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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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무지 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어느 때에는 그에게 무한히 호의를 보여 주는 것같이 하다가도 또 어느 때에는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도조차 없었다. 일로 보아 하여 간 그들이 그에게 무엇이나 불평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였다. 어느 날 밤에 그는 그들을 모두 불렀다. 이야기라도 같이 하여 보자는 뜻으로
「T! 의가 좋으니 나쁘니 하여도 지금 우리에게 누가 있나. 다만 우리 두 형제가 있지 않나― 아주머니(T씨의 아내를 그는 이렇게 불렀다) 그렇지 않소. 또 그리고 업아, 너도 그렇지 아니하냐. 우리 외에 설령 M군이 있다 하더라도―하기야 M군은 우리들 가족과 마찬가지로 친밀한 사이겠지만 그래도 M군은 ‘남’이 아닌가」
그는 여기에 말을 뚝 끊고 한 번 그들의 얼굴들을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쁜 표정은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근심스럽거나 어두운 표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무엇이나 그들은 그에게 요구하고 있는 듯한 빛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자! 우리 일을 우리끼리 의논하지 아니하고 누구하고 의논하나― 나에게는 벌써 먹은 바 생각이 있어! 그것은 내 말하겠으되― 또 자네들께도 좋은 생각이 있으면 나에게 말하여 주었으면 좋겠어. 하여간 이 돈은 남의 것이 아닌가. 남의 것을 내가 억지로(?) 얻은 것은― 죽은 사람의 뜻을 어기듯 하여 가며 이렇게 내가 차지한 것은 다 우리들도 한번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 보자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 아닌가. 지금 이 돈에 내 것 남의 것이 있을 까닭이 없어. 내 것이라면 제각기 다 내것이 될 수 있겠고 남의 것이라면 다 각기 누구에게나 남의 것이니깐? 자! 내 눈에 띄이지 못한 나에게 대한 불평이 있다든지 또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다든가 하는 생각이 있다든지 하거든 우리가 같이 서로 가르쳐 주며 의논하여 보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그는 또 한 번 고개를 돌리어 가며 그들의 얼굴빛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 변화도 찾아내일 수는 없었다.
「그러면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여 보지! 내 생각 같아서는―이 돈을 반에 탁 갈라서 자네하고 나하고 반분씩 노놔 갖는 것도 좋을 것 같으나 기실 얼마되지 않은 것을 또 반에 나누고 말면 더욱이나 적어지겠고 무슨 일을 해볼 수도 없겠고 그럴 것 같아서! 생각다 생각 끝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
그의 얼굴에는 무슨 이야기?! 못할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어려운 표정이 보였다.
「즉 반분을 하고 고만두는 것보다는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같이 무슨 일이고 한번 하여 보자는 말이야. 그러는 데는 우리는 M군의 힘도 빌 수밖에는 없어. 또 우리 둘의 힘만으로는 된다 하더라도― 생각하면 우리는 옛날부터 M군의 신세를 끔찍이 져왔으니까. 지금은 거의 가족과 마찬가지로 친밀한 사이가 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한 사람과 함께 협력해 보는 것도 좋지 아니할까 하는데― 또 M군은 요사이 자네들도 아다시피 매우 곤궁한 속에서 지내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하면 여지껏 신세진 은혜도 갚아 보는 세음으로!」
「M군은 의사(醫師)이지. 하기는 나도 그 생각으로 그랬다는 것은 아니로되 어쨌든 의학공부를 약간 해둔 경력도 있고 하니― M군의 명의(名義)로 병원을 하나 내이는 것이 어떠할가 하는 말이거든!―」
그는 이 말을 뚝 떨어뜨린 다음 입안에 모든 굳은 침을 한 모금 꿀떡 삼켰다.
「그야 누구의 이름으로 하든지 상관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M군은 그 방면에 있어서는 상당히 연조 도 있고 또 이름도 있지 않은가― 즉 그것은 우리의 편리한 점을 위하는 방침상 그리는 것이고―무슨 그 사람이 반드시 전부의 주인이라는 것은 아니거든― 그래서는 수입이 얼마가 되든지 삼분하여서 논키로 !―어떤가? 의향이」
그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 다른 표정도 찾아 내일 수는 없었다. 꽉 다물어 있는 그들의 입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열릴 것 같지도 않았다.
「자― 좋으면 좋겠다고, 또 더 좋은 방책이 있으면 그것을 말하여 주게! 불만인가―덜 좋은가」
방안은 고요하다. 밖에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버러지 소리의 한결같은 ‘리듬’ 외에는 방안은 언제까지라도 침묵이 계속하려고만 들었다.
그날 밤에 그는 밤이 거의 밝도록 잠들지 못하였다. 끝없는 생각의 줄이 뒤를 이어서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의 일들은 불행이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이 그렇게도 불행하므로 행복된 것이다」
그에게는 불행의 쾌미(快味)가 알려진 것도 같았다.
