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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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질(顚跌)
이러다가는 내 중립지대로만 알고 있던 건강술이 자칫하면 붕괴할 것 같은 위구(危懼)가 적지 않다. 나는 조심조심 내 앉은 자리에 혹 유해한 곤충이나 서식하지 않는가 보살펴야 한다.
T군과 마주 앉아 싱거운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 내 눈이 여간 축축하지 않았단다. 그도 그럴밖에. 나는 시시각각으로 자살할 것을, 그것도 제 형편에 꼭 맞춰서 생각하고 있었으니―― 내가 받은 자결(自決)의 판결문 제목은,
"피고는 일조에 인생을 낭비하였느니라. 하루 피고의 생명이 연장되는 것은 이 건곤(乾坤)의 경상비를 구태여 등귀(騰貴)시키는 것이거늘 피고가 들어가고자 하는 쥐구녕이 거기 있으니 피고는 모름지기 그리 가서 꽁무니쪽을 돌아다보지는 말지어다."
이렇다.
나는 내 언어가 이미 이 황막한 지상에서 탕진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만치 정신은 공동(空洞)이요, 사상은 당장 빈곤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유구한 세월을 무사히 수면하기 위하여, 내가 몽상하는 정경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입을 다물고 꿀항아리처럼 잠자코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몽골피에 형제가 발명한 경기구(輕氣球)가 결과로 보아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의 발달을 훼방 놀 것이다. 그와 같이 또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 발명의 힌트의 출발점인 날개가 도리어 현재의 형태를 갖춘 비행기의 발달을 훼방 놀았다고 할 수도 있다. 즉 날개를 펄럭거려서 비행기를 날게 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차륜을 발명하는 대신에 말의 보행을 본떠서 자동차를 만들 궁리로 바퀴 대신 기계장치의 네 발이 달린 자동차를 발명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억양도 아무것도 없는 사어(死語)다. 그럴밖에. 이것은 장 콕토의 말인 것도.
나는 그러나 내 말로는 그래도 내가 죽을 때까지의 단 하나의 절망, 아니 희망을 아마 텐스(시제)를 고쳐서 지껄여 버린 기색이 있다.
"나는 어떤 규수(閨秀) 작가를 비밀히 사랑하고 있소이다그려!"
그 규수 작가는 원고 한 줄에 반드시 한 자씩의 오자를 삽입하는 쾌활한 태만성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이 여인 앞에서는 내 추한 짓밖에는, 할 수 있는 거동의 심리적 여유가 없다. 이 여인은 다행히 경산부(經産婦)다.
그러나 곧이듣지 마라. 이것은 다음과 같은 내 면목을 유지하기 위해 발굴한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결혼하고 싶어하는 여인과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 결이 나서 결혼하고 싶지도, 저쪽에서 결혼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여인과 결혼해 버린 탓으로 뜻밖에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던 다른 여인이 그 또 결이 나서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렸으니 그야말로―---나는 지금 일조(一朝)에 파멸하는 결혼 위에 저립(佇立)하고 있으니――일거에 삼첨(三尖)일세그려."
즉 이것이다.
T군은 암만해도 내가 불쌍해 죽겠다는 듯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보더니,
"자네, 그중 어려운 외국으로 가게, 가서 비로소 말두 배우구, 또 사람두 처음으루 사귀구 그리구 다시 채국채국 살기 시작허게. 그럭허능 게 자네 자살을 구할 수 있는 유일의 방도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그럼 박정한가?"
자살? 그럼 T군이 눈치를 채었던가.
"이상스러워할 것도 없는 게 자네가 주머니에 칼을 넣고 댕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자네에게 자살하려는 의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겠나. 물론 이것두 내게 아니구 남한테서 꿔온 에피그램(경구)이지만."
여기 더 앉았다가는 복어처럼 탁 터질 것 같다. 아슬아슬한 때 나는 T군과 함께 바를 나와 알맞추 단성사 문 앞으로 가서 삼 분쯤 기다렸다.
윤과 임이가 일조(一條) 이조(二條) 하는 문장(文章)처럼 나란히 나온다. 나는 T군과 같이 '만춘 시사(晩春試寫)'를 보겠다. 윤은 우물쭈물하는 것도 같더니,
"바통 가져가게."
한다. 나는 일없다. 나는 절을 하면서,
"일착 선수(一着選手)여! 나를 열차가 연선(沿線)의 소역(小驛)을 잘디잔 바둑돌 묵살하고 통과하듯이 무시하고 통과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순간 임이 얼굴에 독화(毒花)가 핀다. 응당 그러리로다. 나는 이착의 명예 같은 것은 요새쯤 내다버리는 것이 좋았다. 그래 얼른 릴레이를 기권했다. 이 경우에도 어휘를 탕진한 부랑자의 자격에서 공구(恐懼) 요코미쓰 리이치(橫光利一) 씨의 출세를 사글세 내어온 것이다.
임이와 윤은 인파 속으로 숨어 버렸다.
갤러리 어둠 속에 T군과 어깨를 나란히 앉아서 신발 바꿔 신은 인간 코미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랫배가 몹시 아프다. 손바닥으로 꽉 누르면 밀려 나가는 김이 입에서 홍소(哄笑)로 화해 터지려 든다. 나는 아편이 좀 생각났다. 나는 조심도 할 줄 모르는 야인(野人)이니까 반쯤 죽어야 껍적대지 않는다.
스크린에서는 죽어야 할 사람들은 안 죽으려 들고 죽지 않아도 좋은 사람들이 죽으려 야단인데 수염 난 사람이 수염을 혀로 핥듯이 만지작만지작하면서 이쪽을 향하더니 하는 소리다.
"우리 의사는 죽으려 드는 사람을 부득부득 살려 가면서도 살기 어려운 세상을 부득부득 살아가니 거 익살맞지 않소."
말하자면 굽 달린 자동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고들 있다.
나는 차츰차츰 이 객(客) 다 빠진 텅빈 공기 속에 침몰하는 과실 씨가 내 허리띠에 달린 것 같은 공포에 지질리면서 정신이 점점 몽롱해 들어가는 벽두에 T군은 은근히 내 손에 한 자루 서슬 퍼런 칼을 쥐여 준다.
'복수하라는 말이렷다.' '윤을 찔러야 하나? 내 결정적 패배가 아닐까? 윤은 찌르기 싫다.' '임이를 찔러야 하지? 나는 그 독화 핀 눈초리를 망막에 영상한 채 왕생하다니.' 내 심장이 꽁꽁 얼어 들어온다. 빠드득빠드득 이가 갈린다.
'아하 그럼 자살을 권하는 모양이로군, 어려운데――어려워, 어려워, 어려워.' 내 비겁(卑怯)을 조소하듯이 다음 순간 내 손에 무엇인가 뭉클 뜨뜻한 덩어리가 쥐어졌다. 그것은 서먹서먹한 표정의 나쓰미캉, 어느틈에 T군은 이것을 제 주머니에다 넣고 왔던구.
입에 침이 좌르르 돌기 전에 내 눈에는 식은 컵에 어리는 이슬처럼 방울지지 않는 눈물이 핑 돌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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