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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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군은 실망하였다. 업은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마이너스’의 존재였다.
「저런 사람이 필요할까? 아니 있어도 좋을까?」
그러나 ‘유해무익’이라는 참을 수 없는 결론이었다.
「가지가 돋고 꽃이 피기 전에 일찍이 그 순(荀)을 잘라 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M군에게 대하여서는 너무도 악착한 착상(着想)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업의 전도를 위하여 잘 지도하여 볼까」
그러나
「한 사람의 사상은 반응(反應)키 어려운 만치 완성되어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설복(說服)을 당하기에는 업의 이지(理智)는 너무 까다롭다」
M군의 업에게 대한 애착은 근본적으로 다하여 버렸다. M군의 이러한 정신적 실망의 반면에는 물질적 방면에서 받은 영향(影響)도 적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업의 학비(學費)를 대어 오던 M군이 수년 전에 그의 아버지가 불의의 액운(厄運)으로 말미암아 파산(破産)을 당하다시피 되어 유유자적(悠悠自適)하던 연구실의 생활도 더하지 못하고 어느 관립병원 촉탁의(囑託醫)가 되어 가지고 온갖 물질적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아니되게 되었던 것이다. 그간으로도 M군은 여러 번이나 업의 학비를 대이기를 단념하려 하였던 것이었으나 그러나 아직 그의 업에 대한 실망이 그리 크지도 아니하였고 또 싹이 나려는 아름다운 싹을 그대로 꺾어 버리는 것도 같아서 어딘지 애착 때문에 매어 달려지는 미련(未練)에 끌리어 그럭저럭 오늘까지 끌어왔던 것이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의 업에 대한 애착과 미련도 곱게 어디론지 다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물질적 관계가 그로 하여금 업을 단념시키기를 더욱 쉽게 하였던 것이나 아니었던가 한다.
「업이! 이번 봄은 벌써 업이 졸업일세 그려!」
「네― 구속 많고 귀찮던 중학생활도 이렇게 끝나려 하고 보니 섭섭한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졸업 후의 지망은?」
「음악학교!―」
그래도 주저하던 단념은 M군을 결정시켜 버렸다.
「업이 자네도 잘 알다시피 지금의 나는 나 한 몸뚱이를 지지(支持)해 나아가기에도 어려운 가운데 있어! 음악학교의 뒤를 대어 줄 수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악의가 아니야. 나의 지금 생각 같아서는 천재의 순을 꺾는 것도 같으나 이제부터는 이만큼이라도 자네를 길러주신 가난한 자네의 부모의 은혜라도 갚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이 말을 하는 M군은 도저히 업의 얼굴을 치어다볼 수가 없었다. M군의 이와 같은 소극적 약점(消極的 弱點)은 업으로 하여금
「오― 네 은혜를 갚으란 말이로구나.」
하는 부적당한 분개를 불지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M군은 언제인가 학교 무슨 회에서 여흥으로 만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연단 위에서 ‘바이올린’의 줄을 농락하던 그 업이를 생각하고 섭섭히 생각한 것만치 그에게는 조곰도 악의가 품어 있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M군의 업에 대한 「내 몸이 어렵더라도 시켜 보려 하였으나」하던 실망은 즉시로 「나를 미워하는 세상,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하는 업의 실망으로 옮기어졌다.
「내 생명을 꺾으려는 세상, 활동의 원동력을 주려 하지 않는 세상」
「M씨여, 당신은 나를 미워했지. 나의 천재를 시기했지. 나는 당신을 원망합니다.」
어두운 거리를 수없이 헤매이는 것이, 여항(閭巷)의 천한 계집과 씩뚝꺽뚝 하소연하는 것이 남의 집 담모퉁이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 공원 벤취에서 낮잠을 자는 것이, 때때로 죽어가는 T씨를 졸라서 몇 푼의 돈을 긁어내어 피부의 옅은 환락을 찾아다니는 것이 중학을 마치고 나온 청소년 업의 그후 생활이었다.
나날이 늘어가는 것은 업의 교만 방종한 태도
「아버지! 아버지는 왜 다른 아버지들과 같이 돈을 많이 좀 못 벌었습니까. 왜 남같이 자식 공부 좀 못 시켜 줍니까 왜 남같이 자식 호강 좀 못 시켜 줍니까 왜 돋으려는 순을 꺾느냐는 말이오.」
「아버지 무섭다」는 생각은 업에게는 털끝만치도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차라리 T씨가 아들 업이를 무서워하는 것이 옳을 것 같은 상태였었으니까.
「오냐, 다― 내 죄다. 그저 아비 못 만난 탓이다.」
T씨는 이렇게 업에게 비는 것이었다.
「애비가 자식 호강 못 시티는 생각만 하고 자식이 애비 호강 좀 시켜 보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겠니? 예끼 못된 자식.」
T씨에게 이런 생각은 참으로 꿈에도 날 수 없었다. 「천재를 썩힌다. 애비가 죄다.」 이렇게 T씨의 생활은 속죄(贖罪)의 생활이었다. 그날의 밥을 끓여 먹을 쌀을 걱정하는 그들의 살림 가운데에서였으나 업의 「돈을 내라」는 절대한 명령에는 쌀팔 돈이고 전단을 잡혀서이고 당장에 내어 놓지 않고는 죽을 것 같이만 알고 잇는 T씨의 살림이었다. 차마 못 할 야료를 T씨의 눈앞에서 거리낌없이 연출하더라도 며칠밤씩 못 갈 데 가서 자고 들어오는 것을 T씨 눈으로 보면서도
「저것의 심정을 살핀다」는 듯이
「미안하다. 다 내 죄가 아니면 무엇이냐」는 듯이 업의 앞에서 머리를 숙인 채 업에게 말 한 마디 던져 볼 용기도 없이 마치 무슨 큰 죄나 진 종[僕]이 주인의 얼굴을 차마 못 쳐다보는 것과 같이 묵묵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때로는
「해외의 형은 어쩌면 돈도 좀 보내 주지 않는담」
이렇게 얼토당토 않은 그 형을 원망도 하여 보는 것이었다. T씨의 아들 업에 대한 이와 같은 죽은 쥐 같은 태도는 업의 그 교만종횡(驕慢縱橫)한 잔인성을 더욱더욱 조장시키는 촉진제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업에 실망한 M군과 M군에 실망한 업의 사이가 멀어져 감은 물론이요 그러한 불합리(不合理)한 T씨의 태도에 불만을 가득 가진 M군과 자기 아들에게 주던 사랑을 일조에 집어던진 가증한 M군을 원망하는 T씨의 사이도 점점 멀어져 갈 따름이었다. 다만 해외에 방랑하는 그의 소식을 직접 듣는 M군이 그의 안부를 전하는 동시에 그들의 안부를 알려 T씨의 집을 이따금 방문하는 외에는 그들 사이에 오고 감의 필요가 전혀 없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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