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870531]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2-04-05 06:2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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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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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시작 


이런 정경은 어떨까? 내가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는 중에―― 이발사는 낯익은 칼을 들고 내 수염 많이 난 턱을 치켜든다. 


"님재는 자객입니까?" 


하고 싶지만 이런 소리를 여기 이발사를 보고도 막 한다는 것은 어쩐지 아내라는 존재를 시인하기 시작한 나로서 좀 양심에 안된 일이 아닐까 한다. 


싹둑, 싹둑, 싹둑, 싹둑. 


나쓰미캉 두 개 외에는 또 무엇이 채용이 되었던가. 암만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엇일까. 


그러다가 유구한 세월에서 쫓겨나듯이 눈을 뜨면, 거기는 이발소도 아무 데도 아니고 신방이다. 


나는 엊저녁에 결혼했단다. 


창으로 기웃거리면서 참새가 그렇게 의젓스럽게 싹둑거리는 것이다. 내 수염은 조금도 없어지진 않았고. 


그러나 큰일난 것이 하나 있다. 즉 내 곁에 누워서 보통 아침잠을 자고 있어야 할 신부가 온데간데가 없다. 하하, 그럼 아까 내가 이발소 걸상에 누워 있던 것이 그쪽이 아마 생시더구나, 하다가도 또 이렇게까지 역력한 꿈이라는 것도 없을 줄 믿고 싶다. 


속았나 보다. 밑진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 동안에 원 세월은 얼마나 유구하게 흘렀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보니까 어저께 만난 윤이 만난 지가 바로 몇 해나 되는 것도 같아서 익살맞다. 이것은 한번 윤을 찾아가서 물어 보아야 알 일이 아닐까, 즉 내가 자네를 만난 것이 어제 같은데 실로 몇 해나 된 세음인가, 필시 내가 임이와 엊저녁에 결혼한 것 같은 착각이 있는데 그것도 다 허망된 일이렷다. 이렇게―― 그러나 다음 순간 일은 더 커졌다. 신부가 홀연히 나타난다. 오월철로 치면 좀 더웁지나 않을까 싶은 양장으로 차렸다. 이런 임이와는 나는 면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뿐인가 단발이다. 혹 이이는 딴 아낙네가 아닌지 모르겠다. 단발 양장의 임이란 내 친근(親近)에는 없는데, 그럼 이렇게 서슴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올 줄 아는 남이란 나와 어떤 악연(惡緣)일까? 


가시내는 손을 톡톡 털더니, 


"갖다 버렸지." 


이렇다면 임이는 틀림없나 보니 안심하기로 하고, 


"뭘?" 


"입구 옹 거." 


"입구 옹 거?" 


"입고 옹 게 치마저고리지 뭐예요?" 


"건 어째 내다버렸다능 거야." 


"그게 바로 그거예요." 


"그게 그거라니?" 


"어이 참, 아, 그게 바로 그거라니까 그래." 


초가을옷이 늦은 봄옷과 비슷하렷다. 임의 말을 가량(假量) 신용하기로 하고 임이가 단 한 번 윤에게――. 가만있자, 나는 잠시 내 신세에 대해서 석명(釋明)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를테면 적지않이 참혹하다. 나는 아마 이 숙명적 업원(業寃)을 짊어지고 한평생을 내리 번민해야 하려나 보다. 나는 형상 없는 모던 보이다. 라는 것이 누구든지 내 꼴을 보면 돌아서고 싶을 것이다. 내가 이래봬도 체중이 십사 관(貫)이나 있다고 일러 드리면 귀하는 알아차리시겠소? 즉 이 척신(瘠身)이 총알을 집어먹었기로니 좀처럼 나기 어려운 동굴을 보이는 것은 말하자면 나는 전혀 뇌수에 무게가 있다. 이것이 귀하가 나를 겁낼 중요한 비밀이외다. 


그러니까―― 어차어피(於此於彼)에 일은 운명에 파문이 없는 듯이 이렇게까지 전개하고 말았으니 내 목적이라는 것을 피력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윤, 임이 그리고 나, 누가 제일 미운가, 즉 나는 누구 편이냐는 말이다. 


어쩔까. 나는 한 번만 똑똑히 말하고 싶지만 또한 그만두는 것이 옳은가도 싶으니 그럼 내 예의와 풍봉(風丰)을 확립해야겠다. 


지난 가을 아니 늦은 여름 어느 날――그 역사적인 날짜는 임이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만――나는 윤의 사무실에서 이른 아침부터 와 앉아 있는 임이의 가련한 좌석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 것이 아니라 가는 길인데 집의 아버지가 나가 잤다고 야단치실까 봐 무서워서 못 가고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도 와 앉았구나 하고 문득 오해한 것이다. 그때 그 옷이다. 


같은 슈미즈, 같은 드로즈, 같은 머리쪽, 한 남자 또 한 남자. 


이것은 안 된다. 너무나 어색해서 급히 내다버린 모양인데 나는 좀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대체 나는 그런 부유한 이데올로기를 마음놓고 양해하기 어렵다. 


그뿐 아니다. 첫째 나의 태도 문제다. 그 시절에 나는 무엇을 하고 세월을 보냈더냐? 내게는 세월조차 없다. 나는 들창이 어둑어둑한 것을 드나드는 안집 어린애에게 일 전씩 주어 가면서 물었다. 


