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방랑(4)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5885233
내 눈앞에서 한 여인이 해산을 하고 있다. 치골 언저리가 몹시 아프다. 팔짱을 끼듯 나는 그 애처로운 광경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팔굽 언저리는 딱딱한 책상이다. 책상 위엔 아무것도 없다.
말소리가 유리를 뚫고 맑게 울리는 시골 사투리가 되어 들려왔다. 그것들은 더없이 즐겁다. 그리고 좀 시끄럽기조차 하다.
나는 개떼한테 쫓기고 있었다. 나는 쏜살같이 달아난다. 이윽고 나의 속도는 개들의 그것보다 훨씬 뒤진다. 개들의 흙투성이 발이 내 위에 포개졌다. 무수한 체중이 나를 짓누른다. 개들은 나를 쫓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나를 밟고 넘어선 나의 전방 먼 저쪽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또 어쩌면 이렇게도 숱한 개의 수효란 말인가.
열차는 멈춰 있었다. 밤안개 속에 체온을 증발시키고 있었다. 턱수염인 것처럼 때때로 기관차는 뼈 돋힌 숨을 쉬었다.
차창 밖을 흘깃 내다보았더니 이건 또 유령의 나라 순사인가. 금빛 번쩍거리는 모자를 쓴 사람이 습득물 바퀴 하나를 가지고 우두커니 서 있다. 이윽고 태엽을 감기나 한 듯이 종종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의 얼굴에 어디선지 불이 옮겨 붙었는가 하자, 이미 그 모습은 무슨 방대한 어둠의 본체 속으로 빨려들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모골이 송연했다. 보아선 아니 된다. 나는 또 그 무슨 참혹한 광경을 목도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까 내 귀에 산 같은 것이 무너져 떨어졌다.
내 귀는 멀어 있었던가. 그것은 남행의 국제특급인 것 같았다. 그렇다 치더라도 내 귀는 멀어 있었던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리고 모든 것을 남기고 또 하나의 야행열차는 야기(夜氣) 때문에 흠씬 젖은 덩치를 엇비비듯 지나쳤다.
누군가가 슬픈 음색으로 기적을 불었다. 그렇게 느껴졌다.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은 잠든 사이에 멸형(滅形)되었나 보다.
개찰구에 홀로 우두커니 기대고 있던 백의(白衣)의 사람이 에스컬레이터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빛을 번쩍거리던 사람은 다시 어디선가 나타나서 엄숙하게 거수경례를 해보였다. 나는 내심 혀를 낼름 내밀었다. 이건 혹시 장난감 기차인지도 모른다. 진짜 기차는 어딘가 내 손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위대한 지도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그렇게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내곁의 그는 어느새 잠이 깨고 그 진도처럼 생긴 단장을 턱에 짚고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고쳐 앉은 나를 향해 지금 엇갈려 간 열차는 ‘히카리’가 분명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구말구 하듯 끄덕여 보였다. 그는 만족한 듯 그 ‘히카리’ 호의 속력이 어떻게 절륜적(絶倫的)인 것인가에 대해 그 체험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얼마나 드물게밖엔 정차하지 않는가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슈트케이스에서 사륙반절형 소책자와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만주 담배라도 들어 있나 했더니, 그것은 만주에서 샀다는 케이스였다. 그때 그의 슈트케이스의 내용이 얼마나 빈약한가를 목격하고 말았다. 그 흔해 빠진 여송연 한 개비를 나에게 권했다.
나는 그것을 피우리라. 이미 이 야행열차 속에 10년 전의 그 커다란 잎 그대로의 칙칙한 연기를 볼 수는 없다.
그들은 먼 조상의 담뱃대를 버리고 우습기 짝이 없는 궐련을 피우는 대[竹], 또는 오동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다. 그들 중 누군가는 그 맛의 미흡함과 자신의 어지간히 큰 덩치에 비해 파이프가 너무나 작은 멋쩍음으로 해서 눈에서 주루루 눈물마저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구토가 자꾸만 치밀어 목은 좌로 향하고 우로 향했다. 무거운 짐짝 같은 두통이 눈구멍 속에 있었다. 이것은 분명 불결한 공기 탓이리라. 이 불결한 공기로부터 잠시나마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승강구에 섰다. 요란한 음향이다. 철과 철이 맞부딪는 대장간 같은 소리는 고통에 넘쳐 있다. 나는 산소로만 만들어졌다고 할 수밖에 없는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이 정수리를 때리는 것만 같은 음향에 익숙하려 했던 것이다. 공기는 냉랭한 채 머리털에 엉겨 붙었다. 이마에 제법 차가운 손이 얹혀지는 것만 같았다. 사람을 초조하게 하는 이 음향에 어서 익숙했으면 좋겠다.
