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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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편
이 유정은 겨울이면 모자를 쓰지 않는다. 그러면 탈모인가? 그의 그 더벅머리 위에는 참 우굴쭈굴한 벙거지가 얹혀 있는 것이다. 나는 걸핏하면,
“김형! 그 김형이 쓰신 모자는 모자가 아닙니다.”
“김형!(이 김형이라는 호칭인즉은 이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 어떡하시는 말씀입니까?”
“거 벙거지, 벙거지지요.”
“벙거지! 벙거지! 옳습니다.”
태원도 회남도 유정의 모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벙거지라고밖에! 엔간해서 술이 잘 안 취하는데 취하기만 하면 딴사람이 되고 만다. 그것은 무엇을 보고 아느냐 하면…….
보통으로 주먹을 쥐고 쓱 둘째 손가락만 쪽 펴면 사람 가리키는 신호가 되는데 이래 가지고는 그 벙거지 차양 밑을 우벼파면서 나사못 박는 흥내를 내는 것이다. 하릴없이 젖먹이 곤지곤지 형용에 틀림없다.
창문사에서 내가 집무랍시고 하는 중에 떠억 나를 찾아온다. 와서는 내 집무 책상 앞에 마주 앉는다. 앉아서는 바위 덩어리처럼 말이 없다. 낸들 또 무슨 그리 신통한 이야기가 있으리요. 그저 서로 벙벙히 앉았는 동안에 나는 나대로 교정 등속 일을 한다. 가지가지 부호를 써서 내가 교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불쑥,
“김형! 거 지금 그 표는 어떡하라는 표구요?”
이런다. 그럼 나는 기가 막혀서,
“이거요, 글자가 곤두섰으니 바루 놓으란 표지요.”
하고 나서는 또 그만이다. 이렇게 평소의 유정은 뚱보다. 이런 양반이 그 곤지곤지만 시작되면 통성(通姓) 다시 해야 한다.
그날 나도 초저녁에 술을 좀 먹고 곤해서 한참 자는데 별안간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 1시나 가까웠는데…… 하고 눈을 비비고 나가 보니까 유정이 B군과 S군과 작반(作伴)해 와서 이 야단이 아닌가. 유정은 연해 성히 곤지곤지 중이다. 나는 일견에 ‘익키! 이건 곤지곤지구나’ 하고 내심 벌써 각오한 바가 있자니까 나가잔다.
“김형! 이 유정이가 오늘 술 좀 먹었습니다. 김형! 우리 또 한잔 하십시다.”
“아따, 그러십시다그려.”
이래서 나도 내 벙거지를 쓰고 나섰다. 나는 단박에 취해 버려서 역시 그 비장의 가요를 기탄없이 내뽑은가 싶다. 이렇게 밤이 늦었는데 가무음곡으로써 가구(街衢)를 소란케 하는 것은 법규상 안 된다. 그래 주파(酒婆)가 이러니 저러니 좀 했더니 S군과 B군은 불온하기 짝이 없는 언사로 주파를 탄압하면, 유정은 또 주파를 의미 깊게 흘깃 한번 홀겨보더니,
“김형! 우리 소리 합시다.”
하고 그 척척 붙어 올라올 것 같은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강원도아리랑〉 ‘팔만 구암자’를 내뽑는다. 이 유정의 〈강원도아리랑〉은 바야흐로 천하 일품의 경지다.
나는 소독젓가락으로 추탕 보시깃전을 갈기면서 장단을 맞춰 좋아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한쪽에서 S군과 B군이 불화다. 취중 문학담이 자연 아마 그리된 모양인데 부전부전하게 유정이 또 거기가 한몫 끼이는 것이다. 나는 술들이나 먹지 저 왜들 저러누, 하고 서서 보고만 있으니까 유정이 예의 그 벙거지를 떡 벗어던지더니 두루마기 마고자 저고리를 차례로 벗어던지고는 S군과 맞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싸움의 테마는 아마 춘원의 문학적 가치 운운이던 모양인데 어쨌든 피차 어지간히들 취중이라 문학은 저리 집어치우고 이제 문제는 체력이다. 뺨도 치고 제법 태권도들 한다. B군은 이리 비철 저리 비철 하면서 유정의 착의 일식(着衣一式)을 주워 들고 바로 뜯어말린답시고 한가운데 가 끼어서 꾸기적꾸기적하는데 가는 발길 오는 발길에 이래저래 피해가 많은 꼴이다.
놀란 것은 주파와 나다.
주파는 술은 더 못 팔아도 좋으니 이분들을 좀 밖으로 모셔 내라는 애원이다. 나는 S군과 협력해서 가까스로 용사들을 밖으로 끌고 나오기는 나왔으나 이번에는 자동차가 줄지어 왕래하는 대로 한복판에서들 활약이다. 구경군이 금시로 모여든다. 용사들의 사기는 백열화한다.