"얘, 아침이냐, 저녁이냐." 


나는 또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슬을 받아 먹었나? 설마. 


이런 나에게 임이는 부질없이 체면을 차리려 든 것이다. 가련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시절에 나는 제가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를 모르고 지냈다면 그것이 듣는 사람을 능히 속일 수 있나. 거짓부렁이리라. 나는 걷잡을 수 없이 피부로 거짓부렁이를 해 버릇 하느라고 인제는 저도 눈치채지 못하는 틈을 타서 이렇게 허망한 거짓부렁이를 엉덩방아 찧듯이 해넘기는 모양인데, 만일 그렇다면 나는 큰일났다. 


그러기에 사실 오늘 아침에는 배가 고프다. 이것으로 미루면 아까 임이가 스커트, 슬립, 드로즈 등 속을 모조리 내다버리고 들어왔더라는 소개조차가 필연 거짓말일 것이다. 그것은 내 인색(吝嗇)한 애정의 타산이 임이더러, 


"너 왜 그러지 않았더냐." 


하고 암암리에 퉁명? 심술을 부려 본 것일 줄 나는 믿는다. 


그러나 발음 안 되는 글자처럼 생동생동한 임이는 내 손톱을 열심으로 깎아 주고 있다. 


'맹수가 가축이 되려면 이 흉악한 독아(毒牙)를 전단(剪斷)해 버려야 한다.'는 미술적인 권유에 틀림없다. 이런 일방 나는 못났게도, 


"아이 배고파." 


하고 여지없이 소박한 얼굴을 임이에게 디밀면서 아침이냐 저녁이냐 과연 이것만은 묻지 않았다. 


신부는 어디까지든지 귀엽다. 돋보기를 가지고 보아도 이 가련한 일타화(一朶花)의 나이를 알아 내기는 어려우리라. 나는 내 실망에 수비하기 위하여 열일곱이라고 넉넉잡아 준다. 그러나 내 귀에다 속삭이기를, 


"스물두 살이라나요. 어림없이 그러지 마세요. 그만하면 알 텐데 부러 그러시지요?" 


이 가련한 신부가 지금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나갔다. 내 짐작에 쌀과 나무와 숯과 반찬거리를 장만하러 나간 것일 것이다. 


그 동안 나는 심심하다. 안집 어린아기 불러서 같이 놀까. 하고 전에 없이 불렀더니 얼른 나와서 내 방 미닫이를 열고, 


"아침이에요." 


그런다. 오늘부터 일 전 안 준다. 나는 다시는 이 어린애와는 놀 수 없게 되었구나 하고 나는 할 수 없어서 덮어놓고 성이 잔뜩 난 얼굴을 해보이고는 뺨 치듯이 방 미닫이를 딱 닫아 버렸다. 눈을 감고 가슴이 두근두근하자니까, 으아 하고 그 어린애 우는 소리가 안마당으로 멀어 가면서 들려왔다. 나는 오랫동안을 혼자서 덜덜 떨었다. 임이가 돌아오니까 몸에서 우윳내가 난다. 나는 서서히 내 활력을 정리하여 가면서 임이에게 주의한다. 똑 갓난아기 같아서 썩 좋다. 


"목장까지 갔다 왔지요." 


"그래서?" 


카스텔라와 산양유(山羊乳)를 책보에 싸가지고 왔다. 집시족 아침 같다. 


그리고 나서도 나는 내 본능 이외의 것을 지껄이지 않았나 보다. 


"어이, 목말라 죽겠네." 


대개 이렇다. 


이 목장이 가까운 교외에는 전등도 수도도 없다. 수도 대신에 펌프. 


물을 길러 갔다 오더니 운다. 우는 줄만 알았더니 웃는다. 조런――하고 보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그러고도 웃고 있다. 


"고개 누우 집 아일까. 아, 쪼꾸망 게 나더러 너 담발했구나, 핵교 가니? 그리겠지, 고개 나알 제 동무루 아아나 봐, 참 내 어이가 없어서, 그래, 난 안 간단다 그랬더니, 요게 또 헌다는 소리가 나 발 씻게 물 좀 끼얹어 주려무나 얘, 아주 이리겠지, 그래 내 물을 한 통 그냥 막 좍좍 끼얹어 주었지, 그랬더니 너두 발 씻으래, 난 이따가 씻는단다 그러구 왔어, 글쎄, 내 기가 맥혀." 


누구나 속아서는 안 된다. 햇수로 여섯 해 전에 이 여인은 정말이지 처녀대로 있기는 성가셔서 말하자면 헐값에 즉 아무렇게나 내어 주신 분이시다. 그 동안 만 오 개년 이분은 휴게(休憩)라는 것을 모른다. 그런 줄 알아야 하고 또 알고 있어도 나는 때마침 변덕이 나서, 


"가만있자, 거 얼마 들었더라?" 


나쓰미캉이 두 개에 제아무리 비싸야 이십 전, 옳지 깜빡 잊어버렸다. 초 한 가락에 이십 전, 카스텔라 이십 전, 산양유는 어떻게 해서 그런지 그저, 


"사십삼 전인데." 


"어이쿠." 


"어이쿠는 뭐이 어이쿠예요." 


"고놈이 아무 수로두 제해지질 않는군 그래." 


"소수(素數)?" 


옳다. 


신통하다. 


"신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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