승강구에 멈춰 서 보았다. 몸은 좌 혹은 우였다. 아직 머리는 비슬거리고 있나 보다.
소변을 누어 보는 것도 좋겠다. 달리는 기차 위로부터 떨어지는 소변은 가루눈처럼 산산이 흩어져, 그것은 땅바닥에 가닿지도 못할 것이다.
이때 나의 등 뒤에서 차량과 차량과의 접속해 있는 부분의 복잡한 기계를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있다. 차장일 테지.
그렇다하더라도 익숙한 손짓이다. 나는 소변을 보면서 귀찮은 일은 그만 잊어버리기로 했다.
언제까지나 무엇을 저렇게 만지작거리는 것일까. 고장이 난 것일까. 그런 일이 있어서야 어디 되겠는가. 그렇더라도 너무 시간이 길다. 나는 더 참을 수가 없다. 돌아다보기로 하자. 아니 이거 아무도 없구나.
가느다란 공기 속에서 그전처럼 철과 철이 광명단(光明丹)을 가운데 끼고 맞부딪고 있다. 그리고 슬픈 소리를 내고 있다. 나의 소변은 어이없게 끝나버렸다. 이젠 이 이중(二重)―이부(二部)로 이루어진 음향에 익숙해져야 한다. 나는 먼 곳을 바라다보기로 했다.
거기엔 경치랄 것이 없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린 방대한 살기가 어디까지나 펼쳐져 있다. 저 안개같이 보이는 것은 실은 고열의 증기일 것이 분명하다. 이 무슨 바닥 없는 막대한 어둠일까.
들판도 삼켜졌다. 산도 풀과 나무를 짊어진 채 삼켜져 버렸다. 그리고 공기도, 보아하니 그것은 평면처럼 얄팍한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입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헤아릴 수 없는 심원한 거리를 그득히 담고 있다. 그 심원한 거리 속에는 오직 공포가 있을 따름이다.
반짝이지 않는 별처럼 나의 몸은 오무러들면서 깜박거리고 있었다. 이미 이것은 눈물과 같은 희미한 호흡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나는 핸들을 꽉 붙잡고 있다. 차가운 것이 흐르고 있다. 나는 그것을 놓을 수는 없다―저 막대한 공포와 횡포의 아주 초입은 역시 조그마한 초원, 그것은 계절의 자잘한 꽃마저 피우고 있는, 목초가 있는 약간의 땅인 것 같다.
실상 일전에 이 열차의 등불 있는 생명에 매달리려고 필사의 아우성을 치면서―그것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다.
저기 멈춰 서자. 메마른 한 그루의 나무가 있으면 그것에 산책자이듯이 기대서자. 거창한 동공이 내 위에 쏟아진다. 나는 그것에 놀라면 안 된다.
아름다운 시를 상기한다. 또는 범할 수 없는 슬픈 시를 상기한다. 그리곤 고개를 수그리면서 외워 본다. 공포의 해소(海嘯)는 얼마쯤 멀어진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는다. 내 손에는 어느새 은빛으로 빛나는 단장이 쥐어져 있다. 그것을 가볍게 휘둘러 본다.
그리하여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윽고 사람들은 오고야 말 것이다. 오오, 아직 이 살벌한 몽몽(濛濛)한 대기는 나를 위협하고 있다.
하현달이다. 굳이 나는 아름답다고 본다. 그것은 몹시 수척한 심각하게 표정적인, 보는 눈에도 가엾게 담배 연기로 혼탁해 있는 달이다. 함성을 지르기엔 아직 이르다. 공포의 심연 속에는 분노의 호흡이 들린다. 이젠 사람들이 와도 좋을 시기다.
왔다. 일순, 달은 분연(噴煙)을 울리고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들은 철을 운반해온 것이다. 사람들은 묵묵히 다가온다. 다만 철과 철이 알몸인 채 맞부딪고 있다. 나의 귀는 동굴처럼 그러한 음향들을 하나하나 반향한다. 아니, 이건 또 후방으로부터 오나 보다. 그렇다면 난 방향을 잘못 잡고 서 있는 것일까. 이건 반의(叛意)를 품고 있는 것 같다. 이건 단 혼자인 것 같다. 나는 아찔했다. 나는 상아처럼 차갑게 가늘어지면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거기엔 아무도 없다. 나는 끝끝내 대지(垈地)를 분실하고 말았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내 피부악화 원인 중 하나인가? 크림 닦으려고 쓰는거긴한데 아니면 계속...
-
션티 단어장1회독 nf 2회독 키스 독해편이랑 순삽까지 했고 월간조정식 하고 있고...
