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y Lake: 李箱 [870531] · MS 2019 · 쪽지

2022-03-24 09: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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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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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구에 내다 버릴 내 마음 잠깐 걸어 두는 한 개 못입니다. 육신의 각 부분들도 이모체의 

허망한 것을 묵인하고 있나 봅니다. 여인, 내 그대 몸에는 손가락하나 대지 않으리다. 죽읍시다. 

“더블 플라토닉 슈사이드인가요?” 아니지요, 두 개의 싱글 슈사이드지요. 나는 수첩을 꺼내서 

짚었습니다. 오늘이11월 16일이고, 오는 오는 공일날이 12월 1일이고 그렇다고. “두 주일이군요.” 

참 그렇군요. 여인의 창호지같이 창백한 얼굴에 금이 가면서 그리로웃음이 가만히 내다보나 봅니다. 여인은 내 그윽한 공책에다 악보처럼 생긴글자로 증서를 하나 쓰고 지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틀림없이 같이 죽어드리기로.” 네, 감사하다 뿐이겠습니까.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생각하고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죄송스러운 일을 잊어버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손수건을 기처럼 

흔들었습니다. 패배의 기념입니다. “저기 저 자동차들은 비가 오는데 어디를 저렇게 갑니까?” 네, 

그 고개 너머 성모의 시장이 있습니다. “1원짜리가 있다니 정말불을 지르고 싶습니다.” 왜요. 

자동차들은 헤드라이트로 물을 튀기면서 언덕 너머로 언덕 너머로 몰려 갑니다. 오늘같이 척척한 

밤공기 속에서는 분도 좀더 발라야 하고 향수도 좀더 강렬한 것이 소용될 것 같습니다. 


참 척척합니다. 비는 인제 제법 옵니다. 모자 차양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두루마기는 속속들이 젖어서 인제는 저고리가 젖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없는데 뉘에다가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나는 누구나 만나거든 부끄러워해 드리렵니다. 그러나 그이는 내가 왜 

부끄러워해하는지 모릅니다. 내 속에 사는 악마는 고생살이 많이 한 사람 모양으로 키가 작습니다. 

또 체중도 몇 푼어치 안 되나 봅니다. 악마는 어디 가서 횡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장갑을 벗으면서 초췌하나 즐거운 얼굴을 잠깐 거울 속으로 엿보나 봅니다. 그리고 나서는 깨끗한 도화지 위에 

단색으로 풍경화를 한 장 그립니다. 


거기도 언젠가 한번은 왔다 간 일이 있는 항구입니다. 날이 좀 흐렸습니다. 반찬도 맛이 없습니다. 

젊은 사람이 젊은 여인을 곁에 세우고 우체통에편지를 넣습니다. 찰삭, 어둠은 물과 같이 

출렁출렁하나 봅니다. 우체통 안으로 꼭두서니 빗물이 차갑게 튀어서 편지가 젖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젊은사람은 입맛을 다시더니 곁에 섰던 여인과 어깨를 나란히 부두를 향하여 걸어갑니다. 몇 시나 

되었나…… 4시? 해는 어지간히 서로 기울고 음산한 바람이 밀물 냄새를 품고 불어옵니다. “담배를 

다섯 갑만 주십시오. 그리고 50전짜리 초콜릿도 하나 주십시오.” 여보 하릴없이 실감개 같지…….

자 안녕히 계십시오 “ , .” 골목은 길고 포도(鋪道)에는 귤 껍질이 여기저기헤어졌습니다. 뚜 ─ 

부두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가 분명합니다. 뚜 ─ 이뚜 ─ 소리에는 옅은 보라색을 칠해야 합니다. ‘부두요’ 올시다. 에그,여기도 버스가 있구려. 


마스트 위에서 깃발이 오늘은 숨이 차서 헐떡헐떡 야단입니다. 젊은 사람은 앞가슴 둘째 단추를 

빼어 놓습니다. 누가 암살을하면 어떻게 하게? 축항(築港) 물은 그냥 마루젱 처럼 검습니다. 

나무토막이 떴습니다. 저놈은 대체 어디서 떨어져나온 놈인구? 참, 갈매기가 나네.오늘은 헌 옷을 

입었습니다. 허공 중에도 길이 진가 봅니다. 자, 탑시다.선벽(船壁)은검고 굴딱지가 많이 붙었습니다. 하여간 탑시다. 시간이 된 모양이지. 뚜 ─ 뚜뚜 ─ 떠나나 보오. 나 좀 드러눕겠소. “저도요.” 좀 똥그란 들창으로 좀 내다봐야겠군. 항구에는 불이 들어왔습니다. 여인의 이마를 좀 짚어봅니다. 따끈따끈해요. 팔팔 끓습니다. 어쩌나…… 그러지 마우.담배를 피워 물었습니다. 한 개 피우고, 두 개 피우고, 잇대어 세 개 피우고, 네 개, 다섯 개, 이렇게 해서 쉰 개를 피우는 동안에 결심을 하면 됩니다. 