나는 섣불리 좀 뜯어말리는 체하다가 얼떨결에 벙거지 벗어진 것이 당장 용사들의 군용화에 유린을 당하고 말았다. 그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전선주에 가 기대서서 이 만화를 서서히 감상하자니까……
군은 이건 또 언제 어디서 B 획득했는지 모를 5홉들이 술병을 거꾸로 쥐고 육모방망이 내휘두르듯 하면서 중재중인데 여전히 피해가 많다. B군은 이윽고 그 술병을 한번 허공에 한층 높이 내휘두르더니 그 우렁찬 목소리로 산명곡응(山鳴谷應)하라고 최후의 대갈일성을 시험해도 전황은 여전하다.
B군은 그만 화가 벌컥 난 모양이다. 그 술병을 지면 위에다 내던지고 가로대,
“네놈들을 내 한꺼번에 죽이겠다.”
고 결의의 빛을 표시하더니 좌충우돌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S군, 유정의 분간이 없이 막 구타하기 시작이다.
이 광경을 본 나도 놀랐거니와 더욱 놀란 것은 전사 두 사람이다. 여태껏 싸움 말리는 역할을 하느라고 하던 B군이 별안간 이처럼 태도를 표변하니 교전하던 양인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B군은 위선 유정의 턱밑을 주먹으로 공격했다. 경악한 유정은 방어의 자세를 취하면서 한쪽으로 비키니까 B군은 이번에는 S군을 걷어찼다. S군은 눈이 뚱그래서 이 역(亦) 한켠으로 비키면서 이건 또 무슨 생각으로,
“너 유정이! 덤벼라.”
“오냐! S! 너! 나한테 좀 맞어 봐라.”
하면서 원래의 적이 다시금 달라붙으니까 B군은 그냥 두 사람을 얼러서 걷어차면서 주먹비를 내리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일제히 공세를 B군에게로 모아 가지고 쉽사리 B군을 격퇴한 다음 이어 본전(本戰)을 계속 중에 B군은 이번에는 S군의 불두덩을 걷어찼다. 노발대발한 S군은 B군을 향하여 맹렬한 일축(一蹴)을 수행하니까 이 틈을 타서 유정은 S군에게 이 또한 그만 못지않은 일축을 결행한다. 이러면 B군은 또 선수(船首)를 돌려 유정을 겨누어 거룩한 일축을 발사한다. 유정은 S군을, S군은 B군을, B군은 유정을, 유정은 S군을, S군은…….
이것은 그냥 상상만으로도 족히 포복절도할 절경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만 내 벙거지가 여지없이 파멸한 것은 활연(豁然)히 잊어버리고 웃음보가 곧 터질 지경인 것을 억지로 참고 있자니까 사람은 점점 꼬여드는데 이 진무류(珍無類)의 혼전은 언제나 끝날는지 자못 묘연하다.
이때 옆 골목으로부터 순행하던 경관이 칼 소리를 내면서 나왔다. 나와서 가만히 보니까 이건 싸움은 싸움인 모양인데 대체 누가 누구하고 싸우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경관도 기가 막혀서,
“이게 날이 너무 춥더니 실진(失眞)들을 한 게로군.”
하는 모양으로 뒷짐을 지고 서서 한참이나 원망(遠望)한 끝에 대갈일성,
“가에렛!”
나는 이 추운 날 유치장에를 들어갔다가는 큰일이겠으므로,
“곧 집으로 데리구 가겠습니다. 용서하십쇼. 술들이 몹시 취해 그렇습니다.”
하고 고두백배한 것이다. 경관의 두 번째 ‘가에렛’ 소리에 겨우 이 삼국지는 아마 종식하였던가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태원이 “거 요코미쓰 리이치의 「기계(機械)」 같소그려” 하였다(물론 이 세 친구는 그 이튿날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는 듯이 계속하여 정다웠다).
유정은 폐가 거의 결단이 나다시피 못 쓰게 되었다. 그가 웃통 벗은 것을 보았는데 기구한 유신(庾身)이 나와 비슷하다. 늘,
“김형이 그저 두 달만 약주를 끊었으면 건강해질 텐데.”
해도 막무가내하더니, 지난 7월 달부터 마음을 돌려 정릉리 어느 절간에 숨어 정양중이라니, 추풍이 점기(漸起)에 건강한 유정을 맞을 생각을 하면 나도 독자도 함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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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글중에 이게 제일 마음에 드네요
이상의 텍스트를 접해본게 민음사 이상단편선집에서뿐이었는데, 거기서 그 빌어먹을 자전적ntr소설들빼면 남는게 별 인상적이진 않거나 이해못하게 난해한 친구들밖에 없었는데, 요것하나만 눈에 띄더라구요.
20대스럽게 유쾌하기도 하고, 친숙한 이름들이 눈에 띗기도 하고~ 이상이란 작가의 사람내음을 처음 맡은것같았네요

여러모로 공감되네요
책읽고싶은기분인데책을막상읽으려고하니까귀찮네요으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