-
MT 때 조니워커 레드만 가져가도 스타되던 게 생각나네요. 1
아주 비싼 술은 아닌데 이것도 위스키라고 나름 스타가 됐던...컵까지는 못 가져가서...
-
효과 비슷한듯
-
저는 평일엔 6시간 주말엔 7~8시간 정도자려고하는데 적당할까요?
-
올해 3번째 기출 돌리는데(문기정b 마더텅하고 자이 푸는중..) 시간단축하려 하면...
-
아니 왜 급식을 엎는 거야 정신 없어서 급식 사진도 못 찍음 ㅠㅠ 맛있었는데
-
지성/건성 판단기준이 세수 직후 맞나요? 전 물로만 벅벅해도 닦으면 바로 엄청건조해집니다
-
뭔 3월에 눈이
-
갈수록 피부가 더 악화되는거 같죠? 참고로 전 세수하면 엄청 건조해지는...
-
ㅈㄱㄴ
-
새내기 꿀팁 2
연애하고 싶으면 중앙동아리다
-
아닌가?
-
안나가봐서 모르겠는데 아침엔 조금씩 왔음
-
점심여캐투척 3
음역시귀엽군
-
ㅠㅠㅠ 거의 다 n수생이야
-
수학 2등급 정도 노리는데 확통이랑 미적분 뭐가 더 좋을까요? 교대 희망하는데,...
-
토익 490점 이게 맞냐 어찌된일이오 수능 끝나고 3달 사이에 퇴화를 해버림 그냥
-
저도 열공했어요 흐흐
-
ㅇㅂㄱ 0
-
실감하게 되네
-
급식 맛잇당 2
집 가고 싶당
-
기대가 된다
-
24학번 위로는 슬슬 제적당할만큼 학고 모으지 않았나 우리학교는 학고 3번 모으면 제적인데
-
아니면 냉동볶음밥... 이따 캠퍼스구경하면서 식재료좀 사올가
-
60키로대를 딸깍 한번으로 도달시키구나
-
미적분 4
시발점 끝낫는데 아이디어 ㄱㅊ나요 근대 뉴런을 가지고 잇긴해요 뉴런부터 들으면 힘들다길래
-
일찍 자도 5시간~5시간30 자면 자동으로 눈이 떠져서 괴로움... 알람 울릴때 깨고싶어
-
애완동물 기르다가 먼저 무지개다리 건너면 그 꼴 다시 겪기 싫어서 안 기르는 경우도 꽤 있나요? 2
저희 어머니 케이스인데 결혼 전, 이모와 같이 살 때 강아지를 기르셨는데강아지...
-
필수면 나중에 나오는 이기상 강의+교재만 하면 되나요 아니면 따로 ebs 수특 수완...
-
재종에서 하루에 시험본다고 외우는 단어가 100개쯤되고 단과 과제 단어가 하루에...
-
옯데이트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을
-
안 씻어서 꼬질해짐 12
자취방 가스 연결 아직 안 해서 샤워를 못 함 찬 물만 나와... 고양이 세수만
-
사탐의대 5
이론적으로는 사탐의대가 가능한걸로 알고 있는데 과탐의 가산점+a 등등을 고려했을때...
-
ㅈㄱㄴ
-
무작정 버스 타러 와서 기다리는중임..
-
군대=탐구선택인듯 30
두시간뒤에 신교대 입소하는데.. 문득 생각남 물1=육군 근본임 개념량(복무기간)...
-
다름이 아니고 당근에 26 쌍윤리밋 각각2마넌에 올라왔는데 섭노트는 없길래...
-
군수 입학 질문 6
제가 아마 7월 해군수송으로 가서 군수를 할거같은데 그럼 전역이 27년 4월...
-
171130은 대가리 굴리고 굴리다 비비니 됐는데 이건 시발 못해먹겠네 으윽 강의 볼 거야
-
배를 밀며 새1 이거 2개만 찍었고 그 중 하나 나옴 찍은 방법은 영업 비밀이라...
-
금요일날 출고라는데 보통 그럼 언제쯤 도착하나요??
-
예를들어, 사문생윤 91 90 2 90 89가 서울교대식 3.8%라는게 무슨 뜻이에요?
-
여자랑 눈 맞고 싶다
-
하기싫네ㄹㅇ
-
씁쓸허다 8
씁쓸혀
-
ebs는 절대 안볼꺼같음 독서 중요도는 평가원이 저격때려서 분명히 나올 것 같은...
-
내 생기부는 옛날식 생기부 엉엉
이상님 좋은 오전입니다!
좋은아침이에요!
그래! 이 프사가 가장
이상님스러운!
오늘도 힘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