여보, 그동안에 당신은 초콜릿이나 잡수시오. 선실에도 다 불이 켜졌습니다. 모두들 피곤한가 봅니다. 마흔 개, 마흔한 개…… 이렇게 해서 어느 사이에 마흔아홉 개를 태워 버렸습니다. 혀가 아려서 못 

견디겠습니다.초저녁이 흔들립니다. 여보, 이 꽁초 늘어선 것 좀 봐요! 마흔아홉 개요.일어나요. 인제 갑판으로 나갑시다. 여인은 다소곳이 일어나건만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 흐렸군. 별도 없이 바다는 

그냥 문을 닫은 것처럼 어둡습니다. 소금내 나는 바람이 여인의 치맛자락을 날립니다. 한 개 남은 

담배에불을 붙여 물고, 요거 한 대가 다 타는 동안에 마지막 결심을 하면 됩니다. 


여보 서럽지는 않소? 여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다 탔소. 문을 닫아라. 배를 벗어 버리는 

미끄러운 소리…… 답답한 야음을 떠미는 힘든 소리…… 바다가 깨어지는 요란한 소리…… 굿바이. 

악마는 이 그림 한구석에차근차근히 사인을 하였습니다.두 주일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공일날이 

닥쳐왔습니다. 강변 모래 밭을 나는 여인과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침을 합니다. 

콜록콜록 ─ 코올록 ─ 감기가 촉생(觸生)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상류를 향하여 인정 없이 불어옵니다. 내 포켓에는 걱정이 하나 가뜩 들어 있습니다. 여인은 

오늘 유달리키가 작아 보이고 또 생기가 없어 보입니다. 내 그럴 줄을 알았지요. 당신은 너무 

젊습니다. 그렇게 젊은 몸으로 이렇게 자꾸 기일이 천연(遷延)되는데에서 나는 불안이 점점 커갈 

뿐입니다. 바람을 띵띵 먹은 돛폭을 둘씩 셋씩 세워서 상가선(商賈船)은 뒤에 뒤이어 올라가고 

있습니다. 노래나 한마디 하시구려 하늘은 차고 . 땅은 젖었습니다. 과자보다도 가벼운 여인의 

체중이었습니다. 


나는 돌아서서 간신히 담배를 붙여 물고 겸사겸사 한숨을 쉬었습니다. 기침이 납니다. 저리 가봅시다. 방풍림 우거진 속으로 철로가 놓여 있습니다. 까치 한 마리도 없이 낙엽은 낙엽대로 쌓여서 이 세상에 이렇게 황량한 데가 또 있겠습니까? 나는 여인의 팔짱을 끼고 질컥질컥하는 낙엽을 디디면서 동으로 동으로 걸었습니다. 자갈 실은 화물차가 자그마한 기적을 울리면서 우리 곁으로 지나갑니다. 우리는 서서 그 동화 같은 풍경을한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가끔 가다가는 낙엽 위로 길도 있습니다. 

그러나사람은 하나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어디까지든지 황량한 인외경(人外境)입니다. 나는 야트막한 여인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그 장미처럼 생긴 귀에다 대고 부드러운 발음을 하였습니다. 집에 

갑시다. “싫어요. 저는 오늘 아주 나왔세요.” 닷새만 더 참아요. “참지요…… 그러나 그렇게까지 

해서라도꼭 죽어야 되나요?” “그러믄요. 죽은 셈치고 그 영혼을 제게 빌려 주실수는 없나요?” 

안 됩니다. “언제든지 죽어 드리겠다는 저당을 붙여도?”네. 


세상에 이런 일도 또 있습니까? 나는 주머니 속에서 몇 벌 편지를 꺼내서는 그 자리에서 다 찢어 

버렸습니다. 군(君)이 이 편지를 받았을 때에는 나는 벌써 아무개와 함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리라는 내 마지막 허영심의 레터 페이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뭐란 말입니까? 과연 지금 나로서는혼자 내 한 명(命)을 끊을 만한 자신이 없습니다. 수양이 못 되었습니다.그러나 힘써 얻어 보오리다. 까치도 오지 않는 이 그윽한 수풀 속에 이 무슨 난데없는 떼 상장(喪章)이 쏟아진 것입니다. 여인은 

새파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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