 시작이다.
이 광경을 본 나도 놀랐거니와 더욱 놀란 것은 전사 두 사람이다. 여태껏 싸움 말리는 역할을 하느라고 하던 B군이 별안간 이처럼 태도를 표변하니 교전하던 양인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B군은 위선 유정의 턱밑을 주먹으로 공격했다. 경악한 유정은 방어의 자세를 취하면서 한쪽으로 비키니까 B군은 이번에는 S군을 걷어찼다. S군은 눈이 뚱그래서 이 역(亦) 한켠으로 비키면서 이건 또 무슨 생각으로,
“너 유정이! 덤벼라.”
“오냐! S! 너! 나한테 좀 맞어 봐라.”
하면서 원래의 적이 다시금 달라붙으니까 B군은 그냥 두 사람을 얼러서 걷어차면서 주먹비를 내리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일제히 공세를 B군에게로 모아 가지고 쉽사리 B군을 격퇴한 다음 이어 본전(本戰)을 계속 중에 B군은 이번에는 S군의 불두덩을 걷어찼다. 노발대발한 S군은 B군을 향하여 맹렬한 일축(一蹴)을 수행하니까 이 틈을 타서 유정은 S군에게 이 또한 그만 못지않은 일축을 결행한다. 이러면 B군은 또 선수(船首)를 돌려 유정을 겨누어 거룩한 일축을 발사한다. 유정은 S군을, S군은 B군을, B군은 유정을, 유정은 S군을, S군은…….
이것은 그냥 상상만으로도 족히 포복절도할 절경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만 내 벙거지가 여지없이 파멸한 것은 활연(豁然)히 잊어버리고 웃음보가 곧 터질 지경인 것을 억지로 참고 있자니까 사람은 점점 꼬여드는데 이 진무류(珍無類)의 혼전은 언제나 끝날는지 자못 묘연하다.
이때 옆 골목으로부터 순행하던 경관이 칼 소리를 내면서 나왔다. 나와서 가만히 보니까 이건 싸움은 싸움인 모양인데 대체 누가 누구하고 싸우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경관도 기가 막혀서,
“이게 날이 너무 춥더니 실진(失眞)들을 한 게로군.”
하는 모양으로 뒷짐을 지고 서서 한참이나 원망(遠望)한 끝에 대갈일성,
“가에렛!”
나는 이 추운 날 유치장에를 들어갔다가는 큰일이겠으므로,
“곧 집으로 데리구 가겠습니다. 용서하십쇼. 술들이 몹시 취해 그렇습니다.”
하고 고두백배한 것이다. 경관의 두 번째 ‘가에렛’ 소리에 겨우 이 삼국지는 아마 종식하였던가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태원이 “거 요코미쓰 리이치의 「기계(機械)」 같소그려” 하였다(물론 이 세 친구는 그 이튿날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는 듯이 계속하여 정다웠다).
유정은 폐가 거의 결단이 나다시피 못 쓰게 되었다. 그가 웃통 벗은 것을 보았는데 기구한 유신(庾身)이 나와 비슷하다. 늘,
“김형이 그저 두 달만 약주를 끊었으면 건강해질 텐데.”
해도 막무가내하더니, 지난 7월 달부터 마음을 돌려 정릉리 어느 절간에 숨어 정양중이라니, 추풍이 점기(漸起)에 건강한 유정을 맞을 생각을 하면 나도 독자도 함께 기쁘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그러면 대부분 그냥 힘을 못씀
-
순수하게 지능이 낮음 정상적인 지능이면서 천박한 사람(나 아님)은 있어도 예의없는...
-
ㅇ
-
10년 전 개좆반고였는데도 0 0
가오충 인식은 ㅎㅌㅊ였음 중딩때까진 물론 가오충이 판을 침
-
내일 시험 공부 끝 4 2
정리하니 한 바닥으로 정리가 되는데 전공 수업이 이래도 되는게 맞나
-
08) 오늘의 공부인증 8 8
-
6모 22 28 30틀 엔제 1 0
이해원 즌2나 지인선 즌2 어떤가용
-
고등학교 가면 애들도 인식이 그냥 벌레 취급하던데
-
나의 미래는 5 1
어디로 가는지 몰라
-
근데 가오충을 4 1
딱히 실제로 마주친 기억은 없는 듯
-
검거당해서 기자들 앞에서 모자 마스크 푹 눌러쓴 관상 보통 90% 확률로 자거나 인스타 보고있음
-
걍 그렇다구...