「이대로 가자― 이대로 가는 수밖에는 아무 도리도 없다. 이제부터는 내가 여지껏 찾아오던 ‘행복’이라는 것을 찾기도 고만두고 다만 ‘삶’을 값있게 만들기에만 힘쓰자. 행복이라는 것은 없다 ―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있을 수 없는 것을 여지껏 찾앗다. 나는 그릇 ‘겨냥’ 대었다 ―그러므로 나는 확실히 ‘완전한 인간의 패배자’였다 ―때는 이미 늦은 것 같다. 그러나 또 생각하면 때라는 것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다만 삶에 대한 굳은 의지를 가질 따름이어야만 한다― 그 삶이라는 것이 싸움과 슬픔과 피로투성이 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곳에는 불행도 없다. ―다만 힘세찬 ‘삶’의 의지가 그냥 그 힘을 내어휘두르고 있을 따름이다.」
인간은 실로 인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얼마나 애를 썼나 하늘도 쌓아 보고 지옥도 파 보았다. 그리고 신(神)도 조각(彫刻)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땅 이외에 그들의 발 하나를 세울 만한 곳을 찾아내이지 못하였고 사람 이외에 그들의 반려(伴侶)도 찾아내일 수 없었다. ―그들은 땅 위와 그리 사람들의 얼굴들을 번갈아 바라다보았다. 그리고는 결국 길게 한숨 쉬었다.
「벗도 갈 곳도 없다 ―이 괴로운 몸을 그래도 이 험악한 싸움터에서 질질 끌고 돌아다녀야 할 것인가 ―그밖에 도리가 없다면! 사람아 힘 풀린 다리라도 최후의 힘을 주어 세워 보자. 서로서로 다같이 또 다 각기 잘 싸우자! 이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있을 따름이고나―」
그는 그의 몸이 한층이나 더 피곤한 듯이 자리 속에서 한 번 돌쳐 누웠다. 피곤함으로부터 오는 옅은 쾌감이 전신에 한꺼번에 스르르 기어 올라옴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하여간 나는 우선 T의 집에서 떨어지자[離] 그것은 내가 T의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 피차에 고통을 가져온다는 이유로부터라느니보다도 그까진 일로 마음을 귀찮게 굴어 진지한 인간투쟁을 방해시킬 수는 없다.」
밤이 거의 밝게쯤 되어서야 겨우 그는 최후의 결정을 얻었다. 설령 그가 T씨의 집을 떠난다 하여도 그는 지금의 형편으로 도저히 혼자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M군과 함께 있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T씨가 좋아하든지 그의 방침대로 병원을 낸 다음 수입은 삼분할 것도 결정하였다.
지금 M군의 집은 전일의 대가를 대신하여 눈에 띄우지도 아니할 만한 오막살이였다. 모든 것이 결정되는 대로 병원 가까이 좀 큰 집을 하나 산 다음 M군의 명의로 자기도 M군의 한 가족이 될 것도 결정하였다. 또 병원을 신축하기에 넉넉하다면 아주 그 건물 한 모퉁이에다 주택까지 겸할 수 있도록 하여 볼 까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는 될 것 같지도 않게 생각키웠다.
새해는 왔다. 그의 생활도 한층 새로운 활기를 띠어오는 것 같았다.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새해였으나 그에게는 다시 몹시 의미 깊은 새해였던 것만은 사실이었다.―(1930. 5. 於 義州通工事場)―
생물은 다 즐거웠다. 적어도 즐거운 것같이 보였다. 그가 봄을 만났을 대 봄을 보았을 때에 죽을 힘을 다 기울여 가며 긍정(肯定)하렸던 ‘생’이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회의와 그에 좇는 실망이 그를 찾았다[訪]. 진행하며 있는 온갖 물상 가운데에서 그 하나만이 뒤에 떨어져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벌써 도태되었을’ 그를 생각하고 법칙이라는 것의 때로는 기발한 예외를 자신에서 느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도 여력(餘力)이 있었다. 긍정에서 부정에 항거하는 투쟁― 최후의 피투성이의 일전(一戰)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용납되지 않은 애(愛)’ ‘눈먼[盲] 애’―그것을 조건 없이 세상에 헌상하는 그것이었다.
인간 낙선자(落選者)의 힘은 오히려 클 때도 있다. 봄을 보았을 대, 지상에 엉키는 생(生)을 보았을 때, 증대되는 자아 이외(自我以外)의 열락을 보았을 때 찾아오는 자살적 절망에 충돌당하였을 때 그래도 그는 의연히 차라리 더한층 생에 대한 살인적 집착과 살신성인적(殺身成仁的) 애(愛)를 지불키 용감하였다. 봄을 아니 볼 수 없이 볼 수박에 없었을 때 그는 자신을 혜성(慧星)이라 생각하여도 보았다. 그러나 그가 혜성이기에는 너무나 광채가 없었고 너무나 무능하였다. 다시 한번 자신을 일평범 이하의 인간에 내려뜨려 보았을 때 그가 그렇기에는 너무나 열락과 안정이 없었다. 이 중간적(실로 아무것도 아닌) 불만은 더욱이나 그를 광란에 가깝게 심술 내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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