-
복싱배우셈뇨 9 0
중고딩때 취미로 배웟엇는데 친구들 시비털리면 선발대로 나갓음 물론 맞짱을 뜨거나...
-
센츄를 누가못따? 3 0
내가. 내가. 내가.
-
배가 고플 땐 2 0
닭가슴살을
-
너는 다른 모든걸 가졌지만 4 1
남양주 호평동의 나 부엉이를 가지지 못했다옹
-
가오충들볼때마다드는생각 8 3
감히CENTURION인내앞에서가오를잡아? 사실구라임
-
두명은 차단했고 두명은 틧터안하는 갓반인이고 지금 미적분쌤만 남았는데 하 ㅅㅂ 내가...
-
존예 여붕이 옆자리에 앉아서 샤인미 미적분 똭 펴놓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몰래 똥맛 어싸 풀 거임
-
가오충특 2 0
무서움 ㅠㅡㅠ
-
쳐 비켜라
-
셋 중 하나 택1
-
도쿄 예약다했다아 4 1
비행기도 왕복 32만원이고 열차도 특급권 35퍼 할인 나이스
-
성시경노래가넘조타 1 0
사랑한다는그말~ 아껴둘걸그랫죠~
-
가오충 특 6 2
-
미적기출 0 0
기출문제집두세권정도돌리긴햇는데 미적기출이불안한거같아...
-
월드컵파 막내였음...
-
아 드디어 3 0
완성이다
-
기운이 하나도 읎다 4 0
늙어버렸구만.. 아직 한 과목 남았는데! 늙어버렸어.. 에효,, 이 놈의 수학은 확...
-
중경외시에서 중앙대가 젤 낮음 6 1
이거진짜에요? ㅋㅋㅋㅋㅋ
-
남녀공학도 일진 잇음? 6 0
고딩기준 중딩 노노 여기서 말하는 일진은 셔틀 삥 애들괴롭히는것만 따졋을때
-
옛날에 쓰던 노트 발견! 2 0
추억이 새록새록
-
고등학교에 2 1
한남들이 너무 많앗음 근데 나도 그들 중 하나였음
-
저 아헤가오표정 야르함 3 0
애인 생기면 보여주고 싶은데 여자들은 그런 거 싫어한다는데 여르비분들 의견 제시좀요
-
학교에가오나시가있음 1 1
모든걸먹어치움
-
학교에가오충이너무많음요 3 1
하늘을찌를듯함
-
학교에가오충이딱히있진않음 2 0
그런거하면 애들이 한심하게 봐서 학기 초에 가오충 출신(?)이었던 애들도 가오 다 빠짐
-
통계학입문 포기하고 싶어요 3 0
정말 너무 힘들어요
-
의대 수시 최저러 과목 5 0
의대 최저 맞추는데 국어는 2등급 영수는 전부 1~2왔다갔다해요 탐구는 33인데,...
-
6부바지 딱붙핏남들
-
결혼하고 싶다 7 0
결혼결혼
-
맞팔구 2 0
은테 유뱃을 달고싶어요
-
이키모노가카리가 너무 젛음 4 0
ㄹㅇ
-
수학2컷이목표예요 2 1
본인등급
-
수학 왤케 못하지 14 0
에라이!
-
미소녀 똥 11 0
똥 !!!!!!!!!!@
-
커리 진짜 찍먹 개오지게 하는데 이거 괜찮은거 맞아요…? 올오진 듣는데 뭐라는지...
-
자작시 4일차) 페이스메이커 8 2
이산화탄소가 내 머리를 끝까지 지배하던 날, 그 날, 나는 그저 앞만 보고 달림...
-
전자는 가형 눈풀 30분컷하는 고능 의대생이고 외모평타랑 지금 본인 외모중에서 고를수있음
-
무물보 19 0
현재 상태: 공부하기 싫음
아 이상님이었/?
넹
은테 ㅊㅋㅊㅋ
이상의 글중에 이게 제일 마음에 드네요
이상의 텍스트를 접해본게 민음사 이상단편선집에서뿐이었는데, 거기서 그 빌어먹을 자전적ntr소설들빼면 남는게 별 인상적이진 않거나 이해못하게 난해한 친구들밖에 없었는데, 요것하나만 눈에 띄더라구요.
20대스럽게 유쾌하기도 하고, 친숙한 이름들이 눈에 띗기도 하고~ 이상이란 작가의 사람내음을 처음 맡은것같았네요

여러모로 공감되네요
책읽고싶은기분인데책을막상읽으려고하니까귀찮